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사람 속에서 사람과 함께
인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 즉 삶의 방식에 대해 늘 숙고해왔다.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만의,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질문이리라.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등 인간 삶의 방식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고 미리 결정되는 것도,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집단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공동체적 실험이다. 『팀 잉골드의 인류학 강의』에서 저자는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현재진행형의 학문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 생활방식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데에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류학자들은 연구대상인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관찰, 대화, 현실적 참여를 통해 깊이 개입함으로써 연구한다. 연구대상은 경험과 관심의 특수성에 따라 달라지지만 원칙적으로는 어디든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인류학의 정의는 명확하다. 인류학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람 속에서 사람과 함께하는 철학’이다.
지금 우리 인류에게 필요한 공부
인류 역사상 지금보다 이런 철학이 더 필요했던 때는 없었다. 지구에는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며 평균수명 역시 길어졌다.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고, 산림은 황폐해지고 있으며, 온 지구를 파헤치는 광업이 만연하다. 소수의 사람들이 계속되는 불안정, 빈곤, 질병으로 고통 받는 수백, 수천 만 명의 요구사항은 무시한 채 전례 없는 규모로 환경을 파괴하고 많은 지역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인류가 끼친 이러한 영향은 돌이킬 수 없고 지구상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존재했던 기간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른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해답은 저기 어딘가에 그냥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파헤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폐허에서 길을 찾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인류학은 그 길을 찾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인류학이 그토록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인류학은 ‘지식상품’ 사업과 전혀 관계가 없고 세상과 완전히 다른 관계를 갈망한다. 연구의 대상인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인류학자에게 세상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이다.
다른 이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인류학자들은 지식의 발전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교육을 받지 않고 문맹이거나 심지어 무지하다고 무시당할 수도 있는 사람들에 대해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른 학계의 학자들과 구별된다. 인류학자들이 증명했듯이 그런 사람들이 이른바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보다 더 현명한 경우도 많다.
배우고자만 한다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려는 다른 이들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들을 지혜의 전수자라기보다 정보제공자로서만 연구에 참여시켜왔다. 그들이 세상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려는 심문만 했기 때문에 경험을 공유하려던 사람들이 학자들을 피해왔던 것이다.
인류학자들에게는 연구하는 대상과의 정서적 교감이 필수이다. 모든 연구는 관찰을 요한다. 그러나 인류학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객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를 듣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관찰한다. 인류학자는 ‘사람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연구한다. 이런 연구방식을 ‘참여적 관찰(participant observation)’이라 부른다. 이는 인류학이란 학문의 토대가 된다.
왜 그는 아마존으로 떠났을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저기 있는 사람들보다 서로 공통점이 더 많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것은 유전자 덕분인가 아니면 문화 때문인가? 왜 인류학자는 유럽의 백인이 아닌 아마존의 이름 모를 부족을 주로 연구하는가? 『팀 잉골드의 인류학 강의』는 인류학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나아가 학문의 탄생 배경, 여러 다른 학문들과의 만남, 여러 갈래의 세분화, 전쟁을 비롯한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거듭되는 부침 등 인류학의 역사를 설명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전망까지 내놓는다. 원래 자연과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1년 만에 그만두고 평생을 인류학자로 헌신해온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여 흥미롭고 현장감이 느껴진다.
제인 구달, 마거릿 미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루스 베네딕트, 마르셀 모스, 래드클리프 브라운 등 역사적으로 유명 인류학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온갖 모험과 실험, 열정으로 가득하다. 침팬지를 연구하거나 이름 모른 섬의 원주민들과 함께한 그들이 왠지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팀 잉골드의 인류학 강의』를 읽고 나면 그들의 이야기가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사람 속에서 사람과 함께하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와 평생을 씨름한 그들의 삶 속에서 학문적 열정과 박애정신은 물론 인류학의 매력까지 다시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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