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우리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누렸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새삼 일깨우는 코로나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너와 나 사이에 금을 긋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며 경계하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마스크 하나 쓰는 간단한 일이지만, 그 별것 아닌 일에 ‘생명’을 걸어야 하고 이토록 많은 것이 멈춰 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이를 가르는 그 금이 새삼스레 생겼을까요? 바람도 비도 햇빛도 거침이 없고 새도 나비도 제멋대로 드나드는데 사람들만 오가지 못하는 공간이 이미 너무 많았습니다. 앵앵거리는 모기나 팔락거리는 나방도 제멋대로 오가는 그 곳에 우리는 드나들 수 없습니다. 모두를 위해 제한하는 공간들은 꼭 필요하지요. 하지만 자기들만을 위하느라 닫고 막고 멈춰 세우는 곳들도 허다합니다. ‘어디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멋대로…’, 누군가 가른 선들 앞에 우리를 멈춰 세우는 폭력적인 말들이 난무합니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경계들 앞에서 누구도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는 사이, 막히고 닫히고 멈춰선 곳들이 점점 더 많아지겠지요. 하지만 누군가, 아무도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그 선을 힘차게 넘어서는 용기를 보여주었듯, 우리 역시 용기를 내어 지금 우리 앞으로 불쑥 다가온 물리적 장벽이 소통의 장벽, 마음의 장벽이 되지 않도록 한 발 앞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그림책에 담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전정숙 작가와 깊은 감동을 주는 묵직한 그림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고정순 작가가 함께 지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는 우리가 가른 선들이 아픈 곳이 되지 않기를, 누군가 나눈 공간이 슬픈 공간으로 남지 않기를, 물 흐르듯 바람 불듯 우리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너와 나를 가르는 경계를 넘어 서로에게로 향하는 용기를 응원하는 그림책입니다.
■ 어릴 적 했던 놀이 중에 땅따먹기가 있습니다. 공간을 내 것, 네 것 가르고 뺏고 뺏기는 놀이지요. 그런데 다 큰 어른들이 여전히 내 땅, 네 땅을 나누고 너와 나 사이에 선을 긋고 삽니다. 경계 안의 삶과 경계 밖의 삶은 엄연히 다릅니다. 경계 안은 안온하고 화려하지만 경계 밖은 치열하고도 처절합니다. 입장 가능한 자와 불청객의 처지는 천지 차이입니다. 초대받은 자와 초대받지 못한 자의 삶도 절대 같아질 수 없습니다. 경계를 넘는 것이 많은 이들의 꿈이 된 이유지요.
공간, 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 역시 때로 성공으로 불립니다. 제한된 공간은 우월감, 행복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그 때문에 제한된 공간은 곧 공간 차별, 공간 학대이기도 합니다. 이 넓은 지구 위에, 아니 이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작은 점으로도 표시되지 못할 자리와 공간이 뭐라고 순서와 자리에 목숨을 걸고 사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되었을까요?
악천후로 닫혀 버린 공항, 미성년자는 들어갈 수 없는 19금 영화 상영관이나 유흥업소, 깎아지른 듯 위험한 절벽 주위로 금을 치고 세워놓은 위험 표지판……. 많은 금지된 공간들이 있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지요. 안전을 위해 건강을 위해 질서 유지를 위해 출입이 제한됩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이 없는데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란 말로 누구는 들어가는데, 누구는 못 들어가게 저지당하는 공간이 많습니다.
출입증 없이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거대한 빌딩들, 그리고 점심시간마다 그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명패를 건 사람들과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교차합니다.
경계를 사이에 두고 있으면 이쪽도 저쪽도 편안하지 않습니다. 경계를 지으면 너나 나나 기쁘기보단 되레 괴롭지요. 얼마 전 사회 문제가 된 어떤 방은 돈만 보내면 자꾸자꾸 열렸다고 합니다. 돈으로 열리고, 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그 방은 열리면 열릴수록 지옥으로 향하는 길이나 다름없었지요. 우리를 멈춰 세우는 닫힌 곳, 막힌 곳은 무엇으로 열어야 할까요? 너와 나를 가르는 선들은 무엇으로 지워야 할까요?
물은 흐르고 바람은 불고 빛은 비춰야 생명이 살아 움직입니다. 바람도 비도 빛도 거침이 없고 새도 모기도 나방도 제멋대로 드나드는데 사람들만 오가지 못하는 공간이 너무 많습니다. 국민의 입을 막겠다고 5센티도 안 될 것 같이 경찰버스를 다닥다닥 붙여서 만든 어떤 ‘산성’이 세워졌던 날도 있었지만, 한 줄 그어놓은 금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이 그 금을 넘어서는 순간 전 세계가 탄성을 지르던 날도 우리는 모두 기억합니다.
그날, 그 순간처럼 이제 우리가 쌓은 둑을 터트리고, 막힌 줄을 자르고, 그어 놓은 금을 지워 버리면 너와 나를 가르던 단단한 벽도 사라질까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서로에게 장벽을 세우고 지내는 우리의 삶이 다시 이어지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지 돌아보는 그림책입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전정숙
책 짓는 일을 합니다. 어떤 책을 지을지 궁리하고, 책에 글을 쓰기도 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과 읽고 나누며 책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이 네모난 구역에 터 잡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팟케스트 〈그림책 따따따〉를 이끌며 짬짬이 이런저런 곳에서 책 이야기를 들고 독자들을 만납니다. 앞서 지은 책으로는 〈딸기 별이〉가 있습니다.
그린이 : 고정순
그림책을 만들며 삽니다.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 〈엄마 왜 안 와〉 〈가드를 올리고〉 〈최고 멋진 날〉 〈슈퍼 고양이〉 〈점복이 깜정이〉 〈최고 멋진 날〉 〈오월 광주는, 다시 희망입니다〉 〈철사 코끼리〉 〈솜바지 아저씨의 솜바지〉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시소〉와 산문집 〈안녕하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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