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모든 것이 비판에 부쳐져야 하는 진정한 비판의 시대”
생각의 주인으로 살고 싶은 교양인을 위한 지적인 자기방어법 강의
18세기 말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초판의 서문에 “모든 것이 비판에 부쳐져야 하는 진정한 비판의 시대”라고 적었다. 이 선언은 200여 년이 지난 지금, 비록 칸트가 말한 원래 뜻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우리 시대를 정확히 묘사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적대적이고 진실을 그냥 보여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이성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여론 조작, 정치인의 허튼소리, 광고의 속임수, 미디어의 정보 조작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다섯 가지 영역, 즉 언어, 수학, 심리학, 과학, 미디어를 두루 살펴가며 비판적 사고를 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지식을 꼼꼼하게 정리한 후, 촘스키의 표현을 빌려서 ‘지적인 자기방어법 강의’라 이름 붙였다.
모든 개념에는 그것을 재밌게 이해하도록 돕는 사례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저자는 이 책에서 확실히 보여준다. 덕분에 광범위한 지식을 다루고 있음에도 어렵기보다는 쉽고 재미있으며,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유머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삶에 꼭 필요한 살아 있는 지식, 간단명료한 개념 설명, 위트와 유머 이 세 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버무려져 있기에, 이 책은 2005년 출간 이래 프랑스어권에서 ‘비판적 사고를 위한 교과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쓸모는 ‘방어’에 그치지 않는다. 지적인 방어법을 익히는 것은 동시에 지적으로 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과 글에서 거짓을 구별하고 논리적인 허점을 볼 줄 알면 우리의 말과 글에 진실과 논리를 담을 수 있고, 우리를 속이는 기술을 알면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설득의 힘이 그만큼 강력해진다. 또 숫자와 과학으로 사고하는 습관은 우리의 말과 글에 객관성과 사실성을 더해주며, 미디어로 우리를 조종하는 방법을 알면 미디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소통과 자기표현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진 오늘날 이만큼 든든한 능력을 갖추긴 쉽지 않다.
비판적 사고를 위한 안내서가 필요한 시대
넘쳐나는 거짓 정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다양한 시도들 속에서 우리는 과연 ‘제대로’ 생각하고 있을까? 설상가상으로 비판적 지성을 기르는 교육의 기능마저 축소되어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데 쓸 도구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에게 참된 교육제도가 있다면 학교에서 당연히 지적인 자기방어법을 가르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촘스키의 진단은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탄생했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비판적 사고를 위한 아이템들을 획득하다 보면 무엇이든 고분고분 믿지 않고(다른 말로 하면 지적인 순응주의에 빠지지 않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상대방의 말 속에 나를 속이려는 의도가 있는지, 통계와 그래프에 어떤 함정이 숨어 있는지, 과학으로 포장된 정보들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 미디어는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가려 하는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나 자신의 기억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깊이 성찰하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단련되기 때문이다.
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화해를 위한 시설’과 ‘강제수용소’
‘화해를 위한 시설’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살인자가 석방되면 또다시 살인을 범할 거라는 상대 토론자의 반박을 듣고도 당신은 계속해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할 수 있는가? ‘가장 많은 사람이 마시는 가장 맛있는 OO맥주’라는 광고를 본 후 가게에서 무의식적으로 그 맥주를 집어든 경험이 있지 않은가?
사실 ‘화해를 위한 시설’은 전시의 ‘강제수용소’에 대한 반감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며, 사형제를 폐지한다고 해서 살인자가 또다시 살인을 저지를 거라는 보장도 없다. 또 가장 많은 사람이 마시는 맥주는 가장 값이 싼 맥주일 수도 있다.
1장은 말과 글에 교묘하게 숨어 있는 트릭을 폭로한다. 공포를 조장하여 이성적 판단을 억누른다든지, 다수의 의견임을 내세워 정당한 반박을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든지, 권위자의 이름을 빌려 맹목적 믿음을 유도하는 등의 기법부터 모호한 표현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법, 주제와 상관없는 딴 얘기를 해서 궁지에서 탈출하는 법, 주제와 상관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이야기 중에 슬쩍 끼워 넣어 엉뚱한 결론에 이르는 법까지 논리학에서 꺼낸 실용적 개념들을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이를 통해 우리를 지적� 무능력에 빠지게 만드는 다양한 기법들이 말과 글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으며 그것을 깨뜨리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평균 월급 6000달러의 진실
어떤 사람이 평균 월급이 6000달러라고 광고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그런데 석 달의 수습 기간이 지나도 월급은 2000달러가 채 안 되었다. 알고 보니 이 회사에서는 고액 월급을 받는 몇몇 임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2000달러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화가 난 그는 사장에게 달려가 광고에 회사의 ‘평균 월급’(평균값)이 아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받는 월급’(최빈값)을 광고에서 밝혔어야 한다고 따졌고, 결국 너무 똑똑하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위의 예에서 보듯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숫자 정보들 중에는 겉으로는 객관적으로 보일지라도 실제는 우리를 착시에 빠뜨리는 것이 많다. 2장에서는 우리를 두렵게 혹은 착각하게 만드는 다양한 숫자들에서 진실을 볼 수 있는 수학적 도구들을 제시한다.
우선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다양한 수학적 협박을 물리칠 수 있는 대처법을 소개한 후,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과 그의 도박꾼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확률의 기본 개념을 심어준다. 이를 바탕으로 분산, 표준편차 등이 세상을 바로 보는 데 어떤 식으로 쓰일 수 있는지 알려주고, 우리를 착각에서 건져내줄 수학적 개념과 사고법(통계의 거짓말, 평균값으로의 회귀, 도표와 그래프 보는 법, 여론조사 바로 보는 법 등)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숫자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재밌는 ‘시민 수학 강의’다.
디즈니랜드에서 벅스 버니를 보았다?
한 심리학자가 디즈니랜드의 가짜 광고를 피실험자에게 보여준 후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디즈니랜드에서 벅스 버니를 본 적이 있다는 기억을 떠올린 피실험자가 높은 비율로 나왔다. 하지만 디즈니랜드에서는 벅스 버니를 볼 수 없다. 벅스 버니는 디즈니의 경쟁사인 워너브라더스의 캐릭터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의 기억은 사실과 다를 수 있다. 3장은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경험들이 어떻게 실제 사실과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달에서 토끼를 보는 이유, 용한 점쟁이들이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콜드 리딩의 비밀, 종말론에 빠지는 사람들의 심리,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 이유, 셋이 합심하면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이유 등을 심리학의 개념들(포러 효과, 인지부조화, 피그말리온 효과, 밀그램의 실험, 애슈의 실험)을 통해 흥미롭게 설명한다.
과학 논문을 심사할 공정한 전문가를 찾습니다
데페리프론이라는 신약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되었다. 이를 발견한 연구자는 그 사실을 공론화하고 싶었지만 논문을 발표할 수 없었다. 데페리프론을 개발한 제약회사에서 그가 소속된 병원과 대학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의학전문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은 제약회사와 대학 연구소 간의 우려스런 밀월관계와 그로 인한 이해관계의 갈등 및 연구 결과에 끼치는 영향을 다룬 사설을 연속으로 게재한 적이 있는데, 당시 논문을 심사해줄 공정한 전문가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제약회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전문가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과학을 과학답지 못하게 만드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따라서 과학 정보를 접했을 때 열광하기보다는 의심과 성찰의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4장은 우리가 과학 정보를 바로 판단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도구들을 소개한다. 똑똑한 한스(덧셈을 하는 말)와 수맥 찾기 실험 등의 예를 통해 우리의 주머니를 노리는 거짓된 주장에 속지 않도록 돕는 과학 실험법(이중맹검실험, 대조군이 있는 실험 등)을 말하고, 진짜 과학의 조건과 사이비과학의 특징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정리하여 과학적 사고로 단단히 무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권신장운동 뒤에서 미소 짓는 담배회사
1990년 10월, ‘나이라’라는 15세의 한 소녀가 워싱턴 하원 인권위원회에 출두했다. 자신이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쿠웨이트의 한 병원에 이라크 군인이 급습해서 인큐베이터를 깨뜨리는 바람에 312명의 아기가 차디찬 병원 바닥에서 숨을 거뒀다는 얘기를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고, 이날 이후 미국의 소중한 친구였던 사담 후세인은 “바그다드의 도살자”로 불렸다. 걸프 전쟁에 미국이 참전하는 걸 반대하던 여론은 순식간에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
1929년 부활절 뉴욕 5번가에서 여성의 흡연권을 보장하라며 여성들이 시위에 나섰다. 당시 미국에서 활발하던 여권신장운동의 일환으로 보이는 광경이었다.
앞의 장면은 홍보회사 힐앤놀튼이 미국의 참전을 원하던 쿠웨이트인들과 1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고 진행한 사기극이며, 뒤의 장면은 PR의 아버지 에드워드 버네이즈가 담배회사의 의뢰로 기획한 캠페인이었다. 나이라는 워싱턴 주재 쿠웨이��대사의 딸로 병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고, 병원에서의 대규모 영아 살해도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리고 1929년 당시 럭키스트라이크와 아메리칸타바코 등의 담배회사들은 담배가 치명적인 물질이라는 증거를 감추는 홍보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미디어는 감춰진 진실을 알리고 부정한 현실을 비판하는 기능도 하지만 그와 정반대의 기능도 수행한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허먼과 촘스키는 미디어의 이런 부정적 기능을 낳는 요인을 5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미디어의 소유권과 수익원, 둘째는 광고에 대한 의존도, 셋째는 정보 출처의 편향성, 넷째는 플랙(권력이 미디어를 길들일 목적으로 행하는 공격), 다섯째는 반공산주의다. 이렇게 5장에서 왜 미디어가 공정하지 않은지를 밝힌 후, 미디어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31가지 전략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 작가 소개
저자 : 노르망 바야르종(Normand Baillargeon)
몬트리올 퀘벡 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의 역사와 교육 철학을 가르친다. 행동주의자로 《좌현으로》( Bbord), 《불협화음》(Le Couac) 등 대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잡지의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다. 일간지 《책임》(Le Devoir)에 고정 필자로도 활동했다. 『개는 목마르다』, 『권력이 없는 질서』 등을 썼다.
역자 : 강주헌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뛰어난 영어와 불어 번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예수 왜곡의 역사』, 『문명의 붕괴』,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 100여 권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강주헌의 영어번역 테크닉』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1장 언어: 말에 숨겨진 진짜 뜻을 생각한다
이런 말들에 당신은 넘어간다
말과 글의 진실을 캐내는 20가지 논리 도구
2장 숫자: 숫자로 생각하되 함정을 조심한다
숫자 공포증을 치유하는 10가지 비법
숫자에 약한 사람들을 위한 확률과 통계 강의
3장 경험: 기억은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기억한다
내가 정말로 본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내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비판적 사고에 약이 되는 6가지 심리학
4장 과학: 과학을 과학적으로 의심하고 성찰한다
당신의 지갑을 지켜내는 3가지 과학 실험법
과학을 과학답게 만드는 과학적 생각법
5장 미디어: 누구를 위한 보도인지 꼼꼼하게 따진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미디어는 우리를 어떻게 선동하는가?
미디어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31가지 전략
나오는 글
옮긴이의 글
부록: 독립 매체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모든 것이 비판에 부쳐져야 하는 진정한 비판의 시대”
생각의 주인으로 살고 싶은 교양인을 위한 지적인 자기방어법 강의
18세기 말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초판의 서문에 “모든 것이 비판에 부쳐져야 하는 진정한 비판의 시대”라고 적었다. 이 선언은 200여 년이 지난 지금, 비록 칸트가 말한 원래 뜻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우리 시대를 정확히 묘사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적대적이고 진실을 그냥 보여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이성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여론 조작, 정치인의 허튼소리, 광고의 속임수, 미디어의 정보 조작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다섯 가지 영역, 즉 언어, 수학, 심리학, 과학, 미디어를 두루 살펴가며 비판적 사고를 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지식을 꼼꼼하게 정리한 후, 촘스키의 표현을 빌려서 ‘지적인 자기방어법 강의’라 이름 붙였다.
모든 개념에는 그것을 재밌게 이해하도록 돕는 사례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저자는 이 책에서 확실히 보여준다. 덕분에 광범위한 지식을 다루고 있음에도 어렵기보다는 쉽고 재미있으며,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유머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삶에 꼭 필요한 살아 있는 지식, 간단명료한 개념 설명, 위트와 유머 이 세 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버무려져 있기에, 이 책은 2005년 출간 이래 프랑스어권에서 ‘비판적 사고를 위한 교과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쓸모는 ‘방어’에 그치지 않는다. 지적인 방어법을 익히는 것은 동시에 지적으로 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과 글에서 거짓을 구별하고 논리적인 허점을 볼 줄 알면 우리의 말과 글에 진실과 논리를 담을 수 있고, 우리를 속이는 기술을 알면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설득의 힘이 그만큼 강력해진다. 또 숫자와 과학으로 사고하는 습관은 우리의 말과 글에 객관성과 사실성을 더해주며, 미디어로 우리를 조종하는 방법을 알면 미디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소통과 자기표현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진 오늘날 이만큼 든든한 능력을 갖추긴 쉽지 않다.
비판적 사고를 위한 안내서가 필요한 시대
넘쳐나는 거짓 정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다양한 시도들 속에서 우리는 과연 ‘제대로’ 생각하고 있을까? 설상가상으로 비판적 지성을 기르는 교육의 기능마저 축소되어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데 쓸 도구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에게 참된 교육제도가 있다면 학교에서 당연히 지적인 자기방어법을 가르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촘스키의 진단은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탄생했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비판적 사고를 위한 아이템들을 획득하다 보면 무엇이든 고분고분 믿지 않고(다른 말로 하면 지적인 순응주의에 빠지지 않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상대방의 말 속에 나를 속이려는 의도가 있는지, 통계와 그래프에 어떤 함정이 숨어 있는지, 과학으로 포장된 정보들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 미디어는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가려 하는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나 자신의 기억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깊이 성찰하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단련되기 때문이다.
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화해를 위한 시설’과 ‘강제수용소’
‘화해를 위한 시설’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살인자가 석방되면 또다시 살인을 범할 거라는 상대 토론자의 반박을 듣고도 당신은 계속해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할 수 있는가? ‘가장 많은 사람이 마시는 가장 맛있는 OO맥주’라는 광고를 본 후 가게에서 무의식적으로 그 맥주를 집어든 경험이 있지 않은가?
사실 ‘화해를 위한 시설’은 전시의 ‘강제수용소’에 대한 반감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며, 사형제를 폐지한다고 해서 살인자가 또다시 살인을 저지를 거라는 보장도 없다. 또 가장 많은 사람이 마시는 맥주는 가장 값이 싼 맥주일 수도 있다.
1장은 말과 글에 교묘하게 숨어 있는 트릭을 폭로한다. 공포를 조장하여 이성적 판단을 억누른다든지, 다수의 의견임을 내세워 정당한 반박을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든지, 권위자의 이름을 빌려 맹목적 믿음을 유도하는 등의 기법부터 모호한 표현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법, 주제와 상관없는 딴 얘기를 해서 궁지에서 탈출하는 법, 주제와 상관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이야기 중에 슬쩍 끼워 넣어 엉뚱한 결론에 이르는 법까지 논리학에서 꺼낸 실용적 개념들을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이를 통해 우리를 지적� 무능력에 빠지게 만드는 다양한 기법들이 말과 글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으며 그것을 깨뜨리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평균 월급 6000달러의 진실
어떤 사람이 평균 월급이 6000달러라고 광고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그런데 석 달의 수습 기간이 지나도 월급은 2000달러가 채 안 되었다. 알고 보니 이 회사에서는 고액 월급을 받는 몇몇 임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2000달러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화가 난 그는 사장에게 달려가 광고에 회사의 ‘평균 월급’(평균값)이 아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받는 월급’(최빈값)을 광고에서 밝혔어야 한다고 따졌고, 결국 너무 똑똑하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위의 예에서 보듯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숫자 정보들 중에는 겉으로는 객관적으로 보일지라도 실제는 우리를 착시에 빠뜨리는 것이 많다. 2장에서는 우리를 두렵게 혹은 착각하게 만드는 다양한 숫자들에서 진실을 볼 수 있는 수학적 도구들을 제시한다.
우선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다양한 수학적 협박을 물리칠 수 있는 대처법을 소개한 후,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과 그의 도박꾼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확률의 기본 개념을 심어준다. 이를 바탕으로 분산, 표준편차 등이 세상을 바로 보는 데 어떤 식으로 쓰일 수 있는지 알려주고, 우리를 착각에서 건져내줄 수학적 개념과 사고법(통계의 거짓말, 평균값으로의 회귀, 도표와 그래프 보는 법, 여론조사 바로 보는 법 등)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숫자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재밌는 ‘시민 수학 강의’다.
디즈니랜드에서 벅스 버니를 보았다?
한 심리학자가 디즈니랜드의 가짜 광고를 피실험자에게 보여준 후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디즈니랜드에서 벅스 버니를 본 적이 있다는 기억을 떠올린 피실험자가 높은 비율로 나왔다. 하지만 디즈니랜드에서는 벅스 버니를 볼 수 없다. 벅스 버니는 디즈니의 경쟁사인 워너브라더스의 캐릭터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의 기억은 사실과 다를 수 있다. 3장은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경험들이 어떻게 실제 사실과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달에서 토끼를 보는 이유, 용한 점쟁이들이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콜드 리딩의 비밀, 종말론에 빠지는 사람들의 심리,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 이유, 셋이 합심하면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이유 등을 심리학의 개념들(포러 효과, 인지부조화, 피그말리온 효과, 밀그램의 실험, 애슈의 실험)을 통해 흥미롭게 설명한다.
과학 논문을 심사할 공정한 전문가를 찾습니다
데페리프론이라는 신약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되었다. 이를 발견한 연구자는 그 사실을 공론화하고 싶었지만 논문을 발표할 수 없었다. 데페리프론을 개발한 제약회사에서 그가 소속된 병원과 대학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의학전문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은 제약회사와 대학 연구소 간의 우려스런 밀월관계와 그로 인한 이해관계의 갈등 및 연구 결과에 끼치는 영향을 다룬 사설을 연속으로 게재한 적이 있는데, 당시 논문을 심사해줄 공정한 전문가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제약회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전문가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과학을 과학답지 못하게 만드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따라서 과학 정보를 접했을 때 열광하기보다는 의심과 성찰의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4장은 우리가 과학 정보를 바로 판단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도구들을 소개한다. 똑똑한 한스(덧셈을 하는 말)와 수맥 찾기 실험 등의 예를 통해 우리의 주머니를 노리는 거짓된 주장에 속지 않도록 돕는 과학 실험법(이중맹검실험, 대조군이 있는 실험 등)을 말하고, 진짜 과학의 조건과 사이비과학의 특징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정리하여 과학적 사고로 단단히 무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권신장운동 뒤에서 미소 짓는 담배회사
1990년 10월, ‘나이라’라는 15세의 한 소녀가 워싱턴 하원 인권위원회에 출두했다. 자신이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쿠웨이트의 한 병원에 이라크 군인이 급습해서 인큐베이터를 깨뜨리는 바람에 312명의 아기가 차디찬 병원 바닥에서 숨을 거뒀다는 얘기를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고, 이날 이후 미국의 소중한 친구였던 사담 후세인은 “바그다드의 도살자”로 불렸다. 걸프 전쟁에 미국이 참전하는 걸 반대하던 여론은 순식간에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
1929년 부활절 뉴욕 5번가에서 여성의 흡연권을 보장하라며 여성들이 시위에 나섰다. 당시 미국에서 활발하던 여권신장운동의 일환으로 보이는 광경이었다.
앞의 장면은 홍보회사 힐앤놀튼이 미국의 참전을 원하던 쿠웨이트인들과 1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고 진행한 사기극이며, 뒤의 장면은 PR의 아버지 에드워드 버네이즈가 담배회사의 의뢰로 기획한 캠페인이었다. 나이라는 워싱턴 주재 쿠웨이��대사의 딸로 병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고, 병원에서의 대규모 영아 살해도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리고 1929년 당시 럭키스트라이크와 아메리칸타바코 등의 담배회사들은 담배가 치명적인 물질이라는 증거를 감추는 홍보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미디어는 감춰진 진실을 알리고 부정한 현실을 비판하는 기능도 하지만 그와 정반대의 기능도 수행한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허먼과 촘스키는 미디어의 이런 부정적 기능을 낳는 요인을 5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미디어의 소유권과 수익원, 둘째는 광고에 대한 의존도, 셋째는 정보 출처의 편향성, 넷째는 플랙(권력이 미디어를 길들일 목적으로 행하는 공격), 다섯째는 반공산주의다. 이렇게 5장에서 왜 미디어가 공정하지 않은지를 밝힌 후, 미디어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31가지 전략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 작가 소개
저자 : 노르망 바야르종(Normand Baillargeon)
몬트리올 퀘벡 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의 역사와 교육 철학을 가르친다. 행동주의자로 《좌현으로》( Bbord), 《불협화음》(Le Couac) 등 대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잡지의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다. 일간지 《책임》(Le Devoir)에 고정 필자로도 활동했다. 『개는 목마르다』, 『권력이 없는 질서』 등을 썼다.
역자 : 강주헌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뛰어난 영어와 불어 번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예수 왜곡의 역사』, 『문명의 붕괴』,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 100여 권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강주헌의 영어번역 테크닉』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1장 언어: 말에 숨겨진 진짜 뜻을 생각한다
이런 말들에 당신은 넘어간다
말과 글의 진실을 캐내는 20가지 논리 도구
2장 숫자: 숫자로 생각하되 함정을 조심한다
숫자 공포증을 치유하는 10가지 비법
숫자에 약한 사람들을 위한 확률과 통계 강의
3장 경험: 기억은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기억한다
내가 정말로 본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내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비판적 사고에 약이 되는 6가지 심리학
4장 과학: 과학을 과학적으로 의심하고 성찰한다
당신의 지갑을 지켜내는 3가지 과학 실험법
과학을 과학답게 만드는 과학적 생각법
5장 미디어: 누구를 위한 보도인지 꼼꼼하게 따진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미디어는 우리를 어떻게 선동하는가?
미디어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31가지 전략
나오는 글
옮긴이의 글
부록: 독립 매체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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