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우리 모두에게는 나다울 권리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요? 있는 그대로의 나인가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모습의 나인가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답은 결국 나만이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나다울 권리가 있습니다!
- 박재연(번역가, 예술사학자)
줄리는 누구?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침대에 올라가고, 계단 난간을 타고, 목욕하는 것도 싫어하고, 머리는 늘 산발에, 늘 거칠게 말하고 툭 하면 넘어지는 줄리. 왈가닥, 천방지축, 말괄량이, 선머슴 같다는 이야기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지요. 부모님은 단정하고, 얌전하고, 조신하고, ‘다른 여자이이들처럼’ 행동하는 딸을 바랍니다. ‘남자아이’ 같은 딸이 늘 못마땅하지요. 사람들은 줄 리가 줄리답지 않을 때 줄리를 좋아해 줍니다. 다른 이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줄리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줄리의 그림자가 남자아이로 바뀝니다. 시커멓고 낯선 그림자가 하루 종일 줄리를 쫓아 다니지요. 피할 수 없도 숨을 수도 없습니다. 줄리는 속이 상합니다. 줄리는 자기가 누구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줄리는 누구일까요? 여자일까요? 남자일까요? 여자아이의 몸을 가진 남자일까요? 줄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줄리는 줄리!
그림자를 피해 공원으로 간 줄리는 그곳에서 여자 같다고 놀림 받는 남자아이를 만납니다. 둘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각자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권리가 있고, 한 가지 이름표를 붙여야 하는 건 아니라고, 나에게는 나다울 권리가 있다고. 그리고 줄리는 깨닫습니다. 까불고, 지저분하고, 나부대고, 덜렁대는 왈가닥, 천방지축, 선머슴 같은 모습도 모두 나라고. 줄리는 줄리라고요!
저마다의 빨강을 품고
선묘 형식의 흑백 삽화가 인상적인 《줄리의 그림자》에서 빨강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빨강은 밝은 곳에서는 가장 밝게 보이고, 어두운 곳에서는 가장 어둡게 보이는 색으로, 사랑과 증오? 자유와 억압? 허용과 금지? 해방과 구속의 상반된 의미를 나타냅니다. 이 책에서 빨강은 프레임 있는 의자, 반 양말, 엄마의 칼, 궤, 머리핀, 신발끈, 반창고와 같이 구속과 속박, 인습을 상징하는 물건과 줄리의 흐트러진 옷과 롤러스케이트, 잼, 인형, 공, 털실 등과 같은 일탈, 탈주, 해방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작가가 빨간색으로 표현한 것은 경계를 가로지르자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이 세상은 검은색과 하얀색, 이 두 가지 색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빨강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나답게!
이 책은 1975년, 프랑스 68혁명 직후에 발표되었습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를 모토로 자유와 항의를 외치던 프랑스의 이 움직임은 그동안 어린이 문학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 뒤로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성별이 어떤 역할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해묵은 고정관념은 옷, 색깔, 장난감, 책, 놀이, 생필품까지 어느 것 하나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남자다움’과 ‘여자다움’ 에 얽매여 살아가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어린이답다’, ‘어른답다’, ‘엄마답다’, ‘아빠답다’. ‘선생님답다’, ‘학생답다’……. 이 수많은 ‘~다움’ 때문에 ‘나다움’을 놓친 채 살아갑니다.
《줄리의 그림자》가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단지 성별과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주제를 다뤘다는 점 때문만은 아닙니다.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인정을 찾게 만드는 힘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책과 함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과연 나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답게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리즈 소개
‘철학하는 아이’는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물음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는 그림동화입니다. 깊이 있는 시선과 폭넓은 안목으로 작품을 해설한 명사의 한마디가 철학하는 아이를 만듭니다. ‘철학하는 아이’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크리스티앙 브뤼엘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뒤 출판사를 만들어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을 쓰고 펴냈습니다. 더불어 전시 기획, 문학 평론, 어린이 문학 및 기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쓴 책으로는 《그림책》, 《부모님의 시간》, 《선생님이 먹는 것》, 《자유를 찾은 곰 인형》 등이 있습니다.
그린이 : 안 보즐렉
혼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크리스티앙 브뤼엘과 함께 출판사를 만들고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선생님이 먹는 것》, 《자유를 찾은 곰 인형》, 《빨래하는 날》, 《나무 위의 말》 등이 있습니다.
옮긴이 : 박재연
서울에서 불어불문학을 공부하고, 파리에서 미술사학과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예술의 유통과 수용, 식민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경계들과 가변적이고 다면적인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읽고, 쓰고, 말한다. 옮긴 책으로 올랭프 드 구주의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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