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세월호를 목격하고 미투 운동을 통과하며
깨지고 이어지는 비평가의 마음
이전을 기억하고 이후를 상상하며
흔들려도 멈추지 않는 비평의 걸음
2007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글을 발표하며 비평 활동을 시작한 문학평론가 백지은의 두 번째 비평집 『건너는 걸음』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2021년 한국에 사는 사람이 현재를 어떤 ‘이후’로 감각하는 일은 전혀 특이한 것도, 예외적인 일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지속적으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감각’을 느낀다. 전세계적 변화이자 흐름인 코로나19, 미투 운동부터 한국 국민들에게 삶의 돌출점 혹은 절단면이 된 촛불 집회, 세월호 같은 사건들을 포함하여, 우리의 삶은 계속 분리되거나 깨어진다. 이때 문학은 어디에 서 있을까? 어느 쪽으로 걸어가려 할까?
백지은은 읽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쓰는 사람으로서 시대에 비추어 문학을 읽어 내고 문학에 기대어 시대를 써 내려간다. 두 번째 비평집 『건너는 걸음』에는 그가 지난 7년여 간 그렇게 쓴 평론들이 모여 있다. 어딘가를 넘어서 건너가는 일, 그리고 걸어온 길을 계속해서 걷는 일은 과거를 이전에 붙박거나 지우는 동작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진 이후를 수색하려는 활동이다. 문학과 비평의 걸음은 이전과 이후, 양쪽의 사이를 벌리기보다 가로지른다. 이전을 기억하며 이후로 떼는 걸음. 그것은 비평가의 손에 들린 펜과 같다. 그 펜에 의해 쓰인 글을 통해 우리는 문학을 더 오래 되돌아보고 삶을 더 넓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총 30편의 글이 6부에 걸쳐 5편씩 배치되어 있다. 1부에는 2014년 봄 이후, 세월호 사건을 침묵 속에 목격했던 우리가 다시 입을 열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 그 단절과 연결에 대해 쓴 글들이 모여 있다. 1부를 여는 첫 글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장면을 통해 2014년의 세월호 사건을 묻는다. 사건 이후 쏟아져 나온 박민규, 김애란, 황정은 작가의 글쓰기와 최은영의 작품을 통해 문학이 쓰이고 읽히는 자리가 휘청이는 것을 본다. ‘바다’, ‘여행’ 같은 단어가, ‘광장’, ‘합동 분향소’ 같은 단어가 2014년 이후 우리에게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는지에 대해,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기록하고, 또 기억하고자 한다.
2부는 페미니즘 리부트를 건너며 여성 서사의 중요성을 실감한 글들이 수록되었다. 백지은은 사회적으로 거세게 일어난 폭로 운동인 ‘미투 운동’을 통과하며, 페미니즘 문학과 담론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그 맥락을 살핀다. 2010년대에 출간되어 현재까지 독보적인 문학 베스트셀러인 『82년생 김지영』과 『쇼코의 미소』를 통해 여성 작가들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그려냈는지 설명하는 동시에, 1990년대와 2000년대 작가와 비평가들의 활동을 돌아보며 문학 담론장이 ‘페미니즘 문학’을 호명하는 일이 유례없이 나타난 일시적 사태나 우연히 발생한 돌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짚어 낸다.
3부와 4부에는 작품론 혹은 작가론으로 묶일 수 있는, 비평가로서 한 작가의 작품을 보다 깊이 읽어 낸 글들을 모아 두었다. 3부에서 한데 놓은 작가는 이주란, 김엄지, 백수린, 정이현 등이다. 백지은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작가가 당대의 생활과 세속과 세계를 건너는 것을 바라보며 그들의 지금과 다음을 함께한다. 4부에 실린 작가들에게는 다음 이후의 믿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김애란, 배수아, 윤성희, 권여선, 은희경에 대한 글들이 그것이다. 백지은에게 이들의 소설을 읽는 일은 이전의 읽기, 혹은 이전의 나를 되새기는 일이며, 이후로 건너가도 이 작가들에 대한 독서가 지속되리라는 애정을 드러낸다. 5부에는 김희선, 김경욱, 김성중 등 현실을 비틀어 현실을 말하는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글들을 수록했다.
6부는 백지은이 문학평론가로서, 첫 번째 비평집을 건너 온 문학평론에 대한 마음가짐을 드러낸 글들을 묶었다. 한편 한편의 글들에는 비평에 대한 그의 의심과 자긍심이 묻어난다. 백지은의 섬세한 글쓰기에서 먼저 드러나는 것은 무엇보다 새로이 다가오는 시대와 독자와 함께 걷는 비평의 걸음이 알맞은 빠르기인지 묻는 스스로를 향한 의심이다. 그러나 그의 물음을 끝까지 따라갔을 때 남는 것은 머뭇거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옮겨 보는 걸음의 균형과 무게감이다. 백지은은 소설이 쓰인 시대의 사건과, 소설을 읽는 독자의 목소리와, 무엇보다 소설 그 자체와 자신을 함께 점검하고 흔들리며, 그러나 멈추지 않고 문학을 향한 다음 걸음을 내딛는다.
작가 소개
백지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 비평집으로 『독자 시점』이 있다.
목 차
책머리에 5
1부
수평선이 보인다 —이후로 가는 문학 15
한사코 문학 —‘K문학’ 유감 40
텍스트를 읽는 것과 삶을 읽는 것은 다르지 않다 53
신을 만든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71
이것이 쓰이고 읽혀서 자기를 —왜 지금 SF가 이렇게 93
2부
소설 리부트 —(표현) 민주화 시대의 소설 119
전진(하지 못)했던 페미니즘 —2000년대 문학 담론과 ‘젠더 패러독스’의 패러독스 135
지금 여성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158
여자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었는가 166
여자 어른은 어떻게 사랑을 하는가 181
3부
덜컹거리는 열차 위에서, 우리의 세계는 —백수린 「여름의 빌라」 外 193
차갑고 치열한 심정 —이주란 『모두 다른 아버지』 206
공허와 함께 안에서 밀고 가기 —정이현 『상냥한 폭력의 시대』 220
세속의 시간과 무의미 꾸러미 —김엄지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235
하나의 장면에 두 개의 그림 —임현 『그 개와 같은 말』 253
4부
모르는 아비 —김애란 「달려라, 아비」 265
비개인적인 글쓰기 —배수아 『에세이스트의 책상 』 271
최대 소설의 기도 —윤성희 『베개를 베다』 283
당신이 알고 있나이다 —권여선 『아직 멀었다는 말』 298
모든 지금의 작가 —은희경 『빛의 과거』 318
5부
구원 혹은 창조 —김성중 『에디 혹은 애슐리』 331
다른 계절의 원근법 —이장욱 『천국보다 낯선』 344
관심의 제왕 —김희선 『라면의 황제』 358
잘하는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김경욱 『소년은 늙지 않는다』 373
설화적 모더니즘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391
6부
길고 짧은 것은 대보지 않아도 안다 409
왜 소설에 사적 대화를 무단 인용하면 안 되는가 431
견인 454
존재를 위한 희망 473
오늘도 인간을 귀하게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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