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치철학의 네 가지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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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한국철학사상연구회
출판사항에디투스, 발행일:2019/04/30
형태사항p.416 국판:23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96622473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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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촛불(2016년)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그것이 인간적 삶의 조건과 미래를 어떻게 그려가고 있는지에 대해 묻는 작업을 기다렸다. 정치란 본래 지배의 논리일 뿐이라고 믿거나, 한낱 이벤트 내지 거창하게는 스펙터클로 변한 지 오래라고 체념하지 않고 여전히 정치가 대중의 고단한 삶을 변화시킬 인간의 역능에 속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이제 다시 대중을 정치의 객체가 되게 하고 기껏해야 ‘손가락 혁명’에 동원되는 유권자 이상이 못 되게 만드는 촛불 이후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것을 타개할 정치 담론의 출현에 목말라 했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나온 지도 이제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꼬리를 물고 서로 번갈아 가며 이어지는 한국의 정치가 흡사 미국의 그것을 이미 닮아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우선 갖는다. 다르게 말하면, 오바마와 트럼프 사이의, 노무현과 이명박 사이의 진자추 운동과도 같은 반복이 앞으로도 되풀이되리라는 우려가 단지 가상이 아니라 현실로 굳어질 것 같은 어떤 기시감과 불안 때문이다. 촛불의 봉기는 정치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성찰이었지만, 오늘의 정치가 보여 주는 진퇴와 교착을 앞에 두고 촛불의 대중은 적극적인 행위자이기보다 무기력한 목격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에는, 민주주의는 고정된 무엇에 대한 이름이 아니라 끝없이 재발명되지 않으면 안 되며, 보다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창출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멀리 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깃들어 있다. 공허하고 지루한 반복을 분절하고 “인민들이 스스로에 대해 권력을 갖는 것으로 간주된 실존”이라는 민주주의 본연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서 다른 정치적 사유의 장소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그래서 긴요하고 긴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현대 정치철학의 네 가지 흐름』은 이러한 과제가 자신들의 의무임을 아는 정치철학자들의 응답이다. 지금까지 나온 다른 정치철학서에 비해 두드러지는 이 책의 특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20세기 초중반을 짓눌렀던 ‘전체주의’에 대한 반성을 포함하여 그간 여러 갈래로 나뉘어 다루어졌던 정치철학의 주제들(페미니즘 정치철학을 포함하여)을 오늘 한국 정치를 사유하려는 뚜렷한 문제의식 아래 전체적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구성했다는 데 있다. 그것도 국내 연구자 16명이 이미 지면에 발표된 글이 아니라 공동의 문제의식 아래 새로이 쓴 글들로 한 권의 책을 구성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이로써 우리는 자신 속에 갇혀 한계 안을 맴도는 데서 벗어나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파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이 책이 겨냥하는 것이 정치철학적 사유와 언어를 바로 촛불의 대중에게 건네주고자 하는 데 있다. 이 작업이야말로 일견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 없는데, 이 책의 16명의 필자들의 노고가 돋보이는 이유는 주요 정치철학자들의 사유의 핵심을 속류화시키지 않으면서 명료하게 정리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업을 우리 자신의 정치적 사유의 자산으로 삼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오늘날 정치는 어떠한 사유와 성찰을 요구하는가.
현대 정치철학의 사유를 통해 모색해 보는 대안적, 대항적,
해방적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

2016년의 촛불은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정치적 실천들과 그에 관한 담론들이 터져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어느새 촛불은 추억이 되었고, 대중적 에너지는 제도권 정치의 블랙홀 속에서 소진되고, 그 자리엔 정치권의 공방과 이합집산, 그리고 이를 좇는 미디어와 그들이 매일 같이 만들어 내는 정치 흥행물에 눈을 고정시킨 무기력한 대중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30년 가까이 지난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라면 지나친 판단일까. 대중의 정치적 무기력이 민주주의의 한계를 만드는지,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근원적인 한계가 정치의 공백을 낳게 하는 것인지를 따질 겨를도 없이, 조금도 과장 없이 말하자면 오늘날 대중은 자기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불안과 공허 속을 그저 부유하고 있다. 그러한 대중은 때로는 정치적 불의의 임계점 앞에서 봉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불안 속에서 엉뚱한 반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월가 시위’ 이후 미국의 정치가 트럼프 집권으로 귀결된 것 역시 다르지 않다. 그것은 어쩌면 오바마까지 이어지는 민주당의 월가(자본) 친화적인 자유주의적 통치에 대한 대중적 염증이 불러낸 자기 파괴적인 반란이었다. 노동하는 삶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 데 대한 대중적 실망이 자본가 계급을 대표하는 정치의 선동에 현혹되는 아니러니. 우리는 그것을,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선언했던 노무현 정부 이후 이명박의 당선에서 이미 목도하지 않았던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나온 지도 이제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꼬리를 물고 서로 번갈아 가며 이어지는 한국의 정치가 흡사 미국의 그것을 이미 닮아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우선 갖는다. 다르게 말하면, 오바마와 트럼프 사이의, 노무현과 이명박 사이의 진자추 운동과도 같은 반복이 앞으로도 되풀이되리라는 우려가 단지 가상이 아니라 현실로 굳어질 것 같은 어떤 기시감과 불안 때문이다. 이제 집권 2년을 넘어서는 문재인 정부가 같은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염원에는 그러한 희비극이 의미 없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적폐청산과 남북한 평화체제 이행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삶의 곤궁이 나아질 기미가 없을 때 그 지점을 파고드는 것은 다름 아닌 경제 우선주의를 내세운 우익 포퓰리즘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라는 다급한 물음은 물론 한국에서 먼저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가 확고해진 이래 민주주의는 인간적 삶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의 형식이 아니라 체제의 불의와 불평등을 숨기는 알리바이가 되었다는 비판이 저 민주주의의 선진 국가들에서 먼저 제기된 지도 오래다. 대의제 민주주의 안에 깃든 독재의 가능성을 일찍이 간파하고 히틀러 독재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주장했던 칼 슈미트, 그보다 앞서 프랑스혁명과 반동의 역사를 지켜본 칼 맑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간파했던 대의제 민주주의의 ‘구멍’. 이 구멍을 직시하지 않고서 민주주의 자체를 물신화해 버릴 때, “민주주의란 인민들이 스스로에 대해 권력을 갖는 것으로 간주된 실존”이라는 말은 명목일 뿐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모든 토론을 종국에는 쓸모없는 탁상공론으로 만들어 버리는 공허한 희비극의 반복은 계속 되풀이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그것은 촛불을 이룬 대중의 역능이 일상으로 이어지면서 인간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정치적 행위 능력으로 유지되고 강화되는 길을 여는 것이며, 그것은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 자신의 사유의 토대를 전면적으로 성찰해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직시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오늘의 정치를 세계사적 좌표 위에서 조망하고 20세기와 21세기의 오늘로 이어지는 정치에 대해 깊이 사유해 온 철학적 사유의 성과를 통해 인식의 기반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과제는 우선 이 땅에서 정치철학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철학적 사유의 담지자는 삶의 위기와 고단함 속에서도 미래의 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대중(민중)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현대 정치철학의 네 가지 흐름』이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기획되고 씌어진 책이다. 책은 근대 이후 오늘날의 정치와 민주주의적 상황을 포착해 온 정치철학의 흐름을 네 가지 주제로 나누고, 이 주제 영역을 개척하거나 새롭게 발명한 주요 사상가들의 사유의 핵심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민주주의 속의 독재의 가능성을 포착했던(그를 통해 나치체제를 옹호하는 이론가가 되었던) 칼 슈미트로부터 시작하여, 세속화된 근대사회에서 물신이 되어버린 민주주의를 타개하려는 오늘의 급진적 정치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특히는 지금까지의 체제 변혁적인 사유가 안고 있던 근본적인 한계를 날카롭고 찢으며 차이와 평등의 정치를 결합하려는 페미니즘 정치철학까지, 지금까지 분리된 채 논의되어 온 주제들을 오늘날의 정치와 민주주의의 한계와 가능성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우리 자신의 정치적 사유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문제의식 아래 재구성해 낸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현대 정치철학의 네 가지 흐름』은 독자들이 쉽게 접근함으로써 자신의 사유와 성찰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분명한 목적으로 작성된 본격적인 대중적 정치철학서이다. 한마디로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는 촛불의 대중에서 무기력한 정치적 객체로 머무는 대중에게 정치적 사유와 언어를 건네주려는 시도라는 데 있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 공통의 관심사를 실현할 행동 양식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 이 역능을 가진 대중만이 오늘의 민주주의를 그 한계 너머로 더 멀리 나아가게 할 수 있고, 반복되어 온 희비극을 중단시키고 인간의 시간을 거기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구성과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부는 ‘전체주의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다. 여기서는 나치 세력의 집권 전후로 현대 전체주의와 파시즘에 관해서 성찰했던 철학자들이 다뤄진다. 이 책의 첫 장에 등장하는 칼 슈미트는 한때 나치의 협력자였고, 총통의 지배를 정당화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이론은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 내에서 독재의 출현 가능성, 그리고 전체주의적 지배의 위험을 사고하고자 할 때 반드시 다뤄져야 할 것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이 슈미트와 논쟁을 벌인 발터 벤야민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한데 벤야민의 정치·역사철학적 고찰들을 다룬 다음 장은 그의 고유한 맑스주의적 관심과의 관계 속에서 논의된다. 이어지는 아도르노, 아렌트 또한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자신의 철학적 사변의 주된 관심으로 삼은 철학자들이다. 전통 철학의 개념적 동일성에 대한 강박적 사고에 주목하면서, 철학적 동일성 원칙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여 이를 맑스주의, 정신분석학, 합리화 이론 등과 접목시켜 전체주의적 지배의 원리를 밝히는 전략을 택한 아도르노와, 정치의 근본 개념들을 규정하면서,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개념적 구분 속에서 전체주의적 지배로 전락한 현대 정치의 한계를 비판한 아렌트를 대비해 보는 기회도 된다. 이러한 20세기 현대철학의 전체주의 비판들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반지성주의의 흐름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우익 포퓰리즘 정치와 (이주민, 난민, 무슬림, 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 선동의 빠른 확산 속에서 어떠한 대항적 의제를 만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부는 ‘1968 전후의 프랑스 정치철학’이다. 20세기의 가장 결정적인 사건 중 하나였던 68혁명은 사회적 실재를 분석하는 새로운 분석틀을 요구했고, 이 혁명을 전후로 터져 나온 프랑스의 급진적 정치철학들은 흔히 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라는 타이틀 속에서 논의된다. 첫 글에서 소개되는 알튀세르의 ‘최종심급’ 개념은 바로 이러한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의 교차점을 형성하면서, 전통 맑스주의의 토대/상부구조 도식을 넘어서 사회적 구성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자신의 권력이론을 전개한 푸코는 고고학과 계보학의 방법을 통해 권력의 작동 방식을 분석하며, 이를 생명권력과 통치성에 관한 고찰들로 이어 나갔다. 이어서 다뤄지는 들뢰즈의 차이의 존재론은 차이와 강도(强度), 생성의 역량을 강조하면서, 68혁명과 같은 (체계성에 고정되지 않는) 혁명적 투쟁의 분출과 같은 사건을 개념화하고자 했다. 한편 이러한 투쟁의 분출 과정을 랑시에르는 민주주의라는 기표가 갖는 의미 속에서 고찰하면서, 정치와 치안의 이중 운동이 내는 불화 속에서 해방적 정치의 가능성을 찾는다. 이렇듯 68혁명을 전후로 프랑스 지성사에서 전개된 철학적 사유의 계보들이 보여 주는 지평들은 오늘날 촛불 ‘이후’의 정치를 고민해야 하는 우리에게 분명 큰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3부는 ‘페미니즘과 차이의 정치’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미투운동 이후, 페미니즘은 오늘날 시대적 정의를 상징하는 흐름이 되었다. 한쪽 성이 배제된 채 논의되는 민주주의와 정의, 진보는 반쪽짜리일 뿐만 아니라, 한쪽 성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반(反)민주적이며 불공정하고, 사회의 퇴보에 불과하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얻기 시작한 반면, 페미니즘의 물결에 대한 기존 남성 중심 사회의 백래시 현상도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현실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다른 사회적 운동들, 예컨대 계급적 불평등에 대항하는 운동이나 생태주의 운동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또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을 어떻게 규정하며, 다른 성소수자들(LGBT)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 책의 논의들은 이러한 논쟁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첫 번째로 다뤄지는 낸시 프레이저는 이러한 정의의 여러 차원들을 경제적 재분배/문화적 인정/정치적 대의 사이의 관계로 규정하면서, 페미니즘과 지구적 정의의 문제에 관한 정교한 틀을 제시하고 있다. 성적 대상화, 혐오 등 페미니즘 이론의 기본을 이루는 개념들을 규정한 마사 누스바움은 각 개인의 역량이 종합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정의로운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배제를 넘어서는 역량의 증대로서의 정의에 대한 고민은 아이리스 매리언 영에게서도 이어진다. 영은 현대 정의론의 고전인 존 롤즈의 정의의 원칙이 갖는 한계를 비판하면서, 재분배의 문제 설정을 넘어서 특정한 사회집단의 지위와 관련된 영역에서 차이의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디스 버틀러에게서 차이의 문제는 고정된 젠더 역할의 수행을 거부하는 횡단적 해체의 움직임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다. 버틀러는 페미니즘에 퀴어와 해체라는 키워드를 도입하여, 실체화된 여성성과 젠더 이분법을 넘어 모든 억압적 젠더 역할로부터 해방되는 주체의 자기 긍정적 관계를 선언한다. 이러한 다양한 각도의 페미니즘 철학의 논의들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리부트’ 속에서 제기되는 여러 화두들에 의미 있는 준거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4부는 ‘민주주의와 세속화된 근대’에서는 근대 민주주의 담론 전반에 대한 양극적인 논의들이 다뤄진다. 따라서 이 4부는 일관적이지 않은 구성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먼저 위르겐 하버마스와 찰스 테일러는 세속화된 질서로서 근대 입헌 민주주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그 내부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안착하기 위한 규범적 틀을 제시하고 있다면, 아감벤과 지젝은 근대 민주주의론 자체의 근본적 한계를 제시하면서 세속화된 현대사회 질서 내에서 또 다른 우상과 물신이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서구 기독교 전통이 현대 정치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분석을 통해 현대성을 사유하며 이를 넘어서고자 한다. 이를테면 하버마스에게 생활세계에서의 의사소통 합리성에서 비롯하는 토의 민주주의가 체계적 합리성의 자립화와 생활세계 식민화를 견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면, 테일러는 근대 이후 자유주의의 확산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세속화된 근대성이 불안정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조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체주의적, 정치적 자유의 관점을 제시한다. 반면 아감벤은 세속화된 근대사회가 또 다른 의미에서 세속화된 기독교 신학의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보면서, 근대 주권론이 갖는 생명정치적 한계를 드러낸다. 그에 따르면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근본적 차이란 없으며, 근대 주권의 구조가 벌거벗은 생명을 초래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귀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젝은 위기의 징후를 드러내는 이러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세속화된 근대의 역설인 이데올로기적 유령과 물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라진 공산주의의 전통이 부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는 이러한 사유를 전통 맑스주의로부터 직접 도출하기보다는, 프로이트와 라캉, 헤겔에 대한 독자적 해석을 경유해 이끌어 낸다.

이상 논의된 네 가지 주제들과 이 한 권의 책만으로 현대 정치철학적 사유들을 모두 망라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이 책이 놓친 주제들?예컨대 영미 정치철학에서의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 주로 프랑스에서 전개된 현상학적 공동체론, 이탈리아 자율주의 이론,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최근 논의 등?은 추후에 후속 기획을 통해 다룰 수 있으리라는 기획자(필자)들의 바람이 부디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한국은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역동적 민주주의의 역사를 가진 사회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발간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 일어난 3·1운동이라는 최초의 근대적 민중 봉기에서 출발하여, 4·19, 5·18 항쟁과 1987년의 6월 항쟁을 거치며 얻어 낸 민주화, 그리고 2016-2017년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근현대 역사는 지치지 않고 민주주의와 인민주권에 대한 열망을 표출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온전히 민주화되지 않았다. 엘리트 중심의 정치 질서와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 속에 퍼지는 정치 혐오는 오늘날 사회의 탈정치화로 귀결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된 현대 정치철학의 네 가지 주제들이 촛불 이후 한국 사회에서 정치에 대한 사유와 논의의 진전과 확산에 기여하기를 바라며, 나아가 현재의 조건에서 대안적, 대항적, 해방적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논쟁의 지평들이 열리기를 기원한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

작가 소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기 성찰과 실천적 모색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철학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1989년에 창립했다.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진보적 철학의 문제를 고민하며, 좁은 아카데미즘에 빠지지 않고 현실과 결합된 의미 있는 문제들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자 한다. 지역, 전공, 세대별로 흩어져 있던 구성원들이 커다란 강물을 이루듯 한데 모여 있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철학을 공부하는 석·박사 및 대학원생들과 대학 강사, 교수 등 총 300여 명의 회원이 함께한다.
펴낸 책으로는 『아주 오래된 질문들』, 『처음 읽는 한국 현대철학』, 『망각과 기억의 변증법』,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다시 쓰는 서양 근대철학사』,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 『철학자의 서재』, 『청춘의 고전』, 『철학, 문화를 읽다』, 『철학, 삶을 묻다』, 『철학 대사전』 등 다수가 있으며, 매년 네 차례에 걸쳐 학술지 『시대와 철학』을 발간하며 대중 웹진인 〈ⓔ시대와 철학〉을 운영하고 있다.

 

남기호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 교수. 독일 보쿰 루르(RUHR) 대학에서 청년 헤겔의 인륜성 개념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다시 쓰는 서양 근대철학사』, 『우리와 헤겔 철학』(이상 공저)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6―계몽』이 있다.

 

박지용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에서 칸트 미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르크스에서 출발하여, 헤겔, 칸트로 거슬러 가며 공부해 왔고, 이를 다시 역순으로 읽어 가고 있다. 최근 논문으로 「발터 벤야민의 보들레르 연구에서 나타난 역사유물론」, 「칸트의 역사철학에서 프 랑스혁명의 문제」가 있다.

 

한상원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에서 맑스의 물신주의와 이데올로기 개념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아도르노의 정치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아우구스티누스, 맑스, 벤야민. 역사철학과 세속화에 관한 성찰』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공동체의 이론들』이 있다.

 

조배준
 숭실대학교와 건국대학교에서 사회철학을 공부했고 한국철학사상 연구회에서 활동하며 한국의 현대철학 분야로 관심을 넓혔다. 현대 정치철학 담론과 ‘정치적인 것’, 한반도 민주주의 개념의 수용과 변용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함께 쓴 책으로 『길 위의 우리 철학』, 『처음 읽는 한국 현대철학』, 『가요 속 통일 인문학』 등이 있다.

 

최원
 미국 시카고 로욜라 대학 철학과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프랑스 구조주의 논쟁에 대해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라캉 또는 알튀세르』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워런 몬탁의 『알튀세르와 동시대인들』과 에티엔 발리바르의 『대중들의 공포』가 있다. 현재 단국대 철학과에 출강 중이다.

 

박민미
 동국대학교에서 「법·권력 담론 안에서 이성-비이성 공(共)작동 연관에 대한 푸코의 계보학적 고찰: 푸코 권력론에서 ‘법’의 위상과 역할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푸코 권력론을 법 현상 분석 및 여성 철학과 접목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몽테스키외, 무법자가 되다』,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공저) 등이 있으며, 동국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김범수
 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 들뢰즈의 존재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까지 영화, 이미지, 대중문화, 존재론을 공부하고 있다. 함께 쓴 책으로 『현실을 지배하는 아홉 가지 단어』, 『세계를 바꾼 아홉 가지 단어』,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 등이 있다. 상지대학교 교양대학 초빙 교수로 재직 중 이다.

 

조은평
 건국대학교에서 「이데올로기 문제틀에 관한 계보학적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상지대 초빙 교수와 건국대학교 시간 강사로 재직 중이다. 영화로 철학하기, 비판적 사고와 토론, 정신 건강과 생태 주의 행복론, 문화적 인간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인정이론과 페미니즘을 접목시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 『악셀 호네트』 등이 있으며,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 낸시 프레이저 등의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를 함께 옮겼다.

 

유민석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윤리학과 정치철학, 페미니즘 철학, 화용론과 메타윤리학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는 혐오 표현과 대항 표현, 표현의 자유라는 주제를 연구 중이다. 옮긴 책으로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 발언』이 있다.

 

김은주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에서 『여성주의와 긍정의 윤리학: 들뢰즈의 행동학을 기반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정신현상학: 정신의 발전에 관한 성장 소설』, 『공간에 대한 사회인문학적 이해』(공저)이 있으며, 『트랜스포지션』, 『페미니즘을 퀴어링!』을 함께 옮겼다. 이화여자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조주영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철학과에서 『인정의 정치-윤리학: 호네트와 버틀러의 인정이론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길석
 한양대학교에서 하버마스의 공영역론을 다원사회적 현실과 연관하여 탐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학부대학에서 비정년 교육중점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인간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함께 쓴 책으로 『아주 오래된 질문들』, 『다시 쓰는 서양 근대철학사』, 『법질서와 안전사회』 등이 있으며, 『친애하는 빅브라더』 등을 옮겼다.

 

유현상
 숭실대학교에서 찰스 테일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사회철학, 정치철학 분야에서 강의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함께 쓴 책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아홉 가지 단어』, 『처음 읽는 한국 현대철학』, 『철학의 이해』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50인의 철학자』(공역)가 있다. 숭실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이순웅
 숭실대 초빙교수. 그람시, 아감벤, 리영희, 박치우에 관한 논문을 썼고,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청춘의 고전』, 『열여덟을 위한 철학캠프』, 『열여덟을 위한 신화캠프』,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 『철학, 문화를 읽다』, 『철학, 삶을 묻다』 등의 책을 펴냈으며, 호르헤 라라인의 『이데올로기와 문화정체성』을 옮겼다.

 

김성우
 상지대학교 교양대학 교수이며 올인고전학당 연구소장. 지은 책으로 『장자의 눈으로 푸코를 읽다』, 『자유주의는 윤리적인가』, 『로크의 지성과 윤리』 등이 있으며, 『청춘의 고전』,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 『열여덟을 위한 철학캠프』, 『다시 쓰는 서양 근대철학사』,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 등을 함께 기획하고 펴냈다.

목 차

책을 펴내며 / 오늘날의 정치와 정치적 사유

첫 번째 흐름 / 전체주의에 대한 철학적 반성
 칼 슈미트: 민주주의 속의 독재의 가능성
 발터 벤야민과 맑스주의
 테오도르 아도르노: 총체성과 전체주의를 넘어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과 ‘정치적 삶’

두 번째 흐름 / 1968 전후의 프랑스 정치철학
 알튀세르의 ‘최종심급’ 개념
 미셸 푸코: 경계의 정치
 질 들뢰즈: 차이의 존재론
 자크 랑시에르 : ‘감각적인 것을 분할하는 체제’와 평등의 정치

세 번째 흐름 / 페미니즘과 차이의 정치
 낸시 프레이저: 삼차원의 비판적 정의론
 마사 누스바움: 철학자 혹은 헤타이라
 아이리스 매리언 영; 정의의 정치 그리고 차이의 정치
 주디스 버틀러: 젠더퀴어의 정치학

네 번째 흐름 / 민주주의와 세속화된 근대
 세 개의 하버마스: 공영역, 의사소통 합리성 그리고 토의 민주주의
 찰스 테일러의 근대 비판과 인정의 정치
 아감벤: 호모 사케르와 민주주의 문제
 슬라보예 지젝: 민주주의에 비판적인 거리 두는 혁명 정치 복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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