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동물들의 장례식을 통해 삶과 죽음을 경쾌하게 돌아보는 그림책
에스테르는 빈 터를 왔다 갔다 하더니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말했어요.
“세상은 온통 죽은 동물들로 가득해. 덤불마다 죽은 새랑 나비랑 쥐가 있지.
이들을 누군가 보살펴 줘야 해. 누군가 친절하게 묻어 줘야 해.”
“누가?” 내가 물었어요. “우리가!” 에스테르가 대답했어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언젠가 한 번은 맞닥뜨려야 하는 과정인데 말이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아이들은 아름다운 것만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죽음은 아이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금기 영역이라 믿는 어른들도 있다. 하지만 죽음은 삶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러니 죽음을 이해하는 것은 삶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죽음이란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책 작가들이 끊임없이 죽음에 눈길을 주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진지하면서도 발랄한 시선
이 작품은 ‘동물들의 장례식’이란 이색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도록 쉽고 경쾌하게 접근한 책이다.
어느 나른한 여름날, 아이들은 무료함을 달래 보려고 죽은 벌을 위해 장례식을 해 준다. 그리고 곧 본격적으로 동물들을 위한 장례 회사를 차린다. 아이들은 장례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아 장례 가방을 꾸리고, 자신들만 아는 빈 터를 묘지로 삼고, 장례식 비용까지 받기로 한다. 뿐만 아니라 세 아이는 장례 의식에 필요한 무덤 만들기, 추모 시 짓기, 울어 주기 등 역할 분담도 한다. 까만 겉옷을 챙겨 입고, 까만 넥타이를 맨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른의 전유물인 장례식을 치르면서 어른을 흉내 내는 모습은 작은 웃음을 자아낸다. 장례식을 해 주겠다며 쥐덫에 잡힌 쥐, 냉장고 안에 든 청어까지 찾아내는 엉뚱한 모습 또한 웃음을 만들어 내기는 마찬가지다.
작가 울프 닐손은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장례식이라는 소재를 통해 직접적으로 다루면서도, 다가가는 방식을 ‘놀이’로 택함으로써 죽음이 주는 무게를 덜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을 돌아보는 시선은 충분히 깊이 있다. 죽은 동물들을 떠나보내며 화자인 아이가 쓴 시는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세심하다.
죽음을 이해하는 세 가지 방법
작가는 푸테, 에스테르, 화자인 ‘나’, 이렇게 서로 다른 세 아이를 통해 죽음에 다가간다. 죽음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나와 에스테르는, 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르는 푸테에게 눈높이를 낮춰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살아 있는 건 언젠가 죽는다고, 심지어 우리도 언젠가 죽어서 사라질 거라고. 푸테는 장례식이라는 의식을 치르면서 어렴풋하게나마 그 의미를 알게 된다. 비록 “누페가 괜찮아지면 무덤에서 다시 꺼낼 거야.”라고 말하지만 말이다. 화자인 ‘나’는 죽음이 낯설고 두려운 거라고 생각하여 죽은 동물을 만지지도 못하는 여린 존재이다. 하지만 죽은 이들을 위해 추모 시를 지으며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또 지빠귀가 죽음을 맞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는,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며 두려워할 대상이 아님을 알게 된다. 에스테르는 심심함을 달래기 위한 놀이이자 돈을 버는 수단으로 동물들의 장례식을 생각해 냈지만, 점차 죽음의 거룩한 의미를 깨달아 간다. 죽은 동물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주며 진지하게 의식을 치르는 모습에서 생명을 대하는 엄숙함이 느껴진다.
아이들은 친구의 햄스터, 쥐덫에 잡힌 쥐, 아빠가 준 수탉, 차에 치인 산토끼 들의 장례를 치르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한층 성장한다. 수채화 그림은 죽음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슬픔을 극복해 내는 과정을 정감 있게 담아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소중해요
지금의 어른들은 손수 키우던 개, 닭, 소 들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죽음, 그리고 삶과 생명의 소중함을 자연스레 깨달으며 자랐다. 하지만 도시에 많이 사는 요즘 아이들은 동물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적다. 물론 애완동물을 키우는 아이들도 있지만 일부일 뿐이고, 동물원에서 동물을 볼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구경’ 차원이 아닌가. 온갖 생명을 가까이 보며 자랄 수 없는 환경은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을 기회를 빼앗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벌, 쥐, 청어 들의 장례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작은 동물들에게도 존귀한 생명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더 이상 애완동물을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아이들이 자기 삶을 소중히 생각하고, 다른 이들의 삶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울프 닐손
1948년 스웨덴 헬싱보리에서 태어났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부터 어른을 위한 소설까지, 폭넓고 다양한 작품을 쓰고 있으며, 그의 작품에는 유머가 넘치고 풍부한 상상력과 따스한 시선이 잘 어우러져 있다. 작가는 특히 동물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내 사랑스런 개코원숭이》에서는 작은 아기 원숭이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고민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 준다. 울프 닐손은 일러스트레이터 안나 클라라 티드홀름과 함께 작업한 《내 작은 친구, 머핀!》으로 2002년 스웨덴 문학상 ‘어거스트 프라이즈’를 수상했으며, 많은 작품들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우리 할머니가 이상해요》, 《귀여운 아기 돼지》, 《용감한 막스와 사나운 동물들》 들이 있다.
그림 : 에바 에릭손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직물 공예를 공부하고, 지금까지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과 국제아동도서협회(IBBY) 상, 그림책 작가들에게 주는 스웨덴 올해 최고의 그림책 작가상인 엘사 베스코브 상 외에 많은 상을 받았다. 그린 책으로는 《행복해, 행복해!》, 《우리 할머니가 이상해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유령이 된 할아버지》 등이 있다.
옮긴이 : 임정희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에서 독일어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엘리야와 함께 걷는 40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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