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빛나는 시간을 지나고 있을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었어요.”
김환영이 쓰고 그린 첫 번째 그림책,
작가는 독자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었다
김환영은 『마당을 나온 암탉』, 『종이밥』, 『강냉이』, 『빼떼기』 들을 그린 한국의 대표적인 그림책 작가이다.
그가 최근 10여 년간 작업한 것은 권정생 글에 그림을 결합한 『강냉이』와 『빼떼기』.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두 권의 그림책 작업을 해 온 지난 세월, 그는 내내 어린 독자들에게 무언가 미안한 마음이 있어 왔다고 한다.
“두 권의 작업으로 나는 전쟁의 후유증 같은 걸 앓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과 죽음을 둘러싼 비통함에 몸도 마음도 힘겨웠다. 아직은 행복해야 할 아이들에게 어른들 잘못으로 저질러진 전쟁을 말한다는 것은 어른으로서 참으로 무참하고 미안한 일이었다. 더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림으로 보여 줘야 한다는 일은 내게는 너무도 큰 고통이었다.”
이것이 그간 작가가 지녀 온 미안함의 요체였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작가가 한없는 자유로움과 서로에 대한 환대가 넘쳐나는 세상을 담아, 그것을 스스로 쓰고 그린 작가의 첫 그림책으로 세상에 내 놓은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닌 것이다. 작가는 독자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내리는 비를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는 아이,
아이에게 세상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마음속 깊이 새겨진 장면. 오래되었으나 잊히지 않는. 여전히 새롭고 경이로운. 그 장면이 불러오는 기억은 매우 특별한 것이어서 세상과 존재를 새삼스런 눈으로 보게 한다.
작가에게도 한 아이가 새겨 놓은 그 ‘어떤’ 장면이 있다. ‘감자’라는 태명으로 불린 아이, 감자야 감자야 불린 아이가 이 세상에 와 제 엉덩이로 앉았을 무렵, 그 아이는 내리는 비를 아주 오랫동안 고요히 바라보고 있었고, 그 장면은 작가에게 각인되었다.
저 아이는 무엇을 저리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일까, 아이에게 세상은 어떤 곳이고, 세상은 어떻게 다가오는 것일까. 작가는 그때의 기억을 이렇게 썼다.
“한 아이를 생각했어요. 아이가 엄지발가락을 조물거리며 내리는 비를 끝도 없이 바라보던 광경이 내 눈과 가슴에 아직도 오롯이 남아 있어요.”
아이는 어떻게 이 세상과 만나고 성장하는가, 성장의 시간은 아이에게 무엇을 깃들이고 새겨 두는가. 이 책은 아이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간직해 둔 것들이 평생 되새길 만한 것이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응원의 메시지이다.
새 생명을 두려움 없이 반겨 환대하는 것,
그 흔쾌한 아름다움
감자는 엄마와 함께 장에 간다. 북적거리는 시장 한구석에 검은닭이 있다. 철망 안에 있는 닭에 시선이 붙들리고 아이는 그 앞에 주저앉는다. 가만 보니 검은닭 품 안에 어린 병아리들도 눈에 들어오고, 웬일인지 어미 닭 품에서 달걀 하나가 감자에게 굴러온다.
감자는 그것을 집어 든다. 달걀은 아직 따뜻하기도 하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때 어미 닭이 감자를 번쩍 물어서는 자기 품속으로 밀어 넣는데 병아리들이 삐악삐악 몰려온다. 달걀을 내놓으라는 건지 아님 같이 놀자는 건지.
달걀을 주고 싶지 않은 감자는 머리에 이고 가슴에 안고 이리저리 도망치고 그 뒤를 병아리들이 종종거리며 쫓는다. 쫓고 쫓기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데 달걀에서 병아리가 막 깨어 난다. 그 모습을 본 감자도 다른 병아리들도 모두 손뼉을 친다. 그러고는 어미 닭과 함께 감자도 병아리들도 하늘로 날아오른다.
이 장면들은 무척 환상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도 낯선 존재들끼리 아무 거리낌 없이 서로를 만나 어우러지는 광경, 그 광경이 주는 행복감에서 비롯되는 것일 테고, 아직 세상의 어떤 편견에도 물들지 않은 어린 생명들만이 펼쳐낼 수 있는 낯선 존재와 새로운 생명에 대한 두려움 없는 환대, 그 환대가 선사하는 기쁨에 우리들 모두가 흔쾌히 동참하고 싶은 탓은 아닐까.
평생을 간직할 기억을 몸에 새겨 두는 것,
성장의 또 다른 이름
감자는 병아리들과 쫓고 쫓기는 한바탕 소동 속에서 한없는 자유로움을 맛보기도 하고, 병아리들과 함께 한 덩어리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만끽한다. 그 와중에 또 새로운 병아리가 태어나고 모두들 손뼉을 치며 새 생명을 기쁘게 맞이한다. 그러고는 이윽고 어미 닭과 병아리들과 함께 하늘로 훨훨 날아오른다.
이것은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환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감자가 불러온 세상이며, 감자는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세상을 만난 것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무얼까. 그것은 어쩌면 평생을 간직하며 자신을 다독일 기억을 제 몸에 새겨 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데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스스로를 존중하게 할 기억들을 몸에 새기며 아이들은 자신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이라 하여 늘 이전에 없던 무엇을 새로이 새기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감자가 병아리들과 함께 자유롭게 하늘로 날아오를 때 들려오는 “감자야!”라는 엄마의 외침은 감자를 현실로 급하게 불러낸다. 그렇게 불려나오는 순간 감자는 자신이 만들어 낸 새로운 세상과 격리되고 그 세상은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자취를 감춘 세상일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존재 안에 깃들어 있을 테고, 아이는 그것을 먹고 자랄 것이다. 그러니 성장은 분리와 격리마저도 자양분으로 삼는 일일지도 모른다.
작가 소개
1959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지금은 시골에서 살고 있습니다.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고 동화 『종이밥』 『마당을 나온 암탉』 『해를 삼킨 아이들』, 그림책 『나비를 잡는 아버지』 『강냉이』 『빼떼기』, 장편만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들을 그렸고 동시집 『깜장 꽃』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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