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배후-춘추, 비루한 왕들의 카니발-(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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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리징쩌
출판사항글항아리, 발행일:2022/03/14
형태사항p.361 A5판:21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67356002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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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리징쩌의 춘추전국시대 욕망 읽기

나약하고 추악한 인간에 대한 쾌설


『춘추春秋』는 기원전 5세기 초에 공자가 엮은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역사서다. 춘추시대 노나나라 은공 원년(기원전 722)부터 애공 14년(기원전 481)까지의 사적을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유학에서 오경五經의 하나로 여겨진다. 『춘추』는 노나라뿐 아니라 동주시대 제후국들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책이지만 극도로 간략해 겨우 1만6000여 자로 240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후대인들은 이 책에 대해 끊임없이 보충과 해석을 가했고, 그중 가장 유명한 책이 『춘추좌씨전』이다. 줄여서 『좌전』이라 불리는 이 책은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는 『춘추』에 구체적인 살을 붙인 작품으로 중국 문명의 청춘 시대를 대단히 생동감 있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의 문학평론가 리징쩌가 펴낸 『고전의 배후: 춘추, 비루한 왕들의 카니발』은 바로 이 『좌전』에 등장하는 여러 역사 에피소드 중 흥미로운 사례를 골라서 저자의 독특한 해석을 자유롭게 펼쳐낸 역사에세이다. 제목을 ‘고전의 배후’라 한 것은 이 책이 문맥상 드러나지 않는 역사 인물들의 속내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고 부제를 ‘비루한 왕들의 카니발’이라 한 것은 때로는 신하들에 의해 허수아비로 세워지거나, 자신의 비루한 욕망에 얽매여 비명횡사한 권력자에 대한 신랄한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벽돌 밑장 빼기


리징쩌가 춘추시대를 독해하는 방식은 어떤 면에서 지극히 세속적이다. 마치 누군가의 비밀을 들춰내서 그가 만인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거나 극도의 허탈감을 주는 방식이다. 가령 「거짓말이 키운 왕」을 보자. 제나라 민왕湣王이 주인공이다. 그는 기원전 300년부터 16년간 통치하면서 막강하던 제나라를 말아먹은 왕이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 연나라 장군 악의가 육국 연합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위나라로 도망갔다. 임치 왕궁에 남은 금은보화는 깡그리 약탈당했고 백성도 뿔뿔이 흩어졌다. 망명지에서 멍하게 앉아 있던 왕은 신하 공옥단公玉丹에게 물었다.

“내가 이렇게 된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원인이 무엇인가. 이대로 끝나는 건가. 말 좀 해주게. 고칠 게 있으면 고치겠네.” 그러자 공옥단은 의관을 갖추고 앞으로 나아가 대왕이 망명하시게 된 것은 현명하기 때문이며, 천하가 어리석어 그 현명함을 싫어하기에 연합 공격한 것이 이유라고 답한다. 이 말을 들은 제 민왕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현명함이란 이렇게 힘든 것인가”라고 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왜 공옥단이 그 시점에 굳이 거짓말을 했을까다. 당시 제왕은 이빨 빠진 호랑이에 지나지 않았다. 몇 마디 솔직한 말을 해도 쫓겨나거나 목이 달아날 일은 없었다. 리징쩌는 공옥단의 심리를 파고든다. 제나라 왕이 간절한 태도로 진실을 알려달라고 했을 때 공옥단은 참지 못하고 거짓말을 이어나갔다. 이를 통해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공옥단은 무척 즐거웠으리라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그는 자신의 총명함 때문에 즐거웠다. 더 은밀하고 달콤한 즐거움은 왕을 괴롭히는 것,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엉덩이를 다 드러내고 거리에 나가도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 것, 이것이 어리석은 왕들의 현실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이유는 두려워서이기도 하지만 즐겁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게 리징쩌의 해석이다.


공자는 약점이 있어 귀엽다

맹자는 너무 완벽한 것 같다


「순의 울부짖음」을 보자. 순임금의 이야기에서 가장 아득하고 심오한 장면은 “순이 밭에 나가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곤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순임금은 요임금의 선양으로 왕이 된 성군이다. 왜 그는 밭에서 울부짖었을까.

리징쩌는 맹자가 기록한 순의 일대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순이 왕이 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와 동생의 집요한 방해가 있었다. 순을 불에 태워 죽이려 하고 우물에 묻으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순은 간신히 살아났다. 게다가 복수하지 않고 포용함으로써 두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했다. 공자와 맹자는 이것이 순의 선함, 너그러움, 인내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저자의 입장은 다르다. “선은 우리에게 아무런 현세적 이익도 제공하지 못한다. 선은 뭔가를 획득하고 취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포기하고 버리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순의 이야기는 선에 대한 보응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 리징쩌는 “그가 고난을 당하고 극도로 연약했을 때, 하늘은 말이 없고 거친 들판도 말이 없었다. 그의 영혼만 흔들리고 있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선을 지키는 사람은 끝내 고독하고 스스로 굳셀 뿐 그에 대한 리워드는 우리의 상상일 뿐이라는 것. 이것이 순임금의 이야기에서 끌어낸 그의 결론이다.

「맹자의 선택 문제」에서 그는 『논어』 읽기와 『맹자』 읽기의 차이점에 대해 말한다. 『논어』는 노인을 상대로 뭔가 상의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거는 아닌 거 같은데요” 하면서 말이다. 반면 『맹자』는 상의할 것이 없다. 그가 곧 진리이자 정의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상의하려 하면 맹자는 탁자를 내리치며 혼낸다.

예컨대 맹자는 가장 이상적인 세제는 십일제什一制라며 열 근의 수확이 있으면 한 근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의를 듣던 송나라 관리가 훌륭하긴 하나 시간이 촉박하니 내년에 다시 얘기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관리 입장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적인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자는 “그건 닭을 훔치는 자가 훔치는 양을 한 달에 한 마리 줄여 내년에 그만두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옳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면 당장 그만둘 것이지 무엇 때문에 내년을 기다리겠습니까?”라고 벼락처럼 소리를 높였다. 리징쩌는 이 대목에서 “내가 맹자를 진정으로 좋아할 수 없는 건, 생존의 문제를 닭의 문제로 치환하고 넘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양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십일조를 바치게 했다. 하층 관리들이 칼을 차고 돌아다니며 임의로 “네 수입은 대강 얼마이니 얼마를 내놓아라”라고 했으며 유럽 백성은 가산을 탕진하고도 십일조 세금을 내지 못해 자식들을 팔기도 했다. 물론 맹자는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큰 옳음’과 ‘큰 그름’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바람의 저작권


『시경詩經』은 일종의 민간 문학이라고 전해진다. 고대의 노동인민이 집단적으로 창작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중국과 한국이 대체로 비슷하다. 대학에서는 왜 『시경』을 민간 문학이라고 가르쳤던 것일까? 리징쩌의 선생님은 그것이 고대 노동자들에 대한 칭송이고, 그들을 칭송하는 것은 절대로 잘못된 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옳든 그르든 칭송부터 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시경』의 시편들 중에서 왕후장상과 자신들의 조상을 칭송하고 찬미하는 「아雅」와 「송頌」은 묘당의 노래라 할 수 있고 「국풍國風」은 대부분 귀족계층의 무병신음無病呻吟 혹은 유병신음有病呻吟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시경』 안에 어떻게 남녀의 사적인 사랑 이야기만 있을 수 있겠는가. 당시엔 귀족계층만이 읽고 쓸 자유를 누렸고, 백성은 그저 먹고사는 데 바빴을 텐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설득력 있다. 그런데 왜 귀족들은 시를 쓰면서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 것일까. 당시는 아직 고대사회라서 대다수라는 집단에 섞여들어가는 것의 장점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서명署名을 하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는 서명이 아무 의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짧은 글을 한 편 쓰거나 간단한 노래를 부를 때 자신의 이름으로 표시해두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지 못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문명의 청춘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인세를 받을 곳도 없었기에 저작권 의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진리는 바람과 같다. 시가 바람과 같은 것과 마찬가지다. 긴 머리가 바람에 펄럭인다고 해도 바람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장기판 살인 사건’부터 ‘대중목욕탕 유혈 사건’까지


이 책은 여러 차례의 살인 사건을 소개하고 그 배후를 치밀하게 추리하는 글을 여럿 실었다. 대부분 왕과 신하, 왕족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다.

첫 번째 사건은 ‘장기판 살인 사건’이다. 송나라 민공閔公이 대장군 남궁만南宮萬과 장기를 두고 있었다. 둘은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사실 껄끄러운 사이였다. 2년 전 남궁만은 노나라와의 전쟁에 져서 포로가 됐다 풀려난 사실도 있다. 장기 판세는 남궁만 우세였다. 그가 그만 안 해도 될 소리를 해버렸다. 자신이 포로 시절 겪어보니 노나라 왕이 참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이 말이 송 민공의 귀에 꽂혔다. 참 한가한 말이고 경우 없는 소리다. 게다가 상관 앞에서 적의 상관을 칭찬하는 하극상 같은 발언이다. 민공은 이 기분 나쁜 놈에 대한 적개심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도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미녀들이 시중들고 있는 앞에서 “노나라 왕은 아주 훌륭하지. 그래서 이자가 죽지 않고 포로가 됐던 것이지.” 이 말에 남궁만은 폭발했다. 그는 손을 뻗어 왕의 목을 잡아 단숨에 비틀어버렸다. 일격에 살해한 것이다. 남궁만은 즉시 진陳나라로 도주했다. 진나라는 이 골치 아픈 자에게 술을 잔뜩 먹여서 수레에 묶어 송나라로 되돌려보냈다.

두 번째는 ‘대중목욕탕에서 싹튼 유혈 사건’이다. 제나라 의공懿公은 참으로 경우 없는 호색한이었다. 그는 저잣거리의 얼굴이 예쁜 유부녀를 자기 여자로 삼았다. 더 놀라운 건 아내를 빼앗긴 남편을 자신의 마차를 모는 일에 고용해 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름이 용직庸職인 이 사내는 억울했지만 주어진 직에 적응하며 점차 아픔을 잊어갔다. 그런데 그가 의공의 다른 마차를 모는 병융丙戎이라는 이름의 젊은이를 알게 됐다. 그는 의공이 무덤에서 꺼내 다리를 부러뜨린 과거 싸움 상대의 아들이었다. 둘 다 의공의 원수지만 둘은 별 문제 없이 마차를 몰았다. 문제는 두 사람이 목욕탕에서 만난 것이다. 둘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급기야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 한쪽이 “야, 이 다리 부러진 놈의 자식아”라고 하면 다른 쪽은 “마누라를 빼앗긴 놈 주제에”라고 응수했다. 둘은 주먹다짐을 했고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으며 그 화의 근원을 더듬다 생각이 왕에게 미쳤다. 이후 둘은 칼을 준비해 숨어 있다가 의공이 마차를 타고 죽림 깊은 곳에 산책 갈 때 살해해버렸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이 오랜 시간 와신상담하며 복수의 칼날을 간 것 같지만, 저자 리징쩌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원인은 바로 목욕탕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춘추오패 중 하나인 진 문공, 전쟁에서도 양보를 한 것으로 유명한 송 양공 등 많은 역사적 사례를 곱씹으면서 그들의 행위에 숨어 있는 인간의 욕망을 읽어낸다. 저자는 춘추시대가 인간이 아직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때라고 본다. 그런 입장에서 인간의 순수한 욕망과 마주하는 것, 그것이 역사 읽기의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책은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리징쩌 

1964년 태어났고 산시山西성 루이청芮城이 본적이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바오딩保定, 스자좡石家莊 등으로 옮겨 다니며 살았고 1980년 베이징대학 중문과를 졸업했다. 『소설선간小說選刊』 편집자를 거쳐 『인민문학』에서 편집자, 제1편집실 부주임, 주임, 부편집장을 역임했다. 문학평론가로 활발히 활동했으며 『색의 이름』 『종이의 현장』 『강변의 나날』 『아무리 봐도 비밀 교류』 『차가운 향락』 『세월을 읽다』 『천일야를 간증하다』 등 다수의 평론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중국작가협회 당위원회 서기처 서기를 지내고 있으며 2021년 중국작가협회 제10기 전국위원회 위원으로도 선출됐다.


옮긴이 : 김태성

서울 출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타이완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학 연구공동체인 ‘한성문화연구소漢聲文化硏究所’를 운영하면서 중국 문학 및 인문 저작 번역과 문학 교류 활동에 주력하고 있으며 『인민문학』 한국어판 총감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번역해 옌롄커를 한국에 소개했으며 『풍아송』 『딩씨 마을의 꿈』 『레닌의 키스』 『일광유년』 『침묵과 한숨』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 외에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탕누어의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등 130여 권의 중국 저작물을 옮겼다. 2016년 중국 신문광전총국에서 수여하는 ‘중화도서특별공헌상’을 수상했다.

목 차

한국어판 서문: 춘추에 펼쳐진 고대의 풍경


1. 오생의 두세 가지 사건

2. 같은 배를 탄 두 아들

3. 월나라의 토끼몰이

4. 거짓말이 키운 왕

5. 푸줏간에 숨다

6. 새 울음소리

7. 마부와 차부, 하이힐

8. 바람의 저작권

9. 진리의 탄생

10. 공자 제자들이 행한 좋은 일들

11. 군자의 수면 문제

12. 과인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으니

13. 인간의 본성과 물

14. 순의 울부짖음

15. 용기

16. 수학자의 도시

17. 맹자의 선택 문제

18. 성인병聖人病

19. 맹자가 이상주의자를 만났을 때

20. 세난

21. 전국책

22. 장기 한 판

23. 송宋 양공에 관한 한 가지 상상과 다양한 문제

24. 중이 외전

25. 거래침 사건

26. 조씨 고아

27. 대중목욕탕에서 싹튼 유혈 사건

28. 마구 움직이는 식지

29. 기둥을 끌어안고 사랑의 노래하다

30. 변호사 등석을 기리며

31. 규칙의 붕괴

32. 물고기와 검

33. 영웅 요리

34. 누구를 먹지 못하겠는가?

35. 초 영왕 전기

36. 뽕나무 전쟁

37. 오자서의 눈

38. 진나라 조정에서 울다

옮긴이의 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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