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한국 사람 만들기>는 <한국 사람>의 계보학이다. 현대 한국인의 기저를 형성하고 있는 <친중위정척사파>,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 등 다섯 가지 인간형의 정치적, 국제정치적, 사상적 배경을 추적한다. 총 6권으로 기획된 시리즈의 제 1권은 <서문>, <제 1부: 조선 사람 만들기>, <제 2부: 친중위정척사파> 로 구성되어 있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조선반도>라고 불리던 땅에는 <조선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조선사람>은 14세기 말, 조선의 건국세력이 천년 불교국가였던 고려를 멸망시키고 고려인들에게는 생소하고 이질적이기만 한 주자성리학이란 이념을 도입하여 새 문명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태어난다. 조선왕조가 주도 면밀하게 추진한 급진 유교 개혁의 결과 17세기에 도달하면 《사서삼경》을 배움의 근간으로 삼아 《삼강오륜》의 윤리관을 내재화시키고 《종묘사직》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조선사람>이 완성된다.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은 조선의 건국을 가능케 했던 국제질서를 무너뜨린다. 조선의 안보를 보장해주던 명이 멸망하자 조선은 쇄국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17세기부터 시작된 전방위적인 쇄국에도 불구하고 19세기에 이르자 조선왕조의 체제모순과 실정이 극에 달하면서 <조선사람>의 정체성을 떠받치던 정치, 경제, 사회체제와 함께 성리학적 윤리, 도덕, 예(禮)가 내부로부터 붕괴하기 시작한다.
18세기 중반 전래되기 시작한 <서학>(西學) 즉, 천주교는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서양 선교사들을 통하여 전래된 것이 아니라 조선의 선비들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도입된다. 동학(東學)은 서학에 대한 대안으로 1860년에 창시된 신흥종교였지만 이 역시 조선에 대한 이념적, 정치적, 사회적 도전이었다.
1880년대 중반에야 처음 소개된 개신교는 189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조가 교육과 의료 등 가장 기본적인 국가의 역할마저 포기한 상태에서 개신교가 그 공백을 채우기 시작하는 한편 청일전쟁으로 중화질서가 무너지고 러일전쟁으로 일본의 조선 침탈이 본격화되면서 이 새로운 미국의 종교는 여성과 평민, 천민은 물론 양반계층, 특히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사이에 급속히 퍼진다.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갑오개혁(1894), 대한제국수립(1896)은 모두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조선의 전통체제를 개혁해 보려는 시도들이었다. 이 모든 시도들이 실패하고 1910년 8월 22일, 조선은 일본제국에게 국권을 빼앗긴다. 그러나 조선을 떠받쳐 온 체제와 문명은 이미 오래 전부터 대부분의 조선사람들로부터 버림 받았다. 의병을 일으키고 일본에 끝까지 무력으로 항거한 것은 주자성리학자들인 위정척사파 선비들뿐이었다. 나머지 조선사람들은 국권을 상실한 울분은 공유하였지만 조선조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1919년, 나라를 빼앗긴지 9년만에 일어난 3.1 운동 때도 조선왕조의 복원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곧 이어 수립된 상해 임시정부도 공화국을 주창하였을 뿐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과 조선왕조를 복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경우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주자성리학도, 왕조체제도, 중화질서도 아니라면 이제 어떤 이념을 바탕으로 어떤 체제를 구축하고, 어떤 질서를 따를 것인가? 새 나라는 조선사람이 아닌 어떤 사람들을 위한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인가?
나라를 빼앗기고 전통을 거부한 조선사람들은 <문명개화론>으로, <애국계몽운동>으로, <민족개조론>으로 새로운 인간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간도로, 연해주로, 상해로, 중경으로, 연안으로, 동경으로, 모스크바로, 하바로브스크로, 하와이로, 상항(샌프란시스코)으로, 나성(로스앤젤레스)으로 새 나라와 새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 빼앗긴 조선반도를 뒤로 하고 전세계로 흩어져 새로운 이념과 사상, 정치체제를 공부하고 새로운 종교로 개종하면서 각종 유형의 단체를 조직하고 공동체를 건설하면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새 나라에 걸 맞는 새로운 정치체제와 인간형을 찾기 위한 긴 여정에 나선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Korean Diaspora)는 이렇게 시작된다.
해체되기 시작한 <조선사람>을 대체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나선 조선사람들은 5가지 대안을 찾는다. 첫째는 <친중위정척사파>, 둘째는 <친일개화파>, 셋째는 <친미기독교파>, 넷째는 <친소공산주의파>, 다섯째는 <인종적민족주의파>다.
제 1부 <조선 사람 만들기>에서는 <한국 사람>이 대체하고 있는 조선 사람이 누구였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본다. 조선은 송의 강남농법과 주자성리학, 그리고 명이 이 둘을 조화시키면서 만들어낸 정치체제를 받아들인다. 조선 초의 개국 개혁 세력들은 주자 성리학의 근간인 종법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강력한 불교 억압 정책을 펼치면서 종교는 물론 사회 제도와 풍습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을 밀어붙인다. 당시 최첨단 농법인 중국의 강남농법을 도입하기 위해서 이앙법을 실험하고 수차를 개발하고 측우기와 해시계를 발명한다. 그리고 새로운 문명을 퍼뜨리기 위하여 대편찬 사업을 일으키고 주자성리학에 입각한 새로운 예법, 풍속을 만들어낸다. 조선 사람은 세종을 비롯한 조선 초기의 개혁 세력들이 중국의 주자성리학 체계를 도입하고자 추진한 급진 개혁이 가져온 대격변 속에서 탄생한다.
제 2부는 ‘친중위정척사파’의 시대적, 사상적, 정치적 계보를 추적한다. 조선 초기의 급진 개혁을 통하여 탄생한 조선 사람은 17세기에 그 정체성을 시험 받는다. 조선이 늘 오랑캐로 간주하던 여진족이 세운 청(淸)은 1636년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복속시킴은 물론, 8년 뒤인 1644년에는 명을 멸망시키고 중국대륙을 차지한다. 세계질서가 붕괴되고 문명의 축이 사라지면서 조선사람들은 자신들의 사상적, 정치적, 국제정치적 정체성을 재정립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은 강력한 쇄국주의 이념을 태동시킨다. 겉으로는 청을 <상국>으로 섬기지만 내심으로는 <오랑캐>로 경멸하면서 사라진 명의 문명을 이어 간다는 <소중화>(小中華) 사상과 <친명반청>(親明反淸) 사상을 구축한다. 그리고 청이 강요하는 조공을 바치기 위한 <연행사>를 제외하고는 청과의 일체의 교류를 단절한다. 임진왜란 이후 왜관을 통한 극히 제한된 교역을 제외한 일본과의 모든 교류를 이미 단절한 조선은 이제 중국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 이렇게 형성되는 후기 조선의 자아관, 국가관, 그리고 세계관은 조선 말의 위정척사 사상으로 이어진다. 대내적으로는 새로운 <사문난적>(斯文亂賊)인 천주교의 도전과 대외적으로는 새로운 오랑캐인 <양이>(洋夷)의 출현이 가져온 <서세동점>(西勢東漸)과 <개국>의 시대에 맞서 천주교 박해와 쇄국정책을 주창하면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형성된 조선후기의 쇄국주의는 19세기에 다시 만개한다.
작가 소개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1992-2005),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UNESCO) 사회과학국장(2003-2005),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한국학연구소 소장 겸 국제관계학부 및 정치학과 교수(2005-2007),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 선임 정치학자(2007-2010), 아산정책 연구원 이사장 겸 원장(2010~2019) 등을 역임했다. 미국 칼튼대학교(Carleton College)에서 경제학 학사학위(1980), 존스홉킨스대학교(Johns Hopkins University)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학위(1992)를 취득하였다.
목 차
서문
제 1부 조선 사람 만들기 39
서론 40
제 1장 고려 사람 대 조선 사람 47
1. <장가가지 말고 시집가라> 48
2. 장가만 갔던 고려 사람들 52
3. 고려의 근친혼 풍습 61
4. 처가살이한 조선 사람들 64
5. 제사를 거부한 조선 사람들 67
제 2장 주자성리학의 정치경제 74
1. 중국의 강남 개발 76
2. 강남농법과 송의 경제혁명 85
3. 송대의 국가-시장 관계 90
4. 송의 영화 95
제 3장 선비의 탄생 103
1. 과거제도와 <사>의 탄생 105
2. 문학에서 도학으로 110
3. 주자와 강남농법 113
4. 사와 예의 부활 117
5. 사와 종법제도의 부활 121
6. 주자가례의 완성 126
7. 명의 대안 134
제 4장 조선의 혁명 139
1. 원과 고려: 주자학 문명 도입의 창구 140
2. 세종의 급진개혁 146
3. 조선의 농업혁명 153
4. 조선 향촌질서의 구축 157
5. 족보와 집성촌의 탄생 167
제 1부 결론 170
제 2부 친중위정척사파 177
서론 178
제 1장 병자호란과 명의 멸망 187
1. 명의 쇠퇴와 여진족의 등장 194
2. 누르하치의 부상 198
3. 팔기군의 탄생 200
4. 몽골의 항복과 요동함락 204
5. 청태종과 도르곤 209
6. 청의 성공요인 217
제 2장 청의 대륙정복과 중국 지식인들의 반응 227
1. 중국 지식인들의 반응 229
2. 황종희의 주자학, 양명학 비판 233
3. 고염무와 왕부지, 안원의 주자성리학 비판 238
4. 고증학의 태동 244
제 3장 청의 대륙정복과 조선의 대응 247
1. 소현세자: 닫히는 조선의 첫 희생양 250
2. 송시열과 <기축봉사> 260
3. 숭명반청이념의 체제화 267
4. 제 1차 예송 269
5. 제 2차 예송 279
6. 예송의 3가지 논점 280
7. 주자성리학 근본주의와 도통이론 288
8. 주자성리학 근본주의와 남존여비사상 294
9. 양주십일기의 기록 301
제 4장 천주교의 도전 307
1. 예와 신앙 309
2. 이익: 주자성리학과 천주교의 만남 316
3. 주자학적 금욕주의와 천주교의 침투 321
4. 정약용과 상제의 역할 332
5. 신앙으로써의 천주교 337
6. 강희제와 교황 클레멘트 11세의 제례논쟁 340
7. 조선의 전례논쟁과 제사거부 344
8. 천주교 박해의 시작: 신유박해 349
9. 황사영 백서 사건 355
10. 파리 외방선교회와 조선 선교의 시작 359
11. 기해박해와 프랑스함대의 출현 362
제 5장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 동치중흥 371
1. 제 1차 아편전쟁 374
2. 제 2차 아편전쟁 379
3. 베이징 함락과 원명원 약탈 384
4. 태평천국의 난과 후난학파 397
5. 상군의 결성 406
6. 상군의 성공요인 410
7. 상승군의 역할 417
8. 동치중흥의 실패 420
제 6장 위정척사파와 쇄국정책 425
1. 양이의 출현 427
2. 조선의 중국정세 정탐 430
3. 병인박해 433
4. 제너럴셔먼호 사건 441
5. 병인양요 446
6. 이항로의 척사사상 455
7. 신미양요 467
제 7장 위정척사파와 흥선대원군의 대립 483
1. 조선 경제의 모순 486
2. 조선 정치의 모순 494
3. 흥선대원군의 개혁 496
4. 마지막 선비 최익현 499
5. 왕도정치 대 부국강병 509
6. 고종의 친정과 조선 경제의 몰락 516
제 2부 결론 524
(주) 540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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