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생명과학의 발전은 어디로 향하는가?
줄기세포, 유전자 가위, 게놈 프로젝트...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상징하는 이런 말들을 들으면 ‘이제 인류가 모든 난치병에서 자유로워질 날이 멀지 않았구나’라는 벅찬 희망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그렇게까지 해도 괜찮을까’라는 위태로움을 느끼는 묘한 딜레마에 빠진다. 최근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을 거친 아이를 출산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국에서 시도된 일종의 ‘맞춤 아기(designer baby)’ 탄생에 대해 세계 각국은 중국이 생명과학에 대한 국제 합의를 깼다며 비난했다. 하지만 우리가 기후변화 협약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 앞에서 어떠한 윤리적·정치적 합의도 맥을 못 추는데 과연 생명과학에 대한 국제 합의인들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어느 선에서 제어하지 않으면, 시장의 논리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맞물리면서 합의의 둑은 무너지고 생명과학은 ‘치료’의 영역을 넘어 건강한 신체를 더욱 뛰어나게 만드는 ‘강화’의 영역으로 빠르게 넘쳐흐를 것이다. 노화를 되돌리고, 신체의 일부를 교체하고, 태어날 아기를 선별하거나 부모가 원하는 대로 편집하고, 유전자를 조작하는 등 ‘강화’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생명과학의 발전은 인간을 더욱 행복한 세상으로 이끌까, 아니면 경제력의 차이가 그 사람의 태생적 능력이나 신체적 조건마저 정해버리는 끔찍한 세상으로 이끌까?
인간의 존재 방식을 바꾸어놓을 생명과학의 발전
생명을 ‘개조하거나 만들어도’ 괜찮은지 과학자들에게 물으면, 과학자들은 그에 대답하는 것은 자신들의 역할이 아니며 사회가 결정할 문제라고 답한다. 맞다. 과학자들은 과학의 발전에 최선을 다해 매진할 뿐, 그러한 발전의 결과를 어떤 방향으로 어디까지 허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앞으로 예견되는 생명과학의 발전은 그것이 상업화되었을 때 인간의 존재방식 자체를 바꾸어놓을 만한 파급력을 갖고 있다. 결국 ‘인간으로서 더 나은 존재 방식’이 무엇인지 제대로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는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는 생명과학의 폭주 속에서 끔찍한 세상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회가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이끌어줄 학문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이 철학이라고 말한다. 이때의 철학은 좁은 의미의 서양 철학이 아닌, 사회와 인간의 바탕을 이루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되물으며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보게 하는 사유로서의 철학이다. ‘생명을 만들어도 괜찮을까’라는 물음은 그리 간단한 질문이 아니며, 질문 그 자체가 무겁고 다양한 학문 영역에 얽혀 있어 자칫 길을 잘못 들게 될 수도 있다. 오랜 세월 동서양의 다양한 사생관에 천착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생명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가치관을 균형 있게 다루면서 우리를 생명윤리에 대한 깊은 사유의 길로 이끈다.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더 깊은 차원의 생명윤리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생명과학의 현재와 그 가능성을 살펴본다. 배아 줄기세포(ES 세포), 유도 만능 줄기세포(iPS 세포), 출생 전 진단, 선택 임신, 유전자 조작 등 일반인들이 막연히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정확한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생명과학을 쉬운 말로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이 생명과학의 현재와 그 미래 가능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일본의 소설 《나라야마 부시코》,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 미국 대통령 생명윤리위원회의 《치료를 넘어서》 보고서, 마이클 샌델 교수의 물음 등을 통해 생명윤리와 종교·문화의 상관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생명윤리의 논점에서 벗어나 생명을 바라보는 ‘문화의 차이’를 인식하고 서로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좀 더 깊은 차원의 생명윤리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렇게 해서 ‘생명을 만들어도 괜찮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인류 공통의 가치에 기초한 답을 찾았을 때, 비로소 생명과학의 발전은 우리 인간이 더 나은 존재방식으로 나아가도록 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만의 문화를 반영한 생명윤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 책은 동서양의 생명윤리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지만, 일본인 저자이다 보니 동양의 경우 일본의 생명윤리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한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은 우리에게 큰 숙제를 던져주는 책이기도 하다. 우리만의 문화가 깊이 반영된 생명윤리가 활발하게 논의된 적이 있었던가? 그런 논의나 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황우석 사태를 경험하면서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나 연구과정에서의 윤리는 사회적으로 큰 화두가 된 적이 있었으나, 생명과학 그 자체에 대한 논의는 아직 미진해 보인다. 논의가 되더라도 주로 서구의 기도교적 관점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질 뿐, 우리 고유의 문화적 차이를 깊이 반영하고 고민하는 차원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 듯하다. 앞으로 생명과학이 더욱 더 발전함에 따라 생명윤리에 관한 국제적 논의는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생명윤리에 관한 인류 공통의 가치 기반을 찾는 국제적인 토론과 대화에 참여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내려면, 먼저 우리만의 문화를 반영한 생명윤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이 그러한 논의를 촉발하는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시마조노 스스무
1948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문학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 계열 연구과 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현재 동 대학원 인문사회 계열 연구과 명예교수이자 조치대학 신학부 특임교수 겸 동 대학 그리프케어(grief care) 연구소장이다. 주요 연구 영역은 근대 일본 종교사, 비교종교운동론, 사생학이다.
국내에 출간된 저서로는 《종교학 세계명저 30선》, 《사생학이란 무엇인가》, 《일본인의 사생관을 읽다》, 《역사와 주체를 묻다》 등이 있다.
옮긴이 : 조해선
경희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및 언론정보학을 전공했다. 금융회사 CS 분야에서 일했으며 바른번역 아카데미에서 일본어 출판 번역 과정 수료 후 현재는 일본 도서 기획과 번역에 힘쓰고 있다. 드넓은 바다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다양함을 수용하는 번역가를 꿈꾼다.
옮긴 책으로 《스탠퍼드식 최고의 수면법》, 《혼자서 공부해봤니?》, 《쓸데없는 말 한마디 안 했을 뿐인데》 등이 있다.
목 차
서론 생명과학의 꿈과 한계
제1장 신체를 개조하면 행복해진다? - 치료를 넘어선 강화
제2장 이상적인 아이를 선택할 수 있다면 - 출생 전 진단과 선택 임신
제3장 생명을 개조해도 괜찮을까? - iPS 세포와 재생 의료의 꿈
제4장 ‘멋진 신세계’로는 가고 싶지 않다? - 어느 작가가 그린 미래 예상도
제5장 ‘생명은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라는 말의 의미 ? 마이클 샌델이 묻다
제6장 작은 생명을 받아들이는 방식 - 중절과 생명의 시작에 관한 논의
제7장 유대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 - 뇌사에 드러나는 사생관
결론 개별적 생명과 유대 속 생명
마치는 글
주요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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