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곡성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도전, 시 그림책
곡성 할머니들이 삶의 애환을 노래한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가 도서출판 북극곰에서 정식으로 출간된 지 일년 반이 지났습니다. 할머니들이 며느리로 살아온 ‘시집살이’와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시작한 ‘詩집살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통해 할머니들은 많은 독자들에게 치유와 위로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눈이 사뿐사뿐 오네』는 곡성 할머니들이 곱게 써 내려간 시와 서툴지만 정성스레 그린 그림이 어우러진 시 그림책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첫눈을 기다리는 지금,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도전은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새로운 감동을 전합니다.
할머니들이 수놓은 고운 빛깔의 향연
곡성 할머니들은 늦깎이로 한글을 배우고 아름다운 시를 쓰면서 제2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에게 그림은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선도 삐뚤빼뚤하고, 그리고 보니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차라리 한글 공부를 더 하는 것이 낫겠다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눈이 어두워 색깔을 고르고 칠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투박한 손길이 느껴집니다. 투박하지만 정직하고 맑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할머니들은 자신의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면서 밝고 화려한 색감을 선택했습니다. 이 점이 시 그림책 『눈이 사뿐사뿐 오네』가 가진 특별한 매력입니다. 무지갯빛 눈송이, 등장인물이 입은 알록달록한 옷에서 삶을 향한 긍정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시에는 그립고 슬프고 서러운 감정이 담겨 있는데, 그에 반해 그림은 화려한 색이 덧입혀져 밝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시를 보며 눈물짓다가, 그림을 보며 미소 짓게 됩니다. 과하지 않고 담담하게, 꾸밈없이 순수하게 할머니들의 인생을 들려줍니다.
온 몸과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할머니들의 시 그림책에는 우리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시집살이 詩집살이』가 아름다운 시로 독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한 것처럼, 『눈이 사뿐사뿐 오네』는 아름다운 시에 소박하고 진솔한 그림을 더해 더 큰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살아온 일생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어메는 나를 낳고 “또 딸이네.” / 윗목에 밀어 두고 울었다 / 나마저 너를 미워하면 / 세상이 너를 미워하겠지 / 질긴 숨 붙어 있는 핏덩이 같은 / 나를 안아 들고 또 울었다 / 하늘에서는 흰 눈송이가 하얀 이불솜처럼 / 지붕을 감싸던 날이었다
-어쩌다 세상에 와서, 안기임
시어머니는 이제 막 딸아이를 낳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 며느리를 타박합니다. 며느리는
서러워 갓난아이를 안고 웁니다. 그날은 하늘에서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렸습니다. 안기
임 할머니는 하늘에서 하얗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자기 때문에 시어머니에게 혼난 어
머니를 생각합니다.
눈이 와서 나뭇가지마다 / 소박소박 꽃이 피어 좋다 / 눈사람도 만들고 / 아버지가 만든 스케이트 갖고 / 신나게 타다 본께 / 해가 넘실넘실 넘어가고 / 손이 꽁꽁 얼었다 / 집에 들어간께 엄마가 / “춘데 인자 오니 / 인자사 들어오니 / 어서 방으로 들어가그라 / 손발이 다 얼었다 내 새끼.” 한다
-눈이 많이 왔다, 양양금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놉니다. 눈사람도 만들고, 스케이트도 타며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해가 넘실넘실 넘어갈 무렵 꽁꽁 언 몸으로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내 새끼” 하며 손발을 어루만져주며 반깁니다. 양양금 할머니는 눈이 많이 온 날, 어린 자기를 맞아주던 엄마를 생각합니다. 우리네 할머니에게도 엄마가 있습니다. 또한 한때는 눈 오는 날을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눈이 사뿐사뿐 오네 / 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려와서 / 사뿐사뿐 걸어오네.
-눈, 김점순
쇠 담뱃대를 밤새도록 땅땅 때리는 시할머니를 보면 시집살이의 고단함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을라치면 큰동서가 시집살이를 시킵니다. 마실을 가려고 해도 시아버지 눈치를 봐가며 바느질거리를 들고 갑니다. 김점순 할머니 눈에 사뿐사뿐 오는 눈은, 시어른이 어려워 조심조심 다니는 며느리 같습니다.
죽었든 풀잎도 봄이 오면 다시 살아온디 / 당신은 왜 못 올까 / 때로는 보고 싶고 슬프기도 하다 / 당신은 왜 못 올까 / 저 달은 세상을 다 본디 / 나는 왜 못 볼까 / 어둠 뒤에 가려진 당신을 / 나는 왜 못 볼까
-서럽다, 박점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합니다.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새날이 시작되는데, 먼저 떠난 남편은 돌아오지 못합니다. 박점례 할머니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시를 띄웁니다. 달이 뜬 밤, 모로 누워 남편을 그리는 박점례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눈 오는 날, 시와 그림으로 지은 할머니들의 이야기에는 ‘그리움’의 정서가 녹아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을 바라보며 할머니들은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과 함께 놀던 동무를 떠올리고, 이제는 가 보지 못하는 고향을 생각하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남편을 생각합니다. 시 그림책 『눈이 사뿐사뿐 오네』를 보며 장면 하나하나를 쉬이 넘길 수 없는 것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곧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눈이 사뿐사뿐 오는 오늘, 당신은 누구를 그리워하십니까.
작가 소개
전남 곡성 서봉마을에서 농사도 짓고 시도 짓는 할머니들이다. 길작은도서관에서 김선자 관장으로부터 동시와 그림책으로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할머니들의 삶과 동시와 그림책이 만나 깊고 아름다운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완성됐다. 『눈이 사뿐사뿐 오네』는 곡성 할머니들이 쓰고 그린 첫 번째 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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