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할머니가 이상해요!
집 안에서 길을 잃고, 샌드위치를 뺀드비치라 하고,
몇십 년 전 일은 기억하면서 방금 전 일은 금방 잊어버려요.
에밀리아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어요.
그래서 말과 행동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곤 합니다.
그럴 때 효과 만점인 최고의 약이 있어요.
바로 할머니가 첫 번째로 좋아하는, 손자 발레랍니다.
아이가 되어 버린 어른,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의 따뜻하고 깊은 사랑
이따금 사람이 나이가 들면 뇌 속이 엉키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만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많이 겪는 일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뇌 속이 엉키게 되면 이름을 잘못 부르거나 집 안에서 길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뇌 속에는 꼭 진주 구슬처럼 생긴 동그란 모양의 뇌세포들이 많은데, 이 구슬들이 병들었거나 아주 깨져 버렸을 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겁니다. 꼭 뇌가 망가진 진주 목걸이처럼 되어 버린 경우인데요. 사람들은 이 병을 치매라고 부릅니다. 바로 이 그림책 속 주인공, 에밀리아 할머니가 걸린 병입니다.
어느 날, 샌드위치가 ‘뺀드비치’가 되어 버린 날
치매에 걸리는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지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헛말을 하거나 난폭한 행동을 하기도 해서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멀쩡하던 분이 갑자기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말을 하지 않으려 하면 가족들은 불편하고 침울해지기 쉬울 겁니다. 에밀리아 할머니도 그랬습니다. 방과 후 학교 앞에서 할머니를 만난 발레는 “넌 누구니?”라는 어이없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인 할머니가, 어떤 놀이든 친구처럼 함께 해 주던 하나뿐인 어른이 손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겁니다. 특히나 아이한테는 몹시 충격적인 일일 텐데요. 이 그림책의 주인공 발레도 처음에는 할머니의 병을 부정합니다. 아이의 눈으로 보면, 열도 나지 않고 콧물도 나지 않는데 병일 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고 나서 아이는 할머니의 흰머리 아래 보이지 않는 병이 숨어 있다고 이해합니다. 보이지 않는 병 때문에 할머니가 샌드위치를 뺀드비치라 부르고, 왼쪽 구두를 오른쪽 발에 신고, 날마다 만나도 꼭 오랜만에 만나는 것처럼 껴안아 주는 것일 뿐, 할머니는 여전히 할머니라고 말이지요.
가장 소중한 친구를 위해, 지팡이가 되어 주는 마음으로
에밀리아 할머니는 꼭 아이처럼 귀여운 할머니입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아닌 발레와 마음이 더 잘 통할 수 있었던 걸까요? 좀 이상해진 할머니를 보며 어른들이 한숨을 내쉴 때, 발레는 할머니 편에 섭니다. 그리고 예전보다 세심하게 할머니를 관찰하지요. 할머니는 어두운 색 양탄자를 무서워합니다. 가끔은 집 안에서도 길을 잃고, 집에 가자고 어린애처럼 졸라댑니다. 잔칫날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는, 이상한 말이 더 쉽게 튀어나오기도 하고요. 말을 해 놓고 무안해하기도 하지요. 방금 전 일을 까먹는 데는 선수이고요. 이럴 때 발레는 한숨을 쉬지 않습니다. 날마다 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의사나 간호사 누나들이 흘리는 말들을 하나하나 새겨들었기 때문이지요. 바로 아픈 할머니를 위한 꼬마 박사가 된 겁니다. 할머니가 못 알아볼 땐, 함께 하던 놀이나 이야기를 들려주면 기억이 돌아오곤 합니다. 집 안에서도 길을 잃을 때는, 과자 깡통이며 가끔 지직거리는 오디오며 익숙한 물건들을 가리켜 보여 주면 되지요. 헛말을 하실 때는, 할머니와 눈을 맞추고 똑똑히, 천천히 말해 주면 달아나 버렸던 할머니의 말들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할머니를 깊이 사랑하면 됩니다.
그림책 속의 일화들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살아 있는데요. 바로 작가의 어릴 적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꼭 그림책 속 에밀리아 할머니와 똑같은 에밀리아 할머니가 바로 작가의 외할머니라고 합니다. 외할머니를 수년간 간호하면서 작가는 적지 않은 정보를 전해듣고 체험을 했더랬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특히 치매 환자의 특징과 증상, 그에 반응하는 가족들의 모습이며 대처법 들이 실제 상황처럼 녹아 있습니다. 치매는 특별히 가족 관계에 꽤 깊은 영향을 미치는 병이기 때문에, 작가는 어려서부터 이 병을 이해하고 거부감을 줄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고 합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건 무엇보다도 큰 충격일 테니까요.
진주알이 한두 개 빠져도 여전히 예쁜 목걸이처럼
그림책은 시종일관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할머니와 발레 사이의 잔잔한 일들을 짚어 보여 줍니다. 꼭 아이가 그린 것처럼 투박한 맛을 내는 연필 선, 내내 할머니한테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 발레의 큰 눈, 물방울무늬며 꽃무늬, 가지각색 모양으로 멋을 낸 할머니의 옷차림까지. 기억을 짜깁기하듯 오리고 붙인 콜라주 그림들이 슬프면서도 익살스럽고, 웃음을 짓다가도 슬며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양가적인 상황들을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되어 버린 어른, 그리고 그 어른을 보살피기 위해 어른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아이. 이들에게 치매는 관계를 해칠 만큼 무섭고 두려운 병은 아닙니다. 이따금 슬프게 만들지만, 그저 함께 안고 가야 할 보이지 않는 병일 뿐이지요. 진주알이 한두 개, 혹은 여러 개 빠져도 진주 목걸이는 여전히 예쁜 것처럼, 사람도, 사랑도 그렇지 않겠느냐고 이 그림책은 담담하게 물어옵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브리트 페루찌
1966년 스웨덴에서 태어나 언론사에서 기자 경력을 쌓았습니다. 청소년 알코올 문제를 다룬 기사로 스웨덴 카네기 기자 상을 받았으며, 2008년에는 국제 암 기자 상을 받았습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페루찌가 자신의 외할머니인 에밀리아를 수년간 간호하면서 경험한 일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치매를 이해하게 함으로써 이 병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가족 가운데 환자가 생겼을 때 대처하는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요즘은 치매와 관계된 보건사회 문제를 다룬 기사를 쓰거나 친선대사 역할을 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지은이 : 안 크리스틴 옌베리
스웨덴의 왕실 홍보 책임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실비아 왕비를 인터뷰하면서, 치매에 관한 어린이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아주 가까운 친척 중에 치매를 앓는 분이 있어, 좀 더 실질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린이 : 모아 호프
스웨덴에서 태어나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이 책으로 2003년에 좋은 그래픽 디자인과 삽화에 수여하는 스웨덴 실버디프로마 상을 수상했습니다. 노인 요양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이 책에 그림을 그릴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옮긴이 : 신필균
복지국가 여성연대 대표, 서울특별시 시정고문을 맡고 있다. 사회투자지원재단 이사장, 녹색교통운동 이사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회장,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 한국크리스찬아카데미 사회교육원 원장, 지구를 위한 세계운동 한국본부장(GAP)을 지냈으며, 국외에서는 스웨덴 사회보험청 책임연구원, 스톡홀름광역시정보센터 컨설턴트와 스톡홀름광역시의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복지국가 스웨덴, 국민의 집으로 가는 길>(2011)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뺀드비치 할머니와 슈퍼뽀뽀>(200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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