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일본 대지진 100일!
후쿠시마 원전사태!
다시 돌아보는, 1945년 나가사키의 절규
핵과 인류는 공존할 수 없다!
지난 3월 11일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지대를 덮치면서 전 세계를 방사능 오염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었다. 6월 18일로 일본 대지진은 100일을 맞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아직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미 엄청난 양의 방사능 오염수를 방출했고,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까지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바야흐로 핵의 공포가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일본은 핵의 공포를 가장 잘 학습하고 있는 나라였다. 그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폭 투하를, 그것도 두 차례나 경험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한 발씩 투하되었다. 그렇게 투하된 원자폭탄은 일거에 두 도시를 날려 버렸다. 1945년 연말을 기준으로 총 사망자만 21만에 달했다. 피폭 후유증으로 사망한 이들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족히 100만을 헤아릴 것이다.
이 책은 1945년 8월 9일, 그날의 기록이다. 그날, 저자 나가이 다카시는 나가사키 의과대학의 연구실에서 강의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가사키의 모든 사람들은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11시 2분, 나가사키의 우라카미 상공에서 한 발의 원자폭탄이 “번쩍, 쾅!”하자,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평화로웠던 나가사키는 일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토네이도의 열 배에 달하는 위력의 원자 폭풍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고, 철을 녹이는 용광로보다 배 이상 뜨거운 열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줌의 재가 되었다. 살아남은 이들도 심각한 부상과 방사능 피폭으로 겨우 숨만 붙어있을 뿐이었다. 나가이 다카시 역시 동맥이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고, 아내를 잃었지만, 불바다로 변한 현장에서 남은 의료진을 모아 구호활동을 개시했다.
나가이 다카시는 그날의 사건을 기록하여 1945년 10월, ‘구호대활동보고서’로 제출했다. 이는 원자폭탄에 대한 인류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것이었다. 원고를 검열했던 미국 국방성이 그 충격적인 내용에 놀라 한동안 출판을 금지하였을 정도였다. 그들은 그날, 나가사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기를 바랐다. 하지만 저자는 이 끔찍한 기록을 남긴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만 두라, 멈춰라, 전쟁만큼은 하지 말아다오. 사람들은 원자폭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불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진상을 그대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곧바로 연필을 잡고 나가사키 최후의 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기록했다.”
나가이 다카시는 원자병으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어 지독한 고통과 싸우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그것은 바로 반전의 메시지를 전하고 원폭의 실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의 글에는 방사선 의학자였던 자신이 몸소 겪은 원폭의 현실이나 원자병 치료 사례 등의 학술적인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감 없는 현장 기록이다. 또한 고아로 남겨질 어린 남매에 대한 절절한 부성 역시 곳곳에 녹아 있어 독자로 하여금 눈물짓게 한다. 특히 이 책, 「그날, 나가사키에 무슨 일이 있었나(원제 : 나가사키의 종)」은 베스트셀러로서 전후 수많은 일본인의 심금을 울려 영화와 노래로도 제작되었다. 그로부터 66년이 지난 2011년! 인류는 원자폭탄에서 원전으로 변신한 핵과 맞닥뜨리고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핵의 공포를 겪어왔던 일본인들마저 안전을 장담하며 많은 원전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 대지진과 쓰나미로 원전과 원폭이 핵의 양면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산업화의 미명 아래, 가장 안전한 에너지라는 맹목적인 믿음 위에, 그들이 건설한 원전의 실체는 문자 그대로 ‘죽음의 신(神)’이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세계 각국은 자국의 에너지 정책을 원전폐지와 축소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런데 오직 한국과 중국만이 계속 원전확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경제적 실리라는 명분으로 전 세계를 방사능 오염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핵 발전을 계속하겠다는 그들의 논리는, 핵무기로 자국의 국방을 지키겠다는 군사 위협과 다르지 않다. 핵은 더 이상 인류와 공존할 수 없다! 여기 1945년 나가사키에서 울려 퍼진 한 사람의 절규가 우리에게 그 사실을 증명한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평화와 반핵’을 외쳤던 나가이 다카시. 진정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때마다 우리는 그가 방문객들에게 적어주었다는 한 문장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여기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 작가 소개
저 : 나가이 다카시
永井 陸
1908년 일본 마쓰에 시(松江市)에서 태어났다. 1932년 나가사키(長崎)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뒤 대학에 남아 방사선 연구에 매달렸다. 군의관으로 징병되어 만주 전쟁터에서 위문품 속에 들어있던『공교요리(公敎要理)』를 읽고 귀환 후, 우라가미(浦上) 천주교회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방사선 장애로 인한 백혈병으로 시한부 생명을 이어가던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그 자신도 중상을 입었다. 그런 처지에서도 깊은 신앙심에서 우러난 박애 정신으로 이재민들을 돌보았으며, 의학적 관심을 넘어서는 박사의 노력은 나가사키 시의 문화와 도시 복구, 더 나아가 세계 평화에 관한 깊은 성찰로 이어졌다. 하지만 병마를 떨치지 못한 박사가 몸져눕자 1949년에는 교황이 길로이 추기경을 특사로 파견해 문병하는 한편, 헬렌 켈러 여사가 방문하기도 했다.
나가사키 시에서는 같은 해 12월, 그에게 영원한 ''명예시민''이라는 칭호를 바쳤다. 1951년 5월 1일에 세상을 떠났지만, 평화를 그리는 박사의 절절한 바람은 그가 남긴 글을 통해 세계인들의 가슴에 남아 있으며, 나가사키 현과 시에서는 ''나가이 다카시 기념 나가사키 평화상''을 제정, 방사선 피해자들의 복지와 치료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수여하고 있다. 저서에는 『이 아이들을 남겨두고』『꽃 피는 언덕』『생명의 강』『촌의(村醫』『평화의 탑』『여기당(如己堂) 수필』『나가사키의 종(鍾)』『사랑스런 아이여』『로사리오의 기도』등이 있다.
역자 : 김재일
고 김재일 목사는 1958년에 출생했다.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 충북 베다니교회와 강원도 홍천의 보리울교회에서 각기 6년씩 목회를 했으며, 경기도 화성의 아름다운성빛교회를 거쳐 연평도 연평교회를 섬겼다. 평생 농촌선교에 헌신하였으며, 예장 생활협동조합 초기부터 활동하여 상임이사를 역임하였다. 생태ㆍ환경 중심의 삶을 추구하며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고자 애쓰다가, 2010년 4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역서로는 『사선을 넘는 믿음으로』, 『돈 한 푼 없이 부자로 사는 법』, 『아미시 그레이스』,『아이를 변화시키는 두뇌음식』,『내 몸 내가 고치는 기적의 밥상』,『내 몸 내가 고치는 식생활 혁명』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1장 1945년 8월 9일
폭풍전야의 나가사키
번쩍, 쾅!
태양이 빛을 잃다
친구의 아이
2장 세상의 종말
전멸, 사람을 먼저 구한다
생존자들의 밤
죽창과 원자폭탄
거대한 무덤
아내의 묵주
3장 여기애인(如己愛人)
순례자들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하여
살아남은 자의 슬픔
4장 전쟁은 끝났지만
인류최초의 원자병
원자병의 치료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아버지의 유산
5장 평화의 기도
슬퍼하는 자들은 행복하다
나가사키의 종
죽음 앞에서
유언, 사랑하는 아이들아
일본 대지진 100일!
후쿠시마 원전사태!
다시 돌아보는, 1945년 나가사키의 절규
핵과 인류는 공존할 수 없다!
지난 3월 11일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지대를 덮치면서 전 세계를 방사능 오염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었다. 6월 18일로 일본 대지진은 100일을 맞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아직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미 엄청난 양의 방사능 오염수를 방출했고,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까지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바야흐로 핵의 공포가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일본은 핵의 공포를 가장 잘 학습하고 있는 나라였다. 그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폭 투하를, 그것도 두 차례나 경험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한 발씩 투하되었다. 그렇게 투하된 원자폭탄은 일거에 두 도시를 날려 버렸다. 1945년 연말을 기준으로 총 사망자만 21만에 달했다. 피폭 후유증으로 사망한 이들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족히 100만을 헤아릴 것이다.
이 책은 1945년 8월 9일, 그날의 기록이다. 그날, 저자 나가이 다카시는 나가사키 의과대학의 연구실에서 강의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가사키의 모든 사람들은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11시 2분, 나가사키의 우라카미 상공에서 한 발의 원자폭탄이 “번쩍, 쾅!”하자,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평화로웠던 나가사키는 일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토네이도의 열 배에 달하는 위력의 원자 폭풍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고, 철을 녹이는 용광로보다 배 이상 뜨거운 열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줌의 재가 되었다. 살아남은 이들도 심각한 부상과 방사능 피폭으로 겨우 숨만 붙어있을 뿐이었다. 나가이 다카시 역시 동맥이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고, 아내를 잃었지만, 불바다로 변한 현장에서 남은 의료진을 모아 구호활동을 개시했다.
나가이 다카시는 그날의 사건을 기록하여 1945년 10월, ‘구호대활동보고서’로 제출했다. 이는 원자폭탄에 대한 인류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것이었다. 원고를 검열했던 미국 국방성이 그 충격적인 내용에 놀라 한동안 출판을 금지하였을 정도였다. 그들은 그날, 나가사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기를 바랐다. 하지만 저자는 이 끔찍한 기록을 남긴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만 두라, 멈춰라, 전쟁만큼은 하지 말아다오. 사람들은 원자폭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불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진상을 그대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곧바로 연필을 잡고 나가사키 최후의 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기록했다.”
나가이 다카시는 원자병으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어 지독한 고통과 싸우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그것은 바로 반전의 메시지를 전하고 원폭의 실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의 글에는 방사선 의학자였던 자신이 몸소 겪은 원폭의 현실이나 원자병 치료 사례 등의 학술적인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감 없는 현장 기록이다. 또한 고아로 남겨질 어린 남매에 대한 절절한 부성 역시 곳곳에 녹아 있어 독자로 하여금 눈물짓게 한다. 특히 이 책, 「그날, 나가사키에 무슨 일이 있었나(원제 : 나가사키의 종)」은 베스트셀러로서 전후 수많은 일본인의 심금을 울려 영화와 노래로도 제작되었다. 그로부터 66년이 지난 2011년! 인류는 원자폭탄에서 원전으로 변신한 핵과 맞닥뜨리고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핵의 공포를 겪어왔던 일본인들마저 안전을 장담하며 많은 원전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 대지진과 쓰나미로 원전과 원폭이 핵의 양면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산업화의 미명 아래, 가장 안전한 에너지라는 맹목적인 믿음 위에, 그들이 건설한 원전의 실체는 문자 그대로 ‘죽음의 신(神)’이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세계 각국은 자국의 에너지 정책을 원전폐지와 축소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런데 오직 한국과 중국만이 계속 원전확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경제적 실리라는 명분으로 전 세계를 방사능 오염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핵 발전을 계속하겠다는 그들의 논리는, 핵무기로 자국의 국방을 지키겠다는 군사 위협과 다르지 않다. 핵은 더 이상 인류와 공존할 수 없다! 여기 1945년 나가사키에서 울려 퍼진 한 사람의 절규가 우리에게 그 사실을 증명한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평화와 반핵’을 외쳤던 나가이 다카시. 진정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때마다 우리는 그가 방문객들에게 적어주었다는 한 문장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여기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 작가 소개
저 : 나가이 다카시
永井 陸
1908년 일본 마쓰에 시(松江市)에서 태어났다. 1932년 나가사키(長崎)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뒤 대학에 남아 방사선 연구에 매달렸다. 군의관으로 징병되어 만주 전쟁터에서 위문품 속에 들어있던『공교요리(公敎要理)』를 읽고 귀환 후, 우라가미(浦上) 천주교회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방사선 장애로 인한 백혈병으로 시한부 생명을 이어가던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그 자신도 중상을 입었다. 그런 처지에서도 깊은 신앙심에서 우러난 박애 정신으로 이재민들을 돌보았으며, 의학적 관심을 넘어서는 박사의 노력은 나가사키 시의 문화와 도시 복구, 더 나아가 세계 평화에 관한 깊은 성찰로 이어졌다. 하지만 병마를 떨치지 못한 박사가 몸져눕자 1949년에는 교황이 길로이 추기경을 특사로 파견해 문병하는 한편, 헬렌 켈러 여사가 방문하기도 했다.
나가사키 시에서는 같은 해 12월, 그에게 영원한 ''명예시민''이라는 칭호를 바쳤다. 1951년 5월 1일에 세상을 떠났지만, 평화를 그리는 박사의 절절한 바람은 그가 남긴 글을 통해 세계인들의 가슴에 남아 있으며, 나가사키 현과 시에서는 ''나가이 다카시 기념 나가사키 평화상''을 제정, 방사선 피해자들의 복지와 치료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수여하고 있다. 저서에는 『이 아이들을 남겨두고』『꽃 피는 언덕』『생명의 강』『촌의(村醫』『평화의 탑』『여기당(如己堂) 수필』『나가사키의 종(鍾)』『사랑스런 아이여』『로사리오의 기도』등이 있다.
역자 : 김재일
고 김재일 목사는 1958년에 출생했다.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 충북 베다니교회와 강원도 홍천의 보리울교회에서 각기 6년씩 목회를 했으며, 경기도 화성의 아름다운성빛교회를 거쳐 연평도 연평교회를 섬겼다. 평생 농촌선교에 헌신하였으며, 예장 생활협동조합 초기부터 활동하여 상임이사를 역임하였다. 생태ㆍ환경 중심의 삶을 추구하며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고자 애쓰다가, 2010년 4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역서로는 『사선을 넘는 믿음으로』, 『돈 한 푼 없이 부자로 사는 법』, 『아미시 그레이스』,『아이를 변화시키는 두뇌음식』,『내 몸 내가 고치는 기적의 밥상』,『내 몸 내가 고치는 식생활 혁명』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1장 1945년 8월 9일
폭풍전야의 나가사키
번쩍, 쾅!
태양이 빛을 잃다
친구의 아이
2장 세상의 종말
전멸, 사람을 먼저 구한다
생존자들의 밤
죽창과 원자폭탄
거대한 무덤
아내의 묵주
3장 여기애인(如己愛人)
순례자들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하여
살아남은 자의 슬픔
4장 전쟁은 끝났지만
인류최초의 원자병
원자병의 치료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아버지의 유산
5장 평화의 기도
슬퍼하는 자들은 행복하다
나가사키의 종
죽음 앞에서
유언, 사랑하는 아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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