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글 -우리의 글쓰기가 가야 할 길-

고객평점
저자조르조 아감벤
출판사항책세상, 발행일:2016/11/21
형태사항p.225 A5판:21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59310898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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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우리 시대의 글쓰기에 빠져 있는 ‘불’,
그 신비의 복원에 관한 매혹적인 이야기

문학과 철학,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의 지적 세계에 새로운 얼굴을 부여해온 아감벤은 정치철학을 논할 때조차 함축적이고 문학적인 글쓰기를 통해 우리의 의식을 새롭게 일깨운다. 양립 불가능한 것들의 양립 가능성을 응시하는 이 독특한 철학자는 이를테면 시는 철학을, 철학은 시를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펼쳐왔다. 그런 신념이 잘 반영돼 있는 책이 바로 『불과 글』이다.

그에 의하면 불과 글, 신비와 서사는 문학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한 요소가 실체로 드러나면 한 요소는 비실체로 가려진다. 글이 있는 곳에 불은 꺼져 있고 신비가 있는 곳에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신비와 서사라는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비는 서사를, 서사는 신비를 필연적으로 상기시킨다. 이 ‘동시 가능성’에 주목하는 아감벤은 소설(서사)이란 신비의 상실인 동시에 그것의 기념이며, 불의 공식과 공간의 소실이자 기억으로 존재하는 장르라고 설파한다.

바로 여기서 ‘회상’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아감벤은 문학이란 잃어버린 신비를 회상하는 장르라고 설명한다. 물론 아무것도 회상하지 않는 철학과 문학이 존재한다. 현실만을 전제로 고립된 현상의 분석에 집착하는 철학과 유희에 집착하는 문학이 존재하지만 아감벤은 모든 정통한 철학과 문학은 본질적으로 ‘회상’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의 삶은 사라짐(소멸)과 회상의 메커니즘을 벗어날 수 없고, 그러한 인간의 삶을 벗어난 철학과 문학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상의 순간이야말로 삶을 하나의 신비로 기억할 수 있는 기회다. 아울러 삶을 신비로 기억할 수 있을 때만 진정한 의미의 회상, 즉 철학과 문학이 가능해진다.

“고대 엘레우시스의 신비주의 입문자처럼, 작가는 암흑과 그늘 속에서 지옥의 신과 천상의 신, 망각과 기억 사이에 가로놓인 오솔길을 따라 움직인다. 이 길에는 신비의 위치를 가리키는 일종의 이정표가 배치되어 있어서 그에게 매번 불과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다. 이 이정표는 다름 아닌 언어다. ‘글’과 ‘불’을 분리하는 틈새와 단절이 위로받을 수 없는 상처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이 언어를 통해서다. 신비의 망각이 언어를 할퀴면서 만들어내는 이 상처를 우리는 문학 장르라고 부른다. 비극, 애가, 송가, 희극 등은 언어가 ‘불’과 더 이상 소통할 수 없음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 「불과 글」에서

“시는 철학을, 철학은 시를 추구해야 한다는 저자의 오래된 생각이 맺은 결실이 『불과 글』이다. 모든 글쓰기, 모든 언어적 행위가 가지고 있는 비평과 창조, 관찰과 행위의 은밀한 이원론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것이 저자의 글쓰기라면, 그래서 그가 「창조란 무엇인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잠재력의 형태로 그의 메시지가 전해질 수 있다면, 『불과 글』은 분명히 하나의 결실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결실로 보기 위해서는 저자가 생각하는 독서 행위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참여할 필요가 있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독서 행위란 누군가가 이미 말하고 생각한 것을 자기화하면서 그것을 아직 누구도 언급한 적이 없고 생각한 적도 없는 것의 문턱 너머로 가져가는 일이다.” ― 「옮긴이의 말」에서

『불과 글』을 통해 처음 발표하는 「창조 행위란 무엇인가?」를 통해
한병철의 『피로사회』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감행하다

‘글(문학)이 불(신비)에 대한 회상의 장르’라는 아감벤의 인식은 창조 행위에 대한 우리의 고정적인 시각을 전복시킨다. 불에서 글로 움직이는 ‘과정’이 문학적 창조 과정의 본질적인 측면이라면 문학적 창조의 ‘잠재력’ 또한 불처럼 신비로운 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문학적 창조 고유의 ‘무위’ 속에 머물 때만, 즉 문학적 창조가 동반할 수밖에 없는 획일적 논리를 거부하고 이에 ‘저항’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라고 아감벤은 강조하면서, 모든 정통한 철학과 문학이 회상이라는 점과 창조 행위의 본질이 무위와 저항에 있다는 점이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불과 글』에 실린 열 편의 단상 중 「창조 행위란 무엇인가?」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아감벤은 이 글에서 창조 행위란 죽음에 저항하는 행위라고 말하면서 예술가의 무위 또한 창조 행위의 일부라고 해석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고 카프카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의 입장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아감벤에게 창조란 무엇보다도 창조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가리킨다. 집을 짓고 있지 않는 건축가는 건축가가 아니냐는 질문까지 던지면서 아감벤이 강조하는 것은 ‘창조적 행위 속에 내재하는 무위’다.

무위에 대한 이러한 전복적인 해석은 한병철 교수가 『피로사회』의 「바틀비의 경우」라는 장에서 아감벤을 두고 지적했던 부분에 대한 답변이자 『피로사회』의 철학적 입장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물론 아감벤이 한병철 교수의 이름이나 『피로사회』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 대한 한병철과 아감벤의 분석이 첨예하게 나뉘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아감벤은 바틀비가 창조 행위를 계속해서 거부하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창조의 또 다른 형태로서 탈창조를 선포하는 인물이며 그의 거부는 메시아적 희망을 향해 열려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병철은 바틀비가 죽음을 향해 가는 부정적이고 병적인 존재라고 판단한다. 한병철은 모든 것이 죽음과 거부와 부정적인 견해로 점철되어 있는 소설에서 희망과 창조의 원리를 보려고 하는 아감벤의 입장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병철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반박성 글로 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불과 글』을 통해 처음 발표되는 「창조 행위란 무엇인가?」이다. 자신의 글이 누군가의 의견에 대한 반박이자 비판이라는 말을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오롯이 반박하고 비판하는 글쓰기, 이 놀라운 작업이 『불과 글』에서 펼쳐진다. 저항, 무위, 잠재력이 창조 행위에 대한 길항으로 작용하며 내재할 때, 가장 적극적인 창조 행위가 이뤄진다는 아감벤의 역설적 해석은 오늘 우리가 행하는 글쓰기의 본질을 숙고하게 한다. 즉 아트로 승화되기보다 기술로만 치닫는 기계적인 창조 행위를 성찰하게 한다. 이는 놀랍게도 창작 행위의 질료로서 존재하는 삶의 현장, 삶의 신비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한다. 이것이 아감벤의 철학이 가장 실천적으로 느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구어가 아닌 활자, 페이지가 아닌 스크린에 익숙해진 독서대중에게
진정한 읽기, 근본적인 독서의 힘에 관해 말하다

문학적 창조 행위에 있어서 ‘글쓰기’ 못지않게 아감벤이 중요하게 여기는 행위는 바로 ‘읽기’다. 2012년 12월 로마의 중소 출판사 도서 박람회 기간에 “독서의 위험”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담은 「글 읽기의 어려움」은 ‘독서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아감벤은 독서와 글쓰기가 서로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 자체를 뒤흔드는 독특한 독서와 글쓰기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구전문학의 존재를 일깨운다. 한 번도 활자화된 적이 없는 언어, 모성적 언어인 문맹의 언어, 다시 말해 구어로만 존재하는 언어를 읽기 위한 시도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성적 언어를 문어로 탈바꿈시키는 일이란 단순히 그것을 옮겨 적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시적 언어를 창조하는 일이며,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훌륭한 구어를 창조해내는 일이다. 책을 읽는 독자가 이쪽 페이지에서 저쪽 페이지로 눈을 옮기는 동안 그 양 페이지 사이의 텅 빈 공간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가 위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글로 쓰인 언어의 기원이자 동시에 여정의 목표가 되는 ‘읽기가 불가능한 지점’에 대한 이 독특한 고찰은 출판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일침을 주기도 한다.

편집자들과 책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는 진심 어린 충고를 한마디 남기고 싶다. 여러분은 수치스러운 언사에 몰두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가장 많이 팔린 책, 결과적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들의 순위라는 수치스러운 표현에 신경을 끄고 대신에 읽히기를 요구하는 책들의 순위를 머릿속에 그려보기 바란다. 이러한 요구를 토대로 하는 출판사만이 오늘날의 독서 문화가 겪고 있는 위기로부터 책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글 읽기의 어려움에 관하여」에서

책의 미래에 대한 아감벤의 생각은 2010년 베네치아의 치니 재단에서 열린 강연 내용을 보완한 「책에서 화면으로, 책의 이전과 이후」에 보다 자세히 담겨 있다. 종이책이 전달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글 이전에 백지라고 하는 상상적인 공간이라는 점을 책의 역사적 발전 과정과 함께 설득력 있게 설명한 뒤, 오늘날 보편화된 디지털 기기의 화면(스크린)은 이러한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고(보이지 않도록 만든다는 의미에서)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억지로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진정한 읽기를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즉 페이지가 아니라 화면을 읽는 행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유의 순수한 힘에 비유하던,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서자판의 경험을 포기하는 것이나 같다는 것이다. 아감벤의 이러한 주장은 책의 미래가 단지 창작자와 출판 종사자에게만 달린 문제가 아니라 현대의 독서대중 모두에게 불안한 위기로 다가와 있음을 인식시키면서, 읽고 쓰기에 관한 근본적인 고찰이 필요함을 일깨운다.

▣ 작가 소개

저 : 조르조 아감벤
프랑스를 시작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미학적 시각을 지닌 비평가. 1942년 로마에서 태어나 파리의 국제철학원과 베로나 대학을 거쳐 현재는 베네치아 건축대학 교수이다. 아감벤의 문체가 대단히 신학적이고 철학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그가 분석하는 역사 인식이나 세계관이 너무나 참신하기 때문에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겁게 논쟁되고 있는 철학자 중의 한 명이다.

스스로 다루고 있는 소재의 내용에서 자신의 내적인 주관성에 관한 표현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 내용의 부정을 무한히 반복하다가 결국 자기 자신의 내용에 대한 부정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 없는 인간’으로서의 현대 예술가의 운명을 고찰한 미학서인 『내용 없는 인간』( 1970년)을 발표하면서 비평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아감벤은, 『스탄체 ; 서양문화의 언어와 이미지』(1977년)와 『유년기와 역사』(1978년), 『사고의 종언』(1982년), 『언어활동과 죽음』(1982년), 그리고 『산문의 이념』(1985년) 등의 저작들을 통하여 그의 미학적 스탠스에서의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1990년에 발표된 정치철학적 선언서인 『도래하는 공동체』에서 제시되고 있는 국가와 민족, 그리고 계급 등을 향한 귀속을 거부하는 ‘주체 없는 주체’에 관한 모델과 매우 닮아 있다.

그밖에도 그의 미학을 둘러싼 이론적 또는 역사적 관심은 발터 벤야민의 이탈리아어판 저작집의 편집 참여와, 1993년 질 들뢰즈와의 공저인 『바틀비 ; 창조의 정식』(1993년)을 통하여 지속되어 왔다. 이후에 아감벤은 구소련 및 동유럽의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를 계기로, 언어활동을 테마로 유럽의 인간적인 조건에 관한 미학적인 고찰에서 정치에 관한 철학적인 고찰로 글쓰기의 이행을 시도한다. 실제로 ‘정체성 없는 단독성’만을 기초로 하는 공동성, 그리고 어느 한 속성으로 인하여 귀속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속성에 대한 무관심을 통하여 각자가 현재의 존재방식인 단독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공동체 구상을 제시한 『도래하는 공동체』(La comunia che viene, 1990년)를 시작으로, 『목적 없는 수단 ; 정치에 관한 노트』(1995년)에서 제시되고 있는 정치에 관한 현재적 테마들 - 생, 예외상태, 강제수용소, 인민, 인권, 난민, 은어, 스펙터클, 몸짓 등 - 을 통해 아감벤은 정치의 존재론적 지위 회복을 주장하고 있으며, 그 지표가 될 수 있는 개념들을 재고하고 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주목할 저작으로는 『호모 사케르 ;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1995년), 『예외상태』(2003년), 『아우슈비츠의 남겨진 것』(1998년)의 3부작을 들 수 있다.

역 : 윤병언
서울대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했고, 이탈리아 피렌체 국립대학교에서 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번역가로서 이탈리아의 인문학과 문학 작품을 국내에 활발히 소개하고 한국문학 작품을 해외에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그동안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의 『못생긴 여자』, 조르조 아감벤의 『행간』, 에리 데 루카의 『나비의 무게』, 필리페 다베리오의 『상상박물관』,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의 『맛의 천재』 등이 있다. 또한 대산문화재단 번역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어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인노첸테』를 한국어로,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을 이탈리아어로 옮겼다.

▣ 주요 목차

불과 글
불과 글, 신비와 서사는 문학이 포기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어떻게 한 요소의 실체가 다른 요소의 상실을 반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증명하고 부재를 증언하면서 그것의 그림자와 추억을 필연적으로 상기시키는가? 글이 있는 곳에 불은 꺼져 있고 신비가 있는 곳에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관료주의적 신비
죄와 벌의 신비는 언어의 신비와 일치한다. 인간이 감수하는 벌뿐만 아니라 4만 년 전부터(즉 인간이 말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인간을 상대로 끊임없이 진행되어온 재판은 사실 말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가 곧 형벌이다. 언어 속으로 모든 것들이 돌아가야 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죄의 분량에 따라 쇠해야 한다.

비유와 왕국
우리가 언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하는 일은 말들의 의미, 말들의 모든 모호함과 미묘함을 파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세상과 왕국의 근접성과 유사성을 깨닫는 일이며, 하늘 나라가 우리의 눈으로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세상과 너무 가깝고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창조 행위란 무엇인가?
모든 사물이 스스로의 존재 속에 보존되기를 욕망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사물은 동시에 이러한 욕망에 저항하며 짧은 순간이나마 욕망을 무위적으로 만들고 관조한다. 관건이 되는 것은 여전히 욕망에 내재하는 저항력, 노동에 내재하는 무위다. 무위만이 예술의 품격을 부여할 수 있다.

소용돌이
액체가, 다시 말해 존재가 취하는 두 가지 극단적인 형상은 물방울과 소용돌이다. 물방울은 액체가 스스로에게서 떨어져 나와 황홀경에 빠지는 지점에서 발생한다(물은 떨어지거나 흩어지면서 물방울로 분리된다). 소용돌이는 액체가 스스로를 향해 집중되는 지점, 회전을 통해 자신의 바닥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무엇의 이름으로?
부재하는 무언가의 이름으로 말을 한다거나 침묵한다는 것은 하나의 요구를 경험하고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수한 형태의 요구는 항상 어떤 부재하는 이름의 요구와 일치한다. 거꾸로 부재하는 이름은 우리에게 그것의 이름으로 이야기할 것을 요구한다. 요구가 요구하는 것은 사실 어떤 현실이 아니라 무언가의 가능성이다.

이집트에서의 유월절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절기를 이집트에서 보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파울(페자흐) 첼란의 경우, 그가 시를 써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와 그의 시적 과제가 안고 있는 불가능성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이야기한 모든 내용이, 이집트에서의 유월절과 관련지어 검토될 때 특별한 방식으로 빛을 발한다.

글 읽기의 어려움에 관하여
독서가 불가능한 글쓰기가 있는 반면 글쓰기가 없는 독서가 있다. 이 두 가지 경우가 모두 사실 우리에게 굉장히 유사하다. 즉 독서와 글쓰기가 서로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 자체를 뒤흔드는 독특한 독서와 글쓰기의 경험을 우리는 필요로 한다.

책에서 화면으로, 책의 이전과 이후
생각한다는 것은 글을 쓰거나 읽는 동안 백색 페이지를 떠올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질료를 기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컴퓨터 사용자는 ‘화면’이라는 이 물리적인 장애물, 이 형태 없는 것이 그에게 끝내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남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물질적인 성격에 대한 관념의 허구를 중성화할 줄 알아야 한다.

창작 활동으로서의 연금술
시적인 삶의 형태란 작품 속에서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 스스로의 잠재력을 관조하고 그 안에서 평화를 찾는 삶일 것이다. 살아 있는 인간은 오로지 작품의 무위적인 상태에 의해서만, 즉 어떤 작품을 통해 하나의 순수한 잠재력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스스로를 삶의 형태로 구축하는 방식에 의해서만 정의될 수 있다.

옮긴이의 말_불과 침묵

작가 소개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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