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학교로서의 성균관
배우고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장차 관직에 나아가 조선을 이끌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였던 성균관에서는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 성균관에서는 정해진 순서와 기간에 따라『대학』『논어』를 비롯한 사서오경은 물론 『사기』『고려사』『경국대전』등 역사와 법률을 가르쳤다. 그리고 매일, 매주, 매달마다 글을 외우고 짓는 시험을 치렀다. 때문에 유생들은 유학 강의을 듣는 ‘명륜당’과 공부에 필요한 유교 경전이 보관된 ‘존경각’을 오가며 쉼 없이 학문을 갈고닦았다. 성균관에서 배우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전 외에도 활쏘기, 말 타기, 예의범절, 수학, 음악, 서예 등 여섯 가지를 가르쳐 유생들이 심신을 수련하도록 했다. 넘치는 것은 덜어 내고 모자라는 것은 채워 조화를 이룬다는 뜻(成均)을 가진 성균관의 이름에 걸맞은 교육이 펼쳐진 셈이다.
사당으로서의 성균관
진정한 공부란 옛 성현들을 기리고 본받는 것이니라
성균관은 공자를 비롯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기도 했다. 성균관의 정문인 ‘신삼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대성전’은 성균관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다. 이곳에서 왕과 왕세자, 수많은 신하와 유생들이 해마다 봄과 가을에 성대하게 제사를 치렀다. 학교에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낸 데에는 훌륭한 스승을 본받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라 생각한 우리 조상들의 뜻이 담겨 있다.
유생들의 정치 참여
세상을 향해 바른 목소리를 내다
성균관은 사당이나 학교로서의 역할에만 그치지 않았다. 장차 나라를 이끌 관리를 키우는 곳이었으므로, 왕과 조정의 신하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정에서 바르지 못한 일을 했을 때, 성균관 유생들은 오늘날 학생자치회에 해당하는 ‘재회’를 열어 의견을 모아 ‘유소’를 올렸다.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식사를 거부하며 식당에 나가지 않거나, 성균관을 비워 두고 밖으로 나가 버리기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조선의 미래를 꿈꾼 인재들의 학교 성균관』은 청렴한 관리가 부당하게 관직을 빼앗긴 일에 대해 바른 의견을 내고자 유생들이 유소를 앞세워 궁궐로 향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길이라면 세상과 용감하게 맞설 줄도 알았던 성균관 유생들. 그들이 그저 공부벌레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바른 목소리를 내는 당찬 인재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균관 유생의 아주 특별한 하루를 좇다
『조선의 미래를 꿈꾼 인재들의 학교 성균관』을 통해 유생들의 하루를 좇다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성균관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속속들이 알게 된다. 성균관은 공부뿐만 아니라 밥 먹고 잠자는 일상을 함께하는 곳이었다. 유생들은 모두 동재와 서재에서 기숙 생활을 하며 지냈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기숙사 뜰에는 유생들이 ‘상읍례’와 ‘신방례’를 치르며 인사를 나누는 유생들로 활기가 넘쳤다. 성균관에는 유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균관의 교장 선생님인 ‘대사성’, 유생들을 가르치는 ‘교관’, 성균관의 노비인 ‘반인’과 ‘반노’가 함께 생활했다. 반인과 반노가 때에 맞춰 북을 울리고 구호를 외치면, 유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청금복’을 단정히 입고 식당에 나가 식사를 했다. 특이하면서도 흥미로운 점은 성균관에서는 출석 확인을 식당에서 했다는 사실이다. 아침과 저녁 식사 때 ‘도기’라는 출석부에 이름을 적어 출석을 확인하였고, 출석을 성실히 한 유생에게는 대과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수업을 마친 뒤에는 시험이 이어져 ‘통’(합격)과 ‘불통’(불합격)으로 평가했다. 엄격한 규율에 따라 생활한 성균관 유생들도 한 달에 두 번 휴식을 취했는데, 쉬는 날에도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사치스럽게 치장을 해도 벌을 받았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능력을 세상을 위해 쓰고자 배움을 잊지 않은 인재들. 학교에 다니며 하루하루를 지낸 유생들의 모습은 지금의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차 시대를 이끌어 갈 우리 어린이들에게『조선의 미래를 꿈꾼 인재들의 학교 성균관』은 꼭 필요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성균관 곳곳에 깃든 유생들의 숨결을 느끼다
지금의 성균관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는 않다. 성균관 부지를 둘러싸며 흐르던 반원 모양의 물줄기인 반수는 사라지고 도로가 생겼다. 유생들이 밥을 먹던 자리에는 유림회관이 들어서고, 성균관에 행차한 왕이 가마를 놓던 하련대는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책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성균관의 옛 풍경을 둘러보고 성균관 곳곳에 깃든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책의 말미에는 왕세자의 입학례 풍경이 담긴 『왕세자입학도첩』을 실어 당시 풍경을 그려 볼 수 있게 했다. 또한 서당, 사학, 향교, 서원 등 조선의 교육 기관에 관한 자세한 설명과 그림, 사진이 들어 있어 독자들이 당시의 모습을 더욱 생생히 살펴볼 수 있다.
▣ 작가 소개
글 : 김경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아동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들어가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레디, 액션! 우리 같이 영화 찍자』로 제11회 창비 ''좋은 어린이 책'' 원고 공모 기획부문 대상을 받았고 『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바퀴에서 우주선까지, 연기에서 인터넷까지』『성균관』같은 책을 썼다.
그림 : 홍선주
어린 시절 동화책 속의 그림부터 확인하며 책을 읽다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1998년 서울 일러스트레이션전, 2000년 출판미술협회 공모전에서 공모전 동화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요즘은 전통 문화와 옛 사람들의 일상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분야의 글들을 그림으로 그리게 될 때 아주 행복함을 느낀다.작품으로는 『콩중이 팥중이』, 『시금새금 마을의 로링야』, 『슬기둥 덩뜰당뜰 저 소리 들어 보오』, 『초정리 편지』, 『퉁소 소리와 용』, 『박씨 부인전』, 『금자를 찾아서』, 『진휘 바이러스』, 『세상을 구한 활』, 『공주도 똥을 눈다』, 『흰 산 도로랑』,『임금님의 집 창덕궁』,『성균관』등이 있다.
감수 : 정연식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조선후기 역총의 운영과 양역변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학예연구사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사학과 교수로, 박물관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공저) 등이 있고, 감수한 책으로는 『성균관』, 논문으로는「조선조의 탈것에 대한 규제」「조선시대의 시간과 일상생활」「조선시대의 끼니」「화성의 방어시설과 총포」등이 있습니다.
학교로서의 성균관
배우고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장차 관직에 나아가 조선을 이끌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였던 성균관에서는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 성균관에서는 정해진 순서와 기간에 따라『대학』『논어』를 비롯한 사서오경은 물론 『사기』『고려사』『경국대전』등 역사와 법률을 가르쳤다. 그리고 매일, 매주, 매달마다 글을 외우고 짓는 시험을 치렀다. 때문에 유생들은 유학 강의을 듣는 ‘명륜당’과 공부에 필요한 유교 경전이 보관된 ‘존경각’을 오가며 쉼 없이 학문을 갈고닦았다. 성균관에서 배우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전 외에도 활쏘기, 말 타기, 예의범절, 수학, 음악, 서예 등 여섯 가지를 가르쳐 유생들이 심신을 수련하도록 했다. 넘치는 것은 덜어 내고 모자라는 것은 채워 조화를 이룬다는 뜻(成均)을 가진 성균관의 이름에 걸맞은 교육이 펼쳐진 셈이다.
사당으로서의 성균관
진정한 공부란 옛 성현들을 기리고 본받는 것이니라
성균관은 공자를 비롯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기도 했다. 성균관의 정문인 ‘신삼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대성전’은 성균관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다. 이곳에서 왕과 왕세자, 수많은 신하와 유생들이 해마다 봄과 가을에 성대하게 제사를 치렀다. 학교에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낸 데에는 훌륭한 스승을 본받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라 생각한 우리 조상들의 뜻이 담겨 있다.
유생들의 정치 참여
세상을 향해 바른 목소리를 내다
성균관은 사당이나 학교로서의 역할에만 그치지 않았다. 장차 나라를 이끌 관리를 키우는 곳이었으므로, 왕과 조정의 신하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정에서 바르지 못한 일을 했을 때, 성균관 유생들은 오늘날 학생자치회에 해당하는 ‘재회’를 열어 의견을 모아 ‘유소’를 올렸다.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식사를 거부하며 식당에 나가지 않거나, 성균관을 비워 두고 밖으로 나가 버리기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조선의 미래를 꿈꾼 인재들의 학교 성균관』은 청렴한 관리가 부당하게 관직을 빼앗긴 일에 대해 바른 의견을 내고자 유생들이 유소를 앞세워 궁궐로 향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길이라면 세상과 용감하게 맞설 줄도 알았던 성균관 유생들. 그들이 그저 공부벌레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바른 목소리를 내는 당찬 인재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균관 유생의 아주 특별한 하루를 좇다
『조선의 미래를 꿈꾼 인재들의 학교 성균관』을 통해 유생들의 하루를 좇다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성균관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속속들이 알게 된다. 성균관은 공부뿐만 아니라 밥 먹고 잠자는 일상을 함께하는 곳이었다. 유생들은 모두 동재와 서재에서 기숙 생활을 하며 지냈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기숙사 뜰에는 유생들이 ‘상읍례’와 ‘신방례’를 치르며 인사를 나누는 유생들로 활기가 넘쳤다. 성균관에는 유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균관의 교장 선생님인 ‘대사성’, 유생들을 가르치는 ‘교관’, 성균관의 노비인 ‘반인’과 ‘반노’가 함께 생활했다. 반인과 반노가 때에 맞춰 북을 울리고 구호를 외치면, 유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청금복’을 단정히 입고 식당에 나가 식사를 했다. 특이하면서도 흥미로운 점은 성균관에서는 출석 확인을 식당에서 했다는 사실이다. 아침과 저녁 식사 때 ‘도기’라는 출석부에 이름을 적어 출석을 확인하였고, 출석을 성실히 한 유생에게는 대과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수업을 마친 뒤에는 시험이 이어져 ‘통’(합격)과 ‘불통’(불합격)으로 평가했다. 엄격한 규율에 따라 생활한 성균관 유생들도 한 달에 두 번 휴식을 취했는데, 쉬는 날에도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사치스럽게 치장을 해도 벌을 받았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능력을 세상을 위해 쓰고자 배움을 잊지 않은 인재들. 학교에 다니며 하루하루를 지낸 유생들의 모습은 지금의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차 시대를 이끌어 갈 우리 어린이들에게『조선의 미래를 꿈꾼 인재들의 학교 성균관』은 꼭 필요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성균관 곳곳에 깃든 유생들의 숨결을 느끼다
지금의 성균관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는 않다. 성균관 부지를 둘러싸며 흐르던 반원 모양의 물줄기인 반수는 사라지고 도로가 생겼다. 유생들이 밥을 먹던 자리에는 유림회관이 들어서고, 성균관에 행차한 왕이 가마를 놓던 하련대는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책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성균관의 옛 풍경을 둘러보고 성균관 곳곳에 깃든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책의 말미에는 왕세자의 입학례 풍경이 담긴 『왕세자입학도첩』을 실어 당시 풍경을 그려 볼 수 있게 했다. 또한 서당, 사학, 향교, 서원 등 조선의 교육 기관에 관한 자세한 설명과 그림, 사진이 들어 있어 독자들이 당시의 모습을 더욱 생생히 살펴볼 수 있다.
▣ 작가 소개
글 : 김경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아동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들어가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레디, 액션! 우리 같이 영화 찍자』로 제11회 창비 ''좋은 어린이 책'' 원고 공모 기획부문 대상을 받았고 『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바퀴에서 우주선까지, 연기에서 인터넷까지』『성균관』같은 책을 썼다.
그림 : 홍선주
어린 시절 동화책 속의 그림부터 확인하며 책을 읽다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1998년 서울 일러스트레이션전, 2000년 출판미술협회 공모전에서 공모전 동화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요즘은 전통 문화와 옛 사람들의 일상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분야의 글들을 그림으로 그리게 될 때 아주 행복함을 느낀다.작품으로는 『콩중이 팥중이』, 『시금새금 마을의 로링야』, 『슬기둥 덩뜰당뜰 저 소리 들어 보오』, 『초정리 편지』, 『퉁소 소리와 용』, 『박씨 부인전』, 『금자를 찾아서』, 『진휘 바이러스』, 『세상을 구한 활』, 『공주도 똥을 눈다』, 『흰 산 도로랑』,『임금님의 집 창덕궁』,『성균관』등이 있다.
감수 : 정연식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조선후기 역총의 운영과 양역변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학예연구사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사학과 교수로, 박물관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공저) 등이 있고, 감수한 책으로는 『성균관』, 논문으로는「조선조의 탈것에 대한 규제」「조선시대의 시간과 일상생활」「조선시대의 끼니」「화성의 방어시설과 총포」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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