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살면서 한번쯤은 누리고 싶은,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 시간
무작정 읽기 시작하여 일 년간 야금야금 100권을 읽고 쓰다
따로 할 일이 없어 세계 문학 전집을 읽다
김정선 작가의 신작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이 출간되었다. 김정선 작가는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열 문장 쓰는 법』 등 베스트셀러를 펴내며 뛰어난 교정 교열자로 이름을 알렸는데 그에 비해 덜 알려진 사실이 있다. 그는 자기만의 색을 가진 산문가라는 점. 김정선 작가다운 산문들을 엮어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오후 네 시의 풍경』 등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오랜 시간 교정 교열자로 일했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현재는 모든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면서 서울 살이를 정리하고 대전으로 이사했다. 2020년 여름, 대전 이사와 더불어 그가 시작한 일은 바로 세계 문학 전집 읽기다.
서점에 가면 늘 세계 문학 전집 코너 앞에 발길을 멈추고 마치 잘사는 이웃집 바라보듯이 선망의 눈길로 책들을 쳐다보곤 했다는 그. 마침 따로 할 일도 없는 차에 그는 죽기 전에 언젠가 나도 한 번 해봤으면 하고 바라던 그 일에 착수했다. 김정선 작가는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 이유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붙이거나 그 일의 가치를 확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세계 문학 전집을 왜 읽어야 하는지, 읽으면 무엇이 좋은지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본인이 이 일을 시작한 이유를 전할 뿐이다.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다고. 따로 할 일이 없었다고.
세계 문학 읽기가 나의 본령, 작품들을 벗 삼아 마음의 터널 통과하기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는 25년 가까이 상당한 권수의 문학 작품을 손본 뛰어난 교정 교열자이고 특히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주력하던 일이 바로 세계 문학 작품들의 교정 교열이었다. 그가 비로소 어깨에 짊어져온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되면서 바로 떠올린 일이 세계 문학 읽기인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세계 문학 읽는 일이 자신의 본령인 것처럼 여겨진다고 말한다.
더불어 김정선 작가에게 세계 문학을 읽는 일은 우울감을 버티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어느 장에 이르러 문득 ‘마음의 터널’에 대해 털어놓는다.
또다시 터널을 통과했다. 마음의 터널. 이번엔 이틀짜리로 짧지 않은 터널이었다.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 비교적 짧은 터널을 지날 때도 있고 이삼 일 동안 이어지는 제법 긴 터널을 지날 때도 있다. 때로는 짧은 터널이 연이어 나타날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자칫 출구를 못 찾을지도 모르는 동굴이 아니라 터널을 지날 뿐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버티고 있다. - 204쪽
우울의 터널을 통과하는 방법으로써 그는 세계 문학과의 씨름을 선택했다. 아니, 씨름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겠다. 일 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100권의 책을 읽고 이를 기록했으니 작업 강도가 상당했을 텐데 그는 이 일을 그다지 어려워하지 않았다. 우울한 날은 우울한 대로, 친구가 찾아와서 좋은 날은 좋은 기분 그대로, 춥거나 더운 날에는 또 그날의 날씨가 시키는 대로, 그는 세계 문학 작품들과 친구처럼 지내자는 마음으로 한 해를 보냈다. 그 결과로 70편의 글이 쓰였고 마침내 이 책이 만들어졌다.
도서 정보, 작품 한 토막, 줄거리 소개와 김정선의 목소리를 담았다
매 편 원고의 구성은 무척 단순하다. 세계 문학 작품 제목과 지은이, 옮긴이, 출판사, 출간 연도를 표기한 후, 해당 작품에서 고른 인용구 한 토막이 등장한다. 작가의 문체, 작품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한 토막을 고르기도 했고, 핵심 장면이 펼쳐지는 한 토막을 고르기도 했다. 비록 짤막한 글귀이지만 이를 통해 해당 작품과 독자 자신의 궁합이 맞을지 아닐지를 슬며시 판단해볼 수도 있으리라.
그런 다음 김정선 작가의 목소리가 한두 문단을 차지한다. 작가의 일상 등이 담긴 매우 짧은 에세이가 작품 이야기 전에 등장하는 것이다. 짧은 에세이 뒤에는 두어 쪽 분량의 작품 줄거리 소개가 이어진다. 그러고 마지막으로 김정선 작가가 한 번 더 말을 건다. 그렇게 두어 문단의 소감이 적힌 후에 글이 끝난다. 70편 대부분 이와 같은 구성을 따른다.
작품 이야기 전에 실리는 짧은 에세이에서는 김정선의 일상이 엿보인다. 우울감을 겪는 이야기, 약을 끊고 지내보려는 이야기, 약을 다시 복용하는 이야기, 친구를 만난 이야기, 연필선인장과 함께 사는 이야기, 동생과 나눈 대화, 오래 간병한 어머니를 떠올리는 이야기, 스스로 말하는 ‘나’의 이야기 등등. 이 이야기들에는 김정선 작가가 내보이는 ‘마음’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날그날 그의 마음이 읽기로 선택한 작품 이야기가 곧 이어진다. 말했듯이 작품에 대한 두어 쪽 분량의 줄거리 소개가 이어지는데, 교과서에 실릴 듯한 줄거리 요약과는 다르다. 김정선 작가의 관점에서 작품을 독해하기 때문. 그래서 줄거리 소개라고 한 이 대목들은 김정선 작가 방식의 짧은 해제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김정선 작가는 자신의 일상과 세계 문학 작품 이야기를 함께 들려준다. 이 덕분에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다는, 쉽지만 않은 도전이 어쩐지 자연스럽고 편안한 일로 여겨진다. 문학과 친구가 되는 일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김정선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 문학 전집 읽기의 가장 큰 특징과 매력은 이것이 아닐까. 문학을 벗 삼아 하루를 보내는 모습, 문학과 친구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세계 문학을 읽는 일의 의미를 그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와 시간을 함께하는 일의 의미를 굳이 설명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까.
작가 소개
김정선
이십 대 후반부터 오십 대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까지 줄곧 남의 글을 손보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일하지 않을 때는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소설책을 보며 지낸다. 그러니 생의 대부분을 남이 쓴 문장을 보면서 살아온 셈이다.
때로는 내가 읽는 문장들의 풍경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을 때도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책이나 문장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무엇보다 무쇠 심줄 같은 튼튼한 ‘멘탈’의 소유자가 되어 현실에 당당히 맞서는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다시 태어난다면’ 같은 한심한 생각이나 하고 있는 중늙은이일 뿐이다.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오후 네 시의 풍경』 등의 책을 냈다. 지금은 대전에서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끼적이며 산다.
목 차
들어가며 : 살면서 한번쯤은 누리고 싶은,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 시간
2020, 여름
노인과 소년 :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스크는 언제 벗을 수 있을까? : 『페스트』, 알베르 카뮈
긴 장마처럼 : 『콜레라 시대의 사랑』 1·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아니야, 결코 가볍지 않아!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순전히 얼음 때문에 : 『백 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북북서로 미쳤다고? :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 무슨 호사인가 : 『위대한 개츠비』,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외진 곳의 장기 투숙자 :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직 편지글로만 : 『파멜라』 1·2, 새뮤얼 리처드슨
재난지원금 덕분에 : 『클러리사 할로』 Ⅰ~Ⅷ, 새뮤얼 리처드슨
술 냄새와 책 냄새 진동하는 소설 : 『화산 아래서』, 맬컴 라우리
현명해져야 하는 건 리어일까 나일까? : 『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가면의 진실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걸까? :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누구나 언제든 삶의 한가운데를 산다 : 『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우당탕탕 지나가 버린 젊은 시절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흉내 내기 :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성공한 속편은 없는 걸까? : 『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2020, 가을
가을의 문턱에서 만난 도스토옙스키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3,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을 다시 쓴다면? : 『점원』, 버나드 맬러머드
도와줘요, 빨강머리 앤! : 『그린게이블즈의 빨강머리 앤』 1~10, 루시 모드 몽고메리
외진 곳에 불시착한 영혼 : 『테레즈 데케루』, 프랑수아 모리아크
집에 돌아가는 길 :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합의와 치욕 : 『변신』, 프란츠 카프카
쓸쓸하다 :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세상이 너무 지겨워! : 『베니스의 상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세상의 모든 하루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발작적인 아름다움 : 『나자』, 앙드레 브르통
무서워라!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세계와 나 : 『푸른 꽃』, 노발리스
내 연인은 슬픔 :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크로머는 어떻게 살았을까? : 『데미안』, 헤르만 헤세
청춘의 비가(悲歌) :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정신의 과장된 삶 : 『만연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권력과 반역은 한 쌍이다 : 『맥베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기계와 불멸 : 『모렐의 발명』,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기만 없는 사랑이 가능할까? : 『전원 교향악』, 앙드레 지드
비겁한 사랑 :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사랑과 증오의 세 꼭짓점 : 『주홍 글자』, 너새니얼 호손
고(故) 박지선 씨를 기억하며 :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어떤 섹스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 『채털리 부인의 연인』 1·2,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철없는 사랑과 공동체의 운명 : 『로미오와 줄리엣』, 윌리엄 셰익스피어
“개 같군!” : 『소송』, 프란츠 카프카
이 사람, 대체 정체가 뭘까? : 『성』, 프란츠 카프카
악을 품은 선과 선을 품은 악 : 『지킬 박사와 하이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연필선인장과 히스 : 『워더링 하이츠』, 에밀리 브론테
나는 나를 보았을까? :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제인 에어와 다락방의 여인 : 『제인 에어』, 샬럿 브론테
2020, 겨울
이야기의 핵심에 감추어진 것 : 『암흑의 핵심』, 조지프 콘래드
출구 없는 세상에 갇힌 아들 :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출구 없는 세상에서 자기 혁명을 꿈꾸는 딸 : 『사양』, 다자이 오사무
자비 없는 냉담한 서술자 : 『미하엘 콜하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창조주여, 나는 네 주인이다. 순종하라!” :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도시와 시간 : 『악의 꽃』, 샤를 보들레르
근대 소설의 최대치 : 『전쟁과 평화』 1~4, 레프 톨스토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아무래도 소설 같지 않은 : 『모비 딕』, 허먼 멜빌
이야기의 보수성 : 『마의 산』 상·하, 토마스 만
탁월한 서술자와 완벽한 구성 :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의 그늘 아래서 : 『이성과 감성』, 제인 오스틴
천박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 『위대한 유산』 1·2, 찰스 디킨스
행복은 정말 다른 곳에 있는 걸까? :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미리 만나 보는 현대 소설 :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독자를 만들어야 하는 작가의 운명 : 『아Q정전』, 루쉰
포크너, 포크너! : 『소리와 분노』, 윌리엄 포크너
고급 심리소설의 초상 : 『한 여인의 초상』 1·2, 헨리 제임스
문학이란 무엇인가 : 『보이지 않는 인간』 1·2, 랠프 앨리슨
쥘리엥 소렐은 뫼르소의 모델일까? : 『적과 흑』 1·2, 스탕달
‘빈곤 포르노’ 속에 버려진 인물들 : 『목로주점』 1·2, 에밀 졸라
소설가 염상섭 : 『삼대』, 염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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