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100년 전 러시아에서 벌어진 뜨거운 혁명의 순간,
그 찰나들은 어떤 고뇌와 희망을 담고 있었나
‘러시아 혁명’이라고 하면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와는 동떨어진 역사적 사건으로만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박노자는 우선 그 오래전 혁명의 태동과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레닌과 트로츠키, 그리고 스탈린이라는 인물을 내세운다. 이들의 역동적인 삶을 통해 혁명의 전후 맥락이 묘사되고 있는지라 사건과 사상이 결부되면서 러시아 혁명은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물론 이러한 혁명가들 외에 이름 붙여지지 않은 혁명 주역들에 대한 묘사 역시 이어진다. 혁명에 가담한 이들 대다수는 귀족과 부호 등이 소유한 농장을 몰수해 이를 농민 공동체 구성원들과 평등하게 분배하려 했던 농민들이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희망도 보지 못했던 러시아 도심의 대기업 숙련공들이었다. 가혹한 노동에 혹사당하고, 귀족이나 공장 당국의 ‘갑질’에 시달리던 이들.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더라도 가난과 중노동을 자식에게 대물림해야 했던 이들. 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어찌 보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열악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족적 소수자들 역시 이 혁명에 가담한다. 민족적 억압과 경제적 초과 착취의 중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소수자들에게 혁명이란 자신의 해방을 꿈꿀 가능성을 담고 있는 희망이었다. 트로츠키가 유대인 출신이고 스탈린이 가난한 그루지아 출신이었던 것, 그리고 연해주 지역 고려 사람들이 볼셰비키 혁명에 열광했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 염두에 둘 사실이다. 사회 비판적 지식인들은 엄혹한 현실에 개입해 들어가며 혁명의 불꽃을 피워낸다. 러시아 혁명의 한가운데 있던 레닌은 이들에게 더 이상 지옥 같은 조건에서 노동을 팔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사회, 즉 사회주의의 비전을 제시했다. 트로츠키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상실돼가는 민주성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려 했다. 스탈린은 국가 주도 개발의 붐 속에서 새로운 신분 상승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즉, 이 일련의 과정은 가혹한 현실의 사슬을 끊고자 하는 하나의 대응으로서 진행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러시아 혁명이 이러한 긍정적 교훈만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혁명은 1920년을 전후해 사실상 퇴보의 길을 걸어간다. 혁명 지도자에서 국가 지도자로 변모한 이들은 일사분란하고 위계질서적인 ‘통제’를 내세웠고, 국가기관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감시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스탈린 시대에 이르면 혁명이 내걸었던 애초의 약속에 비해 훨씬 보수적인 사회가 되었으며. 민주성보다는 개발주의적 담론이 주류를 차지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지금 우리가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러시아 혁명은 좌초되었으며 소비에트의 시도는 실패했기에 패배의 과거로만 바라보아야 할까. 박노자가 혁명사를 들여다보면서 내려는 길은, 혁명의 빛만을 숭배하는 것도 혁명의 그림자만을 낙인찍는 것도 아니다. 혁명이 일어나게 된 가혹한 현실을 타파하면서 동시에 과거의 혁명이 저질렀던 오류를 어떻게 하면 넘어설 수 있을까. 박노자의 초점을 바로 거기에 맞춰 있다.
유럽과 아시아 등 전 세계로 이어진 혁명의 여파,
우리에게 러시아 혁명은 어떻게 파고들었을까
그렇다면 이 혁명의 여파는 어떻게 전파되었을까. 박노자는 우선 러시아와 가장 영향을 많이 주고받았던 유럽,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상황을 진단한다. 이는 곧 유럽 진보 정당의 간략한 역사를 살펴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을 겪긴 하지만 비교적 경제적·사회적으로 안정된 체제가 유지되었던 유럽의 좌파 정당들이 급진과 온건 사이에서 망설이며 갈등하는 과정이 묘사된다.
러시아 혁명의 주역들은 유럽을 망명지로 자주 드나들었고 정당 차원에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혁명의 여파는 유럽에만 머물지 않았다. 열강에 속했지만 서구에 비해 사회 모순이 컸고 외국에 대한 의존도가 컸던 러시아의 상황은 아시아와 꽤 유사했다. 그러했기에 아시아의 혁명적 지식인들은 서구 열강보다 러시아를 좀더 가까운 존재로 여기면서 이 혁명에 주목했다. 이외에 러시아가 이란, 중국, 조선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던 점도 혁명이 전파되는 데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박노자는 그간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아시아의 혁명들에 대해서도 러시아 혁명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의 줄기를 엮어낸다.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일제강점기만 보더라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1925년부터 모스크바에 특파원을 파견할 정도로 조선은 사회적으로 러시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 특파원들이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고, 소련의 산업화에 대해서는 조선의 부르주아 미디어들 역시 호의적이었다. 이런 지면에서는 소련의 민중 교육 상황이나 소수민족 우대 정책, 성평등 정책, 그리고 근대적인 산업화에 대한 동경을 여실히 드러냈다. 물론 식민지 지식인들의 혁명에 대한 관심 또한 상당했다. 이는 직접적으로 분단으로 연결돼 남북한의 체제 경쟁으로까지 이어지는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때 박노자가 주목하는 것은 스탈린 시대의 ‘적색 개발주의’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박정희가 주도한 ‘백색 개발주의’와 견주며 비교된다. 편견을 걷어내고 본다면, 소비에트는 유럽을 비롯한 열강과 비교하더라도 훨씬 빠른 시기에 기초적인 복지 제도를 완비하고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하면서 노동자와 농민의 신분 상승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는 박정희의 백색 개발주의가 엄청난 경제성장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만들어내지 못한, 어쩌면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가 이뤄내지 못한 성과다. 물론 적색 개발주의는 서서히 저물어갔고, 그 개발을 주도했던 소련 관료들은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을 이뤄냈지만 말이다. 러시아 혁명 당시 안고 있던 문제를 지금의 우리가 여전히 안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혁명이 범한 우를 넘어서면서 지금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 이러한 비교는 상당히 유용하지 않을까.
러시아에서의 경험에 한국사 연구자로서의 실증을 더한
지금 우리가 참조해야 할 바로 그 혁명사
한편 한국사 연구자로서 박노자의 면모는 러시아 혁명을 다룬 이 책에서도 빛을 발한다. 예를 들면, 그는 혁명 전 제정러시아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윤치호의 기록을 끄집어낸다. 윤치호가 조선사절단으로 재정러시아의 황제를 만나러 가서 섬세하고 예리하게 당시 러시아의 상황을 관찰하고 기록해둔 자료들은, 박노자라는 한국사학자를 만나면서 제정러시아의 입체적인 상황을 조망하는 데 이용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운형이 쓴 「모스크바의 인상」이란 여행기에 나오는, 트로츠키의 열변에 대한 목격담도 상당히 흥미롭다. 혁명기란 열변가의 시대이며, 트로츠키는 당대의 대표적인 열변가였다. 1922년 초반에 열린 극동노력자대회에 초청받은 여운형은 그 전해에 유라시아 대륙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 가서 바로 이 트로츠키의 연설을 듣고서 생생하게 기록을 남겨두었다. 이처럼 러시아와 결부된 한국사의 다양한 사료들은 러시아 혁명사와 결부되어 소중한 꽃을 피워낸다.
물론 레닌 이름을 딴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 혁명의 이후를 살아냈던 박노자의 생생한 목격담과 경험담 역시 이 독특한 혁명사에 흥미를 더해준다. 우크라이나의 극심한 아사 사태를 전해주는 조부모의 이야기를 비롯해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웠던 레닌에 대한 이야기까지, 실제로 그 현장을 살아냈던 이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더해져 살아 숨 쉬는 사건으로서 혁명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작가 소개
저 : 박노자
Vladimir Tikhonov, Park No-ja,블라디미르 티호노프, 朴露子, Владимир Тихонов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영화 [춘향전]을 보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쳐 학생과 강사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냈던 그는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한다.
박노자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난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귀화한 것은 스스로 한국사회에서 국적, 또 외국인과 내국인이라는 장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을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노자는 한국 사회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날카로운 논리로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세계사를 보는 거시적인 혜안 속에서 치열하게 인문학적 성찰의 삶을 살아온 그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등의 저서를 통해 '토종' 한국인보다 진한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그는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보다는 러시아를, 또 세계를 잘 아는 한국인에 가까운 그는 한국 사회를 그 주춧돌부터 다시 살펴본다. 누구나 당연하다고 믿고 살던 권위주의의 서까래며 집단이기주의의 기둥이 그 앞에서는 대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폐품이 되고 만다. 이제까지 나왔던 많은 한국인 비평, 비판보다 서너 길은 더 깊은 통찰이 있고 무엇보다 저자가 한국에 대해 가지는 애정이 든든하다.
두 번째 책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는 북유럽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노르웨이 사회의 이모 저모를 소개하고 있다. 상하의 질서와 복종을 강조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문화와 달리, 다양성의 존중과 소박한 삶을 생활의 주요 철칙으로 여기고 있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평등한 인간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박노자는 북유럽 사회에 비추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되돌아보는데 그치지 않는다. 외견상 선진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제3세계에 대한 차별, 인종주의와 극우 민족주의의 발호 등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면서 평화로운 일상에 젖은 그들보다 모순과 부조리를 뛰어넘고자 하는 우리에게 오히려 더 큰 희망이 있음을 역설한다.
『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에서 보여주는 한국 사회는 '동양을 타자화하여 비화하는 서구중심주의적 인식'과 서양을 정형화·범주화하는 '서양/비서양'식의 이분법적 인식 속에 좀 더 원어에 가까운 영어 발음을 위해 아이의 혀에 가위를 들이대는 부모들이나 '영어공용화'가 식자층 사이에서 설득력 있게 논의되는 사회는 오리엔탈리즘이 지배하는 곳이다. 또한, 후세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미국과 유럽을 아무런 비판 없이 모범으로 삼을만한 미래로 여기는 자세에 대해서도 '맹목적'이라 일갈한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 시선은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리고 그 시선을 만들어낸 곳이 어디인지, 우리 안에 있는 서구제국주의의 시각을 돌아볼 것을 권한다. 근작으로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후퇴하는 민주주의』, 『씩씩한 남자 만들기』『리얼 진보』(공저)가 있다.
목 차
1강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이상적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다
2강 레온 트로츠키, 영구적인 세계 혁명을 위하여
3강 폭력적인 고속 성장의 꿈을 좆은 스탈린 체제
4강 급진과 온건의 갈림길에 선 유럽의 좌파 정당들
5강 아시아에 밀어닥친 러시아 혁명의 물결
6강 사회주의 혁명을 뒤따라온 적색 개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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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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