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마법 같은 이야기 속에 담긴
관계와 위로의 이야기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아
지금, 꼭 안아주며 호 해주세요.”
산동네 꼭대기 작은 집에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과 자식과 친구도 떠나고, 좁다란 골목 어귀에 분실물처럼 오도카니 앉아 있다가 적적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루 일과였지요. 굽은 등 뒤로 외로움이 오후의 그림자처럼 길어질 때면 그녀는 아마도 함께 늙어가는 거울에게 말을 걸어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거울 속 친구는 앵무새처럼 따라 할 뿐, 주름은 어제보다 깊고 존재는 유령만큼 희미해졌습니다. 누군가 곁으로 다가와 아무 말이라도 걸어주면 좋으련만 그녀에게 말을 하는 것이라고는 낡은 텔레비전 한 대뿐. 외로움과 불안은 그렇게 쇠약한 노년을 천천히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소나기가 울컥 쏟아질 듯한 어느 날, 빨래를 걷으러 나간 할머니는 장독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배가 고픈지 야옹거리는 고양이가 안쓰러웠던 할머니는 서둘러 먹을 것을 챙겨주려다 그만 돌멩이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아야야.” 다친 무릎을 살피는 할머니에게 고양이가 살포시 다가갔습니다. 그러고는 할머니의 다친 무릎에 “호-” 하고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고양이의 “호-” 하는 입김에 할머니의 아픈 곳이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작은 몸으로 내뱉은 따뜻한 입김은 마법처럼 할머니를 위로하고 치유해준 것입니다.
인구소멸을 우려하는 시대에, 친구가 줄어드는 시대에, 아이들에게는 서로를 각별히 대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누구라도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마음을 둘 수 있어야 하며 타인의 감정을 감지하는 더듬이를 가져야 하고 고양이처럼 다가가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심 어린 위로는 힘든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림책을 읽은 다음 아이들에게 “호 해주세요” 하고 위로를 청해보세요. 기꺼이 입술을 오므리는 아이의 눈망울이 별처럼 반짝였다면, 그것으로 이 책은 소임을 다한 것입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존재들의 아픔과 고독,
각박한 세상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댓글시인 제페토’의 첫 번째 그림책!
“호-” 하는 다정한 입김에 놀라고 아픈 마음이 고요하고 잔잔하게 가라앉았던 기억, 있으신지요. 이 이야기를 짓고 만든 이는 ‘댓글시인 제페토’입니다. 그는 ‘제페토’라는 닉네임으로 다음 포털창에 댓글을 남겼습니다. 그에게 ‘댓글시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것도, 그의 댓글을 ‘시’라고 말한 것도 누리꾼들이었습니다. 그의 글이 우리 마음에 가닿아 때로는 가슴 무너지게, 때로는 얼어붙은 감정을 회복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인터넷 뉴스를 읽고 시 형식의 댓글을 써온 지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2010년 한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섭씨1,600도가 넘는 쇳물이 담긴 용광로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망한 기사에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시(弔詩) 〈그 쇳물 쓰지 마라〉를 남겼고, 그 후 꾸준하고도 묵묵하게 ‘댓글시’를 남겼습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사건 사고, 갈등과 반목의 우울한 소식들, 그 아수라장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는 늘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작은 것들의 아픔과 소외된 이들의 고독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가령 한파 속에 잠든 떠돌이 개와 고양이에게 담요를 덮어준 사람들의 선행, 치매로 기억을 잃은 후에도 매일 아내에게 청혼한 노인의 사연, 불편한 몸으로 힘들여 일군 소금을 이웃에게 베푼 염전의 성자,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사지로 들어간 소방관들에 관한 보도에 한 자 한 자 마음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의 간청으로 출간된 ‘댓글시 모음집’ 《그 쇳물 쓰지 마라》에서 제페토는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아프고 쓸쓸한 댓글이 8할쯤 되지만, 오래지 않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오면 사회면 뉴스를 떠나 조금은 나른하고 사소한 것들에 관하여 쓸 수 있을 게다. 유년 시절의 초가집 창호로 여과돼 들어왔던 무겁고 따스한 빛에 관하여 묘사를 시도한다거나, 자칫 거룩해지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속되고 능숙한 것들과 합숙시킨다거나, 무엇보다 나의 글쓰기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알아냈으면 하는 바람이다.”-《그 쇳물 쓰지 마라》 서문 중에서
제페토가 원하는 시절이 왔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금은 나른하고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쏟기엔 아직도 세상은 소란하고 아픕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그림책을 통해 다정함과 따뜻함, 그리고 서로의 어깨를 겯고 함께하는 마음, 누구도 혼자이지 않다는 사실을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밝힌 적 없이 활동했지만, 이번 그림책을 출간하며 그는 오래전 그림을 그렸노라고,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노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볼 책을 내고 싶어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실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더 늦으면 영영 만들 수 없을 것 같아 용기를 내었다 합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래알부터 우주까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이야기로 가득하고,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마음을 풍족하게 채워 주었습니다. 비록 시작은 늦었지만 좋은 이야기를 담은 동화로 오래도록 작고 푸른 벗들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제페토의 바람대로 이 이야기가 오래도록 작고 푸른 벗들의 마음속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작가 소개
제페토
저의 별명은 제페토입니다. 낯익은 이름일 테지요. 맞습니다.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할아버지와 같은 이름이지요. 인터넷 뉴스를 읽고 시 형식의 댓글을 쓸 때 사용하는 별명인데 언제부터인가 누리꾼 사이에서 ‘댓글시인 제페토’로 불리더군요. 저는 그 호칭이 퍽 마음에 듭니다.
오래전에는 그림을 그렸고 이후에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공부했으며 지금까지 《그 쇳물 쓰지 마라》, 《우리는 미화되었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실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더 늦으면 영영 만들 수 없을 것 같아 용기를 냈습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래알부터 우주까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이야기로 가득하고,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마음을 풍족하게 채워 주었습니다. 비록 시작은 늦었지만 좋은 이야기를 담은 동화로 오래도록 작고 푸른 벗들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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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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