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발그레하게 피어오르는 첫사랑의 감정에 대하여
“어디 아프니? 얼굴이 빨개.”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우리 할머니, 제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괜히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린다는 아이에게 할머니는 속마음을 들춰보기라도 한 듯 살포시 ‘사랑’이라는 말을 꺼내 놓아요. 지우개와 샤프심을 핑계로 자꾸 옆 반에 가는 건 실은 그 애가 보고 싶어서라고, 그 애가 무얼 하는지, 어딜 가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궁금한 것 투성이라는 아이의 고백은 숨길 수 없이 발그스레하게 달아오른 볼처럼 풋풋합니다.
“할머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나도 그랬으니까. 첫사랑에 빠졌을 때.”
할머니의 첫사랑도 그랬다지요. 아주 멀리서 바라만 봐도, 심지어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40도가 넘는 열병을 앓는 순간에도 떨쳐 낼 수 없었던 운명적인 사랑 말이에요.
첫사랑을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발그스름한 볼 사이로 언뜻언뜻 아이의 표정이 오버랩되어 보입니다. 『우리 할머니, 제인』은 아이와 할머니, 또 우리 모두를 싱그러운 마음의 진동 속으로 소환할 사랑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혼란스러울지언정 눈부시고, 누구에게나 허락된 감정이지만 결코 모두에게 진면모를 내보이지 않는 바로 그 사랑 말입니다.
우리 할머니, 제인의 사랑법
『우리 할머니, 제인』은 ‘제인 구달에게 첫사랑에 눈 뜬 손녀가 있다면, 할머니 제인 구달은 손녀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에 대한 상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물여섯 살 제인 구 달이 오직 침팬지를 연구하기 위해 가파르고 빽빽한 곰베 숲에 발을 들였을 때, 간이 침대에 의지해 하늘을 이불 삼아 여러 날을 보내는 동안, 침팬지들은 제인에게 한시도 곁을 주지 않았습니다. 한걸음 다가서면 도망 치기 바쁜 침팬지들을 보며, 제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 외로운 숲에서 40도 고열에 시달리면서는 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제인은 매일 같은 자리에서 침팬지들을 지켜보며, 자신이 침팬지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숲의 일부처럼 그들 곁으로 다가갑니다.
“내가 한 것이라곤 기다리는 것뿐이었어.
나를 받아들여 주기를,
내가 그의 세계를 침범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 주기를.
그가 문을 열어 주기를.”
- 본문 중에서
사랑에 빠지면 그 마음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제인의 이야기는 자기 마음만 앞세워 무작정 다가서는 사랑의 모습을 경계하고, 상대를 향한 인정과 배려가 곧 사랑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마치 제인이 무정한 연인 같았을 침팬지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오히려 몇 걸음 물러나 기다리며 그들 세계의 일부가 되기 위해 가만히 애썼던 것처럼 말이에요.
때로는 맞물리고 종종 어긋나는 사랑과도 같은 구성의 묘미
『우리 할머니, 제인』은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를 점층적으로 교차시키며 첫사랑의 실체에 다가서게 합니다. 제인이 ‘회색 턱수염’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를 처음 만난 순간, 500미터 거리에서도 바라볼 수 없었던 그를 20미터 거리에서 마주할 때까지 오랜 기다림의 시간들, 마침내 데이비드가 제인과 나란히 앉아 경계를 풀고 그녀의 손을 잡아 주기까지의 과정이 아이의 경험과 맞물리며 따스한 공감을 불러일으키지요.
아이의 사랑 이야기는 흑백의 연필선과 포인트 색감으로, 제인의 등장과 그녀의 이야기는 따사로운 색감과 미세한 터치감을 살려 구성한 이주미 작가의 이미지 연출 또한 이야기의 감성을 풍부하게 끌어 올립니다.
제인 할머니와 아이의 사랑 이야기에 지금껏 품어 온 사랑의 감정들을 살포시 포개어 보시길 바랍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신순재
제인 구달에게 막 사랑을 시작한 손녀가 있다면,
그녀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이 그림책은 그런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어요.
그리고 제인이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무정한 연인 같았을 침팬지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오히려 몇 걸음 물러나 기다렸다는 걸 알았어요. 사랑에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 제인이라면 사랑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
상상하며 이 그림책을 썼어요.
그동안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 『지렁이 할아버지』, 『세 발 두꺼비와 황금 동전』 등의 그림책과, 『외계어 받아쓰기』, 『나랑 밥 먹을 사람』 등의 동화책을 썼습니다.
그린이 : 이주미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재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3년 나미 콩쿠르, 2014년 앤서니브라운 그림책 공모전, 2015년 한국안데르센상 출판
미술 부문에서 수상했습니다.
『외뿔고래의 슬픈 노래』, 『바나나 가족』, 『돌아갈 수 있을까?』 등 여러 책에 그림을 그렸으며, 쓰고 그린 책으로는 『네가 크면 말이야』, 『숲』, 『옳은손 길들이기』가 있습니다.
매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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