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조선을 국제 세계로 이끈 중국과 일본의 정책과 행동은
동아시아의 기존 세계질서에 어떤 영향을 줬는가?
“감정과 편협한 애국주의, 독단적인 주장에서 벗어난 이정표적인 저술”
_ 이리에 아키라入江昭 전 하버드대 교수
19세기 후반 동아시아 전통적 세계질서가 해체됐다. 주변국들이 청나라에 조공하는 체제가 서양 열강의 힘에 의해 강제로 깨졌다고 하는 게 이 시기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다. 하지만 좀더 세밀하게 이 시기를 살펴볼 경우 동아시아의 전통적 세계질서가 해체되고 궁극적으로 종말을 맞은 것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거대하게 충돌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그 시기에 청과 일본이 경쟁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런 결과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은 조선이 청 제국의 조공국에서 근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변모한 것이다.
자료에 충실한 외교사 연구의 전범
고故 김기혁 UC데이비스 교수의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이 번역되어 나왔다. 저자의 박사논문이기도 한 이 책은 1980년대 미국에서 출간돼 관련 학계의 많은 관심을 불러모았다. 이 책은 기존과는 달리 개항기 동아시아에서 조선을 사이에 두고 청과 일본이 벌인 경쟁, 외교적 공격과 방어의 디테일을 극사실주의적으로 살핀 수작이다. “동아시아 세 나라의 언어에 모두 능통해 다양한 자료를 충분히 파악하면서 그 시대의 정책을 살펴본 외교사 연구의 전범”이다. 저자는 1860년부터 1882년까지 20년간 조선, 청, 일본 세 나라의 외교정책이 입안되는 과정과 그에 영향을 미친 국내 정치세력의 동향과 움직임을 밀접하게 연관시켜 고찰했다.
저자가 볼 때 이 시기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조선을 국제 세계로 이끈 중국과 일본의 정책과 행동은 동아시아의 기존 세계질서에 어떤 영향을 줬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한 것은 없다. 저자는 우선 제도에 초점을 맞추고 여러 나라를 포괄적으로 검토했다. 서양의 국제체제가 도입되면서 동아시아에서 형성된 이원적 세계질서-전통적 세계질서의 마지막 국면-가 끝나는 과정을 대표하는 부분으로서 조선의 국제적 위치 변화를 살펴봤다.
일본 정한론, 현실-이상의 대립 이론 비판
저자가 청·일본·조선의 정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 사항이 가장 중요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정책을 입안하는 데 작용한 전통의 역할, 국내 정치와 외교정책의 상호관계 그리고 세 나라의 정책과 행동의 상호작용이다. 언제나 전통은 다른 나라들보다 그 당사국에서 좀더 중요하겠지만, 그 영향은 보편적이고 지속적이었다. 개혁과 근대화를 열망했지만 메이지 일본이 동아시아 인접국에게 펼친 초기 정책은 청이나 조선이 시행한 정책 못지않게 전통적이었다.
저자는 각국의 정책을 좀더 깊이 이해하려면 정책 입안에 작용한 국내의 문화·정치적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과 관련해서는 메이지 초기 조선 정책에는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대립했다는 기존 논지를 지지하면서도 막부 말기와 메이지시대 초기 일본의 끈질긴 팽창주의적 정서는 일본의 국내 문제와 좀더 관련됐다고 말한다. 메이지 초기에 등장한 과두정부 안의 분립은, 서양이 제공한 영감과 함께 당시 일본이 조선·타이완에게 시도한 행동의 배후에 있던 주요 요인이었다.
끝으로 저자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세계질서의 궁극적 종말을 가져온 점진적이며 미묘한 변화를 보여주려면 관련된 주요국의 개별 정책뿐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상호작용도 연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청의 정책은 일본과 조선에 관련된 조처를 신중하게 연대순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청의 정책은 달마다 바뀌었지만 전체적인 기본 유형은 도전과 응전이었다.
조선의 변화 세 단계로 나눠 살펴
조선이 청의 조공국에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세 국면에서 나타났는데, 조선에 관심을 갖고 있던 서양 국가들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정책 변화와 맞물려 전개됐다. 첫 국면은 1866년 프랑스의 침입과 1871년 미국의 원정이었다. 1871년은 일본이 청과 처음으로 조약을 맺은 해인데, 그 부분적인 원인은 조선에 대해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려는 데 있었다. 프랑스·미국·일본의 움직임은 탐색활동이었을 뿐이어서 조선 주변의 국제적 상황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됐다. 두 번째 국면은 일본이 조약을 개정해 서양 열강과, 나아가서는 청과 동일한 지위를 획득하려고 노력하면서 시작됐다. 일본은 팽창주의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페리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해 1876년 조선과 강화도조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이 시기 청·일본·조선의 관계는 처음으로 급속하고 엄청난 변화를 겪었는데, 일본의 외교정책이 서양의 방식을 따르고 팽창주의를 추구하기 시작한 결과였다.
조선의 무지한 국수주의
그 뒤 1882년 조선이 미국·영국·독일과 처음 조약을 맺을 때까지 6년 동안 세 번째이자 마지막 국면이 전개됐는데, 청은 조선에 대한 러시아와 일본의 위협이 커지자 조선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통에서 벗어나 일찍이 없던 새로운 정책을 추진했다. 청의 이런 새 정책으로 조선은 서양적 개념의 국제체제로 진입했고 동아시아에서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됐다.
조선의 전환이 이뤄진 첫 단계 동안 청·일본·조선의 전환이 이뤄진 첫 단계 동안 청·일본·조선의 기존 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청은 서양 열강에게 패배와 모욕을 거듭 겪었지만 중국의 왕조로 남아 있었으며 그 권위와 패권은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로부터도 도전받지 않았다. 변화에 대한 저항은 조선이 훨씬 더 철저했다. 문화적 국수주의에 빠져 있었고 서양 세계의 발전에 무지했던 조선은 “유교적 이상세계”를 지향하며 몇 세기 동안 이어온 고립을 고수했다. 천주교는 한 세기에 가까운 정부의 박해를 견뎌냈지만, 조선 정부는 그런 저항을 보면서 외래 종교가 조선 지배층의 성리학적 사회·정치관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사상이라는 위험을 확신했을 뿐이다. 조선 정부는 천주교가 내부를 무너뜨리거나 외부에서 공격을 시도해 조선을 장악하려는 서양의 일반적 음모의 일부라고 확신했다. 조선 관원들은 청이 서양 열강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강한 반감으로 지켜봤다. 숭명반청 감정에 사로잡힌 그들은 청의 개탄스러운 사태는 전체적으로 만주족의 부패와 특별하게는 공친왕의 실정 때문에 발생했다고 믿었다. 그들이 더욱 당혹스럽게 생각한 것은 서양을 모방하려는 일본의 시도였는데, 그것은 일본이 동양 문명과 전통을 배반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천황체제가 조선보다 우위에 있다는 일본의 새로운 주장이 터무니없고 모욕적이라고 여겼다. 대원군은 지배층의 견고한 합의의 지원을 받아 서양과 일본을 단호히 배척했다. 프랑스와 미국의 침입을 물리치자 그는 조선이 어떤 서양 침입자라도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을 더욱 굳혔다.
왕정복고 이후 쓰시마의 퇴각
왕정복고와 함께 시작된 정치구조의 변화를 반영하는 메이지 정부의 첫 조선 정책은 일본의 복원된 천황제의 전통과 중세의 유산이 복합된 것이었다. 그것은 현실적이지 않았던 만큼이나 모순으로 가득했다. 천황의 새 체제는 조선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가정했지만 조선 사안을 즉각 관리할 수 없었다. 조선 정책의 실행은 거의 모두 계속 쓰시마가 맡았다. 쓰시마는 조·일 관계의 중개자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조선에서 누린 외교적·무역적 특권을 계속 보유하고 싶어 했다. 그런 특권의 보유는 조선에게 반半조공 의무를 지속하는 것에 달려 있었지만 일본의 새 체제가 그런 관행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쓰시마의 의무는 일방적으로 중단됐다. 조선으로서는 일본의 새 체제가 우위를 주장하는 것이나 쓰시마가 새로운 자기 권리를 요구하는 것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였다. 일본의 왕정복고 이후 조선과 일본이 외교적 불화를 일으킨 원인은 조선의 비타협적 태도와 근대 국제관계에 대한 무지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메이지 정부가 시작한 “유신 외교”에도 동일한 책임이 있었는데, 도쿠가와 시대와 동일한 외교 형태와 관행을 지속해야 한다는 조선 정부의 고집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고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팽창주의는 1870년 전후에 확립
이 시기 일본의 많은 정치 지도자는 조선을 외국이라기보다는 자국의 국경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조선 정책을 국내 문제로 여긴 적이 많았다. 막부 말기 초기 정한론자들, 유신 직후의 기도, 1873년 사이고와 그 지지자들, 1875년 오쿠보 같은 권력 안팎의 정치가들은 긴장이나 위기 때 국내의 정치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 문제”를 이용했다. 이 모든 것의 뿌리에는 일본이 서세동점의 시대에 독립국으로 살아남으려면 한반도에 권력과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널리 퍼진 믿음, 사실상 국가적 합의가 있었다. 힐러리 컨로이는 메이지시대의 조선 정책과 관련된 중요한 연구에서 이 시기 일본 정부의 지도자들은 조선을 “점령”하려는 책략이나 계획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그들의 태도·견해·행동이 정한론자와 달랐다는 뜻은 아닌데, 팽창은 다른 형태를 띨수 있었고 정도도 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본이 합법적이거나 근대적인 국익 추구라고 간주한 것은 조선이나 청이 보면 본질적으로 팽창주의적이거나 약탈적인 것이었다.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대립이라는 컨로이의 주제는 중요하지만, 그런 구분만으로는 메이지시대의 초기 조선 정책의 본질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으며, 1910년의 조선 병탄은 사실상 그 정책의 정점으로 생각된다. 일본의 국내 정치와 안보에서 조선의 역할과 중요성은 한반도에 영향력이나 통제력을 확대하려는 일본의 지속적 열망과 함께, 대부분의 일본 정치적 지도자들이 조선에 관련된 자신의 건의를 형성하고 정책을 입안한 정신적 기본체계를 형성했다. 그들의 목적·계획·행동은 어느 때든지 “현실에 맞춰” 또는 국내 정치와 국제 상황의 긴급한 사태에 따라 결정되거나 바뀔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 제시한 사실들이 보여주듯 조선에 대한 일본인의 기본적 심성은 1870년대에 확립됐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기혁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중학교 때 일본 도쿄로 건너가 메이지明治대학을 졸업했다. 태평양전쟁 말기 대학이 폐쇄되고 한국인에 대한 징병제가 실시되던 무렵 해방을 맞이했다. 그뒤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중국으로 건너가 역사를 공부하려던 꿈을 접은 채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1967년 20년에 가까운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대학원에 입학해 류광징劉廣京 교수의 지도로 중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국 최초의 근대화운동인 자강운동自強運動을 연구해 「중국 초기 근대화에 대한 일본인의 견해Japanese Perspectives on China’s Early Modernization」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동아시아 전체로 관심을 넓혀 19세기 후반 한반도를 무대로 전개된 청과 일본의 패권 대결을 연구해 1975년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The Last Phase of the East Asian World Order』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했다. 이 논문은 1979년 단행본으로 출간돼 세계 학계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 분야에서 일본의 견해를 대표하던 하버드대학의 이리에 아키라入江昭 교수가 “감정과 편협한 애국주의 그리고 독단적인 주장에서 벗어난 이정표적인 저술”이라고 평가한 사실은 주목된다.
오랫동안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캠퍼스 동양역사·어언語言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 자문위원, 국제퇴계학연구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주저인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을 포함해 『청일전쟁과 리훙장』 등 근대 동아시아사에서 많은 연구 성과를 냈다.
옮긴이 : 김범
1970년 서울 출생.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다. 조선 전기 정치사를 연구해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에 『사화와 반정의 시대』 『연산군—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 『사람과 그의 글』 『민음 한국사-15세기』(공저), 번역서에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유형원과 조선 후기』(제임스 B. 팔레), 『조선왕조의 기원』(존 B. 던컨), 『무신과 문신』(에드워드 슐츠), 『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 난』(김선주) 등이 있다.
목 차
추천사 _ 류광징 U. C. 데이비스 역사학과 교수
머리말
1장 전통 동아시아의 조선
2장 조선에서 커지는 서양의 압력
3장 일본의 초기 팽창주의
4장 유신 외교: 1868~1871년 일본의 청·조선 정책
5장 “서구적” 정체성과 팽창주의를 향한 열망: 일본의 새로운 동아시아 정책, 1872~1875
6장 일본과 조선의 화해와 새 조약, 1874~1876
7장 조약체제의 외교: 청의 새로운 조선 정책
8장 조선에 대한 청의 영향력 변화
9장 결론: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향해
참고문헌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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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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