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진화는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변화 시켰을까?
이해타산적인 사람이 살아남기 어려운 이유는?
인류를 사회로 도약시킨 진화의 원동력에 대하여
가까운 동물원의 유인원관에 가서 침팬지를 한참 지켜보면 진화가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생생히 알 수 있다. 침팬지는 그 모습 자체가 우리의 먼 사촌처럼 보인다. 침팬지와 다르지 않았을 조상들의 네 다리가 숲을 떠나면서 어떻게 인간의 팔다리로 진화했을지, 또 조상들이 더는 나무에 오르지 않고 두 다리로 긴 여정을 떠났을 때 진화가 어떻게 조상들의 뒷발을 오늘날 우리의 두 발로 천천히 바꿀 수 있었는지 쉽게 그려진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 형성에 진화가 어떤 역할을 했느냐는 그렇게 명확하지가 않다. 흔히들 진화를 해부학 관점에서 생각하지만, 생존에는 신체만큼이나 태도도 중요하다. 생활 방식에 맞지 않는 팔다리가 우리를 허약하게 만들듯, 능력에 맞지 않는 선호도 우리를 허약하게 만든다.
우리 몸은 지난 600~700만 년 동안 약간 바뀌었을 뿐이지만 심리는 큰 변화를 겪었다. 사실 우리가 침팬지에서 멀어진 진화를 가장 크게 보여주는 쪽은 몸이 아니라 마음과 두뇌의 적응이다. 우리가 보인 가장 중요한 심리 변화는 사회관계 기능, 그중에서도 특히 협동 능력과 관련한다. 흔히들 무리 지어 사는 동물이 협력에 뛰어나리라 생각하지만, 서로 어울려 활동하는 일이 아주 드물면서도 크게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이 많다. 영양과 얼룩말은 안전을 얻고자 아주 많은 수가 모여 살지만, 협동을 나타내는 신호는 사실 보이지 않는다. 다만 큰 무리에서는 다른 누군가가 사자를 발견할 확률이 높으니 저마다 조금은 경계를 낮출 수 있다. 침팬지는 영양이나 얼룩말과 비교해 서로 훨씬 더 의존해 생활하는데도 진정한 협동은 거의 필요 없으므로 협동 능력이 떨어지고, 혼자 움직이기를 선호한다. 이와 달리 인간은 나무를 떠난 뒤로 존재 자체를 협동 능력에 의지해 살아왔다. 이처럼 인류는 서로 협동하도록 진화한 까닭에 속임수를 알아채는 방법과 무임승차자를 향한 강한 감정 반응을 발달시켰다.
우리는 우리가 이전에 베푼 도움에 보답할 목적으로만 협력하거나 협력한 대가를 나중에 돌려받으려고 협력하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상냥하고 다정하고 너그러운 사람, 협력 자체를 즐겨서 협력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물론 이 말을 뒤집으면 남들도 같은 이유로 우리를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협력을 즐겼던 조상들은 진화에 따른 이익을 꽤 많이 얻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우리는 도움을 되돌려 주지 못할 낯선 사람과도 종종 자원을 나눈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낯선 이와 자원을 나누는 모습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런 놀라움은 진화의 역사를 잘못 이해한 결과다. 낯선 사람과 자원을 나누는 행동이 어찌 보면 속아 넘어갈 빌미를 제공하는 듯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너그러운 사람이 실제로 이용당할지라도, 길게 보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너그러운 사람들은 인색하거나 타산적인 사람보다 더 평판이 좋다. 진화가 이런 압력을 행사한 결과, 우리는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도움을 베풀어 협력하도록 진화했다. 달리 말해 남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 안에 내재한 기본 반응이 협력이므로, 무의식적으로 협력한다. 남과 협력하거나 무리를 배신하거나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실험에서 참여자들은 배신이 합리적인 선택일 때마저도 배신보다 협력을 더 빨리 선택했다.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같은 효과가 작용해서 협력을 고를 확률이 훨씬 높았다. 이처럼 협력 본성은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는 우리가 처음 진화했던 공동체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다. 하지만 우리를 공동체에 결속시키는 심리적 원동력은 언제나 그랬듯 지금도 똑같이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우리는 수렵채집인에서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통합되는 것은 멋진 삶을 사는 열쇠 중 하나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공유하는 유일한 존재, 인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의 답은 진화에 있다
600~700만 년 전 아프리카 동부의 열대 우림에서 출발해 오늘날 도시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걸어온 여정은 놀랍기 짝이 없다. 쉽게 멸종되고 말았을 환경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닌데도 살아남아 번성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거치며 침팬지 비슷한 존재에서 오늘날과 같은 인간으로 바뀌는 사이, 우리의 기질과 역량이 진화했다. 물론 우리가 사바나 생활에 적응한 일은 옛날 옛적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묻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들에 답을 주기도 하며, 현대 사회에서 마주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발판이 되기도 한다. 사바나에서 진화한 사회성은 우리의 공감 능력과 친화력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까?
조상들이 살아남아 후손을 퍼뜨리는 데는 무엇보다도 사회관계가 중요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사회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결과 우리는 집단과 연결을 유지할 여러 방법을 진화시켰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방법은 구성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이다. 구성원들의 생각을 알면 그들과 어울리거나 그들이 다음에 무엇을 할지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또 집단이 내 생각과 감정을 알기를 바란다. 구성원들의 머릿속에 내 생각을 주입하면 내가 선호하는 방향으로 집단이 움직이도록 유도할 더없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내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집단에서 내 위치가 탄탄하다는 입증이므로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공교롭게도, 본질적으로는 제 잇속을 챙기는 이 두 가지 목적이 성공하는 기업의 비결과 일치한다.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때 사회관계를 조율하고 분업을 끌어내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진화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당장은 아무런 이익이 없을 때마저도 머릿속 생각을 남과 끊임없이 공유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겼다. 이렇게 경험을 공유하려는 욕구는 어릴 때부터 발현한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은 온 세상을 설명할 기세로 쉴 새 없이 사람과 물체를 가리킨다. 인간 말고는 다른 어떤 동물도 발달 단계에서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이해한 내용과 경험을 나누려는 욕구는 지식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감정 반응도 남과 공유하려 한다. 집단이 위협이나 기회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구성원 전체가 위협이나 기회를 같은 방식으로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의 일치를 추구하도록 진화했다. 내 감정에 무관심하거나 아예 상반하는 감정을 보이는 사람에게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손꼽게 좌절과 불만을 느끼는 경험이다. 무례하게 행동한 동료 때문에 화가 치솟았다고 해 보자. 배우자가 그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더 나아가 재미있거나 당연한 일로 여긴다면 동료보다 배우자에게 화가 더 치밀기 마련이다. 우리가 이야기를 부풀리는 근본 원인도 바로 이렇게 감정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한다. 내가 낚은 물고기에 남들이 그다지 감탄하지 않을까 걱정되면 낚시 이야기를 하면서 물고기의 크기를 부풀리기 마련이다. 동료의 무례한 행동에 남들이 화를 안 낼까 걱정된다면 상황을 전달할 때 동료를 더 무례한 사람으로 설명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인류는 사회관계를 위해 친화력을 바탕으로 타인과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거짓말 또한 생겨났고, 끊임없이 감정을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뇌의 용량도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친화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연적으로 진화가 더뎌질 수밖에 없었고, 도태되어 후손을 남기기 어려웠다. 따라서 친화력이 있는 사람들이 더 살아남기 유리한 구조가 되었다.
이처럼 진화 과학을 인류학, 생물학, 역사, 심리학과 함께 다양한 예시를 곁들여 살펴보는 이 책은 우리 인류를 바라보는 신선하고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시선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지금처럼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멋진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하며, 과거의 이해를 통해 더 나은 미래의 행복을 설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친화력을 지닌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류의 진화 과정을 공부하고, 이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더욱 깊이 이해하며, 사회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윌리엄 폰 히펠
미국 알래스카에서 자랐으며 예일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미시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로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에서 10여 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다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지금은 퀸즐랜드 대학교에서 심리학 교수를 맡고 있다. 지금까지 100편 넘는 글을 발표했으며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이코노미스트>, <BBC>, <르 몽드>, <엘 문도>, <슈피겔>, <더 오스트레일리안>에 글을 실었다.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에서 지내고 있다.
옮긴이 : 김정아
사람과 세상이 궁금한 번역 노동자. 글밥 아카데미 수료 뒤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휴머놀로지》, 《안녕, 인간》, 《초연결》, 《왓츠 더 퓨처》, 《차이나 유스 컬처》, 《당신의 잠든 부를 깨워라》, 《부자 교육》, 《통계학을 떠받치는 일곱 기둥 이야기》 등이 있다.
목 차
들어가며
PART 1 친화력, 인간과 침팬지를 가르다
1. 에덴에서 쫓겨난 인류
2. 아프리카를 벗어나 협력의 길로
3. 음식의 공유에서 정보의 공유로
4. 우리가 대변을 먹지 않도록 진화한 이유
PART 2 친화력은 진화에 어떻게 발현했나
5. 사회적 인간-호모 소시알리스
6. 혁신하는 인간-호모 이노바티오
7. 친화력을 지닌 코끼리, 이기적인 개코원숭이
8. 그럼에도 왜 다툼은 끊이지 않을까
PART 3 인류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끌 친화력
9. 친화력이 높은 사람이 면역력도 높다
10. 진화가 제시하는 행복으로 가는 길
맺으며
감사의 말
참고문헌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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