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쓰기 위해 살고, 굴복하지 않으려 죽다!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열네 편의 작품을 만나다
탁월한 작가이자 페미니스트로 정평이 난 버지니아 울프. 그런데 우리는 어쩌면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미지에 시선을 빼앗겨 그녀의 본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울프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마음을 탐구한 소설가이자 사회 문제를 폭로한 에세이스트였고, 자기 주변을 섬세하게 관찰한 모더니스트인 동시에 당대의 문화와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한 비평가였다. 그리고 누구보다 선구적으로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주체 생성을 위해 싸운 급진적 페미니스트였다. 이 책은 《자기만의 방》,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출항》 등 울프의 대표작을 함께 읽으며 그녀의 삶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본다. 자신의 시대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울프의 목소리는 지금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전한다.
1. 당신을 버지니아 울프 북클럽에 초대합니다
- 울프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녀의 작품 하나도 제대로 완독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오늘날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은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2015년 2월부터 시작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미투 운동 등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으며,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하는 작가가 바로 버지니아 울프다. ‘여성과 소설’에 관한 강연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 《자기만의 방》은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작품이며,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의 제목을 여성 독립을 은유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또한 울프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소설을 쓴 대표적 모더니즘 작가이며, 그녀의 소설은 지금까지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막상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직접 읽어보려고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좌절하기 쉽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기술된 울프의 소설은 일반적인 소설처럼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려워 무척 난해하게 느껴진다. 에세이는 명확하게 주제 의식을 표현하지만, 20세기 초 영국의 사회와 문화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그 의미를 오롯이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 책 《버지니아 울프 북클럽》은 이 같은 버지니아 울프 입문자를 그녀의 삶과 작품 세계로 초대하는 친절한 안내서다. 《자기만의 방》,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올랜도》 등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열네 편의 주요 구절과 집필 배경, 사회 상황 등을 종합하여 각 작품의 의미를 차근차근 살펴봄은 물론 지금 왜 울프가 호명되는지 그 실체를 하나하나 드러낸다.
《자기만의 방》은 소설 못지않게 울프에게 유명세를 안긴 작품이다. 울프는 논객이었다. 그는 당대 사회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회를 향하기보다, 그곳에서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해야 할 여성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에게 글쓰기는 단순하게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주체의 변용 자체를 끌어내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울프는 줄곧 자신의 경험을 소개한다. 작가로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울프는 이 책에서 되짚는다. 사상가로서 울프의 면모가 오롯이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자기만의 방》, 여성 주체를 만드는 법’ 중에서(183쪽)
《댈러웨이 부인》은 울프의 대표작으로, 이른바 의식의 흐름 기법을 도입한 최초의 실험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 클라리사 댈러웨이 부인이 파티를 준비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지만, 시공간을 초월한 ‘의식의 흐름’이 전체 이야기를 직조한다. 울프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 소설 역시 이야기를 따라가려고 하면 금방 흥미를 잃을 수 있다. 이 소설을 울프 자신의 이야기로 읽어보면 숨겨진 의미의 지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런던을 산책하기 좋아하는 클라리사는 울프의 모습과 겹치며, 내면의 광기가 점점 커져서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는 셉티머스는 울프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듯하다.
- ‘《댈러웨이 부인》, 작가라는 질병’ 중에서(151쪽)
2. 사상가이자 실천적 지식인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다
- 소설, 에세이, 일기... 울프의 면모를 입체적으로 그리다
버지니아 울프는 물론 뛰어난 작가이자 페미니스트지만 그녀의 본모습은 모더니즘 작가, 여류 작가, 페미니스트 작가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다. 저자 이택광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울프, 즉 날카롭고 예리한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울프를 새롭게 조명한다. 저자는 잘 알려진 울프의 소설과 에세이만이 아니라 26권에 달하는 일기까지 조사하여 그녀의 일상과 단상을 낱낱이 파악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울프가 제1,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전쟁, 영국의 식민지 경영과 제국주의, 노동자의 권리, 여성의 사회적 지위 등 당대의 문제들을 치열하게 고민했으며, 자신의 신념을 글로 표현하고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노력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에세이집 《보통의 독자》 서문에서 울프는 비평가나 학자가 아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는 ‘보통의 독자’를 이야기한다. 이 ‘보통의 독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에 가지 못하고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던 울프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울프는 과거 자신의 문제와 경험을 사회적으로 확장시켜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노동자들에게 독서를 권장했으며, 개인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출판하고 공공 도서관에 공급하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울프는 이렇게 성장한 교양 있는 대중이 민주 사회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누구보다 당대를 예리하게 분석하여 자신의 이론을 정립한 사상가 울프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 외에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반제국주의자 울프, 반전주의자 울프, 문화비평가 울프는 놀랍고 다채롭다.
울프는 평생 읽고 쓰는 일을 강조했다. 그는 지독한 독서가이자 기록자였다. 이런 노력은 개인의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노동자들에게 독서를 권장했으며, 공공 도서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탁월한 소설가인 동시에 날카로운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이런 울프의 면모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까지 세상은 울프를 전면적으로 오해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울프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그동안 읽지 못했던 그의 에세이와 일기를 읽은 것은 또 다른 소득이다. 소설만 읽었을 때 뚜렷하지 않았던 울프의 모습이 에세이와 일기를 읽고 나자 선명하게 드러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흑백 사진에 갇혀 있던 창백한 미학주의자가 사실은 뜨거운 심장으로 당대와 치열하게 부딪치면서 살아간 불굴의 활동가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치 울프가 곁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할 정도였다.
- ‘프롤로그’ 중에서(6쪽)
전쟁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울프는 전문직 여성의 출현이라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여성이 어떻게 이 폭력을 끝내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울프는 전문직이라는 직업 자체에 회의적이었다. 울프가 보기에 전문직은 부르주아 남성 중심주의가 만들어놓은 폐해였다. 울프가 구상한 더 자유로운 사회는 전문화가 없는 사회였다는 점에서 당시로 보나 지금으로 보나 놀랍도록 급진적인 전망이었다.
이런 사상가 울프를 손쉽게 모더니스트 작가로 이름 붙여서 책장에 꽂아버리는 것은 얼마나 게으른 일인가. 울프의 생각은 전문성의 문제가 인공지능과 같은 기계로 대체되고 있는 오늘날에 이르러 더욱 빛을 발한다.
- ‘《세 닢의 금화》, 자유를 위한 경제 조건’ 중에서(178~179쪽)
버지니아 울프가 가진 정치성의 절정은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지식인의 면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울프 문학에 관한 연구들이 이런 울프의 정치성에 집중한다. 울프의 문학을 탈정치적인 모더니즘으로 취급하던 경향에서 차츰 빅토리아 지식인 울프의 독자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소홀하게 취급해온 울프의 면모를 들여다보면 그의 대표작을 다시 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중략) 버지니아 울프의 반제국주의 사상은 초창기부터 모습을 드러내는데, 1915년에 출간한 첫 소설 《출항》부터 이미 영국 제국주의와 식민지 문제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 ‘《출항》, 제국에 반대하다’ 중에서(233~234쪽)
3. 현대의 영 페미니스트에게 영감을 주는 가장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 오늘, 여기서 울프를 다시 읽는 이유
버지니아 울프는 가장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작가로 거론되는 동시에, 가난한 이들의 현실에 무지한 중산층 엘리트 여성이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울프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온당치 못하다. 그녀는 자유를 위한 물적 토대의 필요성을 정확히 직시했다. 여성이 전문직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런데 울프의 주장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울프는 여성이 자유롭게 전문직에 진출해야 하지만 그곳에 안주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단지 남성처럼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만들어놓은 폭력적인 세계에 대항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성이 남성 위주의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급진적이다. 이렇듯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시대에 온몸으로 저항한 그녀의 사유는 지금의 영 페미니스트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택광
워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셰필드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에서 문화비평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마녀 프레임》,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등이 있다.
자기 자신과 주변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분석하여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세계에 관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 이는 버지니아 울프를 설명하는 말인 동시에 이택광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문화평론가이자 영문학자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이 시대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들려준다. 그에게 울프는 가장 현대적인 작가이자 선구적 페미니스트, 어떤 편견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당대를 직시한 비평가이기에 그녀의 글에서 21세기 한국 사회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선을 찾아내고자 한다.
목 차
《제이콥의 방》, 삶을 표현하는 글쓰기
《등대로》, 글쓰기를 위한 일기 쓰기
《밤과 낮》, 대중이라는 괴물
《플러시》, 새로운 소설을 위한 선언
《런던 전경》, 도시의 삶
《올랜도》, 젠더 트러블
《보통의 독자》, 평범한 사람을 위한 독서법
《파도》, 영화의 시대
《댈러웨이 부인》, 작가라는 질병
《세 닢의 금화》, 자유를 위한 경제 조건
《자기만의 방》, 여성 주체를 만드는 법
《세월》, 행복의 조건과 가능성
《존재의 순간들》, 여성에게 조국은 없다
《출항》, 제국에 반대하다
에필로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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