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성추행범의 심리
: 낮은 자존감, 비뚤어진 지배욕
2018년 초, 서지현 검사의 고발로 검찰 내 성추행이 알려진 후 각계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났지만 성추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경찰청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범죄는 계속 증가 추세다. 2017년 통계를 보면 2016년 2만 4,110건의 성범죄가 발생했는데, 그중 성추행이 1만 7,947건으로 약 75퍼센트를 차지했다. 낮은 신고율을 고려하면(2013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성추행 피해자 중 5.3퍼센트만 신고했다고 한다)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성추행은 이렇게 흔한 범죄인데도 가해자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다. 대체 어떤 사람이 성추행을 저지르는 걸까? 우리는 흔히 변태적 취향을 가진 사람, 혹은 여성을 만날 기회가 없는 남성이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성추행을 저지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성추행범을 만나보면 그들이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데 놀라게 된다. 이 책은 통계를 바탕으로 성추행범의 유형을 분석했다. 성추행범 중에는 고학력, 회사원, 기혼자가 많았다. 이들은 직장에서는 성실한 직장인, 집에서는 가정적인 남편이었다. 성추행을 성욕 때문에 저지른다는 것은 오해다. “남자의 성욕은 본능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비겁한 변명이다. 저자는 자신의 상담 결과를 바탕으로 성추행범 절반 이상이 범죄를 저지를 때 발기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성추행은 성욕이 아니라 지배욕 때문에 발생한다. 성추행범은 동의 없이 타인의 안전 영역을 침범하고 신체를 유린하면서 우월감을 느낀다.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상대적 강자가 된 느낌을 만끽한다. 이런 우월감은 특히 다른 곳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계속해서 억눌려 있던 사람에게 말할 수 없이 짜릿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성추행범 중에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많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할 때 안정을 얻는다. 비뚤어진 지배욕은 모든 성범죄의 기반이다.
성범죄를 부추기는 사회
: 성차별은 어떻게 범죄가 되는가?
여성을 ‘정복’하고 ‘지배’해도 된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성범죄자들은 여성은 남성보다 낮은 존재고, 남성의 성욕을 풀어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지 왜곡은 사회에서 자기도 모르게 배워서 체화한 것이다. 평소에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거나 궁지에 몰리면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던 인지 왜곡이 드러난다. 그래서 성차별이 심한 나라일수록 성범죄가 많이 일어난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성차별과 남존여비식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가정, 학교, 사회에서 남성은 이래야 하고, 여성은 저래야 한다는 전근대적 성 역할 구분과 성차별이 계속되고 있다.
성추행범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 정도 가지고 뭘”, “여자들도 좋아한다는데?”, “좀 만진다고 닳냐?” 같은 말이다. 이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남성이 원한다면 여성이 동의하지 않아도 만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남성은 여성의 동의 없이도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남성은 자기 심기를 거스른 여성은 맞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이 가정에서는 가정 폭력 형태로 표출된다. 남편은 아내에게 관계를 강요하고, 아내가 거부하면 ‘감히’ 자신을 거부했다며 폭력을 행사한다. 2018년 10월에 벌어진 강서구 아파트 주차장 살인 사건에서 보듯이 가정 폭력은 살인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성추행범도 성추행이 범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범죄야, 하면 안 돼”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자신의 성추행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사고방식이 왜곡되었다는 생각을 애써 외면한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기보다 피해자를 탓한다. 문제 행동을 반복할 때마다 왜곡이 강화되어 신념이 된다. 사회에 뿌리내린 왜곡된 여성관은 성추행범의 인지 왜곡을 강화하고, 강화된 성추행범의 인지 왜곡은 다시 사회에 영향을 미쳐 성추행 신화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몰카’, ‘야동’, ‘일베’가 만들어낸 지옥
이 책은 성추행을 일종의 ‘중독’으로 바라본다. 성추행은 의존증이라는 병이며, 따라서 치료도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저자는 성추행범을 치료하는 과정에 꼭 관리해야 할 것으로 성인 동영상과 자위를 지목한다. 특히 범죄적인 성인 동영상을 보면서 자위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거의 모든 성추행범이 성인 동영상을, 특히 성폭력을 소재로 한 성인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폭력적이고 차별적 묘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위험하다. 성추행범은 이런 콘텐츠를 자주 접하며 여성에 대한 오해를 쌓아간다. 그들은 점차 현실의 여성이 아니라 자기가 본 동영상 속 여성이 보편타당한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적 표현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을 타개하려면 보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 모두에게 규제가 필요하다.
성인 동영상과 함께 인터넷 사용도 관리해야 한다. 성추행 상습범 중에는 인터넷 사이트에 자신의 경험담을 올리고 정보를 교환하는 이들이 있다. 그 안에서 자신이 저지른 가해행위를 자랑한다. 2018년 11월 일간베스트(일베) 사이트에 ‘여친 인증’이라며 여자 친구를 불법 촬영한 사진들이 올라와 논란이 되었다. 일베 회원들은 몰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처벌을 피할 방법까지 공유했다.
이런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것은 그 자체로도 범죄 행위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쳐 다음 범죄를 유발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계기만 마련된다면 언제든 성추행에 뛰어들 수많은 성추행 예비군을 양산하는 셈이다. 게다가 이런 사이트에는 과격한 일을 할수록 인정받는 문화가 있어서 행위의 수준이 점점 심해진다.
미투 ‘당한다’는 공포
: 왜 무고에 집착할까?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라고 했을 때 “하지만 살인범 중에도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린 사람이 있다”라고 덧붙이지 않는다. “강도는 나쁜 범죄다”라고 했을 때 “강도 중에도 억울하게 몰린 사람이 있다”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성추행을 없애야 한다”라고 하면 “성추행 무고를 먼저 없애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다른 성범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일단 여자가 꽃뱀이 아닌지 의심한다.
성범죄에만 예민하게 무고를 들고나오는 이유는, 다른 범죄와 달리 성범죄로 인한 손해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둑질을 당하면 돈을 잃고, 폭행을 당하면 상처를 입으며, 살인을 당하면 목숨을 잃는다. 물론 강간 같은 범죄는 육체에 상처를 남기지만, 그보다 큰 손해인 짓밟힌 존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많은 남성이 성범죄 피해를 상상하지 못한다. 겉으로는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피해자가 많다. 정신적 피해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성추행 무고로 파괴된 남성의 인생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으므로 더 현실적으로, 무게감 있게 받아들인다.
게다가 성추행범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에, 여성이 반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에게 반격할 리 없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당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준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성추행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무고만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사람은 보고 싶지 않은 것에는 눈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외면한 곳에 성추행범이 되는 본질이 숨어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사이토 이키요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정신보건복지사이자 사회복지사로 오모리 에노모토 클리닉大森?本クリニック 정신보건복지부장이다. 1979년생으로 대학 졸업 후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의존증 치료 시설인 에노모토 클리닉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알코올 의존증을 비롯해 도박, 약물, 섭식장애, 성범죄, 가정 폭력, 도벽 등 다양한 의존증 치료에 힘쓰고 있다. 전문 분야는 성범죄자 지역 치료로, 지역의 기초 자치 단체나 주민 조직과 협력해 성 의존증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실천 중이다. 조기 의존증 치료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 『도벽 의존증』과 『성 의존증 치료』(공저), 『성 의존증의 현실』(공저)이 있고, 다수의 논문을 썼다.
옮긴이 : 서라미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언론영상학을 전공하고 현재 출판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그들은 왜 싸우지 않는가』『내가 일하는 이유』『귀를 기울여줄 한 사람만 있어도』『비즈니스 모델을 훔쳐라』외 다수가 있다.
목 차
추천의 말
머리말
제1장 성추행범은 누구인가?
일상 속의 범죄자들 │ 성추행이라는 범죄 │ 드러나지 않는 피해자 │ 성추행 대국을 만드는 요인들 │ 왜 하필 지하철일까? │ 성실한 그의 다른 얼굴 │ 성추행범 프로파일링 │ 대졸, 회사원, 유부남
제2장 성추행범 심리 해부
그들은 환자다 │ 도박 같은 중독성 │ 성 의존증의 7가지 특징 │ 치료하느냐, 범죄자가 되느냐 │ 병이니까 이해해주어야 할까? │ 일상의 스트레스로 시작된다 │ 목격자가 범죄자가 된다 │ 성욕이라는 핑계 │ 성매매는 답이 될 수 없다 │ 스트레스와 트리거 │ 괴롭지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 낮은 자존감과 비뚤어진 지배욕 │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사람들
제3장 인지 왜곡에도 이유가 있다
‘스위치가 켜졌다’라는 말 │ “조금 만졌다고 닳는 것도 아니잖아” │ 비뚤어진 여성관이 진짜 문제 │ 여성 혐오를 공유하는 사회 │ ‘그래도 되는’ 여자가 있을까? │ 그들에게는 ‘삶의 보람’이다 │ 게임 같은 범죄: 스릴, 위험, 레벨 업 │ 피해 여성의 특징 │ 성추행과 왕따의 공통점 │ 천정이 무너진 시대
제4장 무엇이 그들을 범죄로 내몰까?
성인 동영상을 따라 한다 │ 성인 동영상과 자위 │ 자위도 관리가 필요하다 │ 인터넷 커뮤니티가 문제 │ 그곳에서는 변태가 영웅이 된다 │ 스스로 그만두지 못한다 │ 성추행을 부추기는 사법 체계 │ 합의금으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 체포되면 더욱 심해지는 인지 왜곡
제5장 그들은 왜 반성하지 않을까?
재범의 굴레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 성추행과 불법 촬영 │ 재판 날에도 범죄를 저지른다 │ 그들도 달라질 수 있을까? │ 가해자는 범죄를 기억하지 못한다 │ 의미도 진심도 없는 반성 │ 혼 없는 사죄는 불쾌하다 │ 먼저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 │ 감옥에 보내도 효과 없는 이유 │ 다시 트리거로 가득한 사회로 돌아온다
제6장 성추행을 치료하는 방법
평생 가두어둘 수 없다 │ 재범 방지 치료의 3가지 기둥 │ 치료까지는 최소 3년 │ 이야기하고 요리하고 운동하고 │ 대화하는 법을 가르친다 │ 위험 요소를 관리하게 한다 │ ‘달라지는 나’에 매료되지 말 것 │ 위기가 다가온다 │ 뒤늦은 성장통을 겪는 사람들
제7장 가해자 가족의 고통
두 번째 피해자: 가해자의 가족 │ 이혼하지 않는 아내 │ 가해자 아내의 이중고 │ 결혼 생활을 지속하거나 이혼하거나 │ 가해자의 어머니라는 족쇄 │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아버지 │ 소중한 사람의 힘
제8장 어려운 신고, 쉬운 무고
멀고 어려운 성범죄 신고 │ 무고에만 집착하는 이유 │ 성추행이 범죄라는 사실을 모른다 │ 꽃뱀에게 억울하게 걸렸다고? │ 의식과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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