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아놀드 로벨이 들려주는 '게으름' 이야기
게으름은 고치기 어려운 병이다. 한번 달라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 껌과 같아서 여간해서는 고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부지런해라, 부지런해라.” 하고 누누이 말을 듣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보는 책에 게으른 사람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 책 역시 ‘게으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책과 다른 무언가가 있다. 작가가 아놀드 로벨 아닌가. 사실 아놀드 로벨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작가이다. 논리적인 관계보다는 ‘되풀이되는 사건’들이 만들어가는 구성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딱딱한 논리 정연함이 아닌 유머와 훈훈한 정이 담뿍 담긴 이야기는 아이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책에서 역시 아놀드 로벨은 대(大)작가답게 심플한 반복구조 속에 유머러스한 묘사, 따뜻한 인간미, 그리고 명쾌한 결말을 버무려 풀었고, 아내인 애니타 로벨은 슬라브 족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색채 속에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반복 구조 속에 녹아든 특유의 유머러스함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두 주인공의 성격 특징을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놀드 로벨의 글과 애니타 로벨의 그림이 착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평상시 연극에 관심이 많았던 애니타 로벨은 주인공들을 연극 주인공처럼 생생하게 표현했다.
먼저 농부를 보자. 원래 돼지를 키우자는 것은 농부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 몰라라 하고 아내에게 떠넘겨 버린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이불을 목까지 올려 덮고 침대에 누워,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또 첫 장에서만 알록달록 옷을 갖춰 입고 있지, 다음부터는 아예 잠옷 바람이다. 침대에 파묻혀 머리카락 조금과 코끝만 보이는 장면이나, 돼지가 안 보이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 아내를 부르는 장면을 보라. 이렇게 게으른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반면 농부의 아내는 참 부지런한 사람이다. 혼자서 척척 모든 일을 해낸다. 손에 항상 삽이나 두레박, 바구니를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일만 한다. 또 농부의 게으름에 잔소리를 퍼붓기는커녕 참고 기다린다. 그러다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자 돼지를 지하실에 가둔다. 다급해진 농부가 아내를 부르는데, 아내는 농부가 전에 했던 ‘그대로’ 대답한다. 농부는 그제야 벌떡 일어나 다시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겠다고 빌고, 아내는 시원스럽게 용서해 준다. 그리고 표정 변화 하나 없던 농부의 아내가 다같이 저녁 식사를 할 때는 활짝 미소를 짓는다. 게으름 피우지 않겠다고 약속한 남편이 흐뭇했으리라. 더구나 앞치마를 두른 농부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익살스럽지 않은가.
슬라브 족을 연상시키는 화려하고 풍성한 색채
장을 더할수록 점점 침대 밑으로 꺼져 버릴 듯한 농부의 모습이나 다양한 색의 테두리는 경쾌함을 준다. 심지어는 수탉의 깃털까지도 온갖 색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테두리를 따라 그린 돼지, 사과, 꽃, 옥수수 등의 아기자기한 요소는 신선함을 더한다. 또 12마리 돼지들은 마당에 핀 꽃들과 함께 방긋 웃고 있는가 하면 나무에 달리기도 하고, 지붕에서 떨어져 내리기도 하는 등 줄곧 발랄한 모습으로 분위기를 이끈다. 애니타 로벨 특유의 정성스러움이 묻어나는 부분들이라 하겠다.
사실 아놀드 로벨과 애니타 로벨의 그림 기법은 비슷한 점이 많다. 네버랜드 걸작 그림책 중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은 아놀드 로벨이 그렸는데, 거친 듯하면서도 깔끔한 펜 선이 돋보이는 점이, 이 책의 느낌과 닮았다. 두 사람은 같은 작업실에서 일하면서 서로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경쟁자이자 진정한 동료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하는 작업일수록 더욱 뛰어난 완성도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로벨 부부의 완벽한 조화 속에 탄생한 이 책은, 아이들에게 부지런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는 점을 굳이 거론하지 않고도 재치 넘치는 이야기와 형형색색의 그림이 하나가 된 매력적인 작품이다.
작가 소개
저 : 아놀드 로벨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나 플렛 인스티튜트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1987년 5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어린이책 작가이자 화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아놀드 로벨 우화』, 『개구리와 두꺼비는 친구』,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으로 칼데콧 상을 받았고,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로 뉴베리 상을 받았다.
이 외 작품으로는 『개구리와 두꺼비의 하루하루』『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생쥐 수프』『생쥐 이야기』『꼬마 돼지』『집에 있는 올빼미』등이 있다.
그림 : 애니타 로벨
1934년 폴란드 크라쿠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부모님과 헤어져 남동생과 함께 지내다가 강제 수용소에 붙잡혀 있었다. 적십자의 구조로 부모님을 만나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13살까지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아름다운 색과 따뜻한 그림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남편 아놀드 로벨과 함께 작업한 『시장 길에서 On Market Street』로 칼데콧 아너 상을 받았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안나의 빨간 외투』, 『어머니의 감자 밭』등이 있으며 자전적 이야기를 쓴 『나는 희망을 그린다』가 있다.
역자 : 엄혜숙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어린이책 기획, 글쓰기, 번역하는 일 등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생쥐 스프』『꼬마 생쥐의 새 집 찾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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