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꼬리가 여덟 개나 잘렸지만
구미호, 맞습니다
이 책은 구미호가 딱 하루, 도시로 내려와서 벌어진 일을 담고 있습니다.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를 구미호라고 합니다. 옛이야기 속에 나오는 동물로, 초자연적인 힘을 지니고 있으며, 여인으로 둔갑하여 사람을 홀린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구미호가 꼬리가 여덟 개나 잘렸다니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꼬리 하나로 인간 세상을 다녀간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어스름한 밤, 평범한 여우 한 마리가 산꼭대기에서 보름달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서서히 도시로 내려오는데, 어느새 사람의 모습으로 둔갑해 있습니다. 여우는 자신이 구미호라고 말합니다. 백 년에 꼬리가 하나씩 생기는 구미호인데, 밀렵꾼이 놓은 덫에 걸려 꼬리가 여덟 개나 잘렸다는 것입니다. 꼬리가 아홉 개가 되면 진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아홉 번째 꼬리가 생긴 날 험한 꼴을 당하고 말았답니다. 다행히 꼬리가 하나 남아서 겨우 목숨을 건진 구미호는 자신의 꼬리를 되찾기로 다짐합니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밀렵꾼도 혼쭐을 내 줄 작정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도시로 내려온 것이지요. 하지만 꼬리 하나로는 딱 하루만 변신할 수 있어서 서둘러야 합니다.
여러분의 털외투,
고향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고요한 산속에 살던 구미호에게 도시는 너무 복잡했습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털가죽으로 만든 옷이나 장신구를 걸치고 있어서, 무작정 냄새를 맡으며 여기저기 헤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골목에서 라쿤의 혼령을 만납니다. 구미호의 신통력을 알고 있는 라쿤은 구미호에게 제 털가죽 찾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라쿤은 배를 타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태어나자마자 냄새나고 비좁은 우리에 갇혀 살았다고 합니다. 라쿤이 지내던 곳에는 냄새나는 우리가 빼곡했습니다. 수많은 동물들이 비좁은 우리에 갇혀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은 끙끙 앓거나 쿵쿵 몸을 부딪치거나 하염없이 뱅글뱅글 돌거나 울부짖었습니다. 그렇게 사계절을 지내던 어느 날, 먹이를 주던 사람이 철창문을 열고 인정사정없이 라쿤의 털가죽을 벗겼습니다. 그러니까 라쿤은 혼령이 되어 사람들이 배에다 옮겨 실은 자기 털가죽을 따라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라쿤의 고향은 사람들이 털가죽을 얻으려고 만든 작고 더러운 철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피’라고 부르지만
옷이 되기 전에는 모두 ‘생명’입니다
몇 년 전까지 모자에 라쿤털이 달린 점퍼를 입고 다닌 작가는 어느 날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몸집이 꽉 차도록 비좁은 우리에 갇힌 동물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듬성듬성 남은 털 사이로 드러난 살갗은 발갛게 짓물러 있고 새까만 눈동자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보였습니다. 사진 아래는 ‘라쿤’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점퍼를 구입할 때는 라쿤털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별 생각 없이 따뜻해 보이고 디자인이 예뻐서 샀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고 나서는 라쿤털이 달린 점퍼가 예뻐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파 보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라쿤에 대한 미안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온갖 털가죽 냄새가 새어 나오는 커다란 모피백화점으로 들어간 라쿤은 건물에 가득한 털가죽으로 만든 옷과 장신구를 보며 풀이 죽어 중얼거립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털가죽을 좋아할까요? 동물이 되고 싶은 걸까요?’ 다시 숲으로 향하면서 구미호는 말합니다. ‘더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서 구미호로 남기로 했다.’ 라쿤과 구미호가 남긴 말은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며 자연을 휘두르는 ‘사람다움’에 대해 돌아보게 됩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무분별하게 사육되고 희생되는 동물들, 우리 사람들은 ‘모피’라고 부르지만 옷이 되기 전에는 모두 ‘생명’입니다. 구미호가 다녀간 후, 우리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작가 소개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하루에 백 번 엄마를 부르는 아홉 살 하율이와 살고 있습니다. 에세이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를 썼습니다. 오랜 시간 그림책 만드는 꿈을 꿨습니다. 《꼬리 여덟 개 잘린 구미호가 다녀갔어》가 첫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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