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우리 남자들은 어디쯤 와 있을까?
여자들은 우리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한 철학자가 써내려간 남자에 대한 불온한 보고서
남자들은 피곤하다. 똑똑하고 열정 넘치는 여자들이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고, 심지어는 남자들을 앞지르고 있다. 부인과 애인은 가정적이고 다정한 남자가 되라고 잔소리를 쏟아 내고, 사회는 남자다운 남자가 되어야 한다고 등을 떠민다. 대체 그들이 원하는 남자는 어떤 남자란 말인가.
프랑스의 젊은 철학자 뱅상 세스페데스가 표류하고 있는 이 시대 남자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감을 상실하고 주눅 들어 버린 남자들, 포르노에 탐닉하고 스마트폰과 페이스북에 몰두하는 남자들, 관계맺기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자신만의 방에 가두어 버린 남자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는 그런 위태로운 남자들을 위로하거나 변호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가 보기에 이런 남자들은 ‘남성성’을 상실한 무기력한 남자일 뿐이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시라. 그가 가치를 두는 ‘남성성’은 마초들이 부르짖는 ‘남성성’과는 전혀 다른 ‘남성성’이다. “남성우월주의적 의미의 ‘남성성 상실’은 이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시기가 왔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 남성성이 상실되어야만 남자가 인간적인 존재가 되고, 무엇인가를 지배해야 한다는 의무나 굴레에서 벗어나 “타인에 대해 더 개방적이고 멋진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남성성’은 ‘에로틱한 남성성’, ‘배반하고 저항하는 남성성’, ‘부족함과 나약함을 인정할 줄 아는 남성성’이다. 세스페데스는 진짜 남자가 되려면 “죽을 지경에 이를 정도로 남성 호르몬이 넘치게 주입된 육체라는 욕망의 장소, 바로 그곳”인 ‘남근’에서부터 남자의 “감정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근은 생물학적으로나 실존적으로 “아름다움을 생산하고, 확고한 것들에 대해 환상을 품게 하고, 감정을 뒤흔드는 카오스와 외부의 소란”에 남자를 적응시키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남성의 힘이 왕성하게 발효되는 곳, 성의 뿌리를 의미하면서 삶이라는 공장의 근거이기도 한 곳, 현존, 생식 능력, 허약함을 모두 내포”하는 곳인 남근에서부터 그의 철학은 시작된다. 불온하고 노골적으로 들리는가. 그렇다. 그가 추구하는 남성성이 바로 불온하고 노골적인 남성성이다.
남자들은 왜 무력해졌을까
왜 남자들은 사랑에 소극적이고, 욕망을 상실하고, 기계와 화면 안에서만 활력을 보이는 무감각한 존재가 되어 버렸을까? 정말 여자들이 남자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고,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극악하게 남성을 여성화시켜 버렸기 때문일까? 남자들은 정말 종말한 것일까? 여자들에게 패배한 것일까?
세스페데스는 남자들의 무력감은, 눈부신 성과와 극단적인 경쟁만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체제, 노동의 가치를 잃어버린 노동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남자들이 “인간적 가치가 없는 성과와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주”에 사로잡히면서 느림의 미덕, 과정의 가치, 시간의 음미와 같은 느긋함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산에 대한 압력, 해고와 실업에 대한 불안, 즐거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노역의 피로와 스트레스”는 남자들을 무기력한 상황에 빠지게 만든다. “더 이상 실수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고, 우정에 바칠 시간도 전혀 없으며, 공동의 의미 창출에 어떤 주의도 기울이지” 못한 채, “이중적이고 유연하고 빠른 적응력과 돈의 제단 위에서” “감각적 즐거움을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남자들. 이러한 “자본주의적 거세”, “관리자적 거세”에 길들여진 남자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여성들을 밀쳐 내고, 권력과 권위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세스페데스가 보기에 현대 남성들은 “삶을 ‘영유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고, 소모하고, 보이는 모든 것에 배포”할 뿐이다. “삶에서 얻은 획득물, 실패한 자아의 번지르르한 겉치레, 들뜬 옷치장, 무기력한 외피만을 간직하느라, 예견할 수 없으나 관계를 맺어 주는 어떤 것, 즉 혼융과 에로티즘의 부드러운 감정을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유혹하는 탐색의 긴 과정, 서로에게 서로를 아무런 이유 없이 기부하는 혼융의 순간까지 가는 긴 여정을 남자들은 견디지 못한다. 성과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남자들은 “페이스북에서 수음을 하고, 자신의 인생을 수음하는 것처럼 사정하고, 모든 감정을 비워 버리고, 이런 식으로 욕망과 욕망의 불확실성에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상태에 빠져 버린다. “다수가 소통하는 사이버 공동체에서 개개인은 아무에게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듣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과 자신의 바람기를 비판하고, 자신의 벽 속에서, 가상의 아고라 광장에서 욕구를 발산한다. 결과적으로 말해 흥분이 형체를 갖고, 표정을 갖고, 뿌리를 내리기 전에 모든 흥분을 토해내” 버린다.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며 현실적인 관계맺음을 두려워하고, 조악한 포르노(“포르노는 불확실성의 원칙을 가진 여성을 희생시키고, 평등한 권리, 평등한 환희로부터 섹스를 완전히 따로 떼어 낸 여성을, 값어치 나가는 물건 같은 여성을 치켜세우는 것이다.”)를 보면서 자신의 욕망을 자위하는 남자들은 더 이상 진짜 남자가 아니다.
체제의 폭력에 저항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역량 있는 남자”가 되는 길이다. 이런 남자들은 권력과 명예를 좇지도, 권력과 명예를 가진 남자들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또한 타인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것, 타인과 육체적?감정적으로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억압되는 성적 욕망에서의 해방
세스페데스는 건강한 남성성을 위해서는 성적인 욕망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욕망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스페데스가 보기에 남성의 성적인 욕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본연한 충동과 감정을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박제시키면서 자신과 상대방을 속이는 데 있다. 세스페데스는 진정한 남성성인 “위반하고 해방되는 능력”이 결혼 제도와 신금욕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연한 사랑은 누가 시키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서로에 대한 정조를 지키며, 서로에게 책임을 지며, 사랑이 사라졌을 때 서로를 상처 없이 떠나보낸다. 세스페데스는 유례없이 강조되는 결혼과 가정의 가치는 자본주의의 기만적 술책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성인이 되면 누구나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 또 다시 한 가정을 이루는 것, 이것이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열린 가정이나 공동체가 아닌 조각조각 해체된 핵가족은 “소비주의의 가장 효과적인 매개 수단”이다. 이러한 법적 제도의 추종자들은 자유-연애는 절대 안 되지만, 감정을 나누지 않는 타인과의 자유-섹스는 눈감아 주는 역설적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성적으로 도저히 금욕적일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는 성적인 죄책감, 짝짓기해야 하는 의무감에 휩싸인 채, 성적인 욕망을 결혼이라는 포르말린 속에 던져 버렸다고 저자는 한탄한다. 이 열정적인 사랑 예찬론자이자 로맨티스트는 원숙하고 진실된 사랑은 서로에 대한 책임, 정조, 존중을 자연스레 발현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유-성본능이 수용되고 자유-연애와 연계될 때, 자유-성본능은 섹스의 포로들인 호색한이나 색마를 양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삶을 역동적으로 만들고 아름답게 만드는 귀중한 기회로 섹스를 간주하는 남자와 여자를 양산해 낸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모든 경계와 금지 구역에 과감하게 발을 들여놓으라고 권한다. 양성 섹스와 애널 섹스를 왜 두려워하는가, 결혼하지 않을 자유, 열린 가정?열린 부성과 모성, 자유-연애를 왜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세스페데스는 남성들이 흔히 ‘호모적 정서’라고 비하하는 자질이 결국 남성들이 회복해야 하는 정서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성적인 에너지로 가득하다. 남근이 가진 생물학적이고 실존적인 특징이 온전한 남성성의 근원이며, 그것을 획득하도록 돕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남성성을 다루는 여타의 책과 뚜렷하게 차별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남근’에서 철학적 사유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 이것이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위태롭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노골적인 성적 표현, 남근에 대한 예찬, 여성에 대한 성적인 사유로 가득한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가 혹시 페미니즘으로 위장한 남성우월주의자는 아닌가, 혹은 여성을 단지 남성의 존엄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들러리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해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책은 정통적인 페미니즘 이론으로 무장한 책은 아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가 마초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남근 숭배를 보이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의미 있는 이유, 이 책의 원제가 『L’homme explique aux femmes(여자들에게 설명하는 남자)』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계가 있을지언정 남성의 언어로, 남성의 목소리로 남자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시도 속에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반짝거리고 있다.
당신이 알고 있던 남성성은 모두 가짜다
사람들은 남성을 ‘화성에서 온 생명체’로, 여성을 ‘금성에서 온 생명체’로 분류해 설명하곤 한다. 남자와 여자 간의 거리가 화성과 금성의 거리만큼이나 멀며,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현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진화심리학을 바탕으로 남성과 여성의 두뇌 구조와 기능에도 차이가 있다는 이론까지 등장했다. 그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세스페데스는, 보편적으로 봤을 때, 남성이 여성에 비해 비겁하고 이기적인 존재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잘못된 남성성에의 교육, 강요된 남성성에의 되물림이 남자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기존의 남성성은 남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강요한다. 두려움을 표현하면 안 된다, 용기 있게 행동해야 한다, 결점을 들키면 안 된다, 패배하면 안 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소년들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을 억지로 주입시킨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세계, 남자의 세계에서 단련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남자가 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아들이 되는 것”인데, 그것은 “너무나 자주 특별한 대우를, 다시 말해 완전히 잘못된 남성적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소년들에게 강요되는 감정의 은폐가 남성들이 비겁하게 되는 이유라고 지적한다. 소녀들이 어릴 때부터 공포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서 진정한 용기란 공포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체험하는 동안, 소년들은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교육받으면서 공포를 은폐하기 때문에 진정한 용기를 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소녀들에게 교육하는 것처럼 “소년들에게도 똑같은 철학” 즉, “타인과 자기 자신에게 주의하는 것, 책임감에 대한 성향, 집안일을” 교육해야만 남성적 비겁함이 후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의 결점과 자신들의 공포를 인정하는 남자들”이야말로 진짜 남자다운 남자인 것이다.
세스페데스가 보기에 남자들이 비겁해진 또 다른 원인은 “모순과 결점 들을 보여 주지 못하게 막았던 남성적 완벽성에 대한 예전의 이상”이다. “체면을 결코 손상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남자들은 비겁해지고 위선자가 된다. 남성성은 여성성이 그러한 것처럼 그것 자체로 완벽하거나 온전하지 않다. 진정한 남성성은 다른 것에 의해 충족되는 것이고, 보태지는 것이다. 여자들에게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고, 무지를 들키면 마치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릴 것처럼 구는 남성성이야말로 가장 한심한 남성성이다.
“오늘날 ‘남자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 때문에 남자들은 “먼저 그런 기준들의 쇠락과 불완전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성성이라는 기존의 요소들을 거부하는 것, 기존의 남성성이 남자들을 오히려 불행하고 비겁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남자들은 행복해진다. 그리고 행복한 남자가 진짜 남자다운 남자다.
가장 남자다운 남자가 되는 길
수전 손택은 “남성들이 갖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여성적 예감이고, 여성들이 갖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남성적 예감”이라고 말했다.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여성과 어머니가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여성들은 남성과 아버지가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여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욕망이 욕망의 대상에 의해 물들여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고, 훈계하지 않고 공감의 효력에 의해 우리를 타인에게 배어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이 책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노골적이고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는 있지만, 이 또한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이 새롭지 않은 이야기가 신선하고 산뜻하게 들리는 이유는 남자들의 침실, 남자들의 바지 속, 남자들의 마음속을 누비며 그들의 말 못할 사정을 대신 들려주고, 남자들이 부정할 수 없는 비판적 사유를 그들에게 직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성은 종말하고 있지 않다. 패배한 것도 아니다. 여성이 그들의 자리를 빼앗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단순한 인식은 계층과 계급의 문제를 도외시한 결과이며,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된 남성성, 강요된 남성성 안에서 여성성마저 왜곡하여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눈감아 버리게 만든다. 남성과 여성을 경쟁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 남성과 여성의 영역을 극단적으로 나누는 것조차 사실은 잘못된 남성성, 왜곡된 여성성의 폐해일지도 모른다. 남성과 여성이 가장 높은 자리로 오르기 위해 서로를 적대하고 서로 싸워야 하는 이질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이제는 우리 안의 중성성을 인식하고 회복하여 양성이 행복해지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사회적 관습, 제도, 이데올로기가 사실은 진실을 감추고 있는 껍데기일 수도 있다고 인식하는 것, 그것이 남성과 여성 모두가 행복해지는 시작일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뱅상 세스페데스 (Vincent Cespedes)
현대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철학자. 1973년 프랑스의 오베르빌리에(Auvervilliers, Seine-Saint-Denis)에서 태어나 소르본 대학(파리4대학)에서 철학과 음악을 공부했다. 1997~2002년에 ZEP(프랑스의 교육우선지구)에서 철학을 강의하다가, 음악과 저술에 전념하기 위해 교사직을 그만두고, 철학과 현실 생활을 연계한 다양한 주제의 에세이를 저술하고 있다.
2001년에 철학 에세이 『너를 높이 쳐올린다I loft You』(조작된 현실을 보여주는 텔레비전에 대한 비판서)를 시작으로, 『콘크리트 위의 버찌, 교외의 폭력과 야만적 자유주의La Cerise sur le beton. Violences urbaines et liberalisme sauvage』(2002), 『비관주의, 정책의 르네상스를 위하여Sinistrose. Pour une renaissance du politique』(2002), 『너를 사랑해: 사랑의 새로운 정책Je t’aime. Une autre politique de l’amour』(2003), 『혼융하자. 인간적 연금술을 위한 앙케트Melangeons-nous. Enquete sur l’alchimie humaine』(2006), 『68년 5월, 철학은 길 위에 있다!Mai 68, la philosophie est dans la rue!』(2008), 『행복에 대한 신비한 연구Magiqu... e etude du Bonheur』(2010) 등을 썼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인간의 내면과 정치를 연결하는 새로운 인문주의적 활기론”이라 표방한다. 정식 스승도 없고, 특정 학파에 속하지도 않은 그에게는 팬도 많지만,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모든 우상에 도전하는 역동적인 사유로 인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지식인으로 꼽히는 반면, 다소 과해 보일 수 있는 주장 탓에 인터넷에선 “철학계의 브리스(프랑스 영화 〈니스의 브리스Brice De Nice〉의 주인공으로, 어리숙하고 철없는 캐릭터)”라고 불리기도 한다.
2008년에 좌파 지성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가 선정한 ‘50명의 스타 사상가’ 중에서 ‘젊은 감시자’의 칭호를 부여받았고, 2009년에는 프랑스의 유력 주간지 『르 주르날 뒤 디망쉬Le Journal du Dimanche』가 선정한 ‘21세기 지성인 5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2008년부터 라루스 출판사의 ‘철학’ 총서를 주관하여 출판하고 있다.
역자 : 고광식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불문과와 동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뒤, 파리8대학에서 「프랑스어와 한국어의 비교 관점에서 본 한정화 전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소속으로 프랑스어, 패션 등을 강의하고 있다. 언어 이론과 패션의 관계, 언어 이론과 퓨전 음식과의 관계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수석편집위원으로 언어와 번역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르몽드 환경 아틀라스』, 『감시와 처벌』, 『자유론』, 『카인』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글_ 고장 난 남자들
더 나은 수컷 / 영혼과 육체의 분리 그리고 좌절감 / 위기에 빠진 사랑 / 억압되는 자유-성본능
1장. 우리는 남자다운가
남자다움의 자질 / 권력 지향적 남성성과 역량 지향적 남성성 / 신성한 자위 본능 / 위반하고 해방되는 능력 / 불알의 철학 / 행복한 남자가 가장 남자답다
2장. 성과와 속도의 시대
자본주의적 거세 / 노동에 상처받은 남성성 / 욕망에 대한 알레르기 / 사이버 남근이 된 스마트폰 / 신비한 남성성을 향하여
3장. 유혹하라, 뜨겁고 자유롭게
여자낚기와 유혹 / 가짜-유혹 / 자유-성본능 / 남자에서 남자로
4장. 섹스, 우리의 멋진 즐거움
욕망의 명백한 대상 / 곁눈질하다 / 신금욕주의의 은밀한 속임수 / 천천히 음미하기 / 두려움 없는 남성적 에로티즘
5장. 겁쟁이들, 결국 에고이스트들인가
슈퍼맨에 대한 환상 / 공포를 은폐하는 남자들 / 자신을 기부하라
6장. 짝짓기, 눈 감은 비극
보노보 침팬지 시나리오 / 자제하다 / 짝짓기의 허구 / 시기심이라는 맹수의 발톱 / 욕망의 변질 / 헛스윙 / 자유-연애, 거대한 도덕적 혁명
7장. 사악한 아버지들
아이를 ‘갖다’ / 프로이트의 거짓말 / 열린 가족, 열린 부성 / 모성애적 부성
맺는 글_ 남자안의 여자, 여자 안의 남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우리 남자들은 어디쯤 와 있을까?
여자들은 우리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한 철학자가 써내려간 남자에 대한 불온한 보고서
남자들은 피곤하다. 똑똑하고 열정 넘치는 여자들이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고, 심지어는 남자들을 앞지르고 있다. 부인과 애인은 가정적이고 다정한 남자가 되라고 잔소리를 쏟아 내고, 사회는 남자다운 남자가 되어야 한다고 등을 떠민다. 대체 그들이 원하는 남자는 어떤 남자란 말인가.
프랑스의 젊은 철학자 뱅상 세스페데스가 표류하고 있는 이 시대 남자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감을 상실하고 주눅 들어 버린 남자들, 포르노에 탐닉하고 스마트폰과 페이스북에 몰두하는 남자들, 관계맺기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자신만의 방에 가두어 버린 남자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는 그런 위태로운 남자들을 위로하거나 변호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가 보기에 이런 남자들은 ‘남성성’을 상실한 무기력한 남자일 뿐이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시라. 그가 가치를 두는 ‘남성성’은 마초들이 부르짖는 ‘남성성’과는 전혀 다른 ‘남성성’이다. “남성우월주의적 의미의 ‘남성성 상실’은 이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시기가 왔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 남성성이 상실되어야만 남자가 인간적인 존재가 되고, 무엇인가를 지배해야 한다는 의무나 굴레에서 벗어나 “타인에 대해 더 개방적이고 멋진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남성성’은 ‘에로틱한 남성성’, ‘배반하고 저항하는 남성성’, ‘부족함과 나약함을 인정할 줄 아는 남성성’이다. 세스페데스는 진짜 남자가 되려면 “죽을 지경에 이를 정도로 남성 호르몬이 넘치게 주입된 육체라는 욕망의 장소, 바로 그곳”인 ‘남근’에서부터 남자의 “감정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근은 생물학적으로나 실존적으로 “아름다움을 생산하고, 확고한 것들에 대해 환상을 품게 하고, 감정을 뒤흔드는 카오스와 외부의 소란”에 남자를 적응시키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남성의 힘이 왕성하게 발효되는 곳, 성의 뿌리를 의미하면서 삶이라는 공장의 근거이기도 한 곳, 현존, 생식 능력, 허약함을 모두 내포”하는 곳인 남근에서부터 그의 철학은 시작된다. 불온하고 노골적으로 들리는가. 그렇다. 그가 추구하는 남성성이 바로 불온하고 노골적인 남성성이다.
남자들은 왜 무력해졌을까
왜 남자들은 사랑에 소극적이고, 욕망을 상실하고, 기계와 화면 안에서만 활력을 보이는 무감각한 존재가 되어 버렸을까? 정말 여자들이 남자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고,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극악하게 남성을 여성화시켜 버렸기 때문일까? 남자들은 정말 종말한 것일까? 여자들에게 패배한 것일까?
세스페데스는 남자들의 무력감은, 눈부신 성과와 극단적인 경쟁만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체제, 노동의 가치를 잃어버린 노동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남자들이 “인간적 가치가 없는 성과와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주”에 사로잡히면서 느림의 미덕, 과정의 가치, 시간의 음미와 같은 느긋함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산에 대한 압력, 해고와 실업에 대한 불안, 즐거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노역의 피로와 스트레스”는 남자들을 무기력한 상황에 빠지게 만든다. “더 이상 실수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고, 우정에 바칠 시간도 전혀 없으며, 공동의 의미 창출에 어떤 주의도 기울이지” 못한 채, “이중적이고 유연하고 빠른 적응력과 돈의 제단 위에서” “감각적 즐거움을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남자들. 이러한 “자본주의적 거세”, “관리자적 거세”에 길들여진 남자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여성들을 밀쳐 내고, 권력과 권위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세스페데스가 보기에 현대 남성들은 “삶을 ‘영유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고, 소모하고, 보이는 모든 것에 배포”할 뿐이다. “삶에서 얻은 획득물, 실패한 자아의 번지르르한 겉치레, 들뜬 옷치장, 무기력한 외피만을 간직하느라, 예견할 수 없으나 관계를 맺어 주는 어떤 것, 즉 혼융과 에로티즘의 부드러운 감정을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유혹하는 탐색의 긴 과정, 서로에게 서로를 아무런 이유 없이 기부하는 혼융의 순간까지 가는 긴 여정을 남자들은 견디지 못한다. 성과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남자들은 “페이스북에서 수음을 하고, 자신의 인생을 수음하는 것처럼 사정하고, 모든 감정을 비워 버리고, 이런 식으로 욕망과 욕망의 불확실성에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상태에 빠져 버린다. “다수가 소통하는 사이버 공동체에서 개개인은 아무에게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듣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과 자신의 바람기를 비판하고, 자신의 벽 속에서, 가상의 아고라 광장에서 욕구를 발산한다. 결과적으로 말해 흥분이 형체를 갖고, 표정을 갖고, 뿌리를 내리기 전에 모든 흥분을 토해내” 버린다.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며 현실적인 관계맺음을 두려워하고, 조악한 포르노(“포르노는 불확실성의 원칙을 가진 여성을 희생시키고, 평등한 권리, 평등한 환희로부터 섹스를 완전히 따로 떼어 낸 여성을, 값어치 나가는 물건 같은 여성을 치켜세우는 것이다.”)를 보면서 자신의 욕망을 자위하는 남자들은 더 이상 진짜 남자가 아니다.
체제의 폭력에 저항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역량 있는 남자”가 되는 길이다. 이런 남자들은 권력과 명예를 좇지도, 권력과 명예를 가진 남자들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또한 타인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것, 타인과 육체적?감정적으로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억압되는 성적 욕망에서의 해방
세스페데스는 건강한 남성성을 위해서는 성적인 욕망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욕망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스페데스가 보기에 남성의 성적인 욕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본연한 충동과 감정을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박제시키면서 자신과 상대방을 속이는 데 있다. 세스페데스는 진정한 남성성인 “위반하고 해방되는 능력”이 결혼 제도와 신금욕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연한 사랑은 누가 시키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서로에 대한 정조를 지키며, 서로에게 책임을 지며, 사랑이 사라졌을 때 서로를 상처 없이 떠나보낸다. 세스페데스는 유례없이 강조되는 결혼과 가정의 가치는 자본주의의 기만적 술책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성인이 되면 누구나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 또 다시 한 가정을 이루는 것, 이것이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열린 가정이나 공동체가 아닌 조각조각 해체된 핵가족은 “소비주의의 가장 효과적인 매개 수단”이다. 이러한 법적 제도의 추종자들은 자유-연애는 절대 안 되지만, 감정을 나누지 않는 타인과의 자유-섹스는 눈감아 주는 역설적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성적으로 도저히 금욕적일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는 성적인 죄책감, 짝짓기해야 하는 의무감에 휩싸인 채, 성적인 욕망을 결혼이라는 포르말린 속에 던져 버렸다고 저자는 한탄한다. 이 열정적인 사랑 예찬론자이자 로맨티스트는 원숙하고 진실된 사랑은 서로에 대한 책임, 정조, 존중을 자연스레 발현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유-성본능이 수용되고 자유-연애와 연계될 때, 자유-성본능은 섹스의 포로들인 호색한이나 색마를 양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삶을 역동적으로 만들고 아름답게 만드는 귀중한 기회로 섹스를 간주하는 남자와 여자를 양산해 낸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모든 경계와 금지 구역에 과감하게 발을 들여놓으라고 권한다. 양성 섹스와 애널 섹스를 왜 두려워하는가, 결혼하지 않을 자유, 열린 가정?열린 부성과 모성, 자유-연애를 왜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세스페데스는 남성들이 흔히 ‘호모적 정서’라고 비하하는 자질이 결국 남성들이 회복해야 하는 정서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성적인 에너지로 가득하다. 남근이 가진 생물학적이고 실존적인 특징이 온전한 남성성의 근원이며, 그것을 획득하도록 돕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남성성을 다루는 여타의 책과 뚜렷하게 차별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남근’에서 철학적 사유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 이것이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위태롭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노골적인 성적 표현, 남근에 대한 예찬, 여성에 대한 성적인 사유로 가득한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가 혹시 페미니즘으로 위장한 남성우월주의자는 아닌가, 혹은 여성을 단지 남성의 존엄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들러리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해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책은 정통적인 페미니즘 이론으로 무장한 책은 아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가 마초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남근 숭배를 보이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의미 있는 이유, 이 책의 원제가 『L’homme explique aux femmes(여자들에게 설명하는 남자)』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계가 있을지언정 남성의 언어로, 남성의 목소리로 남자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시도 속에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반짝거리고 있다.
당신이 알고 있던 남성성은 모두 가짜다
사람들은 남성을 ‘화성에서 온 생명체’로, 여성을 ‘금성에서 온 생명체’로 분류해 설명하곤 한다. 남자와 여자 간의 거리가 화성과 금성의 거리만큼이나 멀며,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현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진화심리학을 바탕으로 남성과 여성의 두뇌 구조와 기능에도 차이가 있다는 이론까지 등장했다. 그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세스페데스는, 보편적으로 봤을 때, 남성이 여성에 비해 비겁하고 이기적인 존재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잘못된 남성성에의 교육, 강요된 남성성에의 되물림이 남자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기존의 남성성은 남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강요한다. 두려움을 표현하면 안 된다, 용기 있게 행동해야 한다, 결점을 들키면 안 된다, 패배하면 안 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소년들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을 억지로 주입시킨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세계, 남자의 세계에서 단련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남자가 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아들이 되는 것”인데, 그것은 “너무나 자주 특별한 대우를, 다시 말해 완전히 잘못된 남성적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소년들에게 강요되는 감정의 은폐가 남성들이 비겁하게 되는 이유라고 지적한다. 소녀들이 어릴 때부터 공포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서 진정한 용기란 공포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체험하는 동안, 소년들은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교육받으면서 공포를 은폐하기 때문에 진정한 용기를 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소녀들에게 교육하는 것처럼 “소년들에게도 똑같은 철학” 즉, “타인과 자기 자신에게 주의하는 것, 책임감에 대한 성향, 집안일을” 교육해야만 남성적 비겁함이 후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의 결점과 자신들의 공포를 인정하는 남자들”이야말로 진짜 남자다운 남자인 것이다.
세스페데스가 보기에 남자들이 비겁해진 또 다른 원인은 “모순과 결점 들을 보여 주지 못하게 막았던 남성적 완벽성에 대한 예전의 이상”이다. “체면을 결코 손상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남자들은 비겁해지고 위선자가 된다. 남성성은 여성성이 그러한 것처럼 그것 자체로 완벽하거나 온전하지 않다. 진정한 남성성은 다른 것에 의해 충족되는 것이고, 보태지는 것이다. 여자들에게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고, 무지를 들키면 마치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릴 것처럼 구는 남성성이야말로 가장 한심한 남성성이다.
“오늘날 ‘남자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 때문에 남자들은 “먼저 그런 기준들의 쇠락과 불완전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성성이라는 기존의 요소들을 거부하는 것, 기존의 남성성이 남자들을 오히려 불행하고 비겁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남자들은 행복해진다. 그리고 행복한 남자가 진짜 남자다운 남자다.
가장 남자다운 남자가 되는 길
수전 손택은 “남성들이 갖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여성적 예감이고, 여성들이 갖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남성적 예감”이라고 말했다.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여성과 어머니가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여성들은 남성과 아버지가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여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욕망이 욕망의 대상에 의해 물들여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고, 훈계하지 않고 공감의 효력에 의해 우리를 타인에게 배어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이 책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노골적이고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는 있지만, 이 또한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이 새롭지 않은 이야기가 신선하고 산뜻하게 들리는 이유는 남자들의 침실, 남자들의 바지 속, 남자들의 마음속을 누비며 그들의 말 못할 사정을 대신 들려주고, 남자들이 부정할 수 없는 비판적 사유를 그들에게 직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성은 종말하고 있지 않다. 패배한 것도 아니다. 여성이 그들의 자리를 빼앗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단순한 인식은 계층과 계급의 문제를 도외시한 결과이며,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된 남성성, 강요된 남성성 안에서 여성성마저 왜곡하여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눈감아 버리게 만든다. 남성과 여성을 경쟁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 남성과 여성의 영역을 극단적으로 나누는 것조차 사실은 잘못된 남성성, 왜곡된 여성성의 폐해일지도 모른다. 남성과 여성이 가장 높은 자리로 오르기 위해 서로를 적대하고 서로 싸워야 하는 이질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이제는 우리 안의 중성성을 인식하고 회복하여 양성이 행복해지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사회적 관습, 제도, 이데올로기가 사실은 진실을 감추고 있는 껍데기일 수도 있다고 인식하는 것, 그것이 남성과 여성 모두가 행복해지는 시작일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뱅상 세스페데스 (Vincent Cespedes)
현대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철학자. 1973년 프랑스의 오베르빌리에(Auvervilliers, Seine-Saint-Denis)에서 태어나 소르본 대학(파리4대학)에서 철학과 음악을 공부했다. 1997~2002년에 ZEP(프랑스의 교육우선지구)에서 철학을 강의하다가, 음악과 저술에 전념하기 위해 교사직을 그만두고, 철학과 현실 생활을 연계한 다양한 주제의 에세이를 저술하고 있다.
2001년에 철학 에세이 『너를 높이 쳐올린다I loft You』(조작된 현실을 보여주는 텔레비전에 대한 비판서)를 시작으로, 『콘크리트 위의 버찌, 교외의 폭력과 야만적 자유주의La Cerise sur le beton. Violences urbaines et liberalisme sauvage』(2002), 『비관주의, 정책의 르네상스를 위하여Sinistrose. Pour une renaissance du politique』(2002), 『너를 사랑해: 사랑의 새로운 정책Je t’aime. Une autre politique de l’amour』(2003), 『혼융하자. 인간적 연금술을 위한 앙케트Melangeons-nous. Enquete sur l’alchimie humaine』(2006), 『68년 5월, 철학은 길 위에 있다!Mai 68, la philosophie est dans la rue!』(2008), 『행복에 대한 신비한 연구Magiqu... e etude du Bonheur』(2010) 등을 썼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인간의 내면과 정치를 연결하는 새로운 인문주의적 활기론”이라 표방한다. 정식 스승도 없고, 특정 학파에 속하지도 않은 그에게는 팬도 많지만,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모든 우상에 도전하는 역동적인 사유로 인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지식인으로 꼽히는 반면, 다소 과해 보일 수 있는 주장 탓에 인터넷에선 “철학계의 브리스(프랑스 영화 〈니스의 브리스Brice De Nice〉의 주인공으로, 어리숙하고 철없는 캐릭터)”라고 불리기도 한다.
2008년에 좌파 지성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가 선정한 ‘50명의 스타 사상가’ 중에서 ‘젊은 감시자’의 칭호를 부여받았고, 2009년에는 프랑스의 유력 주간지 『르 주르날 뒤 디망쉬Le Journal du Dimanche』가 선정한 ‘21세기 지성인 5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2008년부터 라루스 출판사의 ‘철학’ 총서를 주관하여 출판하고 있다.
역자 : 고광식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불문과와 동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뒤, 파리8대학에서 「프랑스어와 한국어의 비교 관점에서 본 한정화 전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소속으로 프랑스어, 패션 등을 강의하고 있다. 언어 이론과 패션의 관계, 언어 이론과 퓨전 음식과의 관계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수석편집위원으로 언어와 번역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르몽드 환경 아틀라스』, 『감시와 처벌』, 『자유론』, 『카인』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글_ 고장 난 남자들
더 나은 수컷 / 영혼과 육체의 분리 그리고 좌절감 / 위기에 빠진 사랑 / 억압되는 자유-성본능
1장. 우리는 남자다운가
남자다움의 자질 / 권력 지향적 남성성과 역량 지향적 남성성 / 신성한 자위 본능 / 위반하고 해방되는 능력 / 불알의 철학 / 행복한 남자가 가장 남자답다
2장. 성과와 속도의 시대
자본주의적 거세 / 노동에 상처받은 남성성 / 욕망에 대한 알레르기 / 사이버 남근이 된 스마트폰 / 신비한 남성성을 향하여
3장. 유혹하라, 뜨겁고 자유롭게
여자낚기와 유혹 / 가짜-유혹 / 자유-성본능 / 남자에서 남자로
4장. 섹스, 우리의 멋진 즐거움
욕망의 명백한 대상 / 곁눈질하다 / 신금욕주의의 은밀한 속임수 / 천천히 음미하기 / 두려움 없는 남성적 에로티즘
5장. 겁쟁이들, 결국 에고이스트들인가
슈퍼맨에 대한 환상 / 공포를 은폐하는 남자들 / 자신을 기부하라
6장. 짝짓기, 눈 감은 비극
보노보 침팬지 시나리오 / 자제하다 / 짝짓기의 허구 / 시기심이라는 맹수의 발톱 / 욕망의 변질 / 헛스윙 / 자유-연애, 거대한 도덕적 혁명
7장. 사악한 아버지들
아이를 ‘갖다’ / 프로이트의 거짓말 / 열린 가족, 열린 부성 / 모성애적 부성
맺는 글_ 남자안의 여자, 여자 안의 남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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