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비닐봉지와 종이봉투가 사랑에 빠진다면?
의외의 상상에서 나온 흥과 재미를 바탕으로
사랑, 전쟁, 삶을 보는 다른 시선, 열린 세계관으로
확장해 가는 두툼한 서사의 매력
그림책은 오순도순 모여 사는 비닐봉지와 종이봉투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한마음으로 ‘불’을 조심하고 ‘가위’라는 짐승을 두려워하며 차갑고 뾰족하고 날카로운 놈들은 함께 경계하던 그들 사이에 이상한 말들이 나돌기 시작합니다. 종이봉투는 본래 반듯반듯하지만 무거운 걸 담으면 찢어지기 일쑤이고, 비닐봉지는 질기고 튼튼하기로는 세상 제일이지만 시끄럽기가 보통이 아니고요. 사물 본래의 속성이니만큼 바꾸기는 힘든 일인데, 결국은 그 속성에서 비롯된 차이가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인간사에 비유하여 보자고만 들면, ‘아유, 머리 아프네’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비닐봉지와 종이봉투의 세계인만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이미 익숙한 둘의 속성 차이를 글과 그림으로 즐기며 유쾌하게 볼 수 있습니다. 아, 그런데 어디서나 전쟁이 있으면 사랑도 있는 법. 두 나라로 갈라진 틈바구니에서 ‘봉지공주’와 ‘봉투왕자’의 사랑이 꽃피어 납니다. 그림책은 “이리하여, 이 이야기의 제목은 ‘봉지공주와 봉투왕자’가 되었다”며 연극을 올리듯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둘이서 몰래 은하수 강가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마침내 만나기로 한 날 봉투왕자에게 위기가 닥쳐오지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뱃머리를 돌린 왕자는 용감하게 싸웠지만 결국 봉지나라 용병 딱풀부대에 당하고 맙니다. 강물에 흠뻑 젖어 찢어지기 직전인 왕자를 구하는 건 봉지공주입니다. 가벼워서 나풀나풀 나는 건 잘해도 수영은 해본 적도 없는 공주가 강물에 뛰어들어 왕자를 구합니다. 제 몸에 구멍까지 내어 물을 빼내면서 말이지요.
그림책은 로맨스의 서사 구조를 충실히 따라갑니다만, 등장하는 사물들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곳곳에 유머와 재미를 배치합니다. 마침내 왕자를 구한 공주가 “빵꾸가 나서 이제 쓸모없는 봉지가 되고 말았다”고 울먹거릴 때에, 왕자는 반듯해진 제 몸을 구겨 가며 “구김새도 좀 있어 줘야 멋진 이의 완성!”이라고 공주를 위로합니다. 허점 하나 없이 완벽해야만, 세상의 잣대로 측정한 ‘쓸모’가 있어야만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이 아님을 무겁지 않게, 유쾌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리하여 둘의 속성 차이로 갈라져 싸웠던 비닐봉지와 종이봉투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새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다름’을 품어 안고 ‘우열’을 가리지 말자는 품 넓은 세계관이 담겨 있지요.
질기지만 시끄러운 비닐봉지, 반듯하게 각 잡힌 종이봉투,
딱 하고 붙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 딱풀의 위력,
권위를 자랑하는 분리수거봉투와 튼튼한 페트병, 부채, 다리미,
사물 본래의 속성을 살린 코믹한 캐릭터의 향연!
이 그림책을 즐기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캐릭터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늘 가까이에 있는 사물들이 대거 출연하여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봉지공주의 특기는 사뿐히 날아올라 공중제비를 도는 것이고, 봉투왕자의 특기는 몸을 흔들어 바람을 내는 것입니다. 실제 비닐봉지와 종이봉투를 생각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분리수거대마왕은 그 이름답게, 지정한 날 버리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실생활의 권위를 이어, 책 속에서도 봉지들의 대장으로 군림합니다. 뚜껑을 열 때 ‘뽁’ 소리가 나는 딱풀은 종이봉투한테는 거의 재앙이지요. ‘뽁’ ‘뽁’ 소리내며 달려드는 딱풀부대의 접착력에 종이봉투는 그만 끈적끈적해져 나가떨어지고 맙니다. 종이봉투보다 훨씬 단단하고 강한 페트병왕자는 부모로서는 사위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존재이기도 하고, 부채도사와 다리미선녀는 그 속성에 걸맞게 봉투왕자를 사뿐히 제 모습으로 돌려놓습니다.
작가는 실제 비닐봉지와 종이봉투, 딱풀, 분리수거봉투 들을 배우로 삼아 2013년부터 1인극을 해왔습니다. 작가가 연극으로 먼저 선보인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의 살아 있는 대사와 코믹한 액션을 지니고 오롯이 그림책으로 건너 왔습니다. 이영경 표, 귀엽고 순박한 생김새를 갖추고 말이지요.
그래서 이 그림책은 특별하게도, 더욱 더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림책으로 감상하고, 나아가 실제 봉지와 봉투를 가지고 연극을 해 보며, 좀더 유쾌하게 이야기를 즐겨 보기를 권합니다.
*그림책 뒤표지 QR코드를 통해서, 작가가 노래와 연극의 형태로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작가 소개
저 : 이영경
1966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공부했다. 해외 근무한 아버지 때문에 네 살부터 일곱 살까지 일본에서 지내며 그림책을 접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그림책 작가를 꿈꿨다고 한다. 1993년부터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신화따라 바다 여행』,『옛날옛적 이야기쟁이』,『꽃들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등 지금까지 많은 책에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 여정을 살펴보면 작가가 특히 우리 옛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영경은 실제로 우리 전통의 선을 잘 살려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한지에 스며든 듯한 부드러운 색감이 원색적이고 화려한 외국 그림과 선명하게 비교되면서 우리의 맛을 살려 주고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즉 한국적인 그림책을 만들어내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작가는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할 만큼 텍스트 이해력이 뛰어나다.
그의 대표작『아씨방 일곱 동무』는 2001년 SBS 어린이 미디어 대상 창작 그림책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했으며, 프랑스어와 일본어로도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씨방 일곱 동무』는 '규중칠우쟁론기'라는 고전문학을 아이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이다. 작가는 우리 고전을 되살려 그림책으로 만들어 정감있는 그림과 함께 들려주고 있다.
그 외에도 이영경은 많은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렸으며, 지금도 아름답고 재미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는 『아씨방 일곱 동무』와 『신기한 그림족자』가 있고, 그린 책으로는 『넉 점 반』,『꽃들이 들려주는 옛이야기』,『윤봉길』, 『전우치전』등이 있다. 『봉지공주와 봉투왕자』는 2013년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1인극 공연으로 처음 선보인 뒤 그림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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