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누구나 안다고 믿는 도덕, 그럼에도 물어야 하는 이유
도덕은 자명한 것이기에 더 살펴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면 도덕을 두고 더 이상 이러쿵저러쿵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미 자명한 것 위에 더 설명을 얹을 수는 없기에 그렇다. … 그런데 정작은 이런 자명하다는 주제를 놓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각종 다양한 견해가 오고 간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실 윤리에 ‘순수 형식’이 선명하게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 특정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윤리를 한번 보자고. 그건 결코 자명하다고는 할 수 없지. 그 속에는 어느 한쪽을 궁지에 몰아 억압하는 기제가 은폐되어 있기 마련이야. … 이런 말이 모조리 진실이 아님은 쉽게 밝힐 수 있다. 그런데 그러려면 자명한 것에 관해서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본문 중에서
우리는 “도덕”이 뭔지를 “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도덕”이란 곧 “무엇”이라는 어떤 느낌이 있다. 우리가 비록 우리 사회의 모든 법령이나 도덕적 규율을 꿰차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있다. 다시 말해, 비록 우리가 배운 “도덕” 교육에 “도덕적인 것”의 세부 일람과 같은 것은 없고, 그러므로 우리가 그 “도덕적인 것”의 세부 일람을 모두 알지는 못함에도, 우리에게는 어떤 것이 도덕적이고 어떤 것이 비도덕적인지에 대한 어떤 느낌이 있으며, 그런 점에서 “도덕”이 뭔지를 “안다”는 것이다. 이런 말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도덕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그보다는 오히려 문화권에 따라 다른 것이므로, 정말로 “도덕”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본다면 거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유대인에 대한 학살과 같은 것은 그것이 당신의 가시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또는 당신의 문화권이 그것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포장한다고 해서 그 존재가 부정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것에 대해서 문화권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대표적으로 살인이나 아동 학대 같은 비도덕적 행위가 그러하듯이,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은 분명히 구별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는 유대인이나 학살의 존재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는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그 존재를 느낀다. 그리고 그 존재를 “안다”. 비록 그 존재를 암시하는 것은 박물관에 남은 신발들과 소음처럼 깔린 비명 같은 흔적뿐이지만, 우리는 저 너머로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도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대인을 말살하려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해서 그 존재 자체가 없던 것이 될 수는 없듯이, 도덕을 부정하고 훼손하는 자들이 있다고 해서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될 수는 없다. 다른 예시로 들어가 보자. 당신이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의 도덕적 가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해도, 당신은 직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행위가 “좋은” 행위라는 것을 느낀다. 거기에는 어떠한 사전 지식이나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 그처럼, 도덕에도 “좋은 것”은 있다. 나는 지금 어떤 세부적인 도덕 원칙 하나가 “좋은 것”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아는 “도덕” 또는 우리가 느끼는 “도덕적인 것”의 근간을 이루는 “좋은 것”이 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을 달리 말하자면, 도덕의 근본 개념 또는 도덕의 심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도덕”에 대해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서, “도덕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이때의 “도덕적”이라는 것은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티끌이 없다거나 그 모든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행동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완전히 확신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아가 우리 행동의 흠결을 숨기고 싶어 할 가능성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한 행동에 대해, 그 당시에는 떳떳했더라도, “좋은 의도”가 늘 “좋은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기에, 예기치 못한 결과로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처럼 우리 행동의 흠결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하고 나면 자신의 행동이 정말로 옳았는지 반추하고 또 반성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적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이 이야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앞선 이야기로 돌아가 도덕의 근본 개념 또는 도덕의 심층에 자리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먼저 물어야 한다. 저자인 로베르트 슈페만은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본서를 8개의 장으로 나누고, 그 장 내에서 도덕의 심층에 자리한 개념들을 하나둘 설명해 나간다. 여기에는 어떤 윤리학적인 전문용어 같은 것은 없다. 왜냐하면, 저자가 본서에서 논하고자 하는 “도덕”이란 어떤 학문적으로 규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염두에 두고, 가급적 그 실천을 지향해야 하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적이어야 하므로, 그것은 일상어로 쓰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 삶의 방향타가 되어야 하므로, 그 도덕의 정의를 뿌리 깊게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슈페만은 이 책에서 도덕의 심층에 자리한 것들을 일상어로 풀어서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종종 던지고는 하는 질문들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쉽게 던져지지만 쉽게 답할 수 없었던 질문들이다. 또 그 질문들은 그것에 대해 답하지 않고는 참된 “도덕”에 관해 알 수 없는 그런 질문들이다. 그 질문들은 곧 “도덕”의 심층, 도덕의 근본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이 이미 익히 알고 있는 그 “도덕”을 더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또는 가끔은 나쁜 생각이나 행동을 하기도 하는 당신이 어떻게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당신이 맞닥뜨려야 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게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 시작은 무엇보다도 “도덕”을 당신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넣는 것, 즉 당신의 “관심 영역”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작가 소개
로베르트 슈페만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자연법적 전통과 도덕 실재론을 현대적으로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성과 근대성 개념, 철학의 사회적 역할 등을 둘러싸고 하버마스(Jurgen Habermas)와 나눈 수차례의 논쟁이 유명하다. 도덕규범은 인간의 본성에 근거한 객관적 실재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평생을 도덕 상대주의와 싸워 온 도덕 철학자였던 그는, 슈투트가르트대학교와 하이델베르크대학교 교수를 거쳐 오랫동안 뮌헨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본서 외에도 주요 저작으로 『Gluck und Wohlwollen』(『행복과 자애』, 1989), 『Personen』(『인격』, 1996) 등이 있다.
목 차
역자 서문
저자 서문
1장 철학적 윤리학: 선과 악, 과연 상대적인가?
2장 사람 만들기(양육): 쾌락 원리와 현실 원리
3장 교양 쌓기(교육): 자기 이익과 가치감
4장 정의(正義): 나와 타인
5장 심정과 책임: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는가?
6장 개인: 언제나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가?
7장 무조건적인 것: 무엇이 행위를 선하게 하는가?
8장 내맡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을 대하는 태도
역자 해설: 경탄인가, 포착인가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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