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이중의 덫은 무엇인가?
정치동맹으로 나아가지 못한 유럽연합은 국민국가의 틀을 뛰어넘은 시장의 자기파괴적 활동들을 충분히 제어할 수 없다. 시장은 본질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양산하고, 유로존은 애초에 체급이 다른 참여자들 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되었다. 시장이 작동하면서 이런 차이를 저절로 보완하고 조정하리라는 자유주의 시장론자들의 무책임한 전망은 철저하게 배신당했다. 그러나 첫 번째 덫에 갇힌 유럽연합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니, 이런 상황 자체가 유럽연합이 갇힌 첫 번째 덫이다. 저자가 밝히는 두 번째 덫은 사뭇 잔인하기까지 하다. 위기 자체가 위기를 극복할 주체들의 발현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 저자는 경제통화동맹에 머물러 있는 유럽연합이 정치적 대리인으로서의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구조와 한계를 지적하고, 대안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독일 지도자론의 타당성을 냉정하게 검증하고 폐기한다.
올해 만 75세인 저자는 이책에서 유럽연합으 운명을 전망하지는 않는다. 이 책의 미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유럽연합을 옥죄고 있는 이중의 덫을 냉정하게 정의해낸 다음, 미래를 전망하는 대신 최소한의 해결책을 모색한다. 첫 번째 덫이 만들어낸 사회적 고통을 줄이는 동시에 두 번째 덫을 늦출 수 있는 방법, 바로 올바른 사안들을 정책 논의의 테이블에 올려 EU를 정치화하는 방안이다. 저자는 올바른 사안의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합당한 의제들을 제시한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고,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대리인조차 없을 때에, 바로 그 정치적 대리인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올바른 사안들을 골라 정책 논의의 테이블에 올려놓을 주체는 누구이겠는가? 바로 자신을 포함한 지식인들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래서 많은 지식인들이 이 책을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라고 평하는 것이다.
들어가는 글
유럽연합이 이대로 계속될 수 없다는 건 누가 봐도 명백한 현상(現狀)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유럽연합은 지금의 ‘계속되는 위기’보다 현저히 나은 어떤 상태와 상당히 나쁜 어떤 상태로 갈라지는 기로에 서 있다. 이 정도는 유럽 안팎의 세상이 다 아는 바다. 그러니 이 위기, 금융시장 위기와 국가부채 위기, 경제/고용 위기, EU의 제도적 위기, EU의 유로존과 EU의 질적 민주주의 위기 등등이 누적된 결과물인 지금의 위기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지극히 위험한 위기이며 극도로 복잡하고 불확실한 무서운 위기라고 믿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EU의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이 사태를 빨리 해결하지 않는다면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이미 겪고 있는 막대한 사회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통합이라는 정치적 프로젝트와 전 세계의 경제가 모두 심하게 고통 받게 될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질문을 다룬 학술 저작물이나 정책 보고서, 보도물은 제법 많다. 이런 글들은 종종 ‘유럽통합, 되돌아갈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와 같은 제목을 달고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대안적 방법을 두어 가지 제시한 다음 저마다 추정한 실현 가능성과 바람직함의 척도에 따라 그 방안에 순위를 매긴다. 그러나 위기가 다면적이라는 진단에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고 ‘앞으로’ 대 ‘뒤로’라는 공간적 비유가 전략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장치이기는 하지만 두 번째 문제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두 번째 문제란, 이 위기가 결국 위기를 극복하고 재발을 막을 전략과 변화를 만들어낼 건설적인 치유력이나 힘의 원천 자체를 대부분 마비시키거나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 분석가들이나 그에 못지않게 자신감에 충만한 기술관료들이 주장했던 바와는 반대로, 위기는 위기를 극복해낼 바로 그 힘들을 길러내기는커녕 마비시킨다. 위기가 학습 기제와 복원력을 가동시키기보다는 대리자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위기는 위기관리자나 변화의 대리자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세력들을 비활성화시켜왔다. 경제 회복을 향한 희망과 (예를 들어, 유럽민주연방공화국 같은)전망, 또는 국가주의로 회귀하자는 요구는 많은 반면, 유럽을 바람직하고 지속가능한, 위기 이후의 미래로 추동해갈 전략을 짜고 실행하기에 적법한 주체는 누구인지, 하다못해 그런 임시변통 능력이라도 있는 주체는 누구인지, 그 주체는 또 어떤 종류의 규칙과 절차를 따라야 하는지는 어디서도 두루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만한 답을 찾아볼 수 없다.
혹자는 (내가 1970년에 쓴 글에서 언급한 대로)‘위기관리의 위기’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도출해낸다 하더라도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라는 더 곤란한 두 번째 질문에 부닥치는 셈이다. 무엇이 바람직한 전략적 목표인지를 논하는 일도 그 일을 실제로 수행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주체를 짚어내지 못하고서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는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을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덫에 갇힌 채다. 덫이란 그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로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는 조건이면서 동시에 움직이는 능력을 빼앗기고, 탈출경로는 막힌 데다 덫을 풀려는 대리자의 힘은 약하고 불명확한 조건으로 정의될 수 있다. 주역들은 장애물들이 가득한 무대 위로 아직 오르지도 않았다. (중략)
이 위기가 심각한 건 하나의 핵심적인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서로 대립하는 여러 정치적 성향과 전략들마다 시급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는 일은 역시 극도로 인기가 없어서 EU는 말할 것도 없이 회원국들 안에서도 사실상 민주적으로는 실행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꼭 해야 할 일, 그리고 모두가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일(말하자면 부담과 책임을 나눠 EU 안에 재배치하는 모종의 조치)은 ‘핵심’과 ‘주변부’ 회원국 유권자들 모두에게 ‘먹히질’ 않는다.
무엇보다 ‘설득’을 해야 할 정당들이 여전히 대부분 국가 단위의 권력을 추구하는 조직들이다 보니, 누구보다 먼저 국경을 뛰어넘는 신뢰 관계를 조성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정치적 성향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는 회피하고, 유권자들의 ‘정해진’ (추정)성향에 반응하는 실증적 기회주의에 이끌린다. 정당들이 설득과 논쟁을 통해 정치적 선호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널리 퍼진 공포와 혐오, 의심, 피해자 비난 경향, 국가주의 프레임 유행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중략)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제도적 기제가 빈곤한 탓에 돈이 아니라 공감대와 정치적 지지가 변수로 작용하는 병목지점이 되었다. 경제 영역에서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들과 중요한 정치 주체들이 정치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일들 간의 불일치는 요즘 뭔가의 징후가 아닌가 싶을 만큼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통치불능’ 상태에서 최고점에 달한다. 이런 현상은 유럽 핵심과 주변부 간에 생겨나 점점 깊어져 가는 분리선 양쪽 모두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번 위기를 막는 데 실패한 결과로 유로존이 쪼개진다면, EU도 그 뒤를 따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메르켈 총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에 와서는 그 못지않게 명백해진 사실, 즉 유럽연합이 무너지도록 위협하고 있는 건 바로 거친 데다 제도적으로 안착하지 못한 유럽경제통화 동맹과 유로의 역학 그 자체라는 말을 빼먹었지만 말이다.
유럽정치 관련 지식인들의 추천사
열정적이고 철두철미하게 주제를 깊숙이 관통하는 클라우스 오페의 책은 유럽연합의 속살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회적 유럽을 향한 투쟁에 일말의 희망을 건네준다.
개리 마크스,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정치학 교수
벌써 몇 년째 해결되지 않는 유로 위기를 보면서 희망을 품기는 어렵다. 만약 희망을 품을 근거가 있다면, 그건 이 책에 담긴 내용일 것이다. 오페의 세심한 분석은 널리 읽혀야 마땅하다. 이 책이 널리 읽힌다면 유럽도 보다 좋은 곳이 될 것이다.
배리 아이켄그린, 캘리포니아대학 경제학 교수
이 책의 핵심에는 ‘유로가 실수였다 할지라도 유로를 폐기하는 건 더 큰 실수가 될 것이다’라는 명제가 있다. 이런 직관에 기초하여 오페는 유럽주의 초국가 정체(政體)를 옭아맨 경제적, 제도적, 정치적, 문화적 덫들의 논리를 설명한다. 이 책의 큰 장점이라면 덫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가 은연중에 품고 있던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 것이다. 과연 누가 변화의 대리인이 될 것인가? 이 책을 읽는 이라면 이 질문이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질문인 동시에 우리로서는 절박하게 답을 얻어야만 하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알버트 윌, 런던 유니버시티칼리지 정치이론과 공공정책학 교수
이상하게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클라우스 오페는 가차 없이 유럽통합의 약점과 실패들을 철저하게 분석하면서도 유럽주의 이상이 품고 있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호소력 있게 일깨우는 한편, 정치지도자들이 의지와 투지만 가진다면 이 이상을 실현시킬 방법이 있다고 일러준다. 지금처럼 유럽혐오가 팽배한 분위기에서 이 책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낙관이다.
콜린 크라우치, 워릭대학교 정치사회학 명예교수
▣ 작가 소개
저자 : 클라우스 오페
클라우스 오페는 독일의 정치사회학자로 2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쾰른대학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사회학과 경제학, 철학을 공부했고,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연구소에서 하버마스의 조교로 일하면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에 콘스탄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해 빌레펠트대학, 브레멘대학, 훔볼트대학 등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가르쳤고, 프린스턴대학과 하버드대학 등에서 교환교수로 일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분석하고 밝히는 데 상당한 공헌을 했으며, 근래에는 민주주의로 전환되는 과도기의 경제와 국가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05년에 정년퇴직한 후 현재는 베를린에 소재한 헤르티행정전문대학과 훔볼트대학에서 명예교수로 일하며 여러 현안들에 대한 사회적 토론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불평등과 노동시장》(온라인 공개, 2010), 《미국을 생각하다-미국에 간 토크빌과 베버, 아도르노》(2005), 《신뢰-사회적 결속의 토대》(공저, 2001), 《적발되지 않는 추월-동독의 공짜 복지》(공저, 1998), 《새로운 동구의 정치변혁 실험》(1994), 《노동하는 사회-구조적 문제와... 전망》(1984), 《자본주의 국가의 구조적 문제들》(1973) 등이 있다. 《덫에 걸린 유럽》은 2014년 11월에 출간된 최근작이다.
역자 : 신해경
신해경은 더 즐겁고 온전한 세계를 꿈꾸고 고민하는 전문번역가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공공정책학(국제관계)을 공부했다. 생태와 환경, 사회, 예술, 조동 등 다방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옮긴 책으로 《유럽연합의 종말》(아마존의 나비, 2015년), 《침묵을 위한 시간》(봄날의 책, 2014년), 《북극을 꿈꾸다》(봄날의 책, 2014년),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봄날의 책, 2013년)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들어가는 글
제1장 민주자본주의와 유럽연합
제2장 위기의 본질
제3장 성장, 부채, 파멸의 순환 고리
제4장 원점 회귀는 없다
제5장 정치적 대리자를 찾아서
제6장 궁극적 목적
제7장 정치세력과 성향별 지형
제8장 재고할 가치도 없는 독일 지도자론
제9장 ‘희박한’ 시민성
제10장 국경과 사회적 분리를 넘어선 재분배
옮긴이의 말
참고 자료
이중의 덫은 무엇인가?
정치동맹으로 나아가지 못한 유럽연합은 국민국가의 틀을 뛰어넘은 시장의 자기파괴적 활동들을 충분히 제어할 수 없다. 시장은 본질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양산하고, 유로존은 애초에 체급이 다른 참여자들 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되었다. 시장이 작동하면서 이런 차이를 저절로 보완하고 조정하리라는 자유주의 시장론자들의 무책임한 전망은 철저하게 배신당했다. 그러나 첫 번째 덫에 갇힌 유럽연합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니, 이런 상황 자체가 유럽연합이 갇힌 첫 번째 덫이다. 저자가 밝히는 두 번째 덫은 사뭇 잔인하기까지 하다. 위기 자체가 위기를 극복할 주체들의 발현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 저자는 경제통화동맹에 머물러 있는 유럽연합이 정치적 대리인으로서의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구조와 한계를 지적하고, 대안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독일 지도자론의 타당성을 냉정하게 검증하고 폐기한다.
올해 만 75세인 저자는 이책에서 유럽연합으 운명을 전망하지는 않는다. 이 책의 미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유럽연합을 옥죄고 있는 이중의 덫을 냉정하게 정의해낸 다음, 미래를 전망하는 대신 최소한의 해결책을 모색한다. 첫 번째 덫이 만들어낸 사회적 고통을 줄이는 동시에 두 번째 덫을 늦출 수 있는 방법, 바로 올바른 사안들을 정책 논의의 테이블에 올려 EU를 정치화하는 방안이다. 저자는 올바른 사안의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합당한 의제들을 제시한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고,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대리인조차 없을 때에, 바로 그 정치적 대리인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올바른 사안들을 골라 정책 논의의 테이블에 올려놓을 주체는 누구이겠는가? 바로 자신을 포함한 지식인들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래서 많은 지식인들이 이 책을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라고 평하는 것이다.
들어가는 글
유럽연합이 이대로 계속될 수 없다는 건 누가 봐도 명백한 현상(現狀)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유럽연합은 지금의 ‘계속되는 위기’보다 현저히 나은 어떤 상태와 상당히 나쁜 어떤 상태로 갈라지는 기로에 서 있다. 이 정도는 유럽 안팎의 세상이 다 아는 바다. 그러니 이 위기, 금융시장 위기와 국가부채 위기, 경제/고용 위기, EU의 제도적 위기, EU의 유로존과 EU의 질적 민주주의 위기 등등이 누적된 결과물인 지금의 위기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지극히 위험한 위기이며 극도로 복잡하고 불확실한 무서운 위기라고 믿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EU의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이 사태를 빨리 해결하지 않는다면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이미 겪고 있는 막대한 사회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통합이라는 정치적 프로젝트와 전 세계의 경제가 모두 심하게 고통 받게 될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질문을 다룬 학술 저작물이나 정책 보고서, 보도물은 제법 많다. 이런 글들은 종종 ‘유럽통합, 되돌아갈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와 같은 제목을 달고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대안적 방법을 두어 가지 제시한 다음 저마다 추정한 실현 가능성과 바람직함의 척도에 따라 그 방안에 순위를 매긴다. 그러나 위기가 다면적이라는 진단에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고 ‘앞으로’ 대 ‘뒤로’라는 공간적 비유가 전략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장치이기는 하지만 두 번째 문제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두 번째 문제란, 이 위기가 결국 위기를 극복하고 재발을 막을 전략과 변화를 만들어낼 건설적인 치유력이나 힘의 원천 자체를 대부분 마비시키거나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 분석가들이나 그에 못지않게 자신감에 충만한 기술관료들이 주장했던 바와는 반대로, 위기는 위기를 극복해낼 바로 그 힘들을 길러내기는커녕 마비시킨다. 위기가 학습 기제와 복원력을 가동시키기보다는 대리자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위기는 위기관리자나 변화의 대리자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세력들을 비활성화시켜왔다. 경제 회복을 향한 희망과 (예를 들어, 유럽민주연방공화국 같은)전망, 또는 국가주의로 회귀하자는 요구는 많은 반면, 유럽을 바람직하고 지속가능한, 위기 이후의 미래로 추동해갈 전략을 짜고 실행하기에 적법한 주체는 누구인지, 하다못해 그런 임시변통 능력이라도 있는 주체는 누구인지, 그 주체는 또 어떤 종류의 규칙과 절차를 따라야 하는지는 어디서도 두루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만한 답을 찾아볼 수 없다.
혹자는 (내가 1970년에 쓴 글에서 언급한 대로)‘위기관리의 위기’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도출해낸다 하더라도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라는 더 곤란한 두 번째 질문에 부닥치는 셈이다. 무엇이 바람직한 전략적 목표인지를 논하는 일도 그 일을 실제로 수행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주체를 짚어내지 못하고서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는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을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덫에 갇힌 채다. 덫이란 그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로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는 조건이면서 동시에 움직이는 능력을 빼앗기고, 탈출경로는 막힌 데다 덫을 풀려는 대리자의 힘은 약하고 불명확한 조건으로 정의될 수 있다. 주역들은 장애물들이 가득한 무대 위로 아직 오르지도 않았다. (중략)
이 위기가 심각한 건 하나의 핵심적인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서로 대립하는 여러 정치적 성향과 전략들마다 시급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는 일은 역시 극도로 인기가 없어서 EU는 말할 것도 없이 회원국들 안에서도 사실상 민주적으로는 실행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꼭 해야 할 일, 그리고 모두가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일(말하자면 부담과 책임을 나눠 EU 안에 재배치하는 모종의 조치)은 ‘핵심’과 ‘주변부’ 회원국 유권자들 모두에게 ‘먹히질’ 않는다.
무엇보다 ‘설득’을 해야 할 정당들이 여전히 대부분 국가 단위의 권력을 추구하는 조직들이다 보니, 누구보다 먼저 국경을 뛰어넘는 신뢰 관계를 조성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정치적 성향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는 회피하고, 유권자들의 ‘정해진’ (추정)성향에 반응하는 실증적 기회주의에 이끌린다. 정당들이 설득과 논쟁을 통해 정치적 선호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널리 퍼진 공포와 혐오, 의심, 피해자 비난 경향, 국가주의 프레임 유행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중략)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제도적 기제가 빈곤한 탓에 돈이 아니라 공감대와 정치적 지지가 변수로 작용하는 병목지점이 되었다. 경제 영역에서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들과 중요한 정치 주체들이 정치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일들 간의 불일치는 요즘 뭔가의 징후가 아닌가 싶을 만큼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통치불능’ 상태에서 최고점에 달한다. 이런 현상은 유럽 핵심과 주변부 간에 생겨나 점점 깊어져 가는 분리선 양쪽 모두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번 위기를 막는 데 실패한 결과로 유로존이 쪼개진다면, EU도 그 뒤를 따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메르켈 총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에 와서는 그 못지않게 명백해진 사실, 즉 유럽연합이 무너지도록 위협하고 있는 건 바로 거친 데다 제도적으로 안착하지 못한 유럽경제통화 동맹과 유로의 역학 그 자체라는 말을 빼먹었지만 말이다.
유럽정치 관련 지식인들의 추천사
열정적이고 철두철미하게 주제를 깊숙이 관통하는 클라우스 오페의 책은 유럽연합의 속살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회적 유럽을 향한 투쟁에 일말의 희망을 건네준다.
개리 마크스,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정치학 교수
벌써 몇 년째 해결되지 않는 유로 위기를 보면서 희망을 품기는 어렵다. 만약 희망을 품을 근거가 있다면, 그건 이 책에 담긴 내용일 것이다. 오페의 세심한 분석은 널리 읽혀야 마땅하다. 이 책이 널리 읽힌다면 유럽도 보다 좋은 곳이 될 것이다.
배리 아이켄그린, 캘리포니아대학 경제학 교수
이 책의 핵심에는 ‘유로가 실수였다 할지라도 유로를 폐기하는 건 더 큰 실수가 될 것이다’라는 명제가 있다. 이런 직관에 기초하여 오페는 유럽주의 초국가 정체(政體)를 옭아맨 경제적, 제도적, 정치적, 문화적 덫들의 논리를 설명한다. 이 책의 큰 장점이라면 덫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가 은연중에 품고 있던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 것이다. 과연 누가 변화의 대리인이 될 것인가? 이 책을 읽는 이라면 이 질문이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질문인 동시에 우리로서는 절박하게 답을 얻어야만 하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알버트 윌, 런던 유니버시티칼리지 정치이론과 공공정책학 교수
이상하게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클라우스 오페는 가차 없이 유럽통합의 약점과 실패들을 철저하게 분석하면서도 유럽주의 이상이 품고 있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호소력 있게 일깨우는 한편, 정치지도자들이 의지와 투지만 가진다면 이 이상을 실현시킬 방법이 있다고 일러준다. 지금처럼 유럽혐오가 팽배한 분위기에서 이 책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낙관이다.
콜린 크라우치, 워릭대학교 정치사회학 명예교수
▣ 작가 소개
저자 : 클라우스 오페
클라우스 오페는 독일의 정치사회학자로 2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쾰른대학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사회학과 경제학, 철학을 공부했고,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연구소에서 하버마스의 조교로 일하면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에 콘스탄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해 빌레펠트대학, 브레멘대학, 훔볼트대학 등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가르쳤고, 프린스턴대학과 하버드대학 등에서 교환교수로 일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분석하고 밝히는 데 상당한 공헌을 했으며, 근래에는 민주주의로 전환되는 과도기의 경제와 국가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05년에 정년퇴직한 후 현재는 베를린에 소재한 헤르티행정전문대학과 훔볼트대학에서 명예교수로 일하며 여러 현안들에 대한 사회적 토론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불평등과 노동시장》(온라인 공개, 2010), 《미국을 생각하다-미국에 간 토크빌과 베버, 아도르노》(2005), 《신뢰-사회적 결속의 토대》(공저, 2001), 《적발되지 않는 추월-동독의 공짜 복지》(공저, 1998), 《새로운 동구의 정치변혁 실험》(1994), 《노동하는 사회-구조적 문제와... 전망》(1984), 《자본주의 국가의 구조적 문제들》(1973) 등이 있다. 《덫에 걸린 유럽》은 2014년 11월에 출간된 최근작이다.
역자 : 신해경
신해경은 더 즐겁고 온전한 세계를 꿈꾸고 고민하는 전문번역가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공공정책학(국제관계)을 공부했다. 생태와 환경, 사회, 예술, 조동 등 다방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옮긴 책으로 《유럽연합의 종말》(아마존의 나비, 2015년), 《침묵을 위한 시간》(봄날의 책, 2014년), 《북극을 꿈꾸다》(봄날의 책, 2014년),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봄날의 책, 2013년)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들어가는 글
제1장 민주자본주의와 유럽연합
제2장 위기의 본질
제3장 성장, 부채, 파멸의 순환 고리
제4장 원점 회귀는 없다
제5장 정치적 대리자를 찾아서
제6장 궁극적 목적
제7장 정치세력과 성향별 지형
제8장 재고할 가치도 없는 독일 지도자론
제9장 ‘희박한’ 시민성
제10장 국경과 사회적 분리를 넘어선 재분배
옮긴이의 말
참고 자료
01. 반품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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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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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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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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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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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