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비평은 창조보다 더 창조적이고,
진정한 비평가는 이성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소설가, 극작가, 시대를 거스른 유미주의자…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는 비평의 태도
오스카 와일드는 19세기 영국을 대표한 극작가, 소설가, 시인이자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 아래 살아온 유미주의자다.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희곡 《살로메》, 동화 《행복한 왕자》 등으로 잘 알려진 그는 이 책 《예술가로서의 비평가》를 통해 비평가로서의 존재도 각인시켰다.
이 책은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의 예술비평관을 희곡 형식으로 풀어낸 글이다. 1891년에 나온 그의 유일한 비평집 《인텐션Intention》의 수록작으로, 음악, 회화, 미술, 문학 등 그리스 시대부터 발전해 온 예술 장르에 대한 비평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문학 비평에 대한 통찰이 집약되어 있다. 본문에는 비평 정신과 창작 능력 중 무엇이 우선인지 설전하는 두 인물이 2부에 걸쳐 등장한다. 비평이 없으면 창작도 없다고 보는 ‘길버트’와 비평을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보는 ‘어니스트’다.
어니스트 비평가는 무엇보다 공정해야겠지?
길버트 사람은 선호하는 것이 생기면 공정해질 수 없다네.
예술은 미묘한 느낌과 예민한 순간들에 의존하기 때문에
편파적이지 않은 의견은 가치가 없지.
어니스트 그렇다면 비평가는 이성적이겠지?
길버트 유감스럽게도 예술은 보고 듣는 이에게 ‘신성한 광기’를 선사하지.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데 제정신인 것은 하나도 없어. (121~121쪽)
오스카 와일드는 적극적으로 비평의 쓸모를 역설하는 ‘길버트’를 통해 자신의 비평관을 드러낸다. 길버트는 “섬세한 비평 정신이 담겨 있지 않은 창작은 시대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비평은 예술작품에 종속되거나 부수적인 것 아니라, 그 자체로 창조적이고 독립적인 예술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소네트 선율,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셰익스피어, 시인 존 밀턴 등에 이르기까지 책이 다루는 예술가와 작품, 개념은 방대하다. 그러나 단순히 예술 장르나 작품, 작가를 해석하지 않는다. 비평가가 가져야 할 ‘기질’과 ‘태도’, 그리고 비평 정신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이 19세기에 쓰인 이 비평관이 지금의 독자들에게까지 불씨를 전해주는 이유다. 특히 비평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여전히 흥미로운 텍스트다. 지금은 과거보다 예술의 외연이 더 넓어졌고, 예술 창작자와 비평가의 경계가 희미한 상태이므로, 오스카 와일드의 비평관은 창작자와 비평가 모두에게 설득력 있는 자극이 될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비평가는 누구인가?
비평을 예술과 동등한 위상으로 올려놓는 것
“비평이 없다면 진정한 창작이 있을 수 없다”
‘예술가로서의 비평가’라는 제목이 알려주듯 비평이 예술에 종속된 활동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려 한다. 그에게 비평가는 작품을 해석하여 그 의미를 고갈시키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작품 속에서 또 다른 창작을 위한 착상, 또 다른 세상으로 열린 ‘탈출구’보는 사람이다. 자신의 개성을 통해 만난 예술작품을 출발점으로 삼아 새로운 창작을 하는 예술가다._옮긴이의 말(8쪽)
길버트가 보는 비평가는 단지 예술작품을 설명하는 데 그치는 해설자가 아니다. 개별적인 작품을 넘어 그것이 품은 ‘아름다움 자체’를 비평하고, 예술가가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빈 곳으로 남겨둔 곳에 ‘경이로움’을 가득 채우는 사람이다. ‘새로운 조건과 재료’로,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작품과 다른 형태’로 작품에 없는 부분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사람이다.
예술가만큼이나 주관적이고, 감정을 따라가며, 자기 ‘개성’을 다듬어야 하는데, 이 개성이 적극적으로 들어간 해설일수록 사실적이고, 설득력 있고, 진실하다. 따라서 비평가는 공정하지도 성실하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이것이 오스카 와일드가 추구하는 ‘예술가로서의 비평가’다. 그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이런 비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술가만큼이나 창조적이고, 개성과 교양이 넘치며, 고유한 방법으로 예술작품에 담기지 않은 것을 우리에게 보여줄 비평가가.
비평가에게 ‘자신을 완성하는 것’ 말고 다른 목적은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비평 정신을 진정한 삶의 이상과 연결한다. (중략) 비평가란 “생각의 높은 탑에서 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사람, 섬세한 비평 정신으로 자신의 영혼을 더듬으며 자기완성을, 자기계몽을 끊임없이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다._옮긴이의 말(9쪽)
길버트에 따르면 비평 정신은 우리가 ‘행동(doing)’이 아니라 ‘존재(being)’에 목적을 둔 삶, 나아가 ‘되어가기(becoming)’에 목적을 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준다. 곧 ‘사색하는 삶’이다. 사색하는 삶은 창조하는 삶보다 훨씬 더 넓은 시야를 선물한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타인과 타인의 모든 감정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비평 정신이 있어야만 인류는 개인을 넘어 ‘집단적 삶’을 이해할 수 있다. 또 태어난 시대를 떠나 다른 시대로 들어갈 수 있으며, 자신이 도착한 곳이 어디인지 인식하는 ‘세계 시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길버트에게 비평 정신은 인류가 자기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자기의식’이자 ‘세계관’이다.
비평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행동이나 상황 같은 물리적 요소가 아니라 사람의 영혼과 정신의 열정을 다룬다. 따라서 길버트에게 최고의 비평은 가장 순수한 ‘자기 영혼의 기록’이자 ‘교양이 담긴 유일한 자서전’이다.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철학보다 재미있고, 외부 요소가 아닌 자신을 다루기 때문에 역사보다 매력 있는 예술인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오스카 와일드
1854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시인인 어머니와 유명한 의사이자 민속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트리니티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존 러스킨과 월터 페이터의 영향을 받아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 아래 유미주의 운동에 동참했고, 뛰어난 구술가이자 당대를 호위한 유미주의자로 이름을 남겼다. 와일드는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다. 그가 살았던 후기 빅토리아 시대는 자못 엄격해 보이는 도덕주의, 위선적인 진지함과 엄숙함이 대중의 삶을 억누르던 시대였다. 그는 이에 반하는 내면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찾고자 했다. 이러한 기질은 그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외양과 작품으로도 드러났다. 와일드는 젊은 시인인 앨프레드 더글러스 경과의 동성애 사건을 일으키며 ‘제 멋’을 보여 줬다. 또한, 남자들이 검은색과 회색 옷을 걸치고 다니던 시절에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거나 머리는 치렁치렁 길게 기르고 단추 구멍에는 초록색 꽃을 꽂고 다녔다. 표면적으로는 영국의 상류층과 어울렸으나 그가 내면적으로 추구한 것은 결국 ‘멋’과 ‘미(美)’였다.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그는 《행복한 왕자》(1888),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1), 《석류나무 집》(1892)을 발표했다. 또한, 와일드는 독설과 위트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탁월한 말솜씨를 밑거름 삼아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1892), 《진지함의 중요성》(1895) 같은 희곡으로 극작가로서 위상을 다졌다. 1893년에는 비극 《살로메》를 프랑스어로 출간했다. 1895년 동성애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2년 동안 레딩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옥중기》를 썼다. 1897년에 출옥한 후, 파리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1900년에 사망했다. 오스카 와일드의 명예는 사후 거의 백 년이 지난 1998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라는 제명의 동상이 세워지면서 회복되었다. 이후 그의 삶과 문학 세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옮긴이 : 강경이
영어교육과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좋은 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번역 공동체 모임 펍헙번역그룹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절제의 기술》 《과식의 심리학》 《철학이 필요한 순간》 《길고 긴 나무의 삶》 《스탠드펌》《프랑스식 사랑의 역사》《그들이 사는 마을》《오래된 빛》 《아테네의 변명》 등이 있다.
목 차
옮긴이의 말 5
1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함 15
2부 모든 것에 이야기하는 것의 중요함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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