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온순하고 따뜻한 것들이 강하게 눈에 띄는 경우는 별로 없다. 누가 봐도
손가락질할 만한 악역도 없이, 눈물을 쏟아내게 하는 극적인 사건도 없이
그저 잔잔한 이야기는 얼핏 밋밋해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런 책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였을 때, 그 자국은 마음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마음을 밝혀 주는 따뜻한 그림
좋은 그림책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림으로 먼저 감동을 전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책 한 권을 관통하는 정서를 일차적으로 전달해 주는 그림, 그리고 오래 오래 기억될 몇 장면들이 그 그림책을 빛나게 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돌려 줘, 내 모자》는 한눈에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책이다. 먼저 밝고 따뜻한 색채가 눈에 띈다. 특별한 구도라든가 눈에 띄는 캐릭터가 없는 담담한 그림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것은, 이 따뜻한 색채가 먼저 독자의 마음을 풀어 놓기 때문이다. 특히 주인공이 할머니가 완성시킨 모자를 쓰고 기뻐하는 뒷모습(아이의 표정을 볼 수 없어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을 보여 주는 장면이나, 주인공이 모자를 되찾고 빙긋 웃을 때 은행 나뭇잎이 쏟아지는 장면은 독자들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한다. 부드러운 목탄선 위로 번진 맑은 수채화. 글보다 그림이 먼저 말을 거는 이 책의 그림들은 어찌 보면 참 착하다.
마음을 움직이는 착한 이야기
이 책의 등장인물 역시 모두 착하다. 머리에 난 흉터 때문에 놀림을 받아도 할머니에게만은 그 얘기를 꺼내지 않는 주인공도, 그 아이를 놀리지만 다투고 화해하고 나무 아래서 응원하는 친구들도, 손자를 구하려다 사고를 당하고도 흉터 때문에 늘 미안해하는 할머니도 모두 착하다. 세상에 착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닌데 이렇게 모두 착한 인물들만 등장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일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물들은 독자를 설득한다. 그것은 이들이 착한 것이 다 그럴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착한 힘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가족 간의 사랑이다. 무엇보다 먼저, 손자를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어떤 판단이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몸을 내던진 할머니의 사랑이 마음을 울린다. 할머니는 사고 때문에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을 정도로 손자보다 더 큰 상처를 입었지만, 그보다는 손자의 머리에 난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한 땀 한 땀 떠서 만든 모자를 집어 던지며 속상해하는 손자 앞에서 할머니는 정말 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인다.
흉터 때문에 놀림 받는 주인공도 할머니 앞에서 그 얘기만큼은 참아 왔다. 어린 마음이지만, 할머니가 무척 슬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 그리고 막연하게 느꼈던 할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 사연을 알게 된 후에는 할머니에게 상처를 준 것을 깊이 후회한다. 할머니의 방 앞에서 머뭇거리는 주인공의 뒷모습과 어서 들어오라고 부르는 할머니의 대화는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런 가족 간의 사랑을 통해서 주인공은 자란다. 늘 자신을 놀리던 친구들을 향해 ‘모자를 돌려 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주인공 말마따나 “얻어맞아도 걷어차여도 나뒹굴어도 손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짓궂은 친구들 앞에서 그저 눈물만 가득 품던 주인공으로서는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심술꾸러기로 보이던 친구들의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싸움에서 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켜보고 있던 반 친구들도 한 마음으로 주인공의 편을 든다. 그리고 뜻밖에도, 나무에도 오르지 못할 정도로 약한 면이 있던 요지를 대신해서 주인공이 직접 나무에 오른다. “지금까지 이렇게 높은 나무에 올라가 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왠지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서. 이것이 바로 주인공이 성장했다는 증거이다. 그 성장을 응원하듯 친구들도 모두 주인공을 거든다.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사랑의 기운은 사람을 바르게 성장하도록 도와준다. (그것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해당되는 진리이다.) 그렇게 성장한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그리고 세상의 따뜻함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착한 사람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 착한 것이 아니라 잘 자란 사람이 착한 것이다. 자라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사랑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이다.
주인공의 머리에 난 흉터는 자라면서 차차 지워질 것이다. 혹시 평생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할머니의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고, 그 흉터를 계기로 다툰 친구들과도 화해하면서 성장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만 있다면, 모든 상처는 언젠가 아물기 마련이다.
작가 소개
글,그림 : 우메다 슌사쿠
1942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그의 가치관은 언제나 인간미 넘치는 그림책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유치원에서 직접 아이들과 얼굴을 부비고 놀면서 작품의 영감을 얻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어린이들의 세계에 다가간다. 담백한 그림에서도 생명이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얼룩고양이와 할아버지』『모르는 척(97년 일본 그림책상 수상)』들이 있으며, 『열네 살 타우타우 씨(일본 그림책상 선고위원특별상 수상)』『다녀왔어요, 엄마』『쥐들의 싸움』『그림 같은 누나』『안짱의 논』『할머니의 여름휴가』『러브 유 포에버』『보름달 바다』등 많은 그림책을 출간했다. 어른들을 위한 수필집『산골짜기 노스텔지어』를 출간하기도 했으며 때때로 자신의 작품 세계와 어린이책에 대한 강연을 열기도 한다.
옮김 : 김난주
부산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다. 또 일본 쇼와여자대학대학원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얼룩고양이와 할아버지』『창가의 토토』『방귀 만세』『두루미 아내』『은하 철도의 밤』『안개 속에서 만난 친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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