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가족, 연인, 친구, 동료가 경계성 성격 장애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경계성 성격 장애 당사자와 함께 살아가는 당신을 위한 실용적 가이드북
자, 먼저 다음에 나열하는 증상을 체크해보자.
‘변덕이 심하다’, ‘충동적이다’, ‘감정 폭발이 잦다’, ‘자아상이 불안정하다’, ‘만성적으로 공허감을 느낀다’, ‘짧고 강렬한 관계를 맺는다’, ‘자해 행동을 한다’. 이 중에 해당 사항이 있는가? 있다면 몇 가지나 해당하는가? 혹은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을 알고 있는가?
이는 경계성 성격 장애의 주요 증상이다. 경계성 성격 장애는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조금은 낯선 정신 질환이다. 그나마 많이 알려진 예로는 문학 작품 속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경계성 성격 장애의 전형으로 묘사되며, 아돌프 히틀러 같은 잔혹한 독재자가 경계성 성격 장애를 앓았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얼마 전 원더걸스 출신 선미가 이 장애를 앓았다고 고백하면서 잠시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경계성 성격 장애’라고 하면 특별한 사람만 걸리는 질병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임상에서 발생 빈도가 가장 높은, 즉 성격 장애 중 가장 흔한 질환이다. 경계성 성격 장애에 관한 연구가 꽤 오래전부터 다각도로 진행되어 왔고, 20세기 초만 해도 불치병에 가까웠던 이 장애는 현재 완치 가능성이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다. 지금 바로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해보기만 해도 경계성 성격 장애에 관한 자료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렇듯 경계성 성격 장애에 관한 자료가 넘쳐나는데, 또다시 이 주제를 다루는 《가까운 사람이 경계성 성격 장애일 때(원제: L(i)eben mit Borderline: Ein Ratgeber für Angehörige, 심심 刊)》는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그러니까 환자의 가족, 친구, 동료, 상사는 이런 자료들에서 중점 관리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매일매일 환자와 부딪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몇 년씩, 길게는 10년, 20년씩 환자와 동고동락해야 한다.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혼란스러운 감정과 파괴적인 관계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픈 가족이나 친구를 도울 수 있을까? 환자와 가족 모두를 위해 최대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또 무엇인가? 이 책은 바로 이런 문제들을 다룬다.(7쪽)
독일의 저명한 임상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우도 라우흐플라이슈는 다른 책들과 달리 관심의 초점을 환자가 아닌 환자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연인 등에게 맞춘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수많은 환자를 만나 그들이 겪는 여러 문제를 해결해준 이 노학자는 환자 당사자의 문제에 가려 소홀히 취급당해왔던 주변 사람들의 고통으로 관심의 영역을 확장한다.
총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실제 경계성 성격 장애를 앓는 환자와 그 주변인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경계성 성격 장애의 정의부터 주요 증상, 일상에서 발현되는 양상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또한 경계성 성격 장애 당사자와 함께 살아가는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실질적이고 유용한 대처법을 소상히 알려준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충동적이고, 불안정한 그들은 어떻게 트러블메이커가 되는가?
조금 더 평화롭게, 조금 덜 힘들게 살아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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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살의 남성 기술자 마이스터는 한참을 놀다 겨우 작은 설비 회사에 취직했다. 입사가 확정되고 회사에 다닌 몇 주 동안 마이스터는 사장님 칭찬에 입이 말랐다. 만나는 사람마다 ‘멋진 사장님’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진짜 사장님’, ‘마음씨가 비단결 같은 사장님’이라고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아침, 사장님은 지난주 금요일에 지시한 일을 마이스터가 끝마치지 않아 현장에 또 가야 한다고 야단을 쳤다. 마이스터가 이유를 설명하려 했지만 ‘지금 변명 들을 시간 없다’며 사장님은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사장님의 행동에 마이스터는 너무나 화가 났다. 마이스터를 현장에 내려준 사장님은 다른 업무를 보고 몇 시간 후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현장에 마이스터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30분 전에 마이스터가 욕을 하며 현장을 떠났다고 말했다. 저녁 무렵 사무실로 돌아온 사장님은 자동응답기에 남은 마이스터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따위 대접을 받고는 도저히 일할 수 없다. 그런 쓰레기 같은 일은 너 혼자 해라. 더러워서 이 회사에서는 더 이상 일 못 한다!!!(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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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다니는 마흔다섯 살 남성 바움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깍듯해서 평판이 좋다. 회사 경비원이나 환경미화원에게도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팀 내 문제가 생기면 팀원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는다. 그런데 얼마 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바움과 그의 비서 마이너가 야근을 하던 어느 날, 바움이 마이너에게 저녁을 먹자고 청했다. 마이너는 남자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거절했지만 바움은 지금이라도 약속을 취소하고 자기와 저녁을 먹자고 다시 청했다. 마이너는 정중히 상사와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바움이 갑자기 “상사가 관심을 보이면 감사하게 받아들여야지, 니깟 것이 감히 내 청을 거절해?”라고 소리치며 길길이 날뛰었다.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온 마이너는 사내 감사팀에 이 일을 알렸다. 이 말을 들은 감사팀장은 듣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어.”(4장)
경계성 성격 장애를 겪는 사람은 마이스터처럼 강한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맺을 때도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공식을 따른다. 마치 나는 저 사람에게 호감을 보인 적이 없다는 듯 극단적인 양면을 오가는 것이다. 이런 흑백논리는 자기 자신을 대할 때도 적용되는데, 경계성 성격 장애 환자는 주변 사람을 무시하며 오만과 자만에 빠지다가 갑자기 자책과 좌절 모드로 돌변해 무조건 자기 책임이라고 괴로워한다. 바움의 경우처럼 도저히 한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극단적인 성격을 보이는 것 또한 경계성 성격 장애의 특징이다.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사소한 지적과 작은 상처도 견디지 못해 과도한 반응을 보이며, 심하면 폭력적인 모습까지 나타내는 경계성 성격 장애 환자와 함께 살아가기는 참으로 고달픈 일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언제 어떤 포인트에서 화를 낼지 몰라 조마조마한 상태로 매일매일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환자의 불안과 자책, 분노가 전염되고 그에 더해 죄책감까지 안을 수밖에 없는 주변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아가 환자를 돕기 위해 상황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
책은 세상을 흑 아니면 백으로 나누고 절대 타협하지 않으며(2장), ‘나쁜 것’은 전부 바깥으로, 다른 사람에게로 투사하고(3장), 외부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줍음과 거만함의 공존(4장), 현실 통제력 부족(5장), 충동성과 분노 폭발(6장), 모든 것을 압도하는 불안(7장), 과도한 기대와 집착(8장), 자신과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못하는 고집불통(9장), 자해 행동(10장), 공감할 수 없는 이상한 성격과 행동(11장) 같은 경계성 성격 장애의 주요 증상을 설명하며 각각의 상황에서 주변인이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실용적인 행동 지침을 짚어준다. 더불어 경계성 성격 장애를 일으키는 심리적인 원인을 깊이 파고 들어가 경계성 성격 장애를 앓는 당사자가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스스로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
세상에 결점만 있는 사람은 없다
경계성 성격 장애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
아무리 경계성 성격 장애 환자라 해도 위에서 언급한 증상만으로 그를 판단한다면 그것은 너무 불충분하고 왜곡된 이미지를 낳을 것이다. 무엇보다 장애가 심각한 사람일수록 그의 결점만 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중증 장애를 앓는 환자에게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고, 그 측면 역시 소중한 법이다.(24~25쪽)
성격 장애를 앓고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창의력과 매력을 겸비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한때 중증 정신 장애가 천재성의 원인이라는 이론이 득세한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 이론이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타고난 창의력과 능력이 워낙 뛰어나서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은 중증 정신 질환을 앓았지만 생의 마지막까지 작곡 활동을 펼쳤다. 앞에서 예로 든 선미도 치료를 병행하면서 자신만의 창의력을 성공적으로 꽃피운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책은 경계성 성격 장애를 앓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경우를 이야기하며 성격 장애 환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균형을 잡아준다.
경계성 성격 장애를 문제가 아닌 장점으로 활용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그렇게 되기까지 당사자가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주변 사람들이 어떤 부분을 섬세하게 살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이처럼 경계성 성격 장애에 다면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통해 책은 독자가 인간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돕고, ‘장애’, ‘질환’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고민해볼 수 있도록 뜻깊은 질문을 던진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우도 라우흐플라이슈
임상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 50년 넘게 심리학과 정신의학 분야에 몸담아온 독일의 저명한 심리치료사다. 성 정체성, 성격 장애가 주요 관심 분야다. 킬대학교와 루붐바시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고 슐레스비히 주립병원에서 임상심리전문가 과정을 수련했다. 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여 년간 바젤대학병원에서 임상심리전문가로 일했다. 1971년부터 1981년까지 10년간 독일 국제정신분석협회 정신분석 및 심리치료 연구소에서 정신분석가 교육을 받았고, 1978년에는 바젤대학교 임상심리학과 부교수로 임명되었다. 1999년부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개인 상담실을 열어 수많은 내담자를 치료했다. 2007년 대학에서 은퇴한 후 상담과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옮긴이 : 장혜경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하노버에서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은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아》, 《내 안의 차별주의자》, 《침묵이라는 무기》, 《나는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 차
1장 / 경계성 성격 장애란 무엇인가?
2장 / ‘적’이거나 ‘친구’이거나
3장 /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남 탓
4장 /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어
5장 /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무너지다
6장 / 지나가는 말이 화를 부른다
7장 / 불안이 멈추지 않을 때
8장 / 그의 말이 곧 법이다
9장 / 너와 나는 일심동체
10장 / 죽음을 부르는 자해 습관
11장 / 내가 누구인지 나도 날 모르겠어
12장 / ‘그럼에도’ 잠재력을 꽃피운 사람들
다시 한번 요점 정리
미주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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