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동맹’의 역사적 의미 변화와
용례를 추적하다
‘동맹’, 풍성하고 복잡한 의미의 갈래들을 펼쳐 보이다
한국인들에게 ‘동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도 ‘한미동맹’이나 ‘군사동맹’과 같은 말이 아닐까. 한국어 사전에 따르면, 이 단어는 “두 나라 이상이 일정한 조건으로 서로 원조를 약속하는 일시적 결합”을 뜻한다.
이처럼 국가 간 결합을 의미하는 맥락에서 사용되는 ‘동맹’이 그러나 언제나, 변함없이 이러한 방식으로 줄곧 사용되어왔던 것은 아니다. 장기간에 걸친 단어들의 역사적 의미 변화와 용례를 추적하는 것으로 유명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은 ‘동맹’에 해당하는 독일어 bund에 켜켜이 쌓여 있는 풍성하고도 복잡한 의미의 갈래들을 펼쳐 보인다.
동맹, ‘인간들의 결합’에서 ‘국가의 통합’으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에 따르면, 동맹이란 원래 인간들이 모이고 결합하는 존재 방식 일반에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었다. 예컨대, 가문과 가문의 결합인 결혼은 일종의 혼인 동맹이었고, 농민들의 동맹은 귀족들에 대항하는 계급적 저항의 색채를 강하게 띠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결합을 의미하는 단어였던 까닭에, 동맹은 심지어 인간 세계를 넘어선 기독교 신과의 유대를 의미하는 종교적 성격까지도 지닌 단어였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인간 결사와 결합의 차원들이 차츰 정치와 국가라는 길로 좁혀지는 새로운 문턱으로 들어섰던 것은 대략 18세기 후반으로 보인다. 작은 지방국가들의 분권적 전통이 강했던 독일 지역에서 이제 동맹이라는 단어는 통합의 최대치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두고, 생각이 서로 달랐던 정치 세력들이 첨예하게 경쟁하는 현장이 된다. 지방 국가들의 느슨한 결합인 ‘국가연합’의 길로 가야 할 것인가? 좀 더 중앙집권화된 ‘연방국가’가 해답일까. 아니면, 하나의 통일된 ‘민족국가’를 최고의 목표로 설정해야 할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철학자 칸트의 경우, 전쟁 없는 영구 평화의 세계를 꿈꾸며 민족국가를 넘어서, 전 세계 국가들의 거대 동맹인 ‘국제연맹’을 구상하기도 했다.
지금·여기의 우리에게 통합 관련 지적 자극과 영감 제공
독일의 정치적 미래를 둘러싸며 경합했던 단어 ‘동맹’의 의미는 지금·여기의 우리에게도 통합에 관한 지적 자극과 영감을 제공한다. 2000년 남과 북이 합의한 6·15선언에서 바로 그러했듯이, 남과 북은 각각의 주권을 유지한 채로 느슨하게 통합된 국가연합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 길을 따라가는 긴 여정에서 오랫동안 염원했던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동체, 그리고 나아가 민족의 통일까지도 자연스레 꿈꿔 볼 수 있지 않을까. 동맹의 의미를 둘러싼 새로운 논의와 상상력이 절실한 이즈음 우리에게도 참조가 될 만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라인하르트 코젤렉
‘위대한 아웃사이더’, ‘18세기 철학자’, ‘홀로 서면서도 여러 경계에 걸친 인물’. 개념사 사전의 선구자 코젤렉을 달리 부르는 이름들이다. 그렇듯 그는 유럽 근대사 연구에서 빼어난 업적을 쌓았지만 스스로 ‘역사가 동업조합’의 울타리에 들지 않았다. 그는 늘 언어와 사실, 주관과 객체 사이의 중간지점에 서서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의 한계를 직시했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그의 이력은 역사학을 전공하면서도 철학과 정치이론에 더 많이 기울었던 하이델베르크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오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카를 뢰비트,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마르틴 하이데거, 카를 슈미트 등이 청년 코젤렉을 키운 이론가들이다. 시간운동의 역사철학, 번역의 해석학, 정치적 인류학이 이들로부터 흘러나와 코젤렉의 개념사 이론에 녹아들었다.
그렇지만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의 골격을 이룬 ‘경험공간’과 ‘기대지평’은 그의 독창적인 인식체계다. 그 줄기에서 그는 사회적, 정치적 변화의 지표이면서 그 요소가 되는 개념의 세계를 발굴했다. “‘근대’라는 위기의 시대에 수많은 ‘투쟁개념들’이, 다가오는 역사적 운동을 이념적으로 선취하면서 실천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명제가 역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객관주의와 주관주의 사이의 해묵은 경계선에서 홀로 서면서 《비판과 위기Kritik und Krise》(1959), 《개혁과 혁명 사이의 프로이센Preußen zwischen Reform und Revolution》(1967), 《지나간 미래Vergangene Zukunft》(1979), 《시간의 층위Zeitschichten》(2000), 《개념사Begriffsgeschichten》(2006) 등의 저술을 남겼다.
엮은이 : 오토 브루너
오스트리아 역사학자. 베르너 콘체와 함께 ‘근대 사회사 연구회Arbeitskreis f?r moderne Sozialgeschichte’를 조직했다.
주요 저서로 《향촌과 지배Land und Herrschaft》(1939), 《사회사로의 새로운 길Neue Wege der Sozialgeschichte》(1956), 《중세기의 유럽 사회사Sozialgeschichte Europas im Mittelalter》(1978) 등이 있다. 특히 베르너 콘체, 라인하르트 코젤렉과 함께 펴낸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원제는 《역사적 기본개념, 독일 정치.사회 언어 역사사전Geschichtliche Grundbegriffe. Historisches Lexikon zur politisch-sozialen Sprache in Deutschland》)은 가장 주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엮은이 : 베르너 콘체
독일 역사학자.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역사학의 방법론은 정치사에 편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콘체는 산업화 이후 전개되는 역사적 과정에 경제시스템, 인구발전, 소득분배와 같은 사회적 요인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회사Sozialgeschichte를 주장함으로써 독일 학계에 주목을 끌었다.
주요 저서로 《농민해방과 도시질서Bauernbefreiung und St?dteordnung》(1956), 《독일 민족. 역사의 결과Die Deutsche Nation. Ergebnis der Geschichte》(1963) 등이 있다. 특히 오토 브루너, 라인하르트 코젤렉과 함께 펴낸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원제는 《역사적 기본개념, 독일 정치?사회 언어 역사사전Geschichtliche Grundbegriffe. Historisches Lexikon zur politisch-sozialen Sprache in Deutschland》)은 가장 주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옮긴이 : 엄현아
연세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콘스탄츠konstanz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독일어 전문번역사로 일하면서 때로 대학에서 강사로도 활동해 왔다.
그간 주로 국회와 헌법재판소 그리고 통일부와 환경부 등 정부 부처뿐만 아니라 다수의 로펌과 법원으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정치, 법률, 환경 분야의 전문 독일어 번역을 해 오고 있다. 《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문명국가로의 귀환》 등 다수의 책들을 번역했다.
기획 :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1990년 1월, 한림대학교의 설립자인 고故 윤덕선 박사가 국내의 저명한 원로 교수들을 연구원으로 초빙해 설립한 학술연구소로서, 그동안 인문?사회?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종합 학술사업과 연구에 주력해왔다.
특히 한림과학원은 2005년부터 ‘한국 인문?사회과학 기본개념의 역사?철학사전’ 편찬 사업을 시작하여 2007년 인문한국HK ‘동아시아 기본개념의 상호소통 사업’으로 확장했다. 근대 초 동아시아의 개념 충돌 양상을 성찰하여 오늘날 상생의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위한 소통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이 사업의 목표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한림과학원은 동아시아 개념소통 관련 기초연구의 축적, 개념사 총서 및 이론서?번역서 발간, 다양한 국내외 학술행사 개최, 국내외 학술교류협력 사업 추진,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다방면에서 선도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번역서 출간은 이 사업의 일환이다. 한림과학원은 우수한 외국의 연구성과, 특히 개념사 연구의 표본적 모델로 평가되는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의 주요 항목을 번역?소개함으로써 유럽 개념사 연구 성과를 정확하게 이해하며, 나아가 동아시아 개념 연구방법론을 개발하고 국내 개념사 연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이 책의 위상이나 대표성 등에 비추어, 다른 항목에 관한 후속 번역 사업도 계획 중이다.
목 차
번역서를 내면서
Ⅰ. 서문
Ⅱ. 동맹 시대의 ‘Bund’
1. 어휘사語彙史 및 용어사用語史 관련 설명
2. ‘Bund’ 표현이 사용된 역사적 초기 상황
3. 황제의 군주권 아래 신분별로 차별화된 동맹의 자유
4. ‘연합Einung’ ‘연맹Bündnis’ ‘연방Bund’의 정치적 의미론에 대하여
a ─ 통시적 이론
b ─ 신분상의 강조점 형성
5. 제도적 특징
Ⅲ. 종교개혁과 프랑스혁명 사이의 ‘Bund(동맹)’와 ‘Bündnis(연맹)’
1. 신학에 의해 확장되고 사회개혁의 의미가 부가된 동맹 개념
a ─ 루터의 성서 번역
b ─ 사회혁명적 동맹 개념의 신학적 각인
c ─ 루터와 슈말칼덴 집행부
2. ‘Bund’에서 ‘Bündnis’로
a ─ 카를 5세의 제국동맹안
b ─ 종파적 투쟁 동맹에서 영방국가의 동맹법으로
c ─ 제국법과 국제법 사이의 특수동맹의 시대: 관구들의 연합
d ─ 의미론적 회고 및 18세기 어학 사전
3. 근대 초기 연방국가론의 이론적 접근
Ⅳ.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사회정치적 조직의 핵심 개념인 ‘Bund’
1. 초국가적 동맹 개념, 칸트의 국제연맹
2. 종교적 기대 개념에서 사회적 조직 개념으로
3. ‘국가연합’에서 ‘연방국가’로(1806~1871)
a ─ 라인동맹
b ─ 독일연방 1815
c ─ 관세동맹
d ─ 연방과 제국(1848~1871)
Ⅴ. 전망
옮긴이의 글
읽어두기: 주석에 사용된 독어 약어 설명
참고문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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