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억압도 이념도 없는 공정한 세계
“저는 이념이 먼저인 작가는 아닙니다. 억지로 무슨 주의를 붙이자면 난 그냥 자유민주주의자예요. 개인주의자구, 그냥 소박한 민주주의 개념 있잖습니까? 자기가 이 사회에 필요한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면 항상 떳떳할 필요가 있고, 자기 일을 남에게 존중받고 싶고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것만큼 남에게 대접하는 게 옳고, 남에게 당하기 싫으면 남한테 그러지 않는다든가 하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 있잖아요. (…) 어떻게 보면 난 좋은 의미의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해요. 내가 중하니까 남도 중한 거지, 전체를 위해서 나 개인을 희생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런 소박한 민주주의 개념이 남자와 여자 사이라고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정도의 생각밖에 전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가 싫은 거죠. 남자가 여자를 억압하는 사회도 싫고, 여자가 남자를 억압하는 사회도 싫어요.”
-89~90쪽
박완서가 지나온 세월은 상식보다 극단이 앞서고, 삶보다 이념이 앞서고, 개인보다 집단의 체험이 앞섰지만 그런 속에서 그를 지킨 건 오히려 “누구의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함”(「들어가며」)이었다. 그 가치는 그의 작품과 말 속에서 지금껏 영롱한 모습으로 살아 있다. 그는 누구나 알고 지킬 수 있는 수준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일상에서 실천했다. 그는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라고 일컫지만 이내 “내가 중하니까 남도 중한 거지”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관대하고 이기적인 고립에 이르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타주의며 공생에 가까운 개인주의를 말한다.
『박완서의 말』은 공공의 인물이 되기 전에도 후에도 자유로운 개인이었던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그가 평생 일관되게 지켜온 공정함이 글쓰기와 일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알려줄 기억과 경험이 담겼다. 그의 문학적 지론은 물론이고 신여성이기를 바란 어머니에게 이끌려 하게 된 서울 생활, 전쟁 때문에 멈춘 대학 생활, 여자와 어머니 사이의 모순, 개인적 삶과 문학적 삶 사이의 곤혹, TV 드라마의 원작자로서 난처했던 에피소드, 그리고 소박한 일상의 관조 등 그의 삶을 채우는 크고 작고 섬세한 일들이 한 편 한 편 이야기처럼 흘러나온다. 그는 평소 교훈이나 설교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날렵한 질문들 사이에서 그가 한 광주리에 담아내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들은 때론 단단한 인문학자의 선문답처럼, 때론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솔깃해 주변을 다른 눈으로 둘러보게 만든다.
“경험이 누적돼서 그것이 속에서 웅성거려야 해요. 지금 내 나이가 예순다섯인데 어떤 때는 한 500년은 산 것 같아요. (…) 내가 유리창이란 것을 처음 본 게 여덟 살 때였어요. 봉창, 뚝배기, 막사기그릇, 호롱불 이런 거도 보고 누에 길러서 명주도 짜고……. 우리 동네에서 나서 우리 동네에서 시집가서 거기서 돌아간 우리 할머니에 비하면 소도시에 나와서 네모난 집을 보고 기차 타고 서울에 오고 중일전쟁, 2차 대전, 가난, 쌀 배급, 해방, 6·25. 나를 스쳐 간 문화의 부피를 생각할 때 500년은 된 것 같아요. 우리 할머니에 비하면 엄청난 체험 부피가 자꾸 울궈먹고 싶게 하거든요.”
-143~144쪽
문학과 생활을 오가는 박완서의 언어
엄청난 부피의 체험을 지나온 개인의 증언
“저도 카톨릭이 좋은데 고해성사는 참 싫어요. 아무리 하기 싫어도 1년에 두 차례 부활절과 성탄절에는 해야 하잖아요? 한번은 동화 쓰시는 정채봉 씨에게 말했어요. 나는 고해성사 때문에 언젠가 카톨릭에 대해 냉담해지고 말 것이라구요. 그게 왜 의무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억지로 만들어갖고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말해야 하나요? 정채봉 씨에게 그런 말을 막 했더니, 웃으면서 피천득 선생님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선생님께서는 성당에서 나눠준 성사표(부활절과 성탄절에 고해성사를 하고 나서 확인받는 표)를 그냥 통 속에 집어넣어버린다면서요? 한번은 그러시다가 신부님께 들키기까지 하셨다면서요?(웃음)”
-180쪽
박완서는 문학의 언어와 생활의 언어가 다르지 않은 작가였다.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하나의 말로 문학과 삶을 함께 품었다. 그가 다루는 소재도 마찬가지였다. 일상의 어떤 소박한 일도 그의 입과 펜을 통하면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단단한 뼈를 지니고 있었다. 이 책의 인터뷰어 중 한 사람인 시인 고정희는 그를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작가”라고 말했다.
『박완서의 말』은 젠체하지 않고 진솔하고 담박한 소설가 박완서의 말맛을 넉넉히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아는 것을 넘어서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고도 사람을 끌고 납득시키는 그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문학과 일상,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그리고 “엄청난 부피의 체험”을 강요한 역사 속에서 개인으로 떳떳하게 살 수 있었던 그의 내압을 확인할 수 있다. 『박완서의 말』은 그 생동감을 살리고자 현재의 표기법과 어법에 어긋나도 그의 말을 그대로 실었다.
“내가 여자인 만큼 학력의 고하나 신분을 막론하고 여자가 당하는 불평등과 모순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지요. 단지 문제의식에 너무 사로잡힌 나머지 소설적 재미를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해왔다고 할까요. 그중에서도 『살아 있는 날의 시작』은 여성 문제를 인식하고 쓴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론으로 무장한 것은 아니고 체험으로 썼다고 할까요. 지금까지도 나는 이성에 봉사하는 일은 잘 안 되고 있어요. 그냥 살다 보면 문학이란 게 본래 그런 것 아니겠어요. 본질적으로 억압받는다든가 서러운 계층, 그늘에 가려진 층에 대한 애정을 쏟게 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내 경우 결혼 생활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당하게 되는 경험 이전의 문제의식이 없을 수 없지요. 남자들이 여성 문제를 건드릴 때에는 여성을 자꾸 대상화하게 돼요. 그러나 여성은 체험만으로도 여성 문제를 잘 쓸 수 있다고 봐요.”
-36~37쪽
작가 소개
저 : 박완서
朴婉緖
경기도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생으로,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이주했다.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작가 한말숙과 동창이다.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하게 되었다.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에게 한국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없는 기억이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똑똑했던` 오빠가 `이제는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여덟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후 그의 가족은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게 되는 등 심각한 가난을 겪는다.
그후 미8군의 PX 초상화부에 취직하여 일하다가 그곳에서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다.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하고 살림에 묻혀 지내다가 훗날 1970년 불혹의 나이가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이후 우리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까지 뼈아프게 드러내는 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긋고 있다. 박완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적절한 서사적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다채로우면서도 품격 높은 문학적 결정체를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가는 우리 문학사에서 그 유례가 없을 만큼 풍요로운 언어의 보고를 쌓아올리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녀는 능란한 이야기꾼이자 뛰어난 풍속화가로서 시대의 거울 역할을 충실히 해왔을 뿐 아니라 삶의 비의를 향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구도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다룬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아저씨의 훈장』『겨울 나들이』『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비롯하여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그린 『도둑맞은 가난』『도시의 흉년』『휘청거리는 오후』까지 저자는 사회적 아픔에 주목하여 글을 썼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작가는 행복한 결혼은 어떤 형태인가를 되묻게 하는 소설인 『서 있는 여자』『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점점 독특한 시각으로 여성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또 장편 『미망』『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는 개인사와 가족사를 치밀하게 조명하여 사회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배반의 여름』은 1975년 9월에서 1978년 9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조그만 체험기」「흑과부黑寡婦」「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등에서 볼 수 있듯이 박완서가 그리는 모성의 힘은 실로 놀랍다. 성균관대에서 열린 ‘2006 호암상 수상자(예술상) 초청 강연회’에서 박완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 문학의 뿌리는 어머니”라고. 박완서 특유의 수다스러움으로 풀어내는 모성의 힘은 힘센 것들만이 권력을 쥐고 판을 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뒤로 처진 자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무해준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는 1987년 1월에서 1994년 4월까지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가족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 네 개나 있는데 그중「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남편의 죽음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아들의 죽음을 담고 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특이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체로 되어 있는데 담담하게 이어가는 주인공의 목소리에서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저녁의 해후』에는 1984년 1월부터 1986년 8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해산바가지」「애 보기가 쉽다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에서 나타나는 하층민들의 인간애는 가진 자들의 야만성과 대비되어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은 1979년 3월에서부터 1983년 8월까지 발표한 작품들을 수록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속물성과 위선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젊은 것들의 무관심과 조롱 속에서 외롭게 늙어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황혼」「천변풍경泉邊風景」과, 출세한 자들의 허위를 그린 「내가 놓친 화합(和合)」「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 등이 그것이다.
『미망』은 조선조 말기에서 6ㆍ25 전쟁 직후까지 그 파란만장했던 시대를 한 개성 상인의 가족사를 통하여 재창조한 대하소설이다. 민족의 수난사와 더불어 고난과 격동의 시대를 험준한 산을 넘듯 숨가쁘게 살아온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박완서 소설 문체가 도달한 궁극적인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작가는 사람과 자연을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느낀 기쁨과 경탄, 감사와 애정을 담아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냈다. ‘친절한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했던 글도 함께 실어 노작가의 연륜과 성찰이 돋보이는 글을 선보였다.
1993년부터 국제연합아동기금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1994년부터 공연윤리위원회 위원, 1988년부터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과 제3회 이상문학상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2006년, 문화예술인으로서 처음이자 여성으로서도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평소 입버릇처럼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고백해왔던 그녀는 전쟁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경험으로 글을 써왔다. 여러 편의 장편소설과 수필집, 동화집을 발표하고, 2010년 8월 수필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마지막으로 2011년 1월 22일, 담낭암 투병 중 별세했다. 경기 구리시에는 '박완서 문학마을'이 조성될 예정이다.
목 차
다시 살아 있는 날
극복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하여
저문 날을 건너오는 소설
그 가을의 하루 동안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상처 속에 박혀 있는 말뚝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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