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온갖 욕망과 갈등, 협잡과 정치가 난무하는 공간 - 지역(local)
로컬리티라는 환영, 그리고 투쟁
지역의 문학/문화는 소중하다. 하지만 그것을 창조하는 과정은 생각만큼 조화롭거나 평화롭지 않다. 오히려 때로는 치졸하고 비루한 욕망, 세속적인 갈등, 협잡과 정치가 난무하는 장소야말로 지역 local 이기도 하다. 지역에서 문학을 창작/비평한다는 자의식이, 지역이라는 존재 조건을 ‘신성 장소’로 숭배하는 제의의 발문이 되거나 혹은 우리 안의 후진성을 옹호하는 알리바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비슷한 경우를 목격할 때가 있다. 지역에서 문학/비평을 한다는 것은 ‘중앙중심주의’라는 권위적 문화주의와 대결하는 민주적 투쟁인 동시에, 우리 안의 토착적 기득권을 내파(內波)하는 자기 혁명의 과정이기도 하다.
지역/문학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직조하는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지역은 실존적 장소인 동시에, 절박한 투쟁의 공간이다. 누군가와 문학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다만, 그 선한 마음의 정체와 가치를 판별하는 것은 비평(가)의 몫이다. 비평은 불화를 통해 조화에 이르는 변증법적 실천 과정이며, 이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로컬리티 locality 라는 환영과 싸워야 한다.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지역의 문학/비평을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
문학/비평을 한다는 것은 좋은 삶의 형식이 무엇인지를 탐문하는 가치 투쟁의 과정이며, 그것은 철저한 자기 성찰 속에서만 가능해진다. 문학/비평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십 년 넘게 공부하고 있지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 답한다. 어쩌면 평생 답을 내놓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물음은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되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투의 가해자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은 시인과 이윤택 연출가의 작품을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또 그 문장들과 충돌하고 있다.「김주열」이라는 작품을 쓰며 혁명의 순정함을 노래했던 시인은, 이제 가장 추악한 ‘미투의 가해자’로 호명되고 있다. 또한 기성세대의 문화적 권위주의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한 것으로 평가받아 온 이윤택의 이중적 행태도 충격적이다. 저자의 평문은 미투 운동 이전에 발표한 글이지만 비평가로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기 위해 이 부분을 자기 성찰의 계기로 삼고 있다. 이를 통해 자기 성찰이 부재한 지역/문학이 어떻게 추락하고 분열될 수 있는지를 사유하고 있다. 결국 저자는 지역/문학이 문화적 응전을 통해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와 맞서 싸우면서도, 또 다른 부당한 권력의 사용자가 되지 않는지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해야 한다며, 그것이 지역/문학이 가야할 진정한 길이라 말한다. 우리는 모두 문학과 삶, 분투와 분열, 그 가파른 칼날 위에 서 있는 셈이다.
‘1부 프롤로그’와 ‘3부 비평의 불화不和와 연대의 (불)가능성’에 수록되어 있는 글은 대부분 저자가 초기에 쓴 평문이다. 지역문단의 이중적 잣대와 집단적 허위의식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다루었다. ‘2부 비평의 시차視差와 저항의 장소성’에 수록된 평문은 그러한 삶/문학의 가능성을 지역/비평이라는 시좌 속에서 모색해 본 글이다. 마지막으로 ‘4부 에필로그’에 수록된 비평은 지역에서의 문학적 분투가 어떻게 분열되고 착종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상학적 텍스트이다.
‘비평의 바다’를 항해하는 두두 비평선의 시작
인간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며
비평(criticism)은 가치 판단이다. 비평적 사고와 글쓰기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타격하는 언어적 불화를 통해 인간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정초하고자 하는 가치 투쟁이다. 두두출판사의 비평문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이념적 금기를 부수며 건강한 공동체의 가치를 직조하고자 하는 사회학적 실천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비평의 바다’란 기득권의 견고한 상징체계를 ‘범람’하는 사유의 파고이다.
- 두두 편집부
작가 소개
문학평론가. 부산외대 한국어문화학부 조교수. 비평전문 계간지『오늘의 문예비평』편집위원, 인문그루브 ‘지튼(Z-tn)’ 연구원. 1977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하였다. 비평연구모임 <해석과 판단>에서 공부하였으며,『오늘의 문예비평』에「‘말’하는 ‘입’으로서의 문학관」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함께 낸 책으로『지역이라는 아포리아』,『비평의 윤리, 윤리의 비평』,『공존과 충돌』,『부산시민의제사전 2014』,『지역·주체·소수자 담론과 욕망 표상』,『불가능한 대화들』,『세계문학의 가장자리에서』,『비평의 비평』,『차이의 해석과 문화적 시선』등이 있으며, 제10회 봉생청년문화상(문학부문)과 제38회 이주홍문학상(문학연구부문)을 수상하였다. 첫 평론집 『로컬리티라는 환영』은 ‘지역/문단’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점멸시키고 있는 ‘허구적 유대’의 정치회로를 분쇄하기 위한 비평적 분투이다. 문학과 인문학이 우리 삶의 억압적 감성 구조를 변화시키는 실천적 방법이 되기를 바라지만, 많은 이들이 문학을 잘 아는 것보다는 ‘문학적인 삶’에 더 가까워지기를 희망한다.
목 차
머리말 : 조금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면
1부. 프롤로그 : 표준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
국어의 외항外港 : 지역, 지역어, 지역문학
2부. 비평의 시차視差와 저항의 장소성
비평(가)의 로케이션과 소명
비평의 시좌 : 신경숙 사태를 보는 다른 곳
혁명의 장소와 증언의 (불)가능성
혁명의 재현과 저항의 (탈)신성화
3부. 비평의 불화不和와 연대의 (불)가능성
판타지로서의 지역문인공동체
불화의 공동체 : 지역학문공동체와 침묵의 공모
로컬 트러블 : 지역, 세대, 불화, 비평
지역 문학관과 공간의 문화정치
4부. 에필로그 : 지역/문학의 분투와 분열
시/삶의 곤혹 : 시적 실천의 양상과 자기 분열
미주
엔딩 크레딧 : thanks for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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