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점점 잃어가는 기억을
가족의 소소한 사랑으로 단단하게 채워 갑니다
친숙했던 사물들이 낯설어질 때
카이 할아버지는 온실에서 123가지나 되는 꽃을 모두 돌봅니다. 모든 꽃 이름을 학명으로 알고 있을 정도로 총명한 할아버지에게 어느 날 변화가 생겼습니다. 처음엔 꽃 이름 하나가 생각이 안 났습니다. 그 다음엔 매일 마시던 ‘커피’를 잊었고요. 친숙했던 낱말들이 하나 둘씩 할아버지에게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새싹이만이 할아버지가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지요. 새싹이는 떨어진 낱말들을 주워 상자에 담느라 바빠졌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할머니도 할아버지의 상태를 알게 된 날, 새싹이와 할머니는 즐거운 일을 벌이려 합니다.
꽃 이름은 몰라도 꽃 향기는 그대로
할아버지는 치매입니다. 커피잔 대신 포도주 잔을 꺼내고, 평소 즐기던 퍼즐 조각들을 바닥에 엎어 버립니다. 급기야 가장 사랑하는 가족조차 못 알아보지요. 가족들은 갑작스런 할아버지의 변화에 당황하지만 셋의 따뜻한 일상은 변함이 없습니다. 비록 할아버지가 기억과 판단력을 잃어버렸더라도 본래의 모습은 할아버지 안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새싹이와 할머니는 슬퍼하지만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합니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커피를 향으로 일깨우고 옛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결혼식도 재현하지요. 이는 좋은 경험, 기억을 되살림과 동시에 가족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이벤트도 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심한 치유 이야기들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누군가는 물론 어려움을 마주한 모든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됩니다.
가족, 사랑, 삶의 변화에 대한 작지만 큰 이야기
이 그림책은 가족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어떤 모습이든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굳건히 함께 하는 것 말이지요. 그래서 이 책에선 몇 가지 상징적 장치를 볼 수 있습니다.
새싹이는 늘 낱말 상자를 챙깁니다. 할아버지가 처음 낱말을 떨어뜨릴 때부터 아무 말 없이 상자에 차곡차곡 담지요. 낱말은 할아버지가 잃어버리는 기억의 단편들이면서, 새싹이가 앞으로 오래 간직할 할아버지에 대한 소중한 추억들입니다. 낱말 상자는 바로 할아버지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담아가는 새싹이의 마음 상자입니다.
또 하나,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의 주인공과 똑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름 ‘카이’와 ‘게르다’입니다. 동화처럼 갑자기 변한 ‘카이’ 할아버지를 향한 ‘게르다’ 할머니의 사랑도 변함없이 늘 단단합니다.
이들의 성실한 사랑을 보며 가족, 사랑, 삶의 변화에 대해 진지한 생각이 들게 되는 그림책입니다.
오늘도 가족의 하루는 따사로운 빛깔로 물들고
치매라는 무거운 소재임에도 세심하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되기에 뭉클한 감동이 남습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에게서 낱말이 하나씩 떨어지는 표현은 오히려 글보다도 독자들에게 치매의 안타까운 상황을 절실히 느끼게 합니다. 가족의 마음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사한 빛깔의 화면은 할아버지 병세에 따라 점점 차가운 빛으로 채워지더니, 가족간 긴장이 높아질 때는 색이 사라지지요. 좀더 들여다보면 할아버지가 늘 곁에 두던 사물들이 점차 새싹이와 할머니에게 옮겨지는 것도 보입니다. 할아버지 대신 모자와 꽃을 가족이 챙기고 있는 모습은 따뜻하면서 가슴이 시립니다. 이렇게 그림으로 무수한 이야기와 감동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작가가 꼭 전하고 싶은 가족의 아름다운 모습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매일 잃어가는 것들에 침울해 하지 않고 ‘지금’을 행복하게 보내는 사랑스러운 가족 말이지요.
매일매일 이들이 품고 있는 따사로운 사랑의 빛깔들에 눈이 부신 그림책입니다.
* 이 책은 덴마크의 보른홀름 센터와 공동으로 만들어졌으며, 성인 독자를 위한 덴마크 회상센터장이 쓴 치매와 기억에 대한 유익한 정보글도 실려 있습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베티나 비르키에르
덴마크 작가로, 칸타빌레Ⅱ 무대예술학교에서 연극학과 무대미술을 공부한 연기자이자 설치 미술가이기도 합니다. 작가로는 2014년에 데뷔했습니다. 2019년에는 루나파크 공연 예술 감독 등 다양한 분야의 종합 예술가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꾸준히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린이 : 안나 마르그레테 키에르고르
1972년 덴마크에서 태어난 그림작가로 덴마크 로얄 데니쉬 디자인 아카데미와 폴란드 크라코프
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했습니다. 연필, 수채화, 판화 등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그림책의 이야기
흐름과 감정을 세삼하게 담아냅니다. 여러 그림책에 그림을 그렸고 덴마크 문화부 장관이 수여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상을 받았습니다. 《잃어버린 토끼, 커피, 눈풀꽃》은 치매 가족들을 돕고 연구하는 친구에게서 제안을 받아, 글 작가인 베티나와 오랫동안 다듬어 완성한 그림책입니다. 현재는 발트해에 있는 보른홀름 섬에서 세 아이와 함께 자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옮긴이 : 김영선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와 코넬대학 언어학과에서 공부했습니다. 2010년에 《무자비한 윌러비 가족》으로 IBBY(국제아동도서위원회) 어너리스트 번역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옮긴 책으로는 《구덩이》, 〈멋쟁이 낸시〉 시리즈, 《바닷가 탄광 마을》, 《로빈슨 크루소》, 《보물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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