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2021년은 아나톨 프랑스가 소설 『펭귄의 섬』비롯한 문학작품에서 이룬 성과를 인정받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B612북스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그의 명상록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국내 초역 출간하게 되었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아나톨 프랑스의 세계관이 집약된 책으로 평가 받는다.
* 드레퓌스 사건과 아나톨 프랑스
1844년에 태어난 아나톨 프랑스는 1924년 세상을 뜰 때까지 모국 프랑스의 대 격변기를 겪은 소설가이자 비평가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이후 제정, 왕정복고, 공화국 체계를 겪었고, 식민제국으로서의 프랑스가 가장 팽창한 시기를 살았으며, 그의 활동 기간은 현대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정교분리의 원칙이 확립되어가는 시기와 맞물린다.
아나톨 프랑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사건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상을 요약해서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는 드레퓌스 사건일 것이다. 유대계 프랑스 군 장교였던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첩자로 의심 받고 유배된 사건이다.
이 사건 당시 소설가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드레퓌스를 옹호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해 파장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는 석연찮은 가스 누출 사고로 사망한다. 그러자 그의 장례식에서 〈진실과 정의의 수호자에게 바치는 경의〉라는 글을 통해 사건을 조사한 사람이 바로 아나톨 프랑스다. 나아가 그는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반복되는 구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운다. 드레퓌스 사건은 그의 소설 『펭귄의 섬』에서도 〈건초 8만단 사건〉을 통해 재현된다.
*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볼테르의 명문장 ‘우리의 정원을 가꾸자’
책의 제목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자신의 철학을 논하던 곳이 정원이었다는 데서 기인한다. 철학자 에피쿠로스에 대한 아나톨 프랑스의 깊은 이해와 존경심을 책 전반에서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로마 작가들과 철학자들에 대한 그의 이해와 고찰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철학자 볼테르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볼테르는 누명을 쓰고 사형된 개신교도 장 칼라스의 사면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면서 그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 권리가 있고, 잘못된 일이 있다면 이를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하며,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도 그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를 수호하는 일이 내게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볼테르가 남긴 가장 유명한 문장 ‘우리의 정원을 가꾸자’가 이 책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우리의 정원을 가꾸자’라는 말은 단순히 자기 일에만 최선을 다하자는 태도라기보다는 관념에 빠지지 말고 직접 행동에 나설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아나톨 프랑스는 2세기 전에 살았던 볼테르의 생각이 여전히 자리 잡지 못한 세태를 비판하고 고전에 기대어 당대 현실을 꼬집는다.
19세기 프랑스 역사의 격동기를 이끌고 이제는 온화한 노인이 된 ‘점잖은’ 혁명가가 청년들의 소소한 시위에 격노한 일화를 떠올리며 아나톨 프랑스는 “혁명을 일으켜본 자들은 후대가 혁명에 나서고 싶어 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 한다”라고 비판한다. 혁명가들이 기득권자가 되고, 그들이 새로운 혁명과 변화를 거부하면서 후대의 요구에 대해서는 혀를 차는 장본인이 되는 과정은 21세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 신의 반열에 오르기보다 인간으로 남고자 한 ‘아나톨 프랑스’
여성 과학자와 여성의 교육에 대해 논하는 부분은 당대의 문인이었던 아나톨 프랑스도 호의적인 이해를 가장한 가부장적 오만함을 보인다. 여전히 대다수가 남성인 우리 시대 결정권자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나톨 프랑스는 적정한 선에서 여성들이 하고 싶은 대로 두자는 입장이다.
아나톨 프랑스는 회의주의에 깊이 영향을 받았음에도 사람됨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애착을 보인다. 한계가 분명한 인간이 끊임없이 무한의 영역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을 보낸다. 그는 신의 반열에 오르기보다 차라리 인간으로 남고 싶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 책의 본문「엘리시온 평원에서」에 등장하는 회의주의자 메니푸스와 나눈 대화 또한 이렇게 마무리한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메니푸스여, 저 죽은 자들은 어찌하여 죽음을 모르는 듯이 말합니까? 또 그들은 왜 아직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운명에 그렇게 확신이 없습니까?”
메니푸스가 내게 대답했다.
“아마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이 여전히 인간이자 유한한 존재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불멸의 세계에 들어서면 이제 말도 생각도 하지 않게 됩니다. 신들과 같아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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