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 근원을 소급해보면 모두 위진남북조의 소산이다.
회하를 사이에 둔 그 300~400년간의 통치와 정치적 혼란이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중국의 문화와 문명은 없었을 것이다.”
피를 바꾸다
『이중톈 중국사 12: 남조와 북조』는 흉노족 유연의 한나라에서 시작한다. 일찌감치 남흉노의 추장은 조조의 집권 말기에 성을 유씨로 바꿨다. 모돈 선우가 한 고조 유방의 사위였으므로 자기는 당연히 외조부의 성씨를 쓸 수 있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이후 304년, 흉노족 추장 유연은 본인이 역사상 세 번째 한 왕이라 선포한다. 유연은 유방과 유비를 삼조와 오종으로 높이는 연출을 택했다. 위나라와 진나라에게 망했던 한나라가 흉노의 게르에서 다시 부활한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 문명이 부활한 것이 아니다. 한나라라는 이름도 그 이름이 호소력이 있었을 뿐, 모든 것이 흉노인이 천자가 되기 위한 연출이었다. 유연의 나라는 이렇게 ‘우회상장’하게 되었다. 유연의 뒤를 이은 유요는 우회상장의 연출을 버리고 국호를 조로 바꿔버린다. 역사에서는 이를 전조라 부른다.
전조를 대신한 나라는 후조이며 황제는 석륵이다. 석륵은 갈인이었으며, 갈인은 그저 소나 말처럼 노역에 동원되고 상품처럼 시장에 내놓였던 오랑캐 중의 오랑캐였다. 바로 그런 노예였던 석륵은 어떻게 황제가 됐을까?
농노였던 석륵은 해방되자마자 다시 반란군의 손에 떨어졌다. 반기를 들어 반란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뒤, 사람들을 그러모아 흉폭한 도적 떼를 조직했다. 그의 무리는 민가를 약탈하고 성을 공격해 빼앗았다. 병력은 한때 10여만 명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그 뒤 한족인 장빈을 책임자로 들여 장빈의 계략으로 유주를 점거하고 있던 왕준을 집어삼킨다. 그렇게 승승장구해 서진 멸망 3년 뒤인 319년, 석륵이 자신을 조왕으로 칭하며 후조가 되었다.
흉노 유연이 한족 문명의 중심부에 쐐기를 박아 넣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면 갈인 석륵은 분열되었던 중국 북방을 처음으로 다시 통일한 것이다.
비수대전 참패로 인한 부견의 공헌:
풍성학려, 초목개병
흉노와 갈인의 후계자는 저인이었다. 석륵의 뒤를 이은 나라는 끊이지 않는 혼란 끝에 선비족에 의해 멸망하고 이 틈을 타 저인의 장군 부건이 나라를 세운다. 이를 전진이라 부른다. 훗날 왕위를 이은 부견의 전진은 국가를 토벌하여 중국 북방의 완전한 통일을 실현했다.
하지만 부견은 ‘동진은 정벌하면 안 된다’는 충신의 유언을 흘려듣고 동진 정벌을 나갔으나 결과는 ‘비수대전’에서의 부견의 참패였다. 험한 장강의 물길을 끊을 수 있다 호언장담 했으나 끊긴 강은 비수였고, 끊긴 이유는 전진 장졸들의 시체 때문이었다.
여기서 ‘바람소리 학 울음소리도 다 적 같다’라는 뜻의 풍성학려, ‘초목이 다 군사로 보일 정도로 놀라서 별것을 다 의심한다’는 뜻의 초목개병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겼다. 부견과 그의 부하들은 바람과 학 울음소리에도 동진의 추적대로 의심했고, 처음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그들 눈에는 초목이 다 동진의 군사로 보였던 것이다. 비수는 부견의 워털루였다.
비수대전 이후 전진이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북방은 다시 분열됐다. 이제 마지막 승자이자 오호십육국의 종결자, 그리고 남북조의 창립자인 북위가 등장한다.
쌍등자의 등장, 차이니즈 부츠
선비족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면서 등자가 출현했다. 말은 처음에 병거전에 쓰였고 훗날 기병이 등장했다. 하지만 기병의 전투력은 제한적이었다. 등자가 없었을 때는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거나 칼을 휘두를 경우 말에서 떨어져 내리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등자의 등장으로 기병이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다. 가장 이른 시기의 쌍등자 실물과 도자기 인형은 선비족이거나 선비화된 한족의 고분에서 발견되었다.
선비족 탁발부의 등장
탁발부는 선비의 부족 중에서 가장 낙후했다. 남자들은 모두 머리를 밀고 정수리 머리카락만 길게 땋아 내렸는데, 원시적인 풍속을 고수하면서 한족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비족의 대나라는 부견에게도 멸망당했지만 탁발규가 등장하면서 선비족의 북위가 세워진다. 대부분 20~30년의 수명이었던 오호십육국과 달리 북위는 한 세기 반이나 존재했고 한 세기 가깝게 중국 북방의 완전한 통일을 유지했다. 그러니 오호십육국과 같은 선상에서 논할 수 없는 나라였다.
탁발굉은 성공했다. 사실 그는 이미 중화의 황제였다. 비록 천하를 절반밖에 못 가졌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는 어떤 가능성을 열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민족과 한족의 피를 섞은 북방이 중국을 통일하고 새로운 중화 문명을 창건하는 것이었다.
중화의 정통성을 대표하지만 칭찬할 만한 점은 없는 남조
이중톈은 「제3장 남조의 실험현장」의 가장 첫 줄을 ‘만약 한마디로 남조를 개괄해야 한다면 ‘칭찬할 만한 점이 없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로 시작한다. 길지도 않은 남조의 169년 동안 왕조가 네 번이나 바뀌었으니 황제도 단명했다. 재위 기간이 가장 짧기로는 1년, 10년을 넘긴 사람이 겨우 5명이었다.
북위는 야만족 집단에서 중화제국으로 변신했지만 남조는 정작 중화제국의 의식과 기상을 상실했다. 심지어 한화된 이민족조차 그들을 업신여겨 동진을 진이라 불리는 것이 분수에 맞지 않다며 ‘참진僭晉’이라 불렀다.
이런 남진에도 문화적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남조가 중국 문명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험은 동진의 정치 개혁이라 할 수 있다. 동진의 사족이 점점 나태해 지고 호의호식하면서 기회는 점점 빈한한 평민에게 주어졌다. 이때 기생충과도 같은 사족을 끝장낸 유유가 등장한다.
유유는 손은의 난을 격파하며 이름을 날렸다. 손은은 도교의 신도로 알려졌으나 테러 집단의 두목에 불과했다. 손은이 난을 일으켜도 동진이 군대를 내보내지도 방비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동진 정권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알 수 있다. 이때 북부의 유유가 2년간 이어진 손은의 난을 격파했다. 유유는 그렇게 등장해 420년, 마침내 송나라를 세워 남조가 시작되었다.
종교의 등장
국학과 덕치로 나라를 다스리기엔 아무래도 문제가 있었다.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종교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었다. 종교는 제1제국과 제2제국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문제여서 중국사가 절대로 피해갈 수 없다. 종교도 신앙도 없던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새로운 정치가 펼쳐진다.
불도징이 최초로 불교를 국가의 공권력 아래에 두면서 방술로 간주되던 불교가 벼락출세하게 됐다. 후조의 짧은 수십 년 동안 무려 893곳의 사원이 세워지면서 불도징이 중국에 자리잡게 만든 것이다. 북방과 남방의 종교는 아이러니한 수순을 밟게 되었는데, 이민족의 북방은 불교를 믿고 남방은 도교를 믿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북위의 태무제는 이민족인데도 불교를 탄압하고 남조의 양 무제는 한족인데도 불교를 받들었다. 각 국가의 황제는 열린 마음과 긴 안목으로 자신이 속한 민족에 상관없이 장기간 공존하는 것에 대한 준비를 한 것이다.
300~400년에 걸친 민족 간 대혼혈은 선비화된 한족, 북주 양견에 의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 양견은 원래 보륙가 나라연이라는 선비족의 이름을 썼지만 다시 양견이라는 한족의 이름을 되찾으며 북주를 수나라로 바꿨다. 수나라는 한족을 위주로 한 한족과 이민족의 상호 변화를 꾀하여 최후의 성공을 거뒀다. 그 민족은 흉노, 갈인, 저인, 강족과 선비족의 각 부를 융합하여 새로운 한족이라 불릴 만했다.
이중톈은 마지막으로 남조와 북조에서 비롯한 남방과 북방의 차이를 설명한다. 오호와 한족은 쌍방향적인 통혼으로 모두 새 한족에 녹아들었다. 이민족은 입식 생활을 했으며 한족은 좌식 생활을 했다. 중국이 이제와서 한족의 좌식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오호와 한족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남북의 구분이 뚜렷해졌다. 남북이 생겼다는 말이다. 일찍이 루쉰이 ‘북방 사람은 중후한 게 장점이고 우둔한 게 단점이며 남방 사람은 영리한 게 장점이고 교활한 게 단점’이라 하기도 했다.
이 모든 차이는 모두 위진남북조의 소산이다. 이 300~400년간의 통치와 정치적 혼란이 없었으면 지금의 중국 문화도 없었을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중텐
중국 대륙 최고의 역사 고전 해설가. 1947년 후난성 창사長沙에서 태어나 1981년 우한武漢대학을 졸업하고, 우한대학, 샤먼廈門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현대적 시각으로 역사와 고전을 풀어내 중국인의 자화상을 그리는 역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술가로, 문학, 예술, 심리학, 인류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저술에 힘쓰고 있다. 2006년 중국중앙텔레비전방송CCTV의 「백가강단」이라는 인문 강연 프로그램에서 ‘한나라 시대의 풍운아들’을 강연하고 2006년 『삼국지 강의』를 발표했는데, 이는 ‘이중톈 현상’이라는 말을 유행시킬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는 『이중톈 중국사』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2011년 그간 펴낸 책들이 16권에 달하는 『이중톈 문집』으로 묶였다. 국내에 번역된 저서로는 『삼국지 강의』(전2권) 『독성기』 『품인록』 『제국의 슬픔』 『백가쟁명』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톈 국가를 말하다』 『이중톈 미학강의』 『이중톈, 정
치를 말하다』 등이 있다.
옮긴이 : 김택규
1971년 인천 출생. 중국 현대문학 박사. 한국출판산업진흥원 중국 저작권 수출 분야 자문위원. 출판 번역과 기획에 종사하며 숭실대학 대학원에서 번역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죽은 불 다시 살아나』 『암호해독자』 『명예, 부, 권력에 관한 사색』 등이 있다.
목 차
제1장 피를 바꾸다
신의 채찍
흉노가 한나라를 계승하다
갈인 석륵
저인 부견
재분열
제2장 선비족
차이니즈 부츠
부락연맹에서 제국으로
피에 물든 가림막
전환점
대대적인 한화
제3장 남조의 실험 현장
단명한 왕조들
시대가 영웅을 만들지는 않는다
내부투쟁
양 무제의 죽음
더 이상 나쁠 수는 없었다
제4장 종교 문제
도교의 흥기
불교의 전래
벼락출세
한 걸음씩 나아가다
태무제와 양 무제
제5장 새 문명의 재창조
재통일
회하의 남과 북
장성의 안과 밖
늪지대
조합의 힘
저자 후기│한 나라 두 왕조, 남방과 북방
옮긴이의 말│이중톈의 꿈
부록│『남조와 북조』에 언급된 사건들의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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