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한국의 사계절출판사, 일본의 이와나미쇼텐 동시 출간!
이와나미쇼텐 전 대표 오쓰카 노부카즈,
사계절출판사 대표 강맑실
동아시아 독서 공동체를 꿈꾸는
두 출판인의 국경을 넘은 우정의 대화
한일 양국의 대표적 출판인 오쓰카 노부카즈와 강맑실(편지 속에서는 O‧N과 K‧M). 두 사람이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동아시아출판인회의라는 민간 국제회의가 출범하고 그 운영을 맡으면서부터다. 1년에 두 차례씩 회의 자리에서 만나며 가까워진 두 사람은 편지를 통해 공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한편으로 출판인으로서의 고민과 사적인 일상도 함께 나누었다. 두 사람이 11년간 팩스와 우편으로 주고받은 편지 모음인 이 책은 동아시아의 출판인들이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일 뿐 아니라, 출판을 업으로 평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관계의 깊이를 더해가는지를 엿볼 수 있는 내밀한 기록이기도 하다.
[K‧M] …… 출판이나 책, EAPC, PBA 등 공적인 내용을 매개로 개인적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EAPC의 지나온 길을 되짚어볼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말씀하신 대로 이것은 사적으로 귀중한 자료이면서 동시에 양국 간 출판 교류의 흔적도 담고 있는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143쪽
회의의 경과와 함께 텃밭에 열매를 맺은 오이와 고추의 소식을 전하고, 시상식 축사를 승낙하며 초가을에 어울리는 시 한 수를 슬쩍 적어놓는 두 사람은 때로는 다정한 남매처럼, 때로는 장단이 잘 맞는 친구처럼 오랜 시간 마음을 주고받았다. 각자의 나라에서 해협 건너편의 친구를 생각하며 쓰는 글인 만큼, 잠시나마 대표니 위원장이니 하는 사회적 이름을 내려놓고 생활 속 작은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적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두 사람의 유머와 자상함, 빈틈과 실수가 읽는 이를 자연스레 미소 짓게 한다. 고령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길 청하거나, 갑작스러운 수술과 입원으로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할 때는 행간을 따라 세월도 함께 흐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O‧N] 최근 10여 년간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K·M에게는 전화나 팩스를, 타이완의 린짜이줴 부부에게는 전화를 받는 일이 연중행사가 되었습니다. 이는 서로 무사함을 확인하고 새해에 대한 기대를 주고받는 소중한 기회였지요. 물론 연말연시가 아닌, 다른 시기에 보내준 모든 편지도 노인인 저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전화와 편지만으로도 그러할 정도였으니 해마다 몇 번씩 직접 얼굴을 볼 때는 정말 기뻤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인간에게는 정해진 수명이 있으니 무엇이든 영원히 이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작년 EAPC 오키나와회의에서 은퇴할 것을 밝혔습니다. PBA 대표위원 사퇴에 관해서도요. - 192~193쪽
한일 양국의 정치적, 외교적 긴장이 고조될 때에도 시민 사회의 연대, 우정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 두 사람은 공적으로는 출판 교류를 통해, 사적으로는 마음 교류를 통해 그 가장 아름다운 사례를 실현해 보였다.
동아시아 여섯 개 지역 출판인들이 이어온 책의 길
동아시아출판인회의와 파주북어워드
이 책의 중심에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와 파주북어워드라는 두 개의 조직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랜 교류와 반목의 역사를 가진 동아시아 곳곳을 ‘책의 길’로 연결하자는 뜻으로 각 지역 출판인들이 의기투합해 운영하는 국제적인 활동이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East Asia Publishers Conference(EAPC)
2005년 출범한 민간 국제회의로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 홍콩, 오키나와 등 동아시아 여섯 개 지역의 출판인들이 매년 두 차례씩 한자리에 모여 각국의 출판 현황을 공유하고, 공통의 의제를 발굴하여 토론한다. ‘동아시아 독서 공동체’ 형성을 목표로 꾸준히 교류해왔으며, 지난 2009년에는 ‘동아시아 100권의 책’을 선정하여 각국의 언어로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오쓰카 노부카즈는 이 회의의 발기인 가운데 한 사람이고, 강맑실은 출범 초기부터 한국 측 주요 참여자로 활약한 핵심 멤버이다.
파주북어워드Paju Book Award(PBA)
아시아의 출판 발전에 기여한 출판인, 저자, 출판 미술인의 업적을 기리고, 아시아 출판인의 연대를 도모하고자 2012년에 제정한 국제 출판문화상으로 매년 가을 파주북소리축제 기간에 시상식을 열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와는 별개의 조직이지만, 동아시아출판인회의 주요 멤버들이 상의 제정과 운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2021년부터는 아시아북어워드Asia Book Award로 이름을 바꿔 한국출판인회의가 상의 운영을 주관하고 있다.
오쓰카 노부카즈와 강맑실은 이 두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만반의 노력을 기울였다. 일정을 짜고 숙소를 잡는 작은 일부터 의제를 정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일, 후보 도서를 하나하나 읽고 심사에 참여하는 일까지 누구보다 책임감 있는 자세로 두 조직을 이끌어왔다. 이 책에는 두 사람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섯 개 지역 출판인들이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솔선하고 협력하고 의지해왔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특별한 이익이나 명예가 걸려 있는 일이 아님에도 이렇게 장기간에 걸친 협력과 연대가 가능했던 것은 오쓰카 노부카즈의 말처럼 “모두 출판 일—눈앞에 없는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일, 즉 보편으로 이어지는 일—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130쪽)일 것이다.
두 조직을 매개로 동아시아 여섯 개 지역 출판인들은 이웃 나라의 중요 저작들을 자국에 번역 소개하기도 하고,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따라 출판문화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상호 비교하며 자국 출판계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특히 한국의 출판인들이 주도하여 제정한 파주북어워드는 국경이나 국적, 언어와 문자를 초월하여 뛰어난 출판물과 출판인에게 시상하며 동아시아 전역에 평화의 메시지를 발신해왔다. 국제 정세가 악화되는 가운데서도 중단 없이 이어져온 이 연대의 움직임은 책이, 나아가 출판문화가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국제 사회의 상호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함께 읽고 쓰고 말하는 시민들의 공동체가 단단히 유지되어야 하고, 출판이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출판인들이 나누는
책을 읽고 쓰고 만들고 권하는 이야기
두 저자는 출판인답게 책에 관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나눈다. 특히 오쓰카 노부카즈의 책 『호모 이그니스, 불을 찾아서』를 사계절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하는 과정이 여러 통의 편지에 걸쳐 등장한다. 사계절출판사 편집부에서 원서의 오류를 발견해 문의하자 저자인 오쓰카 노부카즈가 깜짝 놀라 거듭 확인하여 답신하는 모습이나, 도판을 추가하고 제목을 바꾸는 등 한국 독자에게 적합한 형태로 출간하기 위해 고심하는 강맑실의 편지에서 저자, 편집자, 출판사가 협력하여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은 11년 동안 오쓰카 노부카즈는 여러 권의 저작을 출간하는데,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지켜보며 문제 제기와 대안 제시를 게을리 하지 않는 원로 출판인의 노력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한편 강맑실은 오쓰카 선생과 일본 독자를 위해 사계절출판사와 벽초 홍명희 선생의 관계를 긴 주석을 통해 설명하고, 일본에서도 번역 출간된 『마당을 나온 암탉』이 출간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그림으로 특별판을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그 밖에도 두 사람은 코로나 시대를 맞아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반성하며 출판인의 의무와 책임을 상기하는 등 오랜 시간 책을 읽고 쓰고 만들어온 사람들이 나눌 수 있는 좋은 대화의 예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O‧N] 일본의 정치 상황은 정말로 차갑게 얼어붙어 있습니다. 오늘도 오키나와에서는 현민의 의사를 무시한 현지사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 역시 아베 정권이 돈과 힘으로 압박한 결과입니다. 어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도 그렇고, 정치적 리더의 무신경함에 화가 나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이런 일도 있고 해서 저는 요즘 친한 정치학자 마쓰시타 게이이치 선생의 작업을 정리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 마쓰시타 선생은 국가가 아닌, 시민을 위한 헌법 이론을 주장한 『시민 자치의 헌법 이론』(이것도 제가 1975년에 만든 신서입니다)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정비밀보호법이라는 위험한 법률이 강행 체결된 지금이야말로 정말로 시민을 위한 헌법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이유로 노인인 저도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 94~95쪽
[K‧M] 선생님은 그 유명한 정치학자 마쓰시타 게이이치에 관한 책을 쓰고 계시는군요. 현재 일본의 어려운 정치 상황에서 이 책이 가지는 의의는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 현재 일본과 한국은 교묘한 독재 정권이라 하겠습니다. 한국의 정치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데요. 한국에서도 야당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전부 놓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시민의 힘을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의 연대가 마지막 희망인 이유입니다. - 98쪽
작가 소개
지은이 : 오쓰카 노부카즈
1939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3년 국제기독교대학 졸업하고 같은 해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에 입사했다. 이와나미쇼텐은 1913년 창립 이후, 『세카이世界』, 이와나미문고, 이와나미신서 등을 펴내며 일본 지성계를 대표하는 출판사로 평가받고 있다. 오쓰카 노부카즈는 입사 후 잡지 『사상』을 시작으로 ‘이와나미현대신서’, ‘신이와나미강좌.철학’, 『가와이 하야오 저작집』 등 수많은 시리즈와 강좌, 저작집을 기획했다. 1984년에는 계간지 『헤르메스』를 창간해 학문 예능 사회에 다리를 놓았고, 해외의 저자, 출판인과도 네트워크를 구성해 20세기 후반 일본과 동아시아 인문 지식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이와나미쇼텐 사장을 거쳐 현재 쓰쿠바민족연구회 대표, 사회복지법인 일본점자도서관 이사, 동아시아출판인회의 최고 고문을 맡고 있다. 저서로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한 출판편집자의 회상(理想の出版を求めて: 一編集者の回想1963~2003)>(한길사, 2007), <야마구치 마사오: 문화인류학자와 편집자의 40년(山口昌男の手紙: 文化人類?者と編集者の四十年)>(2007), <철학자 나카무라 유지로의 작업: <어릿광대적 모럴리스트>의 삶과 모험(哲?者?中村雄二?の仕事: <道化的モラリスト>の生き方と冒?)>(2008), <가와이 하야오: 심리요법가의 탄생(河合?雄: 心理療法家の誕生)>(2009), <가와이 하야오: 이야기를 살다(河合?雄: 物語を生きる)>(2010) 등이 있다.
지은이 : 강맑실
196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내고 1980년대부터 책을 만들어온 편집자이자 출판사 대표이다. 일곱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부터 그림과는 담을 쌓고 살다가 우연한 기회로 2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산과 숲과 술을 좋아해 틈만 나면 산으로 숲으로 다니고, 틈이 나지 않아도 술자리는 마다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스스로도 그게 신기해 어릴 적 살았던 집의 평면도를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기억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막내의 뜰>을 펴낸다.
옮긴이 : 노수경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브래디 미카코의 『여자들의 테러』, 『아이들의 계급투쟁』, 강상중의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만년의 집』, 『위험하지 않은 몰락』,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구원의 미술관』 등이 있다.
목 차
프롤로그 - 편지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1장 ─ ‘남매 통신’의 시작
첫 번째 편지(2009년 6월 15일) ~ 세 번째 편지(2009년 7월 3일)
2장 ─ 한국의 출판인이 만든 국제 출판문화상
네 번째 편지(2011년 12월 22일) ~ 스물네 번째 편지(2012년 11월 2일)
3장 ─ 우정은 국경을 넘어
스물다섯 번째 편지(2013년 3월 18일) ~ 서른여덟 번째 편지(2015년 6월 24일)
4장 ─ 서프라이즈의 밤
서른아홉 번째 편지(2018년 2월 15일) ~ 마흔아홉 번째 편지(2020년 1월 8일)
5장 ─ 코로나 시대의 책 만들기
쉰 번째 편지(2020년 1월 10일) ~ 일흔 번째 편지(2020년 11월 9일)
에필로그 - 동아시아출판인회의가 키운 꿈
후기
일본어판에 부쳐
동아시아출판인회의(EAPC) 개최 기록
왕복 통신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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