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루쉰전집 9권, 12권, 13권 동시 출간!
지난 10월 19일은 루쉰 서거 80주기였다.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부패, 내전과 이념 대결의 현장에서 문학과 예술의 힘으로 민중을 깨우고자 매진했던 루쉰의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선각자의 증거이다. 이번에 출간한 세 권은 그의 이러한 노력과 다양한 활동이 일평생에 걸쳐 있음을 드러내 보인다. 9권은 잡문집으로서 루쉰이 펴낸 문집들 속에 포함되지 않았던 글들을 모아 엮은 산문과 시 등이며, 12권은 중국 고대 문학사와, 각종 고적과 번역에 붙였던 서문과 발문 등이다. 13권은 수많은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 모음인데, 특히 13권 앞부분인 『먼 곳에서 온 편지』(兩地書)는 루쉰과 훗날 아내가 된 쉬광핑 사이의 연서 모음으로 당시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의미 깊은 저작이다.
“글의 생명은 비평 능력에 있다!”
-루쉰전집 9권, 『집외집』/『집외집습유』
루쉰은 44세이던 1925년 이후 12년 동안 자신이 발표한 모든 산문과 평론 등을 엮어 꾸준히 문집을 출간하였다. 여기에 속하지 않은 글들을 엮은 것이 9권 『집외집』과 『집외집습유』이다. 유학 초기에 수습하지 못한 글, 다른 이가 기록해 둔 강의록, 다른 사람이 선물받은 시나 문장 등등 기존 문집에 누락된 글들 중에서 양지윈(楊霽雲)이라는 사람이 엮은 것이 『집외집』, 여기에도 실리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을 루쉰과 (루쉰 사후) 쉬광핑이 엮은 것이 『집외집습유』이다.
『집외집』은 1903년부터 1933년까지의 다양한 글이 수록되어 있으며 양지윈이 편집하여 1935년에 출판하였다. 루쉰이 1902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니 1903년이면 겨우 일본에 정착했을 시기이다. 즉 루쉰의 극히 초기의 글, 다듬어지지 않고 격정적인 『스파르타의 혼』과 같은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낭만적인 시나 산문, 문어체의 글, 그리고 논쟁적인 산문과 편지글, 번역본 서문 등 다양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30년 동안 루쉰 글쓰기의 변모해 온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채로운 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엄혹한 중국의 현실과 마주하며 발전한 폭 넓고 예리한 비평 능력을 볼 수 있다.
『집외집습유』는 ‘습유’(拾遺) 즉 빠진 것을 주워 모은 문집으로 1903년부터 1936년까지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유학 초기부터 영면할 때까지 루쉰의 전 생애를 포괄한다 할 만하며, 글의 내용은 산문뿐만 아니라 시와 소설, 광고문, 공고 등의 단문도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문집은 다른 문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구체시(舊體詩)를 다수 담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내 마음 큐피드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어라 / 바위 같은 비바람 고향 땅을 어둡게 어둡게 / 겨울 하늘 차가운 별 향한 이 내 마음 / 고운 님 몰라준다 하여도 / 뜨거운 나의 피를 내 조국에 바치리라.”(?자화상?) “피는 중원을 비옥하게 만들고 질긴 잡초를 살찌운다 / 한파가 대지를 얼려도 봄꽃은 터지게 마련 / 영웅들은 핑계도 많고 모사꾼은 병들었단다 / 중산릉서 통곡하니 저녁 까마귀들 시끄럽다.”(?무제?) 등 현실과의 길항으로 쏟아낸 루쉰의 속내 절절한 시구를 대할 수 있다. 이밖에 중국 목각운동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글과 문예론에 관한 글, 러시아 문학작품의 번역서에 대한 글도 담고 있어 문학가, 예술가, 번역가로서 활동한 루쉰의 면면을 만날 수 있다.
▣ 작가 소개
저 : 루쉰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역자 : 이주노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현대중국의 농민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중국현대문학의 세계』(공저, 1997), 『중국현대문학과의 만남』(공저, 2006)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역사의 혼, 사마천』(공역, 2002), 『중국 고건축 기행 1, 2』(2002), 『중화유신의 빛, 양계초』(공역, 2008), 『서하객유기』(전7권, 공역, 2011), 『걸어서 하늘 끝까지』(공역, 2013) 등이 있다.
역자 : 유세종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에서 루쉰 산문시집 『들풀』의 상징체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루쉰식 혁명과 근대중국』(2008), 『화엄의 세계와 혁명 ? 동아시아의 루쉰과 한용운』(2009)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들풀』(1996), 『루쉰전』(공역, 2007)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집외집(集外集)
서언
1903년
스파르타의 혼
라듐에 관하여
1918년
꿈
사랑의 신
복사꽃
그들의 꽃동산
사람과 때
강 건너기와 길안내
1924년
“입 밖에 내지 못하네”
‘양수다’ 군의 습격을 기록하다
양군 습격 사건에 대한 정정
봉화 이야기 다섯
‘음악’?
‘중용 지키기’의 진상을 말하다
1925년
곱씹은 나머지
[참고] ‘무료한 통신’(중첸, 푸위안)
「글자를 곱씹다」에 관하여(중첸, 푸위안)
「글자를 곱씹다」는 ‘고리타분하다’(첸위안, 푸위안)
곱씹어 ‘맛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참고] 곱씹음의 맛없음(첸위안)
잡담
편집을 마치고
[덧붙이는 말]
러시아 역본 「아Q정전」 서언 및 저자의 자술 약전
‘전원사상’
[참고] 보내온 편지(바이보)
뜬소문과 거짓말
통신(메이장에게 보내는 답신)
[참고] 보내온 편지(메이장)
1926년
『치화만』 제기
『가난한 사람들』 서문
통신(웨이밍에게 보내는 답신)
[참고] 보내온 편지(웨이밍)
1927년
문예와 정치의 기로?-?12월 21일 상하이 지난대학에서의 강연
1929년
「붉은 웃음에 관하여」에 관하여
통신(장펑한에게 보내는 답신)
[참고] 쑨융 선생의 역시 몇 수에 관하여
1932년
『수쯔의 편지』 서문
1933년
선본
시
1912년
판아이눙을 곡하다
1931년
난초를 지니고서 귀국하는 O.E.군을 전송하다
무제
일본의 가인에게 드리다
상령의 노래
1932년
자조
무제
1933년
민국 22년의 원단
『방황』에 부쳐
싼이탑에 부쳐
딩링을 애도하며
남에게 주다
위다푸의 항저우 이사를 말리며
부록
1928~29년
『분류』 편집 후기
집외집습유(集外集拾遺)
1912년
옛날을 그리워하며
1919년
『신조』의 일부에 대한 의견
1924년
또다시 ‘예전에 이미 있었던 일’이다
통신(정샤오관에게 보내는 편지)
1925년
시가의 적
『고민의 상징』에 관하여
[참고] 루쉰 선생께 드리는 편지(왕주)
잠시 ‘……’에 답하다
[참고] 편견의 경험(커바이썬)
「기이하도다! 소위?……」에 답하여
[참고] 기이하도다! 소위 루쉰 선생의 이야기는(슝이첸)
『타오위안칭 서양회화전람회 목록』 서
이건 이런 뜻
[참고] 청년필독서(자오쉐양)
『소련의 문예논전』 서문
통신(가오거에게 보내는 답신)
통신(루윈루에게 보내는 답신)
통신(샹페이량에게 보내는 편지)
통신(쑨푸위안에게 보내는 편지)
[참고] 결코 『천바오』가 유언비어를 지어낸 것이 아니다(쑤웨이)
어느 ‘죄인’의 자술서
공고
[참고] 그 여학생들은 참으로 죽어 마땅하다(인탕)
유언비어의 마력(자오인탕)
철탑강간사건에 관한 편지(S. M.)
철탑강간사건 가운데 가장 가증스러운 것(웨이팅)
나는 비로소 알았다
여교장의 남녀에 관한 꿈
1926년
중산 선생 서거 일주년
『하전』 서문
『열둘』 후기
『자유를 쟁취한 파도』 서문
1927년
케케묵은 가락은 이제 그만?-?2월 19일 홍콩청년회에서의 강연
『유선굴』 서언
1929년
『근대목각선집』(1) 소인
『근대목각선집』(1) 부기
『후키야 고지 화보선』 소인
함순의 몇 마디 말
『근대목각선집』(2) 소인
『근대목각선집』(2) 부기
『비어즐리 화보선』 소인
1930년
『신러시아 화보선』 소인
문예의 대중화
『파우스트와 도시』 후기
『고요한 돈강』 후기
『메페르트의 목각 시멘트 그림』 서언
1931년
『철의 흐름』 편집교정 후기
잘난 놈 타령
공민교과 타령
난징 민요
1932년
‘언쟁’의 노래
식객문학과 어용문학?-?11월 22일 베이징대학 제2원에서의 강연
올 봄의 두 가지 감상?-?11월 22일 베이핑 푸런대학에서의 강연
1933년
영역본 『단편소설선집』 자서
『바른 길을 걷지 못한 안드룬』 서문
고리키의 『1월 9일』 번역본 서문
『해방된 돈키호테』 후기
『베이핑 전지 족보』 서문
상하이 소감
1934년
『인옥집』 후기
1936년
『도시와 세월』 삽화 소인
시
1903년
자화상
1912년
판군을 애도하는 시 세 수
1931년
우치야마에게
무제 두 수
마스다 와타루 군의 귀국을 전송하며
1932년
무제
우연히 지었다
펑쯔에게
1·28 전쟁 후 지음
교수의 잡가
소문
무제 두 수
나그네 책망에 답하여
1933년
화가에게
『외침』 제시
양취안을 애도하며
무제
무제
유년 가을에 우연히 짓다
1934년
소문을 듣고 장난삼아 짓다 … 605
무년 초여름에 우연히 짓다 … 607
가을 밤 우연히 짓다 … 609
1935년
해년 늦가을에 우연히 짓다 … 611
부록
1926년
‘웨이밍총간’과 ‘오합총서’ 광고 … 614
1928년
『분류』 범례 다섯 가지 … 616
1929년
‘예원조화’ 광고 … 618
1933년
‘문예연총’?-?의 시작과 현재 … 620
1935년
『역문』 종간호 전기 … 624
1936년
『해상술림』 상권 소개 … 626
『집외집』에 대하여 … 630
『집외집습유』에 대하여 … 640
루쉰전집 9권, 12권, 13권 동시 출간!
지난 10월 19일은 루쉰 서거 80주기였다.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부패, 내전과 이념 대결의 현장에서 문학과 예술의 힘으로 민중을 깨우고자 매진했던 루쉰의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선각자의 증거이다. 이번에 출간한 세 권은 그의 이러한 노력과 다양한 활동이 일평생에 걸쳐 있음을 드러내 보인다. 9권은 잡문집으로서 루쉰이 펴낸 문집들 속에 포함되지 않았던 글들을 모아 엮은 산문과 시 등이며, 12권은 중국 고대 문학사와, 각종 고적과 번역에 붙였던 서문과 발문 등이다. 13권은 수많은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 모음인데, 특히 13권 앞부분인 『먼 곳에서 온 편지』(兩地書)는 루쉰과 훗날 아내가 된 쉬광핑 사이의 연서 모음으로 당시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의미 깊은 저작이다.
“글의 생명은 비평 능력에 있다!”
-루쉰전집 9권, 『집외집』/『집외집습유』
루쉰은 44세이던 1925년 이후 12년 동안 자신이 발표한 모든 산문과 평론 등을 엮어 꾸준히 문집을 출간하였다. 여기에 속하지 않은 글들을 엮은 것이 9권 『집외집』과 『집외집습유』이다. 유학 초기에 수습하지 못한 글, 다른 이가 기록해 둔 강의록, 다른 사람이 선물받은 시나 문장 등등 기존 문집에 누락된 글들 중에서 양지윈(楊霽雲)이라는 사람이 엮은 것이 『집외집』, 여기에도 실리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을 루쉰과 (루쉰 사후) 쉬광핑이 엮은 것이 『집외집습유』이다.
『집외집』은 1903년부터 1933년까지의 다양한 글이 수록되어 있으며 양지윈이 편집하여 1935년에 출판하였다. 루쉰이 1902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니 1903년이면 겨우 일본에 정착했을 시기이다. 즉 루쉰의 극히 초기의 글, 다듬어지지 않고 격정적인 『스파르타의 혼』과 같은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낭만적인 시나 산문, 문어체의 글, 그리고 논쟁적인 산문과 편지글, 번역본 서문 등 다양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30년 동안 루쉰 글쓰기의 변모해 온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채로운 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엄혹한 중국의 현실과 마주하며 발전한 폭 넓고 예리한 비평 능력을 볼 수 있다.
『집외집습유』는 ‘습유’(拾遺) 즉 빠진 것을 주워 모은 문집으로 1903년부터 1936년까지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유학 초기부터 영면할 때까지 루쉰의 전 생애를 포괄한다 할 만하며, 글의 내용은 산문뿐만 아니라 시와 소설, 광고문, 공고 등의 단문도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문집은 다른 문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구체시(舊體詩)를 다수 담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내 마음 큐피드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어라 / 바위 같은 비바람 고향 땅을 어둡게 어둡게 / 겨울 하늘 차가운 별 향한 이 내 마음 / 고운 님 몰라준다 하여도 / 뜨거운 나의 피를 내 조국에 바치리라.”(?자화상?) “피는 중원을 비옥하게 만들고 질긴 잡초를 살찌운다 / 한파가 대지를 얼려도 봄꽃은 터지게 마련 / 영웅들은 핑계도 많고 모사꾼은 병들었단다 / 중산릉서 통곡하니 저녁 까마귀들 시끄럽다.”(?무제?) 등 현실과의 길항으로 쏟아낸 루쉰의 속내 절절한 시구를 대할 수 있다. 이밖에 중국 목각운동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글과 문예론에 관한 글, 러시아 문학작품의 번역서에 대한 글도 담고 있어 문학가, 예술가, 번역가로서 활동한 루쉰의 면면을 만날 수 있다.
▣ 작가 소개
저 : 루쉰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역자 : 이주노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현대중국의 농민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중국현대문학의 세계』(공저, 1997), 『중국현대문학과의 만남』(공저, 2006)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역사의 혼, 사마천』(공역, 2002), 『중국 고건축 기행 1, 2』(2002), 『중화유신의 빛, 양계초』(공역, 2008), 『서하객유기』(전7권, 공역, 2011), 『걸어서 하늘 끝까지』(공역, 2013) 등이 있다.
역자 : 유세종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에서 루쉰 산문시집 『들풀』의 상징체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루쉰식 혁명과 근대중국』(2008), 『화엄의 세계와 혁명 ? 동아시아의 루쉰과 한용운』(2009)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들풀』(1996), 『루쉰전』(공역, 2007)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집외집(集外集)
서언
1903년
스파르타의 혼
라듐에 관하여
1918년
꿈
사랑의 신
복사꽃
그들의 꽃동산
사람과 때
강 건너기와 길안내
1924년
“입 밖에 내지 못하네”
‘양수다’ 군의 습격을 기록하다
양군 습격 사건에 대한 정정
봉화 이야기 다섯
‘음악’?
‘중용 지키기’의 진상을 말하다
1925년
곱씹은 나머지
[참고] ‘무료한 통신’(중첸, 푸위안)
「글자를 곱씹다」에 관하여(중첸, 푸위안)
「글자를 곱씹다」는 ‘고리타분하다’(첸위안, 푸위안)
곱씹어 ‘맛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참고] 곱씹음의 맛없음(첸위안)
잡담
편집을 마치고
[덧붙이는 말]
러시아 역본 「아Q정전」 서언 및 저자의 자술 약전
‘전원사상’
[참고] 보내온 편지(바이보)
뜬소문과 거짓말
통신(메이장에게 보내는 답신)
[참고] 보내온 편지(메이장)
1926년
『치화만』 제기
『가난한 사람들』 서문
통신(웨이밍에게 보내는 답신)
[참고] 보내온 편지(웨이밍)
1927년
문예와 정치의 기로?-?12월 21일 상하이 지난대학에서의 강연
1929년
「붉은 웃음에 관하여」에 관하여
통신(장펑한에게 보내는 답신)
[참고] 쑨융 선생의 역시 몇 수에 관하여
1932년
『수쯔의 편지』 서문
1933년
선본
시
1912년
판아이눙을 곡하다
1931년
난초를 지니고서 귀국하는 O.E.군을 전송하다
무제
일본의 가인에게 드리다
상령의 노래
1932년
자조
무제
1933년
민국 22년의 원단
『방황』에 부쳐
싼이탑에 부쳐
딩링을 애도하며
남에게 주다
위다푸의 항저우 이사를 말리며
부록
1928~29년
『분류』 편집 후기
집외집습유(集外集拾遺)
1912년
옛날을 그리워하며
1919년
『신조』의 일부에 대한 의견
1924년
또다시 ‘예전에 이미 있었던 일’이다
통신(정샤오관에게 보내는 편지)
1925년
시가의 적
『고민의 상징』에 관하여
[참고] 루쉰 선생께 드리는 편지(왕주)
잠시 ‘……’에 답하다
[참고] 편견의 경험(커바이썬)
「기이하도다! 소위?……」에 답하여
[참고] 기이하도다! 소위 루쉰 선생의 이야기는(슝이첸)
『타오위안칭 서양회화전람회 목록』 서
이건 이런 뜻
[참고] 청년필독서(자오쉐양)
『소련의 문예논전』 서문
통신(가오거에게 보내는 답신)
통신(루윈루에게 보내는 답신)
통신(샹페이량에게 보내는 편지)
통신(쑨푸위안에게 보내는 편지)
[참고] 결코 『천바오』가 유언비어를 지어낸 것이 아니다(쑤웨이)
어느 ‘죄인’의 자술서
공고
[참고] 그 여학생들은 참으로 죽어 마땅하다(인탕)
유언비어의 마력(자오인탕)
철탑강간사건에 관한 편지(S. M.)
철탑강간사건 가운데 가장 가증스러운 것(웨이팅)
나는 비로소 알았다
여교장의 남녀에 관한 꿈
1926년
중산 선생 서거 일주년
『하전』 서문
『열둘』 후기
『자유를 쟁취한 파도』 서문
1927년
케케묵은 가락은 이제 그만?-?2월 19일 홍콩청년회에서의 강연
『유선굴』 서언
1929년
『근대목각선집』(1) 소인
『근대목각선집』(1) 부기
『후키야 고지 화보선』 소인
함순의 몇 마디 말
『근대목각선집』(2) 소인
『근대목각선집』(2) 부기
『비어즐리 화보선』 소인
1930년
『신러시아 화보선』 소인
문예의 대중화
『파우스트와 도시』 후기
『고요한 돈강』 후기
『메페르트의 목각 시멘트 그림』 서언
1931년
『철의 흐름』 편집교정 후기
잘난 놈 타령
공민교과 타령
난징 민요
1932년
‘언쟁’의 노래
식객문학과 어용문학?-?11월 22일 베이징대학 제2원에서의 강연
올 봄의 두 가지 감상?-?11월 22일 베이핑 푸런대학에서의 강연
1933년
영역본 『단편소설선집』 자서
『바른 길을 걷지 못한 안드룬』 서문
고리키의 『1월 9일』 번역본 서문
『해방된 돈키호테』 후기
『베이핑 전지 족보』 서문
상하이 소감
1934년
『인옥집』 후기
1936년
『도시와 세월』 삽화 소인
시
1903년
자화상
1912년
판군을 애도하는 시 세 수
1931년
우치야마에게
무제 두 수
마스다 와타루 군의 귀국을 전송하며
1932년
무제
우연히 지었다
펑쯔에게
1·28 전쟁 후 지음
교수의 잡가
소문
무제 두 수
나그네 책망에 답하여
1933년
화가에게
『외침』 제시
양취안을 애도하며
무제
무제
유년 가을에 우연히 짓다
1934년
소문을 듣고 장난삼아 짓다 … 605
무년 초여름에 우연히 짓다 … 607
가을 밤 우연히 짓다 … 609
1935년
해년 늦가을에 우연히 짓다 … 611
부록
1926년
‘웨이밍총간’과 ‘오합총서’ 광고 … 614
1928년
『분류』 범례 다섯 가지 … 616
1929년
‘예원조화’ 광고 … 618
1933년
‘문예연총’?-?의 시작과 현재 … 620
1935년
『역문』 종간호 전기 … 624
1936년
『해상술림』 상권 소개 … 626
『집외집』에 대하여 … 630
『집외집습유』에 대하여 …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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