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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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김혜순
출판사항문학과지성사, 발행일:2017/08/02
형태사항p.234 46판:20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32030142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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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내/여성 몸으로 시를 쓴다, 나/여성은 ‘시한다’
―모국어를 위반하며 시 속 나의 ‘실존’ 찾기

김혜순은 여성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같은 땅을 딛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지만 남성에 비해 늘 차별과 혐오, 폭력과 소외의 게토 상태에 노출되어온 여성/몸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유독 한국문학에서 여성시인의 언어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몸에 씌워진 배타적 억압과 구속을 고통스럽게 경험하고 타인의 편협한 이해를 요구받아왔다. 여성시인의 언어는 여성시인 스스로가 자신을 이방인, 난민으로 경험, 인식하는 것, 혹은 그에 따른 학습, 사유가 있지 않고는 발화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성은 자신에게 부과된 정체성(남성들이 발명한 언어, 그 언어로 점철된 시사詩史, 수사와 기호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열되고 투명한 약동의 목소리로 언어를 ‘몸하고’ ‘시한다’.

내 몸으로 시를 쓴다는 것은, ‘시한다’는 것은, 내가 내 안에서 내 몸인 여자를 찾아 헤매고, 꺼내놓으려는 지난한 출산 행위와 다름이 없다. 나에겐 신화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이야기와 시들을 통해 의미를 주던 아버지들로부터 도망쳐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더 내 몸속에서 나오고 싶어 안달인 여자가 있다. 사랑의 욕망으로 꿈틀거리는 여자와 내 몸이 쌍둥이처럼 맞붙어 다시 태어나려는 몸짓, 그 자가(自家) 출산이 ‘몸하는’ 시다.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12쪽)

여성시인에게 자신의 육체는 하나의 텍스트다. 여성과 죽음과 몸의 언어는 언어 이전이나 이후의 소리들이다. 모음이 폐와 횡격막, 콩팥, 항문과 생식기, 심장으로 낼 수 있는 소리인 것처럼 모음은 몸의 구멍들과 연결되어 있다. 여성의 텅 빈 몸은 마른 몸과 섞이면서 끝없이 변용, 생성되려고 한다. 다른 몸을 대상화하지 않고 섞이려 한다.

여성시는 언어와 언어 사이의 틈새이며, 말하면서도 말해지지 않는 언어적 모험이다. 언어적 주체를 탈주체화시킴으로써 모국어를 해체하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기억에 대한, 타자의 혐오에 대한 방법적 대응이며 전투다. 곤경의 언어이고, 비언어다. (「책 뒤에」, 231~232쪽)

쓰레기와 유령, 여성시와 유령 화자
―“내 몸의 과거-기억-현재-죽음을 가로지르는 리듬으로 나는 당/신의 영혼을 만진다”

앞선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에서 김혜순은 바리데기 신화와 여성시의 물의 언술, 들림, 영감, 공간, 증후, 사랑, 몸 등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어 이번 책에서는 바리데기가 겪는 세 번의 부재에 주목하여 여성시인만의 독특한 화자를 소환해낸다.
‘바리데기’는 이름 없는 자의 이름이다. ‘바리’라는 이름은 지금 이쪽 우리의 언어로 ‘쓰레기’다. 바리데기는 세 번의 버림을 받는다. 김혜순은 이 세 번의 부재(죽음) 경험이 바리데기의 시적 여정이자 여성시인으로서의 그의 시가 ‘시하는’ 경험들이라고 말한다.
첫번째 부재의 시는 자신이 버려짐, 부재, 쫓겨남에 처해진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시다. 이런 유형의 시는 대개 독백적 진술을 주로 하며, 소녀나 미성숙한 화자를 내세워 자아를 극적인 무대에 세운다. 두번째 부재의 시는 가정과 체재, 공동체 내에서 잠식당한 자아 정체성을 노래한다. 한결 성숙해진 시적 화자는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시의 배면에 품고서, 모성성을 비난하거나 자신의 결혼, 관계, 노동을 화제로 삼곤 한다. 세번째 부재의 시는 분열적이고, 산포되며, 공동체의 주문에 대해 분열된 자아 정체성, 분자화된 언술을 들이미는 발명자들의 시다. 이런 유형의 시의 화자는 어떤 복수(複數)성을 내포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 유형의 시들은 언어의 운용, 모국어 문법에 대한 파괴에 열중하기도 하고, 남성과 여성으로 환원되는 은유 체계에 대한 전복, 다성악적 파동의 언술을 내보이기도 한다.(「쓰레기와 유령」, 18~19쪽)

한편, 김혜순은 우리나라 여성시인들의 시 속에서 각기 다른 유령 화자의 목소리를 발견해낸다. 여성의 공간으로 규정된 부재, 결핍, 침묵, 죽음, 수동, 어둠을 스스로의 몸으로 끌어안음으로써 그것을 전복시키는 언어적 이행이자 시간과 공간의 교차 속에 빚어지는 간격으로 유령적 해체를 규정한다. 이 유령적 해체의 문법은 기존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성적 목소리, 복수 화자의 목소리, 화자들을 품었다가 다시 내뿜는 기괴한 모성의 목소리로 구현된다.

여성시인에게 쓰레기는 어둡고 수치스러운 비밀이며 장애물이다. 쓰레기는 일견 가난한 자, 이방인, 고아, 난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스스로 쓰레기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얼굴은 내가 비참하게 버려졌을 때, 죽음에 다가갔을 때, 국가의 무기력함으로 지뢰처럼 터지는 재앙들 앞에서 목격한, 마주한 이웃의 얼굴이며, 나의 국가 공동체 혹은 가부장제의 폭력 앞에서 내가 감당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바로 나 자신의 구멍인 어둠이다. 그들은 바로 ‘바리’라는 이름처럼 이름 없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 부재하는 이름이 나를 시의 장소로 움직이게 한다. 암컷이라는 그 어둠 속에서 여성인 나의 시는 발진한다. 이름 없는 주체, 의도나 행위의 기원도 갖지 않은 주체, 어디에도 귀속될 수 없는 감정이나 어떤 내밀성만을 가진 몸, 혹은 무명의 시적 행위, 그 발견인 나의 시가 탄생한다. 여성시인에게 요구되는 수치, 배려의 감정, 모성성, 나이별로 부과되는 동일성 대신에 어둠 속에 기거함, 쓰레기처럼 버려진 채 한 덩어리로 존재함, 거기에서 상호 반응하는 쓰레기의 무늬를 그리는 나의 시가 탄생한다. (「쓰레기와 유령」, 27~28쪽)

유령적 해체의 목소리는 여성의 몸에 내려진 천형인 죽음의 언어 체계를 자발적으로 전유함으로써 발생된다. 죽음의 기계를 스스로, 온몸으로 작동시키면, 그 자리에서 피 묻은 옥시모론의 언어들이 흩어져 내린다. 그 언어는 자신들의 몸을 해체함으로써 얻어진 피의, 물의, 젖의, 그물의, 백설 난분분의 언어다. 이 언어가 여성 화자로서의 장소를 확장한다. 그러기에 유령적 해체의 목소리는 타자들과 함께 거주할 공간을 끊임없이 탄생시키는 생성의 언어이며, 그 타자들과 경계 없이 접촉하는 언어다. (「여성시와 유령 화자」, 191~192쪽)

이 책 『여성, 시하다』는 김혜순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적실한 안내서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오랫동안 여성과 여성시, 여성문학을 굳게 가둬온 체계와 편견을 벗고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읽어보려는 모든 이에게 흥미롭고 의미 있는 공감 지대를 안겨줄 것이다.

 

작가 소개

저 : 김혜순 
 대상을 주관적으로 비틀어 만든 기괴한 이미지들과 속도감 있는 언어 감각으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김혜순이 시를 통해 끈질기게 말하는 것은 죽음에 둘러싸인 우리 삶의 뜻없음, 지옥에 갇힌 느낌이다. 그 죽음은 생물학적 개체의 종말로서의 현상적,실재적 죽음이 아니라, 삶의 내면에 커다란 구멍으로 들어앉은 관념적,선험적 죽음이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 『어느 별의 지옥』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어느 별의 죽음』은 세계의 무목적성에 대한 오랜 응시로 삶에 예정되어 있는 불행을 눈치채버린 이의, 삶의 텅 빔과 헛됨, 견딜 수 없는 지옥의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관주의적 상상력이 빚어낸 시집이다. 그의 시 세계는 일상적이고 자명한 것의 평화와 질서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의식을 난폭하게 찌르고 괴롭힌다.

김혜순은 1955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초등 학교에 입학할 무렵 강원도 원주에 이사해 거기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원주여고를 거쳐 1973년 건국대학교 국문과에 들어가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78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처음 써 본 평론 「시와 회화의 미학적 교류」가 입선하고, 이어 1979년 「문학과 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도솔가」등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다. 대학 졸업 뒤 「평민사」와 「문장」의 편집부에서 일하던 그는 1993년 「김수영 시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는 1998년 '김수영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낯설고 이색적이어서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던 그의 시세계는 비로소 문단의 공인을 받는다.

김혜순 시의 착지점은 '몸', 그것도 해탈이 불가능한 '여성의 몸'이다. 해탈이 불가능한 몸에서 출발한 그의 시적 상상력은 때때로 그로테스크한 식육적 상상력으로까지 뻗친다. 이런 점에서 김혜순의 시를 "블랙유머에 바탕을 둔 경쾌한 악마주의"의 시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는 자기 시의 발생론적 근거를 '여성'과 '여성의 몸'에서 찾는다. 이에 대해 그는 "식민지에 사는 사람은 절대 해탈이 불가능하다. 여성은 식민지 상황에서 살고 있다. 사회학적 요인이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진 식민지성이 있다. 이때의 여성은 인식론적 여성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성이다."라고 말한다. 

 

목 차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쓰레기와 유령
귀, 안으로의 무한
나의 지옥, 나의 뮤즈
시인은 가라
산 자의 신화
여성, 시하다
여성시와 유령 화자
복수의 몸

책 뒤에-한사코 사이에 있으려는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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