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동(童)’과 ‘시(詩)’의 새로운 접점을 모색하다
지난 10여 년간 변화의 시기를 겪은 우리 동시단을 생생히 지켜보며 흥미로운 비평적 상상력을 펼쳐 보인 김제곤은 『동시를 읽는 마음: 새로운 동시를 위한 탈중심의 상상력』에서 최근 우리 동시의 성과를 진단하는 동시에 한계점을 낱낱이 짚어 낸다. 격변의 시기를 겪으며 새로운 언어감각과 상상력을 내세우는 동시가 과연 주 독자인 어린이와 얼마나 소통했는지 꾸준히 질문하는 이번 평론집은 ‘동(童)’과 ‘시(詩)’의 새로운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요즘 동시’를 바라보는 김제곤의 비판적 시선은 우리 동시단에 ‘난해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활발한 논의를 이끌었다. 지난 10년간 성인문단의 역량 있는 시인들이 대거 동시단에 참여하고, 새로운 감각을 지닌 다양한 신인들이 등장하여 ‘새로운 언어와 상상력’을 구축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이루어 냈지만, 한편으로는 어린이 독자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성격이 있고, 어린이를 순순한 동심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동심주의 태도를 노출했으며, 소시민 가족의 단조로운 일상에 갇혀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에 김제곤은 동(童)과 시(詩)를 대립적인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가 ‘동’을 어떻게 마주하고 그에 대처하려 했는지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또한 동시인들은 어린이에게 윤리를 강요하기에 앞서 어린이가 갖지 못한 어떤 힘을 자신이 가지고 있음을, 즉 어린이를 대하는 어른의 윤리를 먼저 성찰할 것을 제안한다. 주류의 그늘에 가려지고 억압과 차별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타자화된 삶을 살고 있는 ‘퀴어한 존재’(어린이)들을 위해 탈중심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기화할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통찰은 동시인과 동시연구자에게 의미 있는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 동시 100년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김제곤은 “한 번쯤 돌아보아야 할 동시의 전통이 모두 낡은 유산처럼 속절없이 잊히는 것 같”은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그는 우리 동시의 출발 지점과 진행 흐름에 대한 열띤 탐구로 우리 동시사 100년을 톺아본다. 저자는 가창을 전제로 한 동요에서 묵독을 전제로 한 동시로 우리 동시가 진화했다는 통념을 부수고 심층 분석을 통해 “아동문학의 서정 장르는 동요에서 동시로 진전된 것이 아니라 비슷한 출발점에서 함께 시작된 것이라 보아야 옳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문학사적 구도를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우는 귀한 의견이다. 윤석중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아동문학의 두 거목 윤석중과 이원수의 삶과 문학을 비교 고찰하며 ‘동심주의’와 ‘현실주의’라는 이분법 구도에서 벗어나 이를 상호 보완의 관계로 이해하자는 흥미로운 제안을 펼친다. 지난 100년 사이 우리 동시의 전개 과정과 2000년 이후 우리 동시의 흐름을 개관하는 이 귀중한 작업은 동시문학사의 활발한 연구를 촉구하는 동시에 “‘지금 여기’의 시간을 충실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 동시인을 격려하는 목소리가 될 것이다.
폭넓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과거와 현재의 동시를 마주하다
우리 동시의 과거와 현재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성찰한 비평 정신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섬세한 탐구로 이어진다. 김제곤은 해방기의 동요시인 권태응, 1990년대의 정세기, 2000년대의 성명진 등 세 시인의 삶과 작품을 심도 있게 분석한 작가론 또한 펼친다. 저자는 우리 동시사에 작가론 차원에서 진지한 탐색을 시도할 만한 동시인이 너무나 많음에도 그 연구가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과 함께 앞으로의 탐구 의지를 보여 준다.
『동시를 읽는 마음』을 꿰뚫는 논제인 ‘동과 시의 접점 찾기’는 저자가 당대 동시인들의 작품이 어린이에게 가닿는 순간을 포착한 해설에서 그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청소년시’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박성우, 새로운 말법과 표현으로 독창적인 시 세계를 보여준 김륭, 우리 사회의 귀퉁이에서 살아가는 소수자를 위한 시를 보여 준 김애란, 어린이를 대하는 새로운 시선으로 새 바람을 불러온 송현섭 등 당대 동시인의 작품에 대한 자상하고 균형 잡힌 분석이 돋보인다.
김제곤의 첫 평론집이 출간된 후 20년이 지났다. 그간 동시의 현장을 지켜보며 때론 벅찬 마음으로, 때론 안타까운 심정으로 동시를 대하는 그의 살뜰한 마음으로 쓴 평론집이 동시인과 아동문학 연구자에게는 뜻깊은 이정표가, 동시를 읽는 이들에게는 다정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문득 짧은 동시 한 편에서 어떤 글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전율이 강렬하게 전해질 때가 있다. 몇 개의 말들로 완벽한 자기 충족의 세계를 이루어 내는 그 신비로움을 느껴 본 이들이라면 아마도 동시의 매력을 쉽게 뿌리치지는 못하리라 본다. 이유가 무엇이든 동시가 계속 쓰이는 한 나는 계속해서 그런 동시를 마중하러 나설 것이다.
_「책머리에」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제곤
경인교대를 졸업하고 인하대 대학원에서 윤석중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아동문학 평론 활동을 해 왔다. 격월간 『동시마중』 편집위원, 계간 『창비어린이』 편집위원장을 지냈으며 인하대, 춘천교대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한다. 지은 책으로 『아동문학의 현실과 꿈』 『윤석중 연구』가 있으며, 함께 쓴 책으로 『이원수와 한국 아동문학』 『교사를 위한 온작품 읽기』, 역은 책으로 『밤 한 톨이 땍때굴』 『권태응 전집』 등이 있다.
목 차
책머리에
1부 동시 생태계의 균형을 위하여
황금시대는 도래했는가: 최근 동시 흐름에 대한 진단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오늘의 동시를 보는 관점에 대하여
‘동’과 ‘시’의 접점 찾기
비평의 두 표정: 김종헌, 김재복의 동시 비평을 읽고
중심에 맞서는 방법
2부 도전과 변모의 발자취
‘동시’의 기원과 계보: 『금성』지 수록 동시고
동갑내기 두 문인의 행보: 윤석중과 이원수의 삶과 문학
2000년대 동시 흐름과 전망
동시 100년, 도전과 변모의 발자취
3부 시인에 대한 탐색
동천 권태응의 삶과 문학: 『권태응 전집』 간행에 부쳐
동시인 권태응이 되기까지: 새로운 유작들을 중심으로
‘어린 민중’의 발견과 서정성의 구현: 정세기론
순정함의 힘: 성명진론
4부 동시의 새 길을 찾아서
풋풋한 연두, 발랄한 빨강: 박성우 『난 빨강』
파란색 고양이와 셔플 댄스를“ 박성우 『사과가 필요해』
호모 아만스를 위한 시: 김륭 『사랑이 으르렁』
학교 밖 아이들이 부르는 삶의 노래: 김애란 『난 학교 밖 아이』
‘어마어마한 거인’들을 위한 시: 송현섭 『내 심장은 작은 북』
밝고 따스한 시: 이정록 『콧구멍만 바쁘다』
아이들에게 꼭 맞는 코끼리 힙합 바지: 강경수 『다이빙의 왕』
변신 마술의 힘: 김응 『똥개가 잘 사는 법』
발랄한 언어감각과 진실한 삶의 태도: 정유경 『까불고 싶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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