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34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한 글쓰기 교육의 기록, 『중등 글쓰기, 어떻게 하지?』
글쓰기, 이 좋은 공부
“아이들을 믿게 하는 글, 아이들을 배우게 되는 글, 그런 글을 쓰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에 긍지를 가지는 글을 쓰게 해야 한다. 글을 쓰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인간 교육이 있는지를 나는 모른다. 글쓰기보다 더 나은, 아이들을 지키고 가꾸는 교육이 있는지를 나는 모른다. 내가 40년 동안 아이들과 살면서 여기에 정신을 판 까닭이 이러하다.”평생을 아이들과 글쓰기 공부를 한 이오덕이 남긴 말이다. 그리고 이오덕과 함께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든 교사들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며 살고 있다.
《중등 글쓰기, 어떻게 하지?》는 전국 곳곳에 있는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아이들과 어떻게 글쓰기를 해야 하는지 공부하고 실천한 지도 사례를 모은 책이다. 34년 동안 쌓인 기록 가운데서 고르고 골라 열 분 선생님의 글, 스물네 편을 모았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하는 글쓰기 공부는 뭘까? 어떻게 하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는지 기교나 방법을 공부하는 걸까? 아니다. 글쓰기회에서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삶을 가꾼다’는 게 뭘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우리는 언제나 남이 써 놓은 글을 읽고 시험을 잘 치기 위해 국어 공부를 했다. 글을 쓰는 것도 누구에게 내보이기 위해 꾸며서라도 잘 쓰려고만 했다. 제대로 내 생각이나 내 이야기를 해 보거나 써 본 적이 없다. 내 삶을 마주한 적이 없는 것이다.
글쓰기회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지금, 너는 어때?’ 하고 묻는다. 아이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써 보자고 한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 이야기, 식구들 이야기, 시험 이야기를 쓰면서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둘레를 살피게 된다. 글을 쓰면 마음이 머물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아이들은 자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발 물러나 자기를 살필 수 있는 힘, 전체를 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동무도 보이고, 식구들도 보이고, 이웃들도 보인다. 삶이 깊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삶을 가꾸는 글쓰기다.
교사들도 함께 배우며 행복해지는 글쓰기 공부
교사가 되는 게 꿈인 사람들. 그래서 그 꿈을 이룬 사람들. 꿈을 이루었으니 얼마나 설레고 행복할까? 그런데, 현실은 막막하고 어둡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열심히 교과서대로 가르치면 되는 것인지 막막하다. 그런 교사들에게 한번쯤 꼭 권하고 싶다. 교사로 행복해지고 싶지 않으냐고 물으면서.
그런데 삶을 가꾸는 글쓰기가 막연할 수 있다. 어떻게 하냐고 되물을 수 있다. 천천히 이 책을 읽어 보길 권한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을 거는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말문을 열고 글을 쓰는지, 글감 고르는 것부터 아이들 글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먼저 이 책에 실린 아이들 글을 교실에서 읽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들이 어느새 귀 쫑긋 세우고 바짝 다가앉아 들을 것이다. ‘어? 내 얘기잖아’ 자기 이야기 같은 또래 아이들이 쓴 글은 아이들 마음을 열게 한다. 그리고 입을 연다. ‘아, 나도 할 말 있어요.’
이렇게 아이들이 귀를 기울이고 말문을 열고 글을 쓰면 교사도 함께하는 즐거움이 생기지 않을까? 혼자서 일방으로 하는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공부한다면 다시 마음이 설레지 않을까? 행복하지 않을까?
제 삶을 풀어낸 아이들의 기록
이 책에는 아이들 글이 많이 실려 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것, 성적 때문에 부모님한테 맞았던 일, 집안 형편……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속내를 글로, 이야기로 풀어내며 아이들은 숨을 쉬고 있다. 그리고 서로 위로해 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있다.
난 묵묵히 언니들을 따라나섰고 도착한 곳은 예상했던 무용실 샤워장이었다. 난 마음속으로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피할 이유가 없지. 언니들한테 내가 아니라고 말하면 그만 아니가.’ 생각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교실에 없던 애들이 그곳에 다 모여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맞았는지 전부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다.
“어제 니가 쌤한테 꼰질렀제?”
“아니요.”(……)
“언니들이 뭔가 오해하고 계신 거 같은데, 저 진짜 아니거든요.”
짝. 언니 중 한 명이 내 뺨을 때렸다.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나를 때린 언니를 쳐다보았다. 당연히 이유 없이 맞아서 그 사람을 쳐다보는 표정이 좋을 수가 없었기에 나의 얼굴 표정이 그 언니들을 더 화나게 했다.
아빠는 내 성적표를 보면서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있으시다가 한숨을 쉬셨다. 엄마는 그 옆에서 걱정된 표정으로 앉아 계셨다. 한참 그렇게 다들 말이 없다가 아빠가 처음으로 입을 여셨다.
“니, 꿈이 뭔데?”
나는 눈치를 보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광고업계나 디자인 쪽이요.”
“니, 그럼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노? 뭐 때문에 성적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노. 말해 봐라.”
한참 동안 다시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대학이니 이런 것도 꼭 가야 되는지. 그리고…….”
또 요즘에 겪고 있던 고민 여러 가지를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그래, 그래가지고 그렇게 성적을 말아 처먹었단 말이가?”
갑자기 아빠가 성난 목소리로 말을 끊으셨다.
……맞은 곳이 멍 울리더니 갑자기 울컥하기도 했고 화도 났다. 성적 하나 때문에 이렇게 혼나야 되나.
난 반가워서 뛰어가서 엄마를 불렀어. 뒤에서 보니까 다리가 아파서 두드리며 가다가 나를 보더니 다시 팽팽해. 우리 엄마는 억수로 작아서 요만하다 말이야. 그리고 몸도 약해서 많이 못 걷거든. 내가 “엄마, 왜 걸어다니노.” 명장동 그 입구에서 우리 집까지는 억수로 멀단 말이야. 엄마가 “알 꺼 없다.” 하고 그냥 가. 걷다가 갑자기 3천 원 생각이 나데. (이때부터 울먹이기 시작) 엄마는 차비까지 나한테 다 줬던 거야. ……점심은 먹었을까? 난 엄마한테 큰 죄를 진 것 같았어. 난 그것도 모르고 소리를 질렀으니 엄마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난 그때부터 돈 달라고 떼쓰지는 않아.
‘잠이 안와요. 수면제 좀 주세요.’
아. 잠도 안 오는구나. 괴롭구나. 공부는 못하지만 운동은 썩 잘하는 재원이.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해서 무릎이 좋지 않은 재원이. 재원이에게는 어떤 희망을 얘기해 줘야 할까. 내가 너에게 뭘 해 줄 수 있겠니. 지금 네 답답한 마음을 글로라도 좀 풀어 보렴.
시험지를 받아 봐야 쓸 게 없어 엎드려 있기만 하는 아이들. 그래도 재원이는 마음을 나눈 선생님에게 입을 연다. 시험지 한쪽에 크게 수면제 좀 달라고 써서 내보인다. 재원이 같은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그래도 재원이가 입을 열어 말할 수 있는 게 다행이지 않을까? 눈 맞추고 이야기하고, 들어 주고, 힘내라고 손잡아 주며 같이 살아가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이 책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교사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작가 소개
김경희: 2015년 2월 설악고등학교에서 퇴임
김상기: 속초 설악여자중학교
김제식: 전주 신일중학교
구자행: 부산 문현여자고등학교
박정기: 거창 혜성여자중학교
이상석: 2015년 2월 부산 양운고등학교에서 정년 퇴임
원종찬: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정광임: 춘천 봉의중학교
정유철: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홍은영: 안성 비룡중학교
편자 :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는 1983년 이오덕 선생을 중심으로 전국 초?중?고 선생들이 모여 만들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기 삶을 바로 보고 정직하게 쓰면서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게 하고, 생각을 깊게 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다. 달마다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회보를 내고 있고, 여름과 겨울 연수, 공부방을 열어 공부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꾸준하게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아이들 글 모음집 《엄마의 런닝구》《새들은 시험 안 봐서 좋겠구나》들을 엮었고, 교실 이야기로 《우리 반 일용이》《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를 펴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1부 글쓰기의 바탕, 겪은 일 쓰기는 이렇게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삶을 글로 쓰자_이상석
겪은 일 쓰기, 쓰고 싶은 글감 고르기부터_이상석
인물들 모습 생생하게 그려 내는 것부터 자기 이야기 쓰기까지_이상석
겪은 일을 생생하게, 주고받은 말 살려 쓰기_구자행
글쓰기에 들어가며, 한 해 계획 세우고 첫 물꼬 트는 것부터_이상석
마음을 여는 인사부터 아이들이 쓴 글 살펴보기까지_이상석
마음을 잇는 모둠일기 쓰기_이상석
겪은 일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글 쓰기_이상석
일하고 나서 글쓰기_박정기
땀 흘려 일해 본 것 쓰기_홍은영
2부 몸으로 붙잡은 말, 시 쓰기는 이렇게
이오덕 선생님과 함께한 시 공부_구자행
시 쓰기 어떻게 할까?_구자행
나한테 맞는 말_정유철
3부 제 삶의 주인이 되는 첫걸음, 이야기하기는 이렇게
이야기하기 교육_구자행
부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느끼는_이상석
4부 글쓰기로 살아가는 아이들
글쓰기로 풀어 본 학교 폭력_김제식
글쓰기로 살아가는 명섭이_김상기
장정호네 삶 읽기_원종찬
내 마음의 상처, 도덕 숙제로 낸 글쓰기_김상기
우리 집 이야기_김경희
학교는 왜 다니는가?_김경희
모둠일기로 마음 열기_정광임
수면제 좀 주세요_김제식
시험 시간_김제식
34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한 글쓰기 교육의 기록, 『중등 글쓰기, 어떻게 하지?』
글쓰기, 이 좋은 공부
“아이들을 믿게 하는 글, 아이들을 배우게 되는 글, 그런 글을 쓰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에 긍지를 가지는 글을 쓰게 해야 한다. 글을 쓰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인간 교육이 있는지를 나는 모른다. 글쓰기보다 더 나은, 아이들을 지키고 가꾸는 교육이 있는지를 나는 모른다. 내가 40년 동안 아이들과 살면서 여기에 정신을 판 까닭이 이러하다.”평생을 아이들과 글쓰기 공부를 한 이오덕이 남긴 말이다. 그리고 이오덕과 함께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든 교사들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며 살고 있다.
《중등 글쓰기, 어떻게 하지?》는 전국 곳곳에 있는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아이들과 어떻게 글쓰기를 해야 하는지 공부하고 실천한 지도 사례를 모은 책이다. 34년 동안 쌓인 기록 가운데서 고르고 골라 열 분 선생님의 글, 스물네 편을 모았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하는 글쓰기 공부는 뭘까? 어떻게 하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는지 기교나 방법을 공부하는 걸까? 아니다. 글쓰기회에서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삶을 가꾼다’는 게 뭘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우리는 언제나 남이 써 놓은 글을 읽고 시험을 잘 치기 위해 국어 공부를 했다. 글을 쓰는 것도 누구에게 내보이기 위해 꾸며서라도 잘 쓰려고만 했다. 제대로 내 생각이나 내 이야기를 해 보거나 써 본 적이 없다. 내 삶을 마주한 적이 없는 것이다.
글쓰기회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지금, 너는 어때?’ 하고 묻는다. 아이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써 보자고 한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 이야기, 식구들 이야기, 시험 이야기를 쓰면서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둘레를 살피게 된다. 글을 쓰면 마음이 머물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아이들은 자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발 물러나 자기를 살필 수 있는 힘, 전체를 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동무도 보이고, 식구들도 보이고, 이웃들도 보인다. 삶이 깊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삶을 가꾸는 글쓰기다.
교사들도 함께 배우며 행복해지는 글쓰기 공부
교사가 되는 게 꿈인 사람들. 그래서 그 꿈을 이룬 사람들. 꿈을 이루었으니 얼마나 설레고 행복할까? 그런데, 현실은 막막하고 어둡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열심히 교과서대로 가르치면 되는 것인지 막막하다. 그런 교사들에게 한번쯤 꼭 권하고 싶다. 교사로 행복해지고 싶지 않으냐고 물으면서.
그런데 삶을 가꾸는 글쓰기가 막연할 수 있다. 어떻게 하냐고 되물을 수 있다. 천천히 이 책을 읽어 보길 권한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을 거는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말문을 열고 글을 쓰는지, 글감 고르는 것부터 아이들 글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먼저 이 책에 실린 아이들 글을 교실에서 읽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들이 어느새 귀 쫑긋 세우고 바짝 다가앉아 들을 것이다. ‘어? 내 얘기잖아’ 자기 이야기 같은 또래 아이들이 쓴 글은 아이들 마음을 열게 한다. 그리고 입을 연다. ‘아, 나도 할 말 있어요.’
이렇게 아이들이 귀를 기울이고 말문을 열고 글을 쓰면 교사도 함께하는 즐거움이 생기지 않을까? 혼자서 일방으로 하는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공부한다면 다시 마음이 설레지 않을까? 행복하지 않을까?
제 삶을 풀어낸 아이들의 기록
이 책에는 아이들 글이 많이 실려 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것, 성적 때문에 부모님한테 맞았던 일, 집안 형편……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속내를 글로, 이야기로 풀어내며 아이들은 숨을 쉬고 있다. 그리고 서로 위로해 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있다.
난 묵묵히 언니들을 따라나섰고 도착한 곳은 예상했던 무용실 샤워장이었다. 난 마음속으로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피할 이유가 없지. 언니들한테 내가 아니라고 말하면 그만 아니가.’ 생각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교실에 없던 애들이 그곳에 다 모여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맞았는지 전부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다.
“어제 니가 쌤한테 꼰질렀제?”
“아니요.”(……)
“언니들이 뭔가 오해하고 계신 거 같은데, 저 진짜 아니거든요.”
짝. 언니 중 한 명이 내 뺨을 때렸다.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나를 때린 언니를 쳐다보았다. 당연히 이유 없이 맞아서 그 사람을 쳐다보는 표정이 좋을 수가 없었기에 나의 얼굴 표정이 그 언니들을 더 화나게 했다.
아빠는 내 성적표를 보면서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있으시다가 한숨을 쉬셨다. 엄마는 그 옆에서 걱정된 표정으로 앉아 계셨다. 한참 그렇게 다들 말이 없다가 아빠가 처음으로 입을 여셨다.
“니, 꿈이 뭔데?”
나는 눈치를 보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광고업계나 디자인 쪽이요.”
“니, 그럼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노? 뭐 때문에 성적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노. 말해 봐라.”
한참 동안 다시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대학이니 이런 것도 꼭 가야 되는지. 그리고…….”
또 요즘에 겪고 있던 고민 여러 가지를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그래, 그래가지고 그렇게 성적을 말아 처먹었단 말이가?”
갑자기 아빠가 성난 목소리로 말을 끊으셨다.
……맞은 곳이 멍 울리더니 갑자기 울컥하기도 했고 화도 났다. 성적 하나 때문에 이렇게 혼나야 되나.
난 반가워서 뛰어가서 엄마를 불렀어. 뒤에서 보니까 다리가 아파서 두드리며 가다가 나를 보더니 다시 팽팽해. 우리 엄마는 억수로 작아서 요만하다 말이야. 그리고 몸도 약해서 많이 못 걷거든. 내가 “엄마, 왜 걸어다니노.” 명장동 그 입구에서 우리 집까지는 억수로 멀단 말이야. 엄마가 “알 꺼 없다.” 하고 그냥 가. 걷다가 갑자기 3천 원 생각이 나데. (이때부터 울먹이기 시작) 엄마는 차비까지 나한테 다 줬던 거야. ……점심은 먹었을까? 난 엄마한테 큰 죄를 진 것 같았어. 난 그것도 모르고 소리를 질렀으니 엄마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난 그때부터 돈 달라고 떼쓰지는 않아.
‘잠이 안와요. 수면제 좀 주세요.’
아. 잠도 안 오는구나. 괴롭구나. 공부는 못하지만 운동은 썩 잘하는 재원이.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해서 무릎이 좋지 않은 재원이. 재원이에게는 어떤 희망을 얘기해 줘야 할까. 내가 너에게 뭘 해 줄 수 있겠니. 지금 네 답답한 마음을 글로라도 좀 풀어 보렴.
시험지를 받아 봐야 쓸 게 없어 엎드려 있기만 하는 아이들. 그래도 재원이는 마음을 나눈 선생님에게 입을 연다. 시험지 한쪽에 크게 수면제 좀 달라고 써서 내보인다. 재원이 같은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그래도 재원이가 입을 열어 말할 수 있는 게 다행이지 않을까? 눈 맞추고 이야기하고, 들어 주고, 힘내라고 손잡아 주며 같이 살아가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이 책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교사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작가 소개
김경희: 2015년 2월 설악고등학교에서 퇴임
김상기: 속초 설악여자중학교
김제식: 전주 신일중학교
구자행: 부산 문현여자고등학교
박정기: 거창 혜성여자중학교
이상석: 2015년 2월 부산 양운고등학교에서 정년 퇴임
원종찬: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정광임: 춘천 봉의중학교
정유철: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홍은영: 안성 비룡중학교
편자 :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는 1983년 이오덕 선생을 중심으로 전국 초?중?고 선생들이 모여 만들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기 삶을 바로 보고 정직하게 쓰면서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게 하고, 생각을 깊게 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다. 달마다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회보를 내고 있고, 여름과 겨울 연수, 공부방을 열어 공부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꾸준하게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아이들 글 모음집 《엄마의 런닝구》《새들은 시험 안 봐서 좋겠구나》들을 엮었고, 교실 이야기로 《우리 반 일용이》《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를 펴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1부 글쓰기의 바탕, 겪은 일 쓰기는 이렇게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삶을 글로 쓰자_이상석
겪은 일 쓰기, 쓰고 싶은 글감 고르기부터_이상석
인물들 모습 생생하게 그려 내는 것부터 자기 이야기 쓰기까지_이상석
겪은 일을 생생하게, 주고받은 말 살려 쓰기_구자행
글쓰기에 들어가며, 한 해 계획 세우고 첫 물꼬 트는 것부터_이상석
마음을 여는 인사부터 아이들이 쓴 글 살펴보기까지_이상석
마음을 잇는 모둠일기 쓰기_이상석
겪은 일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글 쓰기_이상석
일하고 나서 글쓰기_박정기
땀 흘려 일해 본 것 쓰기_홍은영
2부 몸으로 붙잡은 말, 시 쓰기는 이렇게
이오덕 선생님과 함께한 시 공부_구자행
시 쓰기 어떻게 할까?_구자행
나한테 맞는 말_정유철
3부 제 삶의 주인이 되는 첫걸음, 이야기하기는 이렇게
이야기하기 교육_구자행
부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느끼는_이상석
4부 글쓰기로 살아가는 아이들
글쓰기로 풀어 본 학교 폭력_김제식
글쓰기로 살아가는 명섭이_김상기
장정호네 삶 읽기_원종찬
내 마음의 상처, 도덕 숙제로 낸 글쓰기_김상기
우리 집 이야기_김경희
학교는 왜 다니는가?_김경희
모둠일기로 마음 열기_정광임
수면제 좀 주세요_김제식
시험 시간_김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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