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현대와 시원始原 사이를 오가는 순례 여행길에 펼쳐지는
몽환적이고도 우아한 시적・철학적 대/화
콜롬비아 작가 미겔 로차 바바스의 『아르카와 이라―비인간화 시대의 대/화』는 여행문학이나 철학 에세이의 일반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독특한 장르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전 지구적 행보라 할 만한 저자의 다양한 여행이 바탕을 이루지만, 일반적인 여행 보고서와는 궤를 달리한다. 이미 첫 장에서 소비자이면서 소비의 대상이 되는, 쉽게 상품 취급을 당하면서 만나는 사람이나 대상을 상품 취급하는 여행객(관광객)과 거리를 두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책 속의 여행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순례의 여정으로 배치된다.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순차적이거나 병렬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아시아나 다른 공간과 연결되고, 시간 또한 연대기적이 아니라 고대와 현대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거나 교차된다.
제목에서 암시되어 있듯이, 이 책은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모두 ‘아르카’와 ‘이라’라는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친구 사이의 남미인들이면서 동시에 아르카와 이라는 ‘시쿠’ 혹은 ‘삼포냐’라고 부르는 안데스 취주악기를 의인화시킨 인물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화는 실제에 바탕하면서 하나의 작품 속에서 재배치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따로, 또 함께 여행한 것들을 토대로 대화하며, 가끔은 두에르메아우토피스타스라는 긴 이름의 야윈 개와 더불어 걷기도 한다. 아르카와 이라는 일종의 대/화의 메타포이다. 이들의 대화는 공명하는 악기의 연주를 닮았고, ‘새들의 노래’(6장)를 닮았고, 두 날개로 꿈처럼 나는 ‘나비의 비행’(4장)을 닮았다. ‘현자의 꿈’(4장)들을 오늘날 다시 해석해 내고자 하는 두 사람의 대/화는 주로 콜롬비아와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하지만 제주도(5장)를 비롯한 아시아와 다양한 지역으로도 이어지면서, 장자와 타고르, 이주와 관광, 사랑과 연민, 죽음, 우정, 여행, 자연에 대해 논한다. 대화는 도처에서 몽환적이면서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빛나는가 하면 도저한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대화가 미리 정해 놓은 논리적 결론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공명을 따라 움직이며 생생한 사유의 숲을 헤쳐나가는 순례의 여정으로 독자들을 이끈다는 점이다.
『아르카와 이라』는 시장市場으로 모두 수렴되는 이론과 수학 공식 같은 문학작품이 넘쳐 나는 시대에, 프로그래밍 되지 않은 비평의 세계를 우리에게 되돌려 준다. 사유는 머리로부터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신체에서 발현되고, 서사와 상상력과 대화를 통해 쇄신된다. 아르카와 이라의 대/화는 철학, 종교, 과학, 원초적 언어의 기원으로 시적인 회귀를 유도하며, 그 현재상도 포착하게 해준다. 두 사람의 질문, 경탄, 이미지들은 다름 아닌 우리의 인간 조건에서 출현하고, 또한 이 조건에 수렴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인간 조건의 많은 부분은 자연, 문화, 그리고 인간 범주로 국한하면 안 되는 인간을 포함한 일체의 생명과 무생물 등의 합에 빚지고 있고, 이 합과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컨대, 『아르카와 이라』는 한마디로 이주, 배타적 인종주의, 사회생태적 불공정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인간다움을 회복하라는 시적·윤리적 촉구이고, 동시에 인간의 만물에 대한 폭력적 우위, 인간종種의 지구에 대한 폭력적 우위라는 인간 중심주의적 현실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맞서고 있는 대화적 비판인 셈이다.
이 비인간화 시대의 대/화는 필시 보다 풍요로운 장에서 지속될 것이다. 한국의 독자인 우리는 이 책의 5장인 「제주, 하하」를 읽으며 신선한 감동을 얻게 된다. 그것은 우선 그저 가벼운 제주 스케치가 아니라 제주라는 또 다른 세계와의 대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성찰을 담고 있는 데서 얻게 되는 것인데 우리에게 열린 다차원적인 대화의 세계로 나아갈 것을 권유하는 강렬한 초대로 읽히기 때문이다. 『아르카와 이라』가 여행기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여행은 필연적으로 타자, 타문화와의 접촉을 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의 문제의식의 하나인 신자유주의적 세계는 이주가 인간 조건이 된 세상, 따라서 타자, 타문화와의 접촉이 일상이 되어 상호 문화적 이해가 없이는 갈등과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여행은 그 인간 조건에 대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두에르메아우토피스타스라는 개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다차원적 대화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장치일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과 동물,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조화 의지를 피력한 것이리라. 콜롬비아로부터 전달된 이 독창적인 여행 대화집이 우리의 삶의 여행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미겔 로차 비바스
콜롬비아의 문학박사, 작가, 상호문화 교육가. 현재 보고타 소재 하베리아나 대학 부교수이자 자신이 동 대학 사회과학대학에 설립한 생태비평·상호문화연구센터 소장이며, 다수의 에세이와 서사집을 펴냈다. 최근 수년간 한국과 콜롬비아의 예술가 및 연구자들을 잇는 학술 활동을 여러 차례 조직하였으며 또한 서울, 부산, 제주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주최 국제학술대회와 지구적세계문학연구소 주최 AALA문학포럼(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에 참가한 바 있다. 2009년 콜롬비아 문학 부문 연구상을 수상하였으며, 2016년에는 현대 콜롬비아 선주민들의 글쓰기에 대한 『말의 협업Mingas de la palabra』으로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아메리카의 집Casa de las Américas(쿠바) 연구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영어판으로 번역되기도 했다(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출판부, 2021). 최근에는 『이미지의 협업: 선주민·상호문화 연구Mingas de la imagen. Estudios indígenas e interculturales』(하베리아나 대학 출판부)를 공동 편찬했다.
옮긴이 : 우석균
서울대학교 서어서문과를 졸업하고, 페루 가톨릭대학교와 스페인 마드리드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각각 라틴아메리카 문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논문 집필 중에는 칠레의 칠레 대학교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에서도 수학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에 재직 중으로 출판과 국제 교류에 역점을 둔 활동을 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AALA문학포럼(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문학포럼)의 라틴아메리카 문학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쓰다 만 편지』, 『잉카 in 안데스』,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를 썼으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칠레의 밤』, 루이사 발렌수엘라의 『침대에서 바라본 아르헨티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사랑과 다른 악마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밖에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생활과 소외』, 『현대 라틴아메리카』, 『마술적 사실주의』를 공역했으며,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라틴아메리카 석학에게 듣는다』와 『역사를 살았던 쿠바』 등을 편찬했다.
옮긴이 : 김현균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스페인 마드리드콤플루텐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로 있다.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낮은 인문학』(공저) 등을 썼고, 루벤 다리오 시선집 『봄에 부르는 가을 노래』, 파블로 네루다 시집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세사르 바예호 시집 『조금밖에 죽지 않은 오후』, 로베르토 볼라뇨 시집 『낭만적인 개들』, 마리오 베네데띠 소설 『휴전』,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의 『칼리반』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김수영 시선집 『Arranca esa foto y usala para limpiarte el culo』, 김영하 소설 『Tengo derecho a destruirme』, 한국 현대문학선 『Por fin ha comenzado el fin』(공역)을 각각 멕시코, 스페인, 콜롬비아에서 출간하였다.
목 차
여행, 바퀴, 레일 그리고 동물의 구속
자유로운 케찰을 보다. 두 번이나!
사랑에 빠진 먼지
나비의 비행, 현자의 꿈
제주, 하하
새들의 노래
침묵과 탈창조
몇 사람의 얼싸안기
희생 혹은 상호 의존?
지금의 이주자… 그리고 예전의 이주자
옮긴이의 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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