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모두에게는 모두의 밤이 있다
저마다의 생을 향해 달려가는 무수한 밤들에 대하여
생명과 죽음이 끝없이 이어지는 자연에선
착한 사슴도 나쁜 늑대도 없다
깊은 밤을 달리는 사슴과 늑대
이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동물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 굶주린 늑대 한 마리가 홀로 깨어 먹잇감을 찾습니다. 늑대에게 쫓기던 아기 사슴은 엄마를 잃어버립니다. 늑대는 사슴을, 사슴은 엄마를 찾아 긴 밤을 내달립니다. 사슴이 엄마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만큼 늑대에게도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오늘 밤, 둘은 각자의 그곳에 닿을 수 있을까요?
사슴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도, 늑대가 배고픔을 채워야 하는 것도 당연한 야생의 밤. 사슴은 사슴으로 늑대는 늑대로 꽃은 꽃으로 서 있을 뿐,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 이 숲에서 선과 악이란 없습니다. 하나의 시선으로 보면 늑대와 사슴은 쫓고 쫓기지만 두 개의 시선으로 보면 둘은 각자가 닿고 싶은 곳을 향해 나란히 달릴 뿐입니다. 이 모두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만 있다면 하나의 밤은 두 개의 밤이 되고, 다시 무수한 밤으로 확장됩니다. 너르고 다양해진 세상에서는 자신만의 어둠을 뚫고 새벽을 향해 내달리는 수많은 우리들이 모두 자기 생의 주인공입니다. 삶을 지키며 거기에 그대로 있는 것이 당연하게 빛나는 자연의 존재들처럼 말입니다.
착한 사슴도 나쁜 늑대도 없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수많은 동화와 옛이야기 속에서 늑대는 악의 역할을, 사슴은 선의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선량한 사슴은 늑대에게 쫓기다 무사히 구출되고 사악한 늑대는 나쁜 짓에 대한 응징을 당합니다. 『두 개의 밤』도 얼핏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굶주려 포악해진 늑대가 무고하고 어린 사슴을 쫓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슴이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비극으로도, 늑대가 사슴을 놓치는 해피엔딩으로도 끝나지 않다는 데서 다시 시작됩니다. 사슴에게 따뜻한 엄마 품이 있는 것처럼 늑대에게도 가족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집이 있었습니다. 아내의 배 속에는 태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기가 자라고 있지요. 이 사실을 아는 순간, 쫓고 쫓기는 긴장감만 팽팽하던 숲은 저마다의 생이 펼쳐지는 숭고한 삶의 터전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의 잣대로 내리치면 세상은 쉽게 선악으로 쪼개집니다. 이분법으로 잘라 나누면 잠시 명쾌해 보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실제 우리의 삶이 아닙니다. 간단히 정리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교차하고, 생명과 죽음이 끝없이 이어지는 세상에서 절대적인 것이란 없습니다. 착한 사슴과 나쁜 늑대는 말 그대로 동화 속에나 존재할 뿐입니다.
‘하나의 밤’이 ‘두 개의 밤’이 되는 순간
여느 이야기처럼 사슴이 엄마 품으로 돌아간 뒤 책이 끝났다면 우리는 늑대의 이면을 알 수 없습니다. 늑대의 시간도 사슴의 시간만큼 애틋하고 뭉클하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죠. 먹잇감을 놓치고 터덜터덜 어딘가로 향하는 초라한 뒷모습에 시선을 두었을 때부터 우리는 늑대의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 사슴을 보면서 사슴의 세계에 대한 시선이 생겨나듯 늑대를 보면서 늑대에 맞는 시선이 생겨납니다. 보게 되면서 드러나고 드러나면서 이해되고 이해되면서 공감하게 되는 이 순간, 사슴이 주인공이던 하나의 밤은 늑대도 주인공이 되는 두 개의 밤으로 변합니다. 보지 않아서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속속 눈에 들어오면 두 개의 밤은 다시 무한한 밤으로 펼쳐져 나갑니다. 무한해진 시선으로 바라보면 누군가가 누군가보다 앞서 나가지도 뒤처지지도, 높이 솟지도 낮게 파묻히지도 않습니다. 우주에서 바라보는 행성들처럼 모두가 각각의 궤적을 그리며 돌 뿐입니다. 이 책은 좁고 편협해진 시선을 열어 우리의 마음이 너르게 유영하도록 도와줍니다. 볼 것이 넘쳐 나는 현란한 시대, 마음에 상을 맺지 못하고 망막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것들과 그 이면을 천천히 바라보게 합니다.
거기에 그대로 있어 아름다운 자연의 겹겹
퍼트리샤 토마는 존재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숲의 밤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종이에 나무와 풀숲, 사슴과 늑대, 꽃과 곤충들을 따로 그리고 유성 페인트로 각각 칠한 뒤 이를 오려 내 켜켜이 붙이는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층층이 쌓인 깊고 다채로운 숲은 요소별로 따로 입체감을 내고 어우러져 함께 조화를 이루며 우리의 시선을 또 한 번 새롭게 해 줍니다. 매 페이지에는 이야기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상징적인 식물과 곤충들이 등장합니다. 사슴이 늑대에게 쫓기는 긴박한 장면에는 ‘핏빛 손가락’이라는 별명을 가진 독성의 디기탈리스와 가시 돋친 파리지옥이 나옵니다. 엄마를 잃고 두려움에 빠진 아기 사슴의 감정은 부러진 푸른빛 초롱꽃으로 드러납니다. 사슴이 숨어드는 풀숲은 여러 손길이 안아 주는 듯한 고사리 군락이고, 늑대들이 배 속의 아기를 그려 보는 장면에서는 불룩한 주머니가 달린 노란빛 꽃이 환합니다. 작가는 사슴과 늑대를 나란한 시선으로 바라보듯 자연의 생명들에게도 같은 눈길을 줍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아 보이는 고요한 밤의 숲에도 꽃과 나무, 곤충과 풀들이 강렬하게 살아 숨 쉬며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퍼트리샤 토마
1977년 독일 뮐하임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자랐습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미술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했고, 영국 첼시 미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개성 넘치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발한 그림책을 만들고 세계 여러 나라를 누비며 창작 활동을 하는 화가입니다. 우리나라의 고양 아트 스튜디오와 아트 스페이스 금천, 일본의 삿포로 예술가 레지던스, 필리핀의 프로젝트 스페이스 필리피나스 등 다양한 예술가 창작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였고, 바덴뷔르템베르크 예술가 장려상(독일), 웰드 미술상(독일), GG-퍼스펙티브 미술상(독일), 데달로 상(이탈리아)을 비롯해 여러 국제 미술상을 받았습니다. 한국, 몽골, 가나 그리고 독일에 그의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으로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누가 가장 힘셀까?』, 『새』 등이 있습니다.
옮긴이 : 백지원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기억 이전의 마음으로 책과 이야기를 사랑해 왔습니다. 그 사랑으로 숨을 쉬고, 그 숨을 함께 나누면서 더 커다랗고 깊은 세상의 마음을 알고 안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소망이 있어 오늘의 제가, 내일의 당신이, 그리하여 우리가 있습니다. 옮긴 책으로 『니나와 밀로』가 있습니다.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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