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드넓은 바다의 품에 안겨 아득한 하늘로 한껏 고개를 젖혔다, 하늘과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린 곳, 남쪽 바다 작은 섬의 하루를 그림책에 담았다. 어린 시절을 모티프로 조곤조곤 쓴 글에 담백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더해졌다. 동틀 무렵에는 청보라빛으로 설레고, 한낮 햇살 속에선 노랗게 빛나며, 소나기 쏟아지면 잿빛으로 가라앉고, 배들이 돌아오는 저녁이면 온통 발갛게 물드는 세상. 고깃배 들고나는 부둣가엔 바지런히 일하는 어른들이 있고, 고불고불 이어진 골목길엔 재잘대는 아이들이 있고, 파도에 장단 맞춰 몽돌들이 노래하며, 밤이면 별들이 가만히 내려와 잠드는 곳. 그리움의 원형질을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이들을 토닥이는 엄마의 자장가 같은 그림책.
_엄마는 어릴 때 섬에 살았단다
주위가 수역으로 완전히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 국어사전은 섬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물에 온전히 갇힌 땅, 뭍으로부터 분리된 땅. 그리하여 섬은 종종 고립의 은유로 쓰이지요. 그러나 그림책 《엄마의 섬》에서 섬은 활짝 열린 공간입니다. 드넓은 바다의 품에 안겨 아득한 하늘을 향해 한껏 고개를 열어젖힌 곳, 하늘과 바다를 향해 한껏 열려 있는 그리운 장소입니다.
검푸른 하늘 아래 짙은 바다가 누워 있습니다. 동틀 녘 새벽빛이 물결 속에 스며듭니다. 이윽고 먼 바다에서 주황빛 해가 떠오릅니다. 바다는 아침햇살을 머금고 일렁입니다. 섬이 기지개를 켭니다. 푸른 바다 속에 작은 섬이 동그마니 떠 있습니다. 부우우웅 뱃고동 소리,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 손수레가 덜컹거리고 얼음공장이 촤르르 털털 돌아갑니다. 섬은 온갖 소리들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밤새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배들이 와르르 고기를 쏟아냅니다. 아침햇살에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나는 얼음이 쏟아집니다.
_파도의 장단에 맞춰 몽돌과 함께 노래하며
바다 위로 오뚝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낸 작은 섬에는 비탈을 따라 올망졸망 늘어선 키 작은 집들과 고불고불 이어진 골목길과 재잘대는 아이들, 고기잡이하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사르륵사르륵 푸른 물결 이는 보리밭과 파도의 장단에 맞춰 또르르 똘똘 노래하는 몽돌들도 있지요.
소나기가 쏟아지면 회색빛으로 가라앉고, 한낮의 햇살 속에선 봄날 병아리처럼 노란빛으로 환하게 빛나며, 배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이면 온통 발갛게 물드는 세상입니다. 밤이면 아직 제 빛을 잃지 않은 별들이 내려와 함께 잠드는 곳이지요. 작가가 우리 앞에 소환한 섬은 아득하고 아름답고 평화롭습니다. 우리들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저마다의 그리운 것들을 소환하지요.
_그리움의 원형질을 감각적으로 그리다
살랑 부는 바람 한 줄기, 저물녘 노을 한 조각에도 이내 떠오르는 색깔과 냄새, 소리와 기억들이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살아 숨 쉬며 정서와 취향의 토대를 이루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억들이지요. 작가는 남해의 섬 나로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그리운 기억들을 모아 조곤조곤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듯 나지막하게 속삭입니다. 넘치지 않는 애틋함과 그리움을 담아 간결하면서도 여운이 깊어요.
화가는 사실적인 재현과 묘사보다는 함축적인 이미지와 인상적인 색채로 새벽부터 밤까지 시시각각 변화하는 섬의 풍경과 공기를 감각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동틀 무렵의 수런거림을 품은 청보라, 눈부신 햇살 쏟아지는 나른한 한낮의 노랑, 귀갓길을 재촉하는 주홍, 다양하게 변주되는 파랑과 먹빛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풍부한 색상의 담백한 그림은 관조적이면서도 위로하듯 마음을 달래줍니다. 때로는 평면적이고 단순한 색면을 통해 회화의 순수성과 독자성을 표현하려 한 색면추상처럼, 때로는 해체하고 재구성한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하늘과 바다와 섬의 원형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합니다.
_우리를 다독이는 엄마의 자장가처럼
사람이 멈추면 자연이 살아난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 이 책이 불러낸 세상, 하늘과 바다의 품에 안겨 살아가는 삶은 더욱 그립고 그립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원수 선생이 쓴 노래 ‘고향의 봄’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파도가 춤추고 몽돌들이 노래하는 섬 너머에는 복숭아꽃과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피는 산골도 있지요. 어수선한 잠자리를 도닥이는 손길도,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정다운 목소리로 있을 것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저마다 바쁘고 번잡한 시대, 이 그림책은 고단한 하루를 보낸 이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줍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러주던 엄마의 자장가처럼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가 잊고 지내던 소중한 것들, 그리운 것들을 그리워하게 합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진
남해의 섬 나로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열한 살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뭍으로 이주했어요. 섬을 떠나고 심하게 앓았지요. 섬이 그리워서요.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병원에서 일했습니다. 두 아들을 낳아 기르면서 그림책의 세계에 푹 빠졌고 결국 그림책 전문 책방 주인이 되었습니다. 몇 해 전 제주도로 이주하여 다시 섬사람이 되었고요. 비탈을 따라 올망졸망 늘어선 집들, 여름 볕에 발갛게 익은 친구들,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푸른 바다 끝, 밤하늘의 은하수, 짠 내 나는 바람, 반질반질 윤나는 까만 몽돌. 섬이 주었던 것들을 기억하며 이 글을 썼습니다. 이 책은 글쓴이의 첫 그림책입니다.
그린이 : 한병호
서울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5년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황금사과상을 받았고, 2014년에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그림책 《새가 되고 싶어》 《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 《꼬꼬댁 꼬꼬는 무서워》 들이 있으며, 《산에 가자》 《빈 집》 《수달이 오던 날》 《발자국 개》 《아빠한테 찰딱》 등 여러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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