책 소개
항일과 친일의 역사적 사건부터 보통 사람들의 일상까지
일제시대를 250장면으로 복원하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곳곳이 분주하다. 각종 기념사업회와 위원회가 꾸려져 선대의 독립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암살>부터 <밀정>, <박열>, <미스터 션샤인>까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나오기만 하면 화제만발이다. 한편, 한국사가 수능 필수 과목으로 채택된 이후에도 ‘청소년 역사 인식 실태’라는 키워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아이돌 그룹 멤버가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르거나 TV 프로그램의 역사 퀴즈에서 엉뚱한 답을 내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는 일도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이슈 중 하나이다. 한국사, 특히 일제시대의 역사 교육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이다.
《다큐멘터리 일제시대》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일제시대 사람들은 독립운동만 했을까?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정장 차림의 모던 보이·모던 걸이 정말 경성 거리를 활보했을까? 가슴 아픈 역사라며 누누이 들어왔지만 일제시대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궁금해했지만 기존의 역사서가 전해주지 못했던 이야기들 말이다. 일제시대는 정치적으로나 일상적으로 격동기였다. 민족 반역자들의 친일행위에 맞서 독립운동가들의 항일 투쟁이 곳곳에서 일어날 때, 경성의 ‘미쓰코시 백화점’과 영화관 ‘단성사’, 창경원의 동물원 등은 나들이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느 시대에나 그러했듯 식민지 조선인들도 먹고사는 문제로 고달픈 일상을 이어갔고 시대의 그늘 아래에서 가짜 화폐를 만드는 사기꾼도 등장했다. 청춘들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고, 모던 보이·모던 걸들은 백화점에서 소비문화를 탐닉하며 근대 자본주의 문화의 탄생을 예기했다. 저자 이태영은 당대의 신문과 잡지, 역사서를 바탕으로 독립운동가들의 항일 독립운동, 친일인사들의 행태와 더불어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입체적으로 복원함으로써, 조선왕조와 대한민국 사이 ‘공백의 시대’이자 역사 속에 홀로 떠 있는 ‘외로운 섬’이었던 일제시대를 재조명한다.
1.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일제시대의 재발견!
- 역사의 동시성과 연속성이 생생하게 그려지다
저자는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근현대사를 가르치면서 일제시대가 지나치게 항일과 친일의 역사로만 기억되는 데 아쉬움을 느꼈다. 이런 이유로 역사의 큰 수레바퀴 아래에서 함께 살아 숨 쉬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복원하고자 했다. 1907년 곳곳에서 항일 의병운동이 벌어지고 있을 때, 동대문 옆 훈련원 연병장에서는 경성 시내 학교들의 대규모 운동회가 열렸다. 1920년 만주에서 경신참변, 청산리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식민지 조선의 학생들은 금강산,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독립군 단체들이 러시아 자유시에서 혁명군의 공격을 받고 있을 때, 식민지 조선의 신문과 잡지에는 ‘춘약’이라는 정력제의 광고가 실리며 남성들을 유혹했다. 193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5·30 간도 폭동으로 잡혀온 조선인들로 서대문형무소가 미어터질 때, 경성 시민들은 세계를 뒤흔든 춤꾼 최승희의 춤사위에 넋을 잃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경성 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던 극적인 장면과는 달리 매우 조용했다. 저자는 이처럼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사건들을 중첩해 역사의 동시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일제시대의 인물과 사건, 공간 등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것임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일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개교한 경성제국대학은 아홉 개의 전문학교와 통폐합 과정을 겪으며 오늘날의 서울대학교로 재탄생했다. 1927년 경성 정동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첫 송출을 시작한 경성방송국은 오락 프로그램이 통속적이고 저급하다는 지식인들의 비난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현재의 KBS로 자리잡았다. 전조선축구대회에서 맞붙은 연희전문학교와 보성전문학교의 축구경기는 연보전으로 불리며 주목받았는데, 그 열기가 지금까지 연고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역사적 사건과 일상을 중첩시키고 현재와 연결시켜보면,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일제시대가 입체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일제 식민지시대의 사회상을 어떻게 복원해야 할까? 그 실마리는 의외로 단순한 곳에 있었다. 그 당시 항일 독립운동, 친일 반역 행위,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펼쳐놓고 한발 뒤로 물러나 ‘숲’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숲’은 탄압과 저항, 욕망과 좌절, 역사의 수레바퀴에 찢긴 삶의 잔해가 뒤섞여 있다. …… 항일 독립운동을 일상의 삶 속에서 서술할 때 오히려 그 의미가 더 살아난다. 모던 보이·모던 걸이 식민지‘적’ 근대에 탐닉하고 있을 때, 항일 투사들은 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디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이토록 숭고하고 값진 항일 독립운동의 정신을 후세에게 가르쳐야 한다.
-<머리말>(5쪽) 중에서
2. 일제시대를 살아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의 한가운데로!
-역사적 사건과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만들어낸 식민지시대의 전경
배우들의 명연기와 더불어 일제 치하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담았다는 평으로 극찬받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 극 초반, 유학을 떠나기 직전 김희성(변요한 분)은 유진 초이(이병헌 분)의 부모를 죽게 한 고약한 조부 김판서(김응수 분)로부터 회중시계를 선물 받는다. 왜 하필이면 시계였을까? 드라마 <경성스캔들>(2007)에 등장하는 모던 보이·모던 걸이 정말 경성 거리를 활보했을까? 1930년대에 경성에 댄스홀이 있었을까? 영화 <암살>(2015)의 생계형 독립군 속사포(조진웅 역)가 졸업한 신흥무관학교는 어떤 곳일까?
기존의 많은 역사책들이 일제시대를 흥미롭게 풀어내긴 했지만,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기엔 어렵게만 느껴진다. 역사적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일제시대》는 역사적 사건과 더불어 영화나 드라마에 존재했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그려낸다. 1902년 《제국신문》에 실린 진고개 목도평 시계포 광고를 통해 시간이라는 근대적 관념이 정착됐음을 확인한다. 일제 경찰의 풍기 문란 단속을 피해 과감한 애정행각을 벌이던 모던 보이·모던 걸의 모습과, 댄스를 퇴폐 문화로 간주하고 댄스홀을 금지했던 총독부 경무국장에게 보낸 공개 탄원서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에는 당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회영은 재산을 헐값에 팔아 마련한 돈으로 압록강을 건너가 중국 산위안바오에 신흥강습소(후에 신흥무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를 세웠다. 이 일화를 알게 되면, 의열단과 한국광복군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의 항일 투쟁이 먼 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건전’하고 ‘명랑’한 사회를 지향했던 조선총독부는 댄스홀을 금지했다. 만주사변 직후 총독 우가키 가즈시게는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 비상시에 딴스는 허가할 수 없다”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타고난 욕망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외려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 댄스홀을 금지하자 카페에서 댄스가 성행했다. 순사가 가끔 단속을 나왔으나 그럼에도 카페에서 남녀가 함께하는 댄스가 성행했다. 통제는 하되 욕망의 배출구는 열어놓겠다는 고도의 통치 전략이었을까?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선 서양음악이 대중화됐다. 재즈와 블루스, 왈츠가 유행했고, 음반 산업이 급성장했다. 1년에 레코드판이 120만 장 팔려 나갔다. 이런 배경에서 댄스가 유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카페에서는 주로 재즈가 흘러나왔다. 식민지 근대의 풍경 한편에는 그런 나른함이 있었다.
-4부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316쪽) 중에서
…… 이회영의 집안은 조선의 대표적 명문가였고 서울에서 경기도 양주까지 남의 땅을 밟지 않고 다닌다는 말을 들을 만큼 부자였다.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회영은 말했다. “왜적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구하면 어찌 금수와 다르리오. 나는 동지들과 하던 일을 만주로 옮겨 실천코자 합니다. 이것이 대한 민족 된 신분이요, 왜적과 혈투하시던 이항복 공의 후손 된 도리라 생각합니다.” 이회영은 신민회 회원으로서 동지들과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자 이미 만주를 답사한터였다. 이회영의 비장한 발언에 형제들 모두 흔쾌히 수락했다.
…… 모든 재산을 신흥강습소에 쏟아붓고 이회영 일가는 가난에 쪼들렸다. 그들의 빈한한 생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전하던 말은 대체로 이렇다. “이틀 동안 밥을 못 먹었다”, “옷은 전당포에 잡혔다”, “죽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밥을 굶은 채 땔감도 없어 추운 방에 누워 있었다”……. 1919년 신흥무관학교로 이름을 바꾼 신흥강습소는 재정난과 일제의 압력으로 1920년 7월 문을 닫고 말았다. 신흥강습소가 길러낸 인재 3,000여 명은 청산리전투, 의열단, 3부(정의부, 참의부, 신민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약했다.
- 1부 <이회영 일가, 압록강을 건너다>(71쪽) 중에서
3. ‘역알못’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역사서!
-일제시대를 250장면으로 속도감 있게, 당시 신문·잡지를 보듯 흥미롭게 읽다
딱딱하고 어려운 역사용어가 수두룩한 데다 길고 지루한 역사서를 읽으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고종의 헤이그 특사 파견의 맥락을 알기 위해 이렇게 긴 글을 읽어야 할까?’, ‘청산리 전투를 빠르고 현장감 있게 이야기할 순 없을까?’, ‘당시 신문에 정력제 광고가 실렸다는데, 정말일까?’………. 《다큐멘터리 일제시대》는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예술을 250장면으로 복원·묘사하여 역사적 현장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이 책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부터 해방된 1945년까지 매해 대표적인 사건을 가려 뽑아 엮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신문·잡지에 실린 광고는 물론 발행된 엽서 등을 활용하여 일제시대의 면면을 흥미롭게 전달하고 있다.
1905년 공간과 시간의 개념까지 바꾼 경부선 철도 개통은 당시 일본이 발행한 엽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문에 실린 스타사이다와 활명수, 정력제 ‘춘약’ 광고, 1920년대에 시판된 진로 소주병 사진, 1930년대의 최승희 무용 발표회 포스터, 잡지에 실린 모던 보이·모던 걸 삽화 등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흥미로운 자료를 바탕으로 비교적 잘 알려진 당대의 역사와 더불어 신문, 잡지에 드러난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균형 있게 담은 이 책은 ‘한포자(한국사를 포기한 학생들을 이르는 말)’는 물론 ‘역알못(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낸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태영
1971년에 태어나 충남 당진에서 자랐다. 고려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고, 현재 경기도 효성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펼쳐지는 그의 역사 수업은 학생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오랫동안 근현대사를 가르치면서, 일제시대가 지나치게 항일과 친일의 역사로만 기억되는 데 아쉬움을 느껴왔다. 역사의 큰 수레바퀴 아래 함께 살아 숨 쉬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복원해 학생들이 ‘역사의 동시성’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일제시대의 인물, 사건 등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현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것임을 환기시켜 ‘역사의 연속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 당시 신문과 잡지는 물론 수많은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일제 식민지시대를 감각적으로 복원했다. 일제 식민지시대를 250장면으로 재구성한 《다큐멘터리 일제시대》는 독자들을 탄압과 저항, 욕망과 좌절이 뒤섞인 역사의 현장으로 초대한다. 작가 황석영과 김훈, 음악가 반젤리스, 두산 베어스를 좋아하며, 역사와 일상이 만나는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20세기 아리랑》, 교과서 《고등학교 세계사》(공저) 등이 있다.
목 차
머리말
1부
1900년대 스켓취 망국의 전야, 근대의 길목
1905년
경부선 개통, 누구를 위한 근대화인가 |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다 | 고려대학교 설립자는 누구인가 | 짚신 신고 돼지 오줌보를 차다 | 관부연락선이 개통되다 | 조선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의 딸 | 식물국가가 된 조선
1906년
무명 적삼에 곡괭이 자루 들고 | 일제의 독도 침탈, 그 사건의 진상 | 자전거대회가 열리다 | 마을 주막 앞에서 의병을 일으킨 신돌석 | 수원에 권업모범장이 생기다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나다 | 고종,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다 | 국문연구소가 설치되다 | 고종이 퇴위하고 호위대가 봉기하다 | 국내 최초 사진관 ‘천연당’, 문전성시를 이루다 | 금융조합이 설립되다 | 인천에 천일염전이 생기다 | 한성 시내 학교들의 연합 대운동회 | 이승훈, 오산학교를 세우다
1908년
실패로 끝난 연합 의병의 서울 진공 작전 | 150명의 의병, 난지도에서 결사 항전하다 | “한국사는 민족의 족보다” | “당신이 먹는 물, 안전합니까?” | 육로교통의 혁명, 신작로가 뚫리다
1909년
마지막 황제 순종의 지방 순시 | 민적법, 호주제의 시작인가 | 의병의 씨를 말린 남한 대토벌 작전 | “코레아 우라!” | 한성에 창경원이 문을 열다 | 일진회의 합방 성명서 발표 | 이재명, 이완용을 공격하다 | 땔감 사업을 시작한 프랑스 상인 플레쟝
1910년
경성고등연예관이 문을 열다 |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리다 | 〈조선귀족령〉이 공포되다 | 조선의 만병통치약 ‘부채표 활명수’의 탄생 | 이회영 일가, 압록강을 건너다
2부
1910년대 스켓취 억압 속의 고요, 밀려오는 근대 문물
1911년
시계를 팝니다, 시간을 팝니다 | 조선총독부, 사찰을 장악하다 | 유림도 장악하라! | 〈조선교육령〉은 충량한 신민 양성이 목표 | 서북 지방 기독교 세력을 진압하라
1912년
근대적 토지소유권 확립, 그러나… | 조선 왕조여 부활하라! | ‘우물 안 개구리’ YMCA야구단
1913년
조선국권회복단이 조직되다 | ‘뚱뚱’해지려면 이 약을 드세요! | 경성유치원이 문을 열다 | 자전거 영웅 엄복동, 세상을 놀래다! | “부르주아 유행장”이거나 “청춘을 자랑하는 곳”이거나 |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좋더냐” | 소나무처럼, 대나무처럼! | 출세하려면 운전수가 돼라 | 긴 잠에서 깨어난 석굴암
1914년
자혜의원, 야누스의 두 얼굴 | 최초의 여성 대졸자들 | 충청도 평택은 경기도로 편입되고 ‘논산’과 ‘고흥’은 새로 생겨나다 |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 | 임시정부 자금줄, 안희제의 백산상회
1915년
언더우드와 연희전문학교 | “박가분 못 사주면 무능한 남자” | 닭똥을 칠하는지 고약을 바르는지… | 마지막 의병장 채응언 | 경복궁을 허물며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
1916년
조선인의 일상을 파고든 일본의 카드놀이 화투 | 박중빈, 원불교를 창시하다 | 소록도에 격리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 | “어이, 호랭이 있는가?” | 그들은 왜 전차를 전복했을까 | ‘번개다리’ 이진룡, 현금 수송마차를 습격하다
1917년
식민지 조선의 베스트셀러 연애소설 《무정》 | 일상 속 쉼터로 자리 잡은 창경원 | “우리 임금님이 일본으로 잡혀간다” | 정신병엔 사람 두개골이 특효약? | 사라진 왕조, 불타버린 왕궁 | 대한광복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다
1918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모태, 신한청년단 | “조선 독립 만세! 볼셰비키당 만세!” | 무오년독감, 14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다
1919년
민족의 함성 3·1운동, 그 뒷이야기 |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정신 | 명월관 기생 홍련과 일제의 만행 | “내가 죽어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 경성방직의 창립과 성장, 민족기업과 친일기업 사이 | 최초의 한국영화, 〈의리적 구토〉가 개봉하다 | 김원봉과 의열단, ‘멋쟁이’ 테러리스트들! | 의친왕 망명 미수 사건과 대동단
3부
1920년대 스켓취 교활한 문화 통치, 움트는 대중사회
1920년
조선총독부의 현금 마차를 털다 | “아이고, 망측해라” | 문화 정치의 시작을 알린 《조선일보》, 《동아일보》 창간 | 혁명가의 가족은 어떻게 살았을까 | 영친왕의 강제 파혼과 강제 결혼 | 학창 시절의 추억 ‘수학여행’의 시작 | 일본군을 상대해 얻은 위대한 승리 | 세계 평화를 희망하는 언어, 에스페란토 | 항일 무장 투쟁의 신화, 청산리전투 | 마을마다 사람 타는 냄새가…
1921년
‘민족의 반역자’ 민원식을 처단한 양근환 | “미술이란 조선 서생들의 한 장난거리…” | 잔혹한 입시전쟁의 서막 | 파리를 죽이고 애기를 살리자 | 청년 갑부 반복창의 일장춘몽 | “조선인이 야만인이라는 증거를 대라!” | 자유시사변, 왜 일어났나 |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진 사나이 | 경주 금관총, 그 우연한 발견과 수난의 역사 | 춘약, 그 뿌리칠 수 없는 유혹
1922년
김구는 왜 독립운동가를 암살했을까 | 의열단의 불발탄과 <조선혁명선언> | 보통학교 입학시험은 ‘명태알 테스트’ | “단발머리는 일상의 상식” | 고무신은 강철보다 강하다?! | 미국 프로야구팀, 경성에 오다 | 여의도에서 펼쳐진 청년 비행사의 ‘모국 방문 대비행회!’
1923년
“자결할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 않겠다” | 황옥은 독립운동가인가, 밀정인가 | 백정도 사람이다 | 방정환의 외침, “어린 혼을 구하자!” | 이룰 수 없는 사랑, 강명화의 순애보 | 아나키스트 박열과 가네코미 후코의 사랑
1924년
경성제국대학의 개교와 조선 엘리트의 탄생 | 일본인이 발견한 조선의 미 | 총독 사이토를 사살하라! | ‘천하절색’ 김정필이 정말로 남편을 독살했을까 | ‘국민소주’ 진로의 탄생 | 살인적인 소작료와 일본으로 팔려 가는 쌀
1925년
남자 의사에게 진료받는 산모들 | 열네 살 덕혜옹주, 일본으로 끌려가다 | 불온사상을 박멸하라! | 역사상 최악의 폭우, 을축년 대홍수 | 식민지 근대의 상징적 공간, 경성역 | 실체가 드러난 조선공산당
1926년
제2의 3·1운동이 된 학생들의 외침 | 우리 아기, 튼튼하고 건강하게! | 서민들의 만병통치약, 안티푸라민 | 윤심덕은 정말로 자살했을까 | 조선총독부, 남산에서 광화문으로 | 식민지 조선을 울린 무성영화 〈아리랑〉 | 신라 고분 발굴 현장을 찾은 스웨덴 황태자 | “2,000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마라!”
1927년
신간회 결성, 좌파와 우파가 하나 되다 | “여기는 경성방송국이올시다” | 아시아 최대 규모의 비료공장이 들어서다 | “남편의 아내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 | 맛의 혁명, 아지노모토 | 식민지 조선의 게이소센, 연보전
1928년
오라잇, 스톱! 경성부영버스가 간다 | “나는 대한을 위해 복수하는 것” | 민중의 숨결을 담은 역사소설 《임정꺽전》
1929년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 오사카 큰손 시마 도쿠조의 신당리 토지 매매 사기 사건 | 자연에 대한 찬미인가, 식민 통치의 잔재인가 | 경성우편국 수송차 습격 사건 | 학생 112명을 태운 전차가 전복되다 | 화전민들의 눈물겨운 생존 투쟁 | 건달 두목 김창엽, 링 위로 올라가다 | 일제의 거대한 선전 공간, 조선박람회 | 식민지 노예교육을 거부한 학생들
4부
1930년대 스켓취 팽창하는 군국주의, 성숙하는 대중사회
1930년
“찬영회 타도!” 252 | 동족의 흉탄에 쓰러진 청산리 영웅 | 세계를 뒤흔든 조선 춤꾼의 ‘예술’ | 항일 투쟁인가, 좌익 소아병인가 | 식민지 조선의 모순적 공간, 미쓰코시 백화점
1931년
지는 공주, 뜨는 대전? |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난 중국인 마녀사냥 | 조선의 토종 백화점, 종로통에 문을 열다
1932년
다시 불붙은 주식 투자 열풍, 숨길 수 없는 자본주의 욕망 | 모던 보이 이봉창, 천황에게 수류탄을 던지다 | 조선은행 금고가 털리다 | 중국공산당의 조선인 마녀사냥, 민생단 사건 | 항일 무장 투쟁의 부활, 영릉가전투 | “대한 남아로서 할 일을 하고 미련 없이 떠나오” | 이애리수와 〈황성 옛터〉 | 중국 호로군과 손잡고 일본군을 대파한 한국독립군 | 결핵 없는 세상 만들기 | 비너스 다방으로 오세요
1933년
“조선 독립은 정신으로 이뤄지는 것” | 다시 태어난 《조선일보》 | 경주박물관장 모로가 히데오, 그는 도굴꾼이었나 | “몸통 없는 아이의 머리 발견” | 과학은 민족의 경쟁력! | 하이트와 카스, 맥주의 시작 |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 조선총독부가 승인한 ‘한글맞춤법통일안’
1934년
생활 전선에 뛰어든 혁명가 ‘김산’ | 조선의 마음과 사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 관제 행정인가, 인습 청산인가 | 세상모르고 살다 간 시인 김소월
1935년
‘모던 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혼 당한 김숙녀 | 청춘 남녀의 애정 행각을 단속하다 | 좌우합작 단체 ‘조선민족혁명당’ 조직, 그러나… | 〈목포의 눈물〉과 이난영, 원조 걸그룹 ‘저고리 시스터즈’ | 유성영화 〈춘향전〉 개봉, 사라지는 변사 | 작사가도 작곡가도 논란 무성한 〈애국가〉 | 복합 문화공간 ‘부민관’, 근현대사의 굴곡이 아로새겨지다
1936년
시인 백석과 기생 김영한의 사랑 | 신채호, 뤼순 감옥에서 쓰러지다 | 히틀러를 놀라게 한 손기정과 남승룡 | ‘동북항일연군’, 눈 쌓인 대지와 얼음 하늘을 누비다 | 당구장과 빌리어드 걸
1937년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 사이비 종교 집단 ‘백백교’, 교주는 희대의 살인마! | 나폴레옹을 꿈꾼 교사 박희정 | 식민지 조선을 놀라게 한 ‘보천보 습격 사건’ | 이광수는 왜 친일파가 됐나 | 헬렌 켈러, 식민지 조선에 오다 | 경성우유협동조합, 대규모 우유 산업의 시작 |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연해주 조선인들 | ‘황국신민의 서사’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까지
1938년
〈눈물 젖은 두만강〉의 주인공은 공산주의자 박헌영인가 | 이병철의 ‘삼성상회’, 삼성그룹의 모체가 되다 | 일본어는 ‘국어’가 되고, ‘조선어’는 선택과목으로 전락하다 | 고인돌 ‘유적’을 재발견한 실직 교사 황의돈 | ‘불온 교사’ 홍순창, 낙서 사건으로 구속되다 | 장제스와 손잡은 김원봉
1939년
태권도는 태껸인가, 가라테인가 | ‘강제’ 지원병 이인석의 전사와 살아남은 가족의 수난사 | ‘내선일체’는 ‘내선평등’이 아니다 | 안중근의 아들, 이토 히로부미 묘를 참배하다
5부
1940년대 스켓취 몰락하는 군국주의, 해방되는 식민지
1940년
현대자동차의 모체, 아도서비스 | 성을 갈아라, 창씨개명 | 최후의 유격전, 홍치허전투 | 조선인의 눈과 귀를 막아라 |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 한국광복군 창설
1941년
연희전문학교 4학년 윤동주의 일상 | 서민용 공동주택, ‘영단주택’ | 내선일체 영화 〈그대와 나〉 | 호가장에서 기습 당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1942년
조선의용대, 덩샤오핑을 구하다 | 그들은 전범이 아니었다! |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 | “오늘 국어를 사용하다가 벌을 받았다” | 숨어서 해방의 희망을 듣다
1943년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 관부연락선 곤론마루의 침몰 | 서대문형무소 수감자 김광섭의 일상
1944년
조선인 학병의 ‘영광의 탈출’, 그 기나긴 여정 | 징병제 실시는 조선인도 황군이 될 기회? | 세계 문화유산 군함도, 그 섬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 강원도 영월 청년 최대봉의 강제징용 탈출기 |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원, 인재웅 혹은 마쓰이 히데오
1945년
무기력과 분열에 빠진 대한민국임시정부 | 시인 윤동주, 고독 속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떠나다 | 식민지 조선 최후의 의거 | 무산된 독수리작전 | 꿈인가 생시인가, 도둑같이 찾아온 해방 | 여의도 땅을 밟았으나 일본군에 추방당한 광복군 | 조선총독부의 돈잔치, 신생독립국 조선의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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