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군항도시, 진해! 그 역사를 걷다!
군항제 안내 소책자의 ‘우리나라 벚나무 유래’라는 항목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었다.
진해라고 하면 벚꽃이 연상되지만,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이 땅에 군항을 건설하게 되어, 도시의 미화를 위해 벚나무를 심은 것이 그 시작이다. 그러나 해방 직후,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고 착각한 시민들이 일제의 잔재라고 하여 벚나무를 많이 베어내어 거의 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 후 1976년 4월, 진해를 세계 제일의 벚꽃도시로 육성하자는 대통령의 명령을 계기로 민·관·군이 일체가 되어 벚나무 심기운동을 전개한 결과, 현재는 8만여 그루를 헤아리는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온 시가지에 벚꽃 터널이 생긴다. 오늘날 이 벚꽃은 진해 시민만의 것이 아닌 우리 국민 모두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벚꽃을 일본의 국화라고 간주하여 마치 왜국의 앞잡이가 침입해 온 것과 같이 반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벚나무는 일본에서 들어온 나무가 아닌 원래 우리나라의 토양에서 자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설명을 읽으면서 일본에 의한 한국 강점의 역사와 진해의 군항 건설과는 어떻게 관련되어 있었는지 또 왜 진해가 선택되었는지 그리고 8·15 이후에 일단 베어진 벚나무를 다시 심기운동을 한 것은 무엇 때문인지……. 진해에 대한 흥미가 점점 더해졌다.
그날 밤, 나는 부산의 숙소에서, 일본가옥이 남아 있는 진해의 뒷골목을 걸으며, 문득 식민지 시대를 헤매어 가는 듯 착각한 것이나, 거리의 여기저기에 마치 과거와 연결된 미로가 숨겨져 있는 듯이 느껴졌던 일을 생각해 내고 있었다. 국가나 민족보다는 작은, 개인보다는 큰, 지역이라는 단위로 시대를 잘라내어, 그 미로를 더듬어 가면, 그곳을 살았던 사람들의 표정과 시대의 실상이 동시에 보여지는 듯한 역사 기록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단순히 당일치기 여행으로 진해에 나섰던 것이지만, 그 거리의 역사를 더듬어 찾는 여행을 새로이 시작해 보려고 생각했다.
(저자의 「시작하며」에서)
진해 지역이 조일관계사(朝日關係史)의 정식 무대로 다시 등장하는 것은 러일전쟁으로 향하는 시기부터이다.
일본군이 러시아에 대해 작전행동에 들어간 1904년 2월 5일(선전포고는 2월 10일), 해군은 ‘제3 함대사령장관은 신속히 진해만을 점령하여 우선 조선해협을 경계할 것’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명령에 따라서 일본해군은 2월 6일부터 7일 이틀에 걸쳐 진해만 일대를 장악했다. 이 작전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러시아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전선기지(前線基地)>를 진해만에 건설하는 데 있었다. 이 지역은 동지나해·황해와 동해를 잇는 ‘대한해협’인 쓰시마해협에 가깝게 마주하며 또 러시아 해군기지가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뤼순(중국으로부터 조차)의 바로 중간 지점에 있는 전략적 요충이다.
(2장 러일전쟁과 진해만)
1909년 6월, 해군성은 현지 조사에 앞서 ‘군항의 성질, 가치 및 이것에 필요한 시설 방침’을 책정했다.
제1관(款) 군항의 성질
제1 전시적 성질
출정함대의 근거지로 한다. 단 전시의 군수품 공급은 이것을 사세보에 요청할 것.
제2 평시적 성질
1. 각 진수부 소관(所管)함정의 교육 훈련을 위해 해상 연병장에 적합한 설비를 할 것.
2. 공창은 함정 수리를 주된 목표로 한다.
3. 함정을 재적시키지 않을 것.
4. 한국 주변 바다 경비에 임할 것. (앞의 문서)
진해군항의 군사상 성격 중에서도 ‘제2 평시적 성질’의 제2항 ‘공창은 함정 수리를 주된 목표로 한다.’라는 이유 즉 왜 공창(군대의 제조공장)의 규모를 함정 건조(建造) 수준이 아닌 수리 수준으로 멈추었는지에 관한 설명이 대단히 흥미롭다.
(3장 군항 도시 진해)
일본 패전 때, 조선 전 국토에는 관폐사(官幣社)가 조선신궁·부여신궁(건축 중)의 2군데 신사, 국폐소사(国幣小社)가 경성·전주·광주·대구·용두산·평양·강원·함흥의 8군데, 그리고 일반 신사가 69군데 있었다. 일본의 신사 몇 개가 8·15 직후 조선인들의 손으로 맨 먼저 파괴된다든지 불태워진 것은 역시 황민화정책 아래에 신사참배강요에 대한 반감이 뿌리 깊게 조선인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제신(祭神)이 천황과 연결된다는 것도 큰 이유였을 것이다.
패전 다음 날인 8월 16일 조선신궁이나 경성신사의 신관 초고위직들과 총독부의 협의에 따라 제신을 일본에 돌아가게 한다는 승신식을 조선의 모든 신사에서 실시하도록 각 도청에 통지되어 있었다.
(4장 진해에서 살았던 사람들)
당시 진해에는 ‘벚꽃축제’라고 부를만한 특별한 행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4월 초순의 벚꽃 개화기에는 조선 각지에서 벚꽃 관람객으로 시가지 전체가 활기차고 북적거렸다. 모든 거리에 벚나무가 심어져 지금과 똑같이 진해의 시가지는 벚꽃으로 메워져 있었다. 해군 운동장 옆의 ‘벚꽃장(사쿠라노바바)’는 몇 미터 간격으로 벚꽃이 빼곡히 심어져 있었다. 일본인은 향우회나 가족단위로 벚나무 아래에서 도시락을 펼쳐놓고 꽃구경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 옆에는 조선인들이 노래를 부르고 즐겁게 춤추며 장구나 꽹과리 소리가 조화롭게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5장 벚꽃축제 속에서)
식민지시대에 진해의 제황산 정상에 세워진 ‘일본해해전기념탑’은 8·15 이후에 해체되어 같은 장소에 진해탑이 세워졌는데(1967년), 이 진해탑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는 계단은 해전기념탑이 만들어진 당시의 모습 그대로이다. 일본은 패전까지 러일전쟁을 그 전쟁이 있었던 연호로 ‘메이지 37, 8년 전역(戰役,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부르는 방식에 맞추어 이 계단은 아래 계단 부분이 37계단, 위의 계단 부분이 38계단으로 설치되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으로서 이 돌계단을 활용하여,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일본어와 한국어로 설명된 안내판을 일본에서 오는 관광객도 방문하는 제황산 정상 그 돌계단 옆에 세울 수는 없을까.
‘1904·5년의 러일전쟁 때, 일본해군은 진해만 일대를 제압 아래, 진해만에 집결한 연합함대는 해전 연습을 거듭한 후 발틱함대와의 결전에 출격했다. 이 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는, 그러나 한국에 대한 일본 지배를 더 한층 강화하였다. 이곳 진해에서는 1910년부터 일본해군이 군항도시 건설을 시작하므로, 그 건설지역에 살고 있던 한국인들은 시가지에서 떨어진 경화동 지구로 집단 강제 이주당했다. 이 계단은 1929년에 일본해군이 일본해해전기념탑을 제황산 정상에 세웠을 때
작가 소개
지은이 : 다케쿠니 도모야스
1949년 효고현 고베시 출생
1972년 교토대학 문학부 졸업
2017년 30여 년간 근무한 가와이대학입시학원 퇴직
[한국어판 저서]
2006년 <한국 온천 이야기 - 한일 목욕문화의 교류를 찾아서(韓國溫泉物語>)
2014년 <한일 피시로드, 흥남에서 교토까지(ハモの旅, メンタイの夢)>
[일본어판 저서]
1999년 <어느 한일역사여행 - 진해의 벚꽃>
1995년 <현대문과 격투하다>
1978년 <리틀 도쿄 이야기> 등
옮긴이 : 이애옥
1956년 진해(현 창원시 진해구) 출생
2015년 고등학교 일본어교사 퇴직(경상남도교육청)
2019년 현 진해근대문화역사길 해설사
창원시 여성회관 마산관 일본어 강사
수필 2017년 <마이 스타일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목 차
시작하며
1장 진해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1. 왜구 시대
제포와 삼포왜란/ 웅천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2. 웅천에 남은 일본의 성(城)
왜성을 걷다/ 왜성 잔존물/ 이순신의 전사
2장 러일전쟁과 진해만
1. 근대 조일관계사(朝日関係史)의 기초 지식
대학입시 문제에서
2. 전략적 요충
해군근거지 찾기
3. 거제도·가(假)근거지 건설 실태
토지수용과 공사/ 해군근거지 건설과 주민/ 헐값으로 토지수용/ 진해만방위대에 의한 군령 공포
4. ‘일본해군 가(假)근거지’ 흔적
기지건설 때의 증언/ 진해만과 『언덕 위의 구름(坂の上の雲)』/ 표적(標的) ・취도(吹島)
5. ‘제국’의 건설
한국의 교과서에서/ 러일전쟁의 의미
6. 군항건설 계획이 시작되다
군항계획/ 군사도시 건설
3장 군항도시 진해
1. 진해의 도시계획
군항의 성격/ 거주구역 ‘격리’/ ‘동양무쌍(東洋無双榎)의 대군항’/ 로터리의 큰 팽나무(대가, 大榎)/ 건축조례
2. 초기의 이민자들
임대인 명단/ 오쿠라구미(大倉組)와 조선/ 유곽지 계획/ 조선 이주 가이드북
3. 군항건설 계획의 변경
진수부(鎭守府)에서 요항부(要港府)로/ 일본의 제사업(製糸業) 진출/ 장시간 노동・저임금
4. 해군지원병 훈련소
지원병의 징용과 훈련소
5. 일본의 패전과 일본인 귀환
‘우리들의 아량’/ 일본인의 귀환/ 진해에서 물러남
4장 진해에서 살았던 사람들
1. 일본해해전기념탑과 한 사람의 일본인
부엉산의 산신령/ 아사히 간세이와 지쿄(慈教)학원
2. 송진포의 해전기념비 복원 소동
기념비 철거/ 복원계획/ 계획 좌절의 의미
3. 로터리와 진해신사 흔적
패전 때의 신사
4. 진해고등여학교
『오우인(桜蔭)』/ 진해고녀 동창회
5. 3 ·1독립운동과 진해공립보통학교
신사참배 거부/ ‘내선공학(内鮮共學)’으로/ 3·1 독립운동과 학교/ ‘불평 및 희망’/ 진해의 ‘졸업기념 사진첩’
6. 덕환관음(徳丸観音)과 대화재
영화감상회 사건/ 진해콩과 스나짱/ 스나짱의 이름
7. 최초의 이순신 동상
진해의 이순신 동상/ 해수욕장과 어시장/ 일본인의 조선어
5장 벚꽃축제 속에서
1. 진해의 벚꽃축제
다시 찾은 벚꽃축제/ 벚꽃축제의 유래/ 벚꽃 명소/ 한국 해방 이후의 벚나무 식수 운동/ 동창회의 벚나무
2. 벚꽃과 내셔널리즘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와 야마다 요시오(山田孝雄)/ 제주도 원산의 벚꽃/ 소메이요시노의 출생/ 김밥과 노리마키
마치며/ 참고문헌/ 저자의 한국어판 후기: 「벚꽃 전선」으로 연결되는 한일의 미래로 - 회고와 제언/ 역자후기/ 한국어판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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