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상이 책 수집에 대한 우리의 변명이다.”
책을 찾고, 구하고, 모으고, 지켜내던 열정적인 ‘책 사냥꾼’들의 시대 자신만의 도서관을 만들고자 시장통과 거리, 경매장을 헤매던 사람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책이란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이며, ‘일정한 목적, 내용, 체재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고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이다. 글과 그림으로 묶인 이 발명품은 오랜 시간 인류의 기억과 기록을 책임져왔다.
『책 사냥꾼의 도서관』은 책이라는 매체가 여전히 강력하고 독자적인 힘을 발휘하던(비록 작가는 당시에도 영국의 독자들이 줄어드는 중이라고 불평하지만) 시대에 적힌 ‘책 이야기’다. 저자인 앤드루 랭과 오스틴 돕슨은 국내에 19세기의 중후반과 20세기 초반을 두루 겪었던 작가들로 문학과 역사에 대해 다양한 책을 펴냈다. 소설가이자 민속학자, 시인이자 전기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자로서 활동하던 그들에게 ‘책’은 분명히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을 테다. 책 첫머리에 들어간 오스틴 돕슨의 짤막한 시(“그 작고 진귀한 책, 고색창연한 그 책”을 칭송하리라)만으로도 충분히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주 저자인 앤드루 랭은 디브딘 박사의 말을 인용하며 서문을 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어한다”(19쪽).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이 말이 얼마나 큰 공감을 불러올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뒤이어 랭이 펼쳐내는 각종 애서가의 일화를 보면 오랜 역사에서 ‘자신만의 도서관’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던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호메로스, 단테와 밀턴, 셰익스피어와 소포클레스 등 우리가 잘 아는 빛나는 이름들부터 리브리나 뒤몽스티에처럼 해당 분야에 깊이 관심을 품지 않으면 분명히 낯설 이름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책을 사랑하고 탐내던 이들의 계보는 꾸준히 이어진다. 그로부터 파생된 이야기는 가끔 오싹하고 때론 우스꽝스러우며 종종 감명 깊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루소의 저작을 발견하고 밤새 잠 못 이루던 수집가는 책장 사이에서 루소가 보관한 페리윙클 꽃잎을 보고 “극한의 행복”을 느꼈다. 자신이 원하던 귀중한 기도서를 찾아내기 위해 500킬로미터를 한달음에 달려간 수집가도 있다. 어떤 책 도둑은 본인이 놓친 책을 포기하지 못하여 책 수집가들을 습격하고 그들의 집을 불태웠다. 이 다종다양한 애서가들이 끝내 바라던 풍경은 모두 같았다. 세상의 진귀한 책들을 한데 모아둔 자신만의 도서관이 그것이다.
대규모로 제작된 책들을 살 수 있게 된 오늘날, 현대의 독자에게 『책 사냥꾼의 도서관』 속의 이러한 일화들은 아무래도 낯설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아주 멀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절판된 책들, 혹은 아주 오래전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져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책들은 여전히 어마어마한 가격 아래 팔려나간다. 이 책들을 찾아내기 위해 비밀스러운 거래에 뛰어드는 자들도 존재한다. 19세기이건 20세기이건 21세기이건 간에, 이들의 목적은 모두 같다. 우리가 잘 알거나 아직 모르는 목적, 사상, 체제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을 충실히 옮겨놓은 발명품. 『책 사냥꾼의 도서관』은 바로 그 발명품의 가치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말하고 있다.
우리는 책 속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과거의 작가와 손을 마주 잡는다
“문학적 유물”이자 “타인의 영혼”이 담긴 책들을 구하는 여정
앤드루 랭은 책의 가치를 ‘아름다움’‘희귀함’‘기묘함’ 등 세부적인 항목으로 구분한다. 비록 문학적 관점에서는 별다른 가치가 없을 작품일지라도, 책 자체로는 유의미한 작품도 있다. 먼 과거에 제작되어 만든 이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이라거나, 희귀한 삽화가 수록된 작품 등이 좋은 사례다. 마리 앙투아네트나 뒤바리 부인, 나폴레옹 등 역사적으로 저명한 인물이 소유한 책 역시 큰 관심을 받는다. 알두스 마누티우스처럼 전설적인 출판인이 펴낸 책에는 마니아들이 따라붙는다.
랭은 이러한 책 수집의 매력을 “감상적인 측면”으로 설명한다. “고서들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문학적 유물로서 신성하고 귀중한 가치”를 지니며, “이는 종교의 신자들이 종교적 유물을 신성하게 여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49~50쪽). 책을 모으는 이들은 한때 작가가 미래를 전혀 예견치 못한 채 설레고도 두려운 마음으로 출판한 바로 그 작품을 바란다. 작가가 제작에 직접 의견을 내고, 훗날 부끄럽게 여길 작품을 손수 다듬어 수록한 바로 그 책 말이다. 독자는 “이런 판본을 통해 작가의 영혼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선다”(50쪽)고 느낀다. 책이란 여러 기록이 담긴 인쇄물을 넘어, 타인의 영혼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유물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책 사냥꾼의 도서관』은 책을 읽기를 위한 도구로만 다루지 않는다. 본문에서 책이란 오래될수록 귀하며, 희귀할수록 탐나는 대상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현대 한국에서도 당장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1698년에 암스테르담에서 펴낸 판본이 주는 감동은 어디서도 느낄 수 없다. 해당 판본 속 삽화에는 17세기 파리의 대중이 본 복장을 그대로 차려입은 등장인물의 모습이 수록되어 있으며, 독자는 이를 통해 먼 과거의 사람들과 연결됨을 느낀다. 이때 책은 ‘읽기’를 위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한 시대가 여실히 드러나는 흔적이 된다. 저자는 “우리가 책에 생생한 애정을 느끼는 까닭은 바로 이 감상적인 측면”에 있다고 설명한다. “책을 통해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위대한 시인들, 학자들과 교류할 수 있다. 우리의 손은 시대를 뛰어넘어 그들의 손을 마주 잡는다”(56쪽). 우리는 마주 잡은 손에서 시와 소설을 발견하고, 기도나 노래를 마주하기도 한다.
이처럼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매체가 책이었던 시절,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책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본문에서는 이 과정을 무척 생생하게 묘사한다. 장서와 서가를 관리하는 법은 지금 보아도 흥미롭다. 자신만의 책장을 가꾸거나 오래된 책을 고치는 요령 모두 현대에는 거의 배울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쓸 당시만 해도 작가는 책 표지에 광택제를 바른다거나 책장 안에 흑단을 대는 일이 완전히 생소해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책 사냥꾼의 도서관』이 ‘책’이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지에 주목하고 있음을 떠올리면, 19세기에 쓰인 이 책과 오늘날 우리가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은 새삼스레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기도가 담긴 책, 삽화가 아름다운 책, 오래도록 살아남은 책
19세기의 애서가들이 현대의 우리에게 건네는 ‘책을 향한 연가’
책의 1장과 2장이 애서가와 책 수집가, 그리고 그들의 기록에 대해 두루 다룬다면 3장과 4장은 고서와 삽화 책이라는 더욱 구체적인 주제에 집중한다. 이 중 3장이 주목하는 고서는 ‘필사본’으로, 유물로서의 책 중에서도 그 가치가 가장 높이 평가된다.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책’이라는 필사본의 특징은 많은 수집가에게 사랑받기 충분한 조건이었다. 앤드루 랭은 같은 장에서 채식 필사본을 수집하는 이들이 배워야 할 여러 지식을 전수하는데, 중세의 서체나 책장 차례의 순서, 낙장 조사 방법 등이 그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독자 중에서 필사본을 수집하는 이는 매우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어쩌면 그렇기에 필사본을 손에 쥐고자 온 힘을 다하는 수집가들의 노력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가치를 모르는 이에게는 사소한 오자나 얼룩으로 다가옴 직한 책의 오류조차 애서가들에게는 과거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가 된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필사된 성서에서 발견된“책을 끝냈으니,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147쪽)는 구절은 그러므로 더욱 강렬한 반향을 준다. 오늘날 책은 더는 가장 큰 주목을 받지 못하며, 귀족과 도둑을 막론하고 온갖 사람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도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책장 속 활자들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독자와 작가를 연결하고 있다.
물론 활자만이 책 속의 연결 고리인 것은 아니다. 오스틴 돕슨이 쓴 4장 「삽화가 들어간 책」은 그림책이나 삽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선물과도 같은 장이다. 오스틴 돕슨은 책이 쓰일 당시만 해도 신식 문화였던 ‘삽화’가 어떻게 책의 울림을 더하고 아름다움을 배가하는지 서술한다.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로 알려진 알브레히트 뒤러나 빛의 묘사로 이름을 떨친 윌리엄 터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리즈의 삽화가로 잘 알려진 존 테니얼이 그린 그림과 그 뒷이야기는 지금 보아도 흥미롭다. 돕슨은 삽화라는 예술 분야가 어떤 식으로 성장하고 발전해왔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짚어나며, 이 과정은 책이 우리에게 주는 다양한 감각적 접근을 골똘히 생각해보게 만든다.
책이 융성하던 시절은 이미 떠나갔다. 다만 책은 여전히 쓰이고, 만들어지며, 읽히고 있다. 이 책을 비롯하여 과거의 책들은 다시 다채로운 글과 그림으로 살아나 현대의 독자에게 전해진다. 우리는 여전히 인쇄된 글과 그림을 통해 타인과 맞닿으며 다른 시공간을 체험한다. 때로는 책 안의 내용에만 감동하지만, 어떤 때에는 책이라는 사물 그 자체에 지극한 애정을 품는다. 『책 사냥꾼의 도서관』은 이 감동과 애정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는 책이다. 19세기 유럽을 살았던 애서가들의 삶을 정확히 공감할 수야 있겠으나, 그들이 ‘책을 향해 바치는’ 연가의 진실성에는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이 연서 역시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면서 말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앤드루 랭 (Andrew Lang)
스코틀랜드의 셀커크에서 태어났다. 시인이자 소설가, 문학평론가이며 인류학·역사학·고전학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민속학자로서 문학과 신화 등 다양한 분야에 공헌했다. 유럽을 비롯해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여러 지역의 신화와 민담, 전설, 전래동화를 수집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표작인 『요정 이야기』 시리즈는 빨강·파랑·초록 등 색깔별로 구성된 동화집으로, 그의 아내 리어노라 랭과 공동 작업했다. 그 외에도 시집·역사서·에세이 등 60여 권의 작품을 남겼다.
지은이 : 오스틴 돕슨(Henry Austin Dobson)
영국의 플리머스에서 태어났다. 시인이자 비평가이며, 전기작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리처드 스틸이나 올리버 골드스미스, 호러스 월폴 등 많은 문학인에 관한 비평을 썼으며 『운율의 삽화Vignettes in Rhyme』 『리라의 기호에서At the Sign of the Lyre』 『도자기 속 잠언Proverbs in Porcelain』 등 시집을 비롯하여 문학과 역사에 관련된 여러 작품을 남겼다.
옮긴이 : 지여울
한양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를 졸업하고 토목 설계 회사에서 일하다가 번역의 길로 들어섰다. 사람과 자연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책을 발굴하고 번역하기를 꿈꾸며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을 향한 탐험』 『탐정이 된 과학자들』 『진리의 발견』 『험담꾼의 죽음』 『넷플릭스처럼 쓴다』 『묘사의 힘』 『시점의 힘』 『디 아더 유』 『인스머스의 그림자』 등이 있다.
목 차
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8
1장 책 사냥꾼을 위한 변명 -17
2장 도서관 -61
3장 수집가의 장서 -125
4장 삽화가 들어간 책 ◆오스틴 돕슨 -193
찾아보기 -266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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